암퇘지
마리 다리외세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199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선배의 소개로 읽게 되었다. 과연 듣던대로, <비의 소설> 만큼이나 엽기적이었다. 처음만 말이다. 엽기가 엽기일 수 있는 것은 최소한만큼이나마 현실성이 전제될 때뿐이다. 후반부부터는 이 소설은 아예 SF가 되어버린다. 그것으로 작가는 책임을 피하려 한 건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그것 때문에 이 소설은 단순히 '선정적이고 엽기적인' 소설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 같다.(프랑스 미디어들의 찬사가 괜히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개인적으로는, 후반부로 갈수록 긴장감이 떨어져서 재미가 그다지 없었다. 작가가 얘기하려는 사회의 부패라든지 인간의 추잡함(?)은 초중반부에 걸쳐서 이미 충분히 묘사되었고, 수긍할 만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보름달을 보면 늑대인간이 되는 남자의 출현으로 소설은 그나마 남아있던 현실성을 잃어버리고, 독자로 하여금 긴장을 할 수 없게 만들어버린다. 그 외에도 가끔씩 끼어들어 말하는 작가의 말들 - '내가 하게 될 이야기가 난잡해 지더라도 용서해 주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 따위의 것들 - 도 조금 짜증이 난다. 물론 끝까지 읽고 나면 그 이유를 알게 되긴 하지만, 짜증나기는 마찬가지다. 이런 것들은 그냥 덜 성숙된 처녀작이라는 이유로 덮어두기로 하자.

어쨌거나 이 작품이 굉장히 매력적이라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다. 초중반부의 긴장도 그렇고, 다분히 선정적인 묘사들도 그렇고, 무엇보다 '변신'을 소재로 했다는 것이 기존의 소설들에 식상한 독자들에게 분명히 끌릴 만한 요소가 될 것이다. 책 뒤 한 서평 중 '소재 자체에 외설의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리 다리외세크는 저속성이라는 암초를 피하는 데 성공했다'라는 서평이 있는데, 동감하는 바이다. 분명 이 소설이 매우 묘사적이긴 하지만, 그것이 지나치게 세세하지는 않다. 오히려 조금 추상적이거나 너무 간단히 지나쳐 버려서 그 뜻이 혼동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역자의 책임으로 묻고 싶다.

전체적으로, 꼭 읽어야만 하는 책 정도로 추천할 수는 없다.(사람에 따라선 이런 책을 매우 혐오스럽게 보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엽기'라는 코드를 '저속'과 혼동하지 않을 정도의 내공이 쌓인 사람이라면, 뭔가 새로운 것에 갈망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은 얼마든지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다.

2001. 4. 8 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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