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창작자를 위한 빌런 작법서 - 당신의 이야기를 빛내줄 악당 키워드 17
차무진 지음 / 요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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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어나서 작법서를 딱 두 개 읽었는데 그 중 하나가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이고 나머지 하나가 이 책이다. 사실 좋은 문장이니 무슨무슨 법칙이니 하는 책들, 이건 뭐 다 같이 똑같은 거 쓰자는 것 같아 바보처럼 느껴졌다. 너무 뻔한 글을 쓰게될까 봐 걱정되었다고 하나. 그러느니 교양을 키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랬는데 카페에서 우연히 이 책을 보고 이상하게 끌렸다. 끌리는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뭐니뭐니 해도 컨셉이 되게 매력적이다. 악당의 유형을 열일곱가지 중심어로 나눠서 그 유형에 들어맞는 이야기들을 접목해서 설명하는데, 깊이가 예상보다 훨씬 깊었다. 


어떤 중심어는 되게 심리학적이고 어떤 중심어는 되게 역사 분석적이고, 어떤 중심어 설명은 사회비판적이었다. 게다 실례로 든 작품의 스펙트럼이 정말 넓어서 놀랐다. 파크라이 같은 게임도 있고, 킬링이브 같은 최신 드라마부터 인수대비 같은 사극도 있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장편 같은 고전도 있고, 암살 교실 같은 애니메이션도 있고, 영화는 이것저것 하도 많이 다루고 있어서 다 말할 수도 없다. 


작가는 대체 밥먹고 이야기만 보고 읽나 싶을 정도로 다루는 분야가 넓어서, 뭐하는 사람인가 찾아봤더니 역시 소설가였네. 시나리오도 쓴다고 하고. 또 작법 강의를 10년 넘게 해온 모양이다. 직업 작가들은 다 이렇게 내공이 장난 아닐 걸까. 


가장 흥미로웠던 중심어는 이인자, 어린아이, 여성, 질투였다. 


"이인자"와 "질투"는 어쩌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단 생각도 들었지만, 예시로 든 작품들이 각각 달랐고, 접근 방식도 좀 달라서 따로따로 흥미롭게 읽었다. 이인자 악당은 원래는 일인자와 맞먹는 실력을 가지고 있지만, 아버지나 신 같은 존재에게 인정을 받지 못해서, 가령 차남이어서 여자여서 이인자가 되어야 하는 운명이다. 질투는 원래 가진 것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딱 하나 없는 걸 가진 누군갈 시기하는 거다. 실력자이지만 이인자이고, 남의 것을 질투하는 이들의 심리만큼 나는 흥미로운 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이인자 악당과 질투하는 악당 장을 굉장히 집중해서 읽었다.


"여성"이라는 중심어의 제목도 마음에 들었다. "한을 뿌리지 않고 악을 뿌린다"니 표현이 췿저였고, 남성 작가로서 여성 캐릭터를 심사숙고하고 옳바른 방향을 제시하려는 노력과 시도가 느껴져서 반가웠다. 요즘 시의에 맞는 키워드다. 


"어린아이"를 어린 악이라고 표현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어린이는 그저 순수 그 자체일 것 같지만 그 순수함에서 성인으로서는 짐작할 수 없는 악이 발동할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고 하는 말과 행동이 때로 어른들에게 큰 상처를 주지 않나. 그런 어린 악이 비약적으로 담긴 작품들을 예로 들어 설명 해나가는데, 우리 집 아이들을 보는 내 마음이 잠시 서늘해지기도 했다. 


한가지 조금 이해하기 어려운 악당 장은 가면을 쓰고 "양면성"을 띠고 있는 악당을 다룬 장이었다. 선과 악 중간에 선, 사실은 선을 원하지는 않는 악당을 말한다면서 힌두교의 비슈누와 카사블랑카 주인공을 예로 들었는데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카사블랑카 주인공이 왜 양면성이 있는 악당이라는건지 아직 잘 이해 못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작품을 내가 다 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게 정말 제대로 딱 들어맞는 예로 든 작품인지 눈치채지 못했지만, 악당 타입을 이해하는 것에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다. 이렇게 많은 작품들을 예로 들어 이만큼 깊이감 있게 분석한 글쓰기 책이 있었나 싶다, 라기엔 내가 너무 이쪽 책을 안 읽긴 했지만, 어쨌든 교양서로 읽어도 좋겠단 생각도 들었다. 단순히 이렇게 이렇게 설정하고 쓰라는 기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그 악당이 어떤 앞뒤 맥락에서 움직여야 할지 알려주다 보니 교양과 상식이 되게 풍부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러니까 작법서에 회의적인 나 같은 인간에게 잘 맞는 책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다. 


본문에 들어간 사진 편집 상태는 아쉬웠다. 좀 시원하게 확 넣어도 좋았을 텐데. 그리고 너무 어두워서 사진이 뭔 상황인지 잘 안 보이는 것도 있었다. 또 찾아보기 같은 것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것도 아쉬웠다. 되게 많은 작품을 어찌 보면 과시하듯 엄청나게 실례로 들고 있는데, 그 작품이 몇페이지에서 나왔던가 찾보려고 인덱스가 있나 봤더니 없었다. 있었으면 친절한 과시가 될 것 같다.


어쨌든 나는 뭐를 쓰고 싶어 하는 것 치고 그 방면으로 뭔가를 공부한 사람은 아니지만 서당개로서 이야기의 핵심은 '갈등'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아니 들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악당'이 어쩌면 이야기의 핵심 아닐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작법의 기본이 무엇인지 잘 아는 작가가 나 같은 독자에게 뭐가 필요한지를 잘 알고 쓴 좋은 책 같다. 명확한 매뉴얼을 제시하다곤 못해도, 또 아쉬움도 있었지만, 당신의 이야기를 빛내줄 악당 키워드 17이라는 부제에 잘 들어맞게 짜여 있고 이야기 기본이 뭔지는 알려주는 좋은 책인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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