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박찬욱, 류승완, 추상미, 신경숙, 노희경 외 지음 / 씨네21북스 / 2005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유명 작가를 초청해 강의를 들은 뒤 한 학생이 질문을 한다.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뭡니까?”

작가라면 많이 받는 질문일 테지만, 그만큼 짜증도 날 것이다. 문학소녀로 어릴 적부터 책을 벗삼아 살아온 그 작가에게 모든 책은 다 나름의 감명을 주는 귀한 것들이 아니었을까? 어떻게 그 중 딱 한권을 골라 “이 책이 제일이었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역시나 그 작가분은 다른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영화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 매니아가 아닌 나 역시 ‘가장 재미있었던 영화’를 묻는다면, 그 주옥같은 영화들 중 뭘 골라야 할지 난감할 거다. 미녀 분이 내게 선물해 준 <내 인생의 영화>는 어릴 적부터 영화광이었던 사람들에게 그런 위압적인 질문을 던진 뒤 책으로 엮은 거다. 독자 입장에선 흥미로울 수 있겠지만, 감명 깊은 영화를 골라야 하는 저자들은 고역이었으리라. 몇몇 분을 제외하곤 대부분 지금은 DVD를 구하기 힘든 고전들을 선택했는지라 봐야 할 명작 리스트를 얻기보다는 자신이 본 영화가 있으면 반가워하는 재미에 책을 읽는 게 좋을 듯하다.

책에서 공감한 점. 실연을 당한 뒤 듣는 빅마마의 <체념>이 훨씬 마음에 와닿는 것처럼, 영화 역시 자체의 재미에 그 당시 어떤 상황인가가 큰 영향을 미친다. 어느 저자의 말이다.

“숱한 영화들을 놔두고 큰누나와 본 몇편이 떠오르는 것은 내가 아직도 영화 그 자체보다 영화로 인한 추억을 더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는 증거이리라.(48쪽)”

필름포럼 대표인 권병철은 같은 이유에서 <올리브 나무 사이로>라는 영화를 ‘내 인생의 영화’로 꼽았다. “...바로 아내의 손을 잡았다는 거였다(19쪽).”

영화 자체의 재미는 별로 없는 <S 다이어리>를 내가 아직도 인상 깊게 간직하고 있는 이유도 당시 사귀던 그녀의 손을 잡았기 때문, 그러니 <내 인생...>같은 기획보다는 ‘사연이 있는 영화가 뭐냐?’고 질문했더라면 더 재미있는 책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늘 내게 좋은 책을 선물해주시는 그 미녀분께 다시한번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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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7-05-21 0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맞아요. 저도 차라리 누군가 사연있는 영화를 물어봐주는 쪽이 대답하기 쉽겠는데요. 훗.

심술 2007-05-21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분이 학생에게 들려준 말이 뭔지 궁금해요. 알려주세요.

부리 2007-05-24 08: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심술님/아 그건요 당신이 주로 어떤 책을 읽는지 말씀하셨답니다.
다락방님/사연 있는 영화 말씀해 주세요!!
 

 

 

 

 

서른이 돼서야 책을 읽기 시작한 나, 일년에 대체 몇권이나 읽는지 궁금해져 책달력이란 걸 만들었다. 읽을 때마다 날짜 밑에 책 제목과 더불어 그 달의 몇 번째 책인지를 기록했다. 그렇게 한권 한권 적어나가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었다. 초창기 5권 내외였던 한달 평균은 곧 열권을 넘어섰고, 2005년에는 연간 최다기록인 137권을 읽었다.


읽은 권수가 늘어남과 동시에 내 마음속에 자리잡은 회의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난 점점 기록경신에 신경을 썼고, 그러다보니 내가 읽는 책은 주로 얇은 책이었다. 그달치 열권을 채우고 난 뒤에야 두껍거나 어려운 책에 손이 갔다. 산 지 한참이 지난 토마스 만의 책은 책장에 누워 먼지만 쌓였다.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대체 책을 왜 읽는가? 100권 넘게 읽었다고 자랑하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는 답만 돌아왔다.


책달력을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한 건 작년부터다. 그리고 책의 난이도나 두께에 무관하게 읽고픈 책을 읽었다. 그 결과 작년 내가 읽은 권수는 65권, 5년만에 100권 이하로 추락했다. 별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난 실적에 집착하지 않는 풍성한 독서를 했다고 자위했으니까. 하지만 올해 들어서야 문제가 좀 심각하다는 걸 자각했다. 5월이 거의 막바지에 접어든 지금, 내가 읽은 책은 20여권에 불과하다. 권수도 권수지만, 난 예전처럼 틈만 나면 책을 집어드는 그런 놈이 아니었다. 집에 오면 늘 TV를 켜고, 출퇴근 시간엔 자버리는 일이 많아졌다. 뭔가에 쫓기면서 책을 읽던 지난날이 내 봄날이었던 거다.


나란 놈은 조금 풀어주면 나태해지는 그런 인간이었다는 걸 깨달은 지금, 다시금 책달력을 만들기로 했다. ‘풍성한 독서’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사실은 책을 안읽겠다는 걸 고상하게 치장한 표현에 불과했다. 다시금 책과 친해지기로 한 지금, 내 목표는 ‘AGAIN 200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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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7-05-21 04: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찍 일어나셨네요??
그래도 천천히..천천히 친해지세요..
주위엔 책들 말고 좋은것들이 많답니다..
그나 저나 저도 빨리 책과 친해져야 할텐데..점점 멀어지고 있으니 큰일이긴 합니다..

부리 2007-05-21 06: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님도 일찍 일어나셨네요. 전 야구본다고 세시에 일어났는데 비가 와서 연기된 거 있죠 ㅠㅠ 비가 싫어요. 그나저나 전 책 말고도 좋은 걸 몇개 알고 있어요 테니스, 스포츠, 미녀....^^

2007-05-21 0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7-05-21 08: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른 넘어 시작했고 한참 재미 붙었을 땐 독서노트 꼼꼼하게 쓰고 그랬는데
요샌 흐지부지... 책을 안 읽겠다는 걸 고상하게 치장한 책달력이라해도 좋은데요.
일단 시작이 반이죠. 부리님!

해적오리 2007-05-21 08: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책 저한테 있어요. 누가 선물로 줬어요. ^^
전 이번달 달랑 한권 읽었을껄요. 그래서 어제 출장가는 짐싸면서 위기의식에... 책을 두 권 찔러 넣었어요. 근데 읽을 수 있으려나...
암튼 즐건 한주~

다락방 2007-05-21 0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부리님. 뭐든지 땡길때 하는게 제일 좋은것 같아요. 출퇴근시간에 잠을 자는건 그시간에 잠이 오기 때문이잖아요. 부리님의 요즘 생활을 보면 바쁘고 피곤하신것 같은데 그때라도 그렇게 잠을 보충하지 않으면 어째요. 때론 아무 생각없이 티비를 보는것도 도움이 될테구요. 그러니 뭐든지 하고싶은 마음이 생길때 하세요. 그것이 책 읽는 것이어도 마찬가지구요. 하고 싶을때 하는게 진정한 내것이 되는것 같아요. 엉덩이 춤을 추는 부리님의 뒷모습과, 부리님의 글은 언제나 타인을 웃게해요. 부리님도 웃으며 지내셨으면 좋겠어요. 기운내시구요.

마늘빵 2007-05-21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 안녕? :)

전호인 2007-05-21 1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엔 너무 바쁘다는 핑계로 통 책과 데이트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달 까지 제출해야할 논문이 너무 발목을 잡네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으니.......

무스탕 2007-05-21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AGAIN 만화'를 해야할텐데 요즘 만화가 통 손에 안잡혀서 슬퍼요..
읽고싶은 책들은 쌓여가고 있는데 왜 손이 안뻗치는건지... -_-

게으름뱅이_톰 2007-05-22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른 넘어 시작한 셈....열심히 읽어야겠어요.


부리 2007-05-24 0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으름뱅이님/앗 그렇담 벌써 20년이나....!
무스탕님/애정이 식은 거라기보다 삶이 그만큼 바빠져서가 아닐까요
전호인님/와 책을 멀리하시는 분이 꽤 많군요!!! 어여 논문 끝내시길!
아프락사스님/새삼스럽게 안녕이라뇨^^
다락방님/아앗 저 바쁘긴 해도 그 나름의 즐거움이 있답니다. TV가 사실 문제예요. 그것 때문에 책을 더 안읽게 되는 것도 있는 듯...그리고 요즘은 기운 넘치구요 잘 지내고 있답니다. 제마음 아시면서...^^

부리 2007-05-24 08: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적님/아 님도 저 책이 있다니 반갑습니다. 글구 출장 때 두권 못읽겠어요^^ 그나저나 이번달 한권이라니 으음...
배혜경님/님과 저는 다르죠 전 진짜 책을 안읽었지만 님은 서른 전에도 최소한 문학소녀였잖아요!!
속삭이신 분/아...너무 늦게 드려서 죄송할 따름이어요.... 제 게으름 때문에...흑. 유치한 글에 저리도 멋진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
 

 

 

 

 

“혹시 ‘내 남자의 여자’ 좀 보여줄 수 있니?”


어머니는 김수현의 오랜 팬인데, 지난 월요일과 화요일 그 드라마를 못보셨단다. 난 문제 없다고 대답한 뒤 SBS 사이트에 들어갔다. 사이버캐쉬를 샀고, 일단 월요일치인 13회를 틀어드렸다. 그 다음 회를 어떻게 트는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드렸지만, 엄마 실력에 무리일 듯 싶었다.


“다 보시면 그냥 저 깨우세요.”



어머니의 마음이 다 그렇듯, 내가 잠에서 깨어난 건 엄마가 13회를 다 보고도 한시간이 더흐른 뒤였다. 엄마에게 달려가 14회 다시보기를 시도했다. 근데 뭔가 이상하다. 소리가 안나온다. 모니터 화면 아래에 잘 달려 있던 스피커 표시도 보이지 않는다.


“엄마, 뭐 만지셨어요?”


“아아니.”


난 컴퓨터를 껐다가 다시 켰다. 스피커는 여전히 행방불명이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난 컴맹이다. 컴맹의 특징은 문제가 생겼을 때 껐다 켜는 거 말고 다른 걸 시도할 의지가 없다는 거다. 괜히 만졌다가 더 큰 고장을 가져올까봐 그런 것도 있지만, 이것저것 생각하는 게 귀찮아서 아무것도 안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난 그렇게 살았고, 천안행 기차를 예약해 놓은 오늘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엄마, 스피커가 안나오네요. 못보겠어요.”


엄마가 말한다.


“알았다. 다음번에 보여줘라.”


엄마의 슬픈 눈을 보는 순간, 난 갑자기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고픈 욕망이 생겼다. 생전 안보던 도움말을 읽으며 이것저것 시도했다. 역시나 안된다. 내가 아는 컴도사에게 문자를 쳤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다 관두고 천안에 가야겠다고 생각할 무렵 네이버 생각을 했고, 소리가 안들린다고 검색란에 쳤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은 많았고, 그 중 그림까지 그려진 친절한 답변을 따라 문제해결을 시도했다. 역시나 안된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여기저기 마우스를 클릭할 무렵, 어느새 화면 밑단에는 스피커가 생겨 있었다. 내가 어떻게 그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엄마! 돼요, 돼!”



엄마는 행복하게 ‘내 남자의 여자’ 14회를 보셨다. 내일 저녁 15회가 방영되니 오늘 보시는 게 가장 좋았는데,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난 더 이상 컴맹이 아니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려는 의지를 이제는 갖게 되었으니까.



* 카피레프트 운동이라는 게 있다. 리눅수 토발츠인가 하는 사람이 주창한, 사용자들간에 정보를 공유하는 운동인데, 네이버의 지식검색은 꼭 카피레프트를 닮았다. 답변을 달아준 이름모를 그분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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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7-05-20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착한 효자이시네요,

다락방 2007-05-20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다행이예요. 저도 예전에 스피커가 안나와서 애를먹었거든요. 물론 회사에서 그런거라 회사동료가 찾아주긴했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져서 정말 다행이예요. 엄마도 보고싶은거 보시고, 부리님도 컴맹을 탈출하시고. 좋으네요. 힛.

moonnight 2007-05-20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은 정말 착하세요. 저도 컴맹으로서 가끔 네이버 지식검색을 이용하는데 참 친절한 분들이 많으시더라구요. ^^

춤추는인생. 2007-05-20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 돼요 돼 ㅎㅎ 부리님 그모습 상상하다가 웃고마네요^^

kleinsusun 2007-05-20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효도 하셨어요.^^ 드라마 보다 못 보면 얼~마나 감질 나는데요.

2007-05-20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7-05-21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풍경이었어요. 부리님 멋져요. 천안에 잘 도착하셨죠? ^^

부리 2007-05-21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그, 그게요..... 컴퓨터 하다가 시간이 늦어 오늘 아침에 가기로 했습니다.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
속삭님/아니어요 님은 더 잘하실 수 있을 거예요!!!! 님은 어머니와 산책도 자주 하자나요...
수선님/오, 님은 그 기분 아시는군요. 저도 행복한 여자란 드라마를 안보면 일주내내 불안하다는...그래서 인터넷으로 본다는...
춤인생님/오머나 안녕하셨어요? 우리가 친분에 비해 넘 오랜만에 말을 하네요. 제가 열심히 할께요
달밤님/그러게 말입니다. 겨우 내공을 얻기위해서라기보다, 아는 걸 나누자는 그런 마음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락방님/원래 태생이 컴맹은 없다고 생각해요. 저 이제 열심히 할거예요. 네이버와 더불어^^
울보님/어....이거 하나로 효자가 되다니...부끄러운데요

진/우맘 2007-05-21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컴맹과 비컴맹의 차이는 컴퓨터를 무서워하느냐 무서워하지 않느냐...일걸요?
그까잇거, 고장나면 한 대 사지! 라는 재벌정신으로 도전하시면 컴맹 탈출 시간문제입니다.^^
 

 

 

 

 

 

다이어트를 하기로 하면 먹을 일이 생기는 게 우리네 삶이듯, 술을 좀 끊어볼까 하고 마음을 먹었더니 맹렬히 술약속이 생기는 게 술꾼의 삶인가보다. 술일기를 제때 안쓴 탓에 37번째라고 적는 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기억도 안나는 걸 만들어서 쓸 수 없으니 그냥 그래도 밀고나갈 작정이다. 분명 하루걸러 하루는 술을 마셨던 것 같은데, 6월이 코앞임에도 아직 50번을 안넘었다니 좀 심했다는 생각은 든다.

이번주가 학생들 축제 기간이다. 수요일날 비가 많이 온 탓에 학생들이 주점을 열 수 있는 날은 사실 어제밖에 없었는데, 어제가 이번주 들어 유일하게 약속이 없는 날이었다. 친한 선생 둘과 주점에 갔고, 많이 팔아줘야 한다는 생각에 물쓰듯 돈을 썼다. 같이 간 선생님의 말, “지갑에서 돈이 계속 나오네?”

그 선생님 댁에 가서 2차를 하려는데 너무 많이 술을 마신 탓인지-저녁 먹으면서 난 이미 소주 한병을 넘게 마신 터였다-얼마 못가서 쓰러졌고, 깨보니 선생님 아들이 자는 침대였다. 별 일 없이 잘 잤구나 싶었는데 그 선생님의 말을 뒤늦게 들어보니 아주 가관이었다. 내가 쓰러진 곳은 소파였단다. 거기서 재울 수 없어 침대로 옮기려는데 아무리 깨워도 안일어나더란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바로 담요, 소파 옆에 담요를 깔고 나를 끌어내려 거기다 놓았다. 선생님과 사모님, 그리고 아들 이렇게 셋이 힘을 모아 담요를 끌고 침대까지 갔단다. 이 대목에서 선생님이 한 말, “정말 그때 안깨고 있었어요? 아니면 부끄러워서 자는 척 한거예요?”

답을 미리 말하자면, 난 그 자체가 아예 기억이 안난다. 난 아주 깊이 자며, 술까지 취하면 날 깨우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니 담요에 놓고 끌어당긴다고 깰 리가 있겠는가? 마지막 고비는 침대에 날 올리는 거였단다. 소파에서 내릴 때와 달리 중력에 반하는 일이잖는가. 내가 보통 무거운 놈도 아니고. 자세한 묘사는 안했지만 “매우 힘들었다”고 하니, 어떻게 올렸는지는 상상에 맡긴다 (나도 잘 모르겠다).

잠을 깼을 때 난 엎드려 있었고, 시간은 새벽 5시 40분이었다. 또다른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알코올로 점철될 하루가.

* 주점에서 난 우리 말고 다른 선생님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학생들 축제엔 선생님들도 좀 많이 와주면 좋을텐데, 다들 바쁘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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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7-05-18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이 바쁘신가 보네요 부리님..^^
그래도 건강챙기면서 연구하세요...아 맞다..마태님께도 안부 전해주세요~

moonnight 2007-05-18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수고 많으셨네요. ^^; 학생들 축제 주점이라니. 참 아득한 추억이랄까요. ;;;; 여전히 친근한 교수님이시네요.

야클 2007-05-18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침대처럼 아늑한 공간이 없더군요 ㅋㅋㅋ

Mephistopheles 2007-05-18 1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온갖 상상을 하게 만드는 신묘한 야클님의 댓글...ㅋㅋㅋㅋㅋ

무스탕 2007-05-18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 몸 버리셔요... 아유.. 마태님은 옆에 계셨으면 좀 말려주시지... ^^;;
부리님이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가 다 있었군요 ^^

야클님... 침대뿐이겠어요? (히죽~)

2007-05-19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리 2007-05-20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어머머 그런 칭찬을.... 고맙습니다. 그리고 3보단 2가 더 나아요^^
무스탕님/그래서 이번 주말은 술 안마시려구요. 월요일날 또 큰 술시합이 있어요^^
메피님/그러게요. 그 유머는 결혼 후에도 살아있다니깐요^^
야클님/역시나 대단한....^^
속삭님/후후, 전 그런 예민한 놈이 아닙니다. 갖은 짓을 해도 잠에서 안깬다는...
달밤님/언제 얼굴이나 보여주세요 늘 바쁜척만 하시구....흑
메피님/마태님께 전했더니 메피스토가 누구냐고 하더군요. 흠, 두분 친한 줄 알았는데...
 

 

스승의 날이었던 어제,

학생들이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그들에게 평소 잘해줬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감사하다며 선물을 받고 있노라니 왜 그렇게 부끄럽던지.

특히나 두차례 유급한 학생의 아버지가 보내준 선물은

정말이지 돌려보내고 싶었다.

그 학생이 그러는 동안 제대로 보살핀 적이 없기에.

아버님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 학생이 의사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한개 빼먹고 찍어서 다시...



 

술을 좋아해서 그런지 내게 들어온 선물을 대부분 양주였다.

사실 난, 양주를 좋아하진 않는다.

밖에서 양주를 먹는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그 상황에선 그렇게 해야만 하기에 할 수 없이 먹는 것이고

그 외의 상황에선 소주를 먹는다.

집에서 양주를 홀짝거리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난 어쩌다 혼자 술을 마실 때도-일년에 세 번 이하다-

소주를 마시지 양주를 마시는 일은 드물다.

하지만 소주의 단점은 선물로 하기엔 적당치 않다는 것이고

내가 양주를 받은 건 그 때문이다.




이건 지도학생들이 준 꽃바구니다.

예전에 정희진 선생에게 “페미니스트도 꽃 받으면 좋나요?”라고 물어본 학생이 있었다는데

정답은 “당연히 좋지요”였단다.

남자라 그런지 난 꽃 받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나이가 들면서 눈물이 많아지는 것과 비례해서

꽃 받는 것도 좋아하게 되었으니

이건 뭐, 동방신기도 아니고...

 





 

그래서 난, 예과 학생회장이 사준 이 센스있는 선물이 참 마음에 든다.

메이져리그 모자 중에서 내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는 건

뉴욕메츠와 오클랜드 모자다.

메츠는 은은한 기품이 있고, 오클랜드는 한눈에 사로잡힐만큼 매력적이다.

그가 선물한 건 바로 오클랜드,

같은 모양의 짝퉁은 있지만 정품은 없었는데

예쁜 정품 모자를 갖게 되어 기쁘다.


뉴스를 보니 스승의 날에 학교 절반이 휴교를 했단다.

취지는 촌지 때문이었을망정

아주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날 어린이가 쉬고

근로자의 날 때 근로자가 쉬듯이-사실 학교 선생도 당연히 근로자인데...-

스승의 날 선생님이 쉬는 게 바람직하지 않는가?

그러고보니 어버이날 어버이도 못쉬는구나.

그건 아마도, 어버이가 아닌 나같은 사람도 같이 낑겨서 쉬기 때문에

아예 쉬지 말게 하는 건 아닐런지.

내년 스승의 날엔 물질적인 선물 대신 하루 푹 쉬는 선물을 받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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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오리 2007-05-16 1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자 사진 없어요. 꽃 사진만 두 개~
환상의 이번주도 벌써 수욜이네요...주말까지 무탈하게 주욱 나아가길...

무스탕 2007-05-16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자 사진 나타났어요. 술 사진 둘 꽃 사진 하나 모자사진 하나~
역시(?) 술이 주종을 이루시는군요...
모자쓰고 꽃바구니 안고 술마시는 한 컷 가능할까요? ^^

Mephistopheles 2007-05-16 11: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주 10병 사드릴께요...양주랑 바꿔요! =3=3=3

세실 2007-05-16 11: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근로자의 날도 안쉬고, 스승의날도 안쉬고...대체 언제 쉬어야 하는지원...그냥 쭈욱 근무하라구요? 아 예~~~
술을 좋아하는 교수님이라는 정평 답게 양주가 즐비하군요. ㅎㅎ
축하드립니당~

다락방 2007-05-16 1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므낫. 부리님이 즐겨 드시는 술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주는 탐이나는데요. 힛. 스승의 날, 즐거우셨어요?

오늘은 비가 오네요, 점심은 드셨나요?
:)

프레이야 2007-05-16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축하합니다.!! 꽃바구니도 모자도 충분히 멋지고 따뜻하네요.
양주는 좀 모셔두고 자제하시길...

마늘빵 2007-05-16 1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저는 어제 놀았어요.

moonnight 2007-05-16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역시 인기최고 교수님. ^^ 담에 처음처럼 사드릴테니 양주 한 병 주셔요. -_-;;;; 농담여요. 저도 양주는 잘 못 마셔서.. ^^;;;;

모1 2007-05-16 2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자수집하신다고 본듯 한데..정말 기쁘시겠어요.(근데 외국구단 모자 구하기 많이 힘든가보군요.) 근데..저..술상자요. 보면서...전 책인줄 알았어요. 금장으로 만든 고급스러운 책요. 와..교수님은 책도 저런 금장으로된 고급스러운 책도 선물받으시는구나..했다는...하하..그러다가 자세히 보니 눈에 익은 술상자가 보이면서..아~~술이구나~~하고있어요.

게으름뱅이_톰 2007-05-17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해까지 스승의 날 대부분 휴교였는데 올해는 반 정도 휴교.
이유는, 선생님들이 싫어하시고 슬퍼하신답니다.
'스승의 날'인데 스승이 피신하다니...라면서.

근로와 감사의 개념으로 쉬는게 아니고
촌지와 선물때문에 피신한다고 생각하는건, 선생님들도 마찬가진가봐요.
그렇지 않고서야 슬플리가.

(난 쉬는 날은 그저 좋던데. 흐흐)

부리 2007-05-18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게으름뱅이님/저도 쉬는날이 좋아요 선생님들도 피신으로 생각 안하시면 좋을 텐데요.
모1님/호호 술과 책은 거의 상극이죠 술마시면서 책읽으면 담날 하나도 기억이 안난다는..... 글구 모자 구하는 거, 정품 구하긴 어려운 것 같아요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몇달 걸리고... 다행히 천안 백화점엔 엠엘비 샵이 있어서 그리 어렵진 않습니다
달밤님/농담이 아닌 것 같아 심히 불안하오^^
아프락님/아 노셨군요! 님은 인기짱이니 선물 많이 받지 않나요
배혜경님/주말에 저거 다 해치우려 하다가 님 말씀 듣고 참습니다^^
다락방님/비가 계속 와서 우울해요.... 전 비가 정말 싫은데 흑..
세실님/학생들한테 받으니 미안하더이다. 걔네들이 무슨 돈이 있다고.... 세실님은 부처님오신날 저랑 같이 쉬어요!
메피님/흠, 열병이라면 좀 구미가 땡기는군요^^
무스탕님/한번 해볼까요?^^ 근데 술을 따기가 아까워서............
속삭님/감사합니다 꾸벅
해적님/제가 수요일과 오늘 비가 와서 죽고 싶은 이유 님은 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