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른이 돼서야 책을 읽기 시작한 나, 일년에 대체 몇권이나 읽는지 궁금해져 책달력이란 걸 만들었다. 읽을 때마다 날짜 밑에 책 제목과 더불어 그 달의 몇 번째 책인지를 기록했다. 그렇게 한권 한권 적어나가는 재미가 여간 쏠쏠한 게 아니었다. 초창기 5권 내외였던 한달 평균은 곧 열권을 넘어섰고, 2005년에는 연간 최다기록인 137권을 읽었다.
읽은 권수가 늘어남과 동시에 내 마음속에 자리잡은 회의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난 점점 기록경신에 신경을 썼고, 그러다보니 내가 읽는 책은 주로 얇은 책이었다. 그달치 열권을 채우고 난 뒤에야 두껍거나 어려운 책에 손이 갔다. 산 지 한참이 지난 토마스 만의 책은 책장에 누워 먼지만 쌓였다.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대체 책을 왜 읽는가? 100권 넘게 읽었다고 자랑하려고?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다,는 답만 돌아왔다.
책달력을 더 이상 쓰지 않기로 한 건 작년부터다. 그리고 책의 난이도나 두께에 무관하게 읽고픈 책을 읽었다. 그 결과 작년 내가 읽은 권수는 65권, 5년만에 100권 이하로 추락했다. 별반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난 실적에 집착하지 않는 풍성한 독서를 했다고 자위했으니까. 하지만 올해 들어서야 문제가 좀 심각하다는 걸 자각했다. 5월이 거의 막바지에 접어든 지금, 내가 읽은 책은 20여권에 불과하다. 권수도 권수지만, 난 예전처럼 틈만 나면 책을 집어드는 그런 놈이 아니었다. 집에 오면 늘 TV를 켜고, 출퇴근 시간엔 자버리는 일이 많아졌다. 뭔가에 쫓기면서 책을 읽던 지난날이 내 봄날이었던 거다.
나란 놈은 조금 풀어주면 나태해지는 그런 인간이었다는 걸 깨달은 지금, 다시금 책달력을 만들기로 했다. ‘풍성한 독서’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사실은 책을 안읽겠다는 걸 고상하게 치장한 표현에 불과했다. 다시금 책과 친해지기로 한 지금, 내 목표는 ‘AGAIN 2005'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