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내 남자의 여자’ 좀 보여줄 수 있니?”


어머니는 김수현의 오랜 팬인데, 지난 월요일과 화요일 그 드라마를 못보셨단다. 난 문제 없다고 대답한 뒤 SBS 사이트에 들어갔다. 사이버캐쉬를 샀고, 일단 월요일치인 13회를 틀어드렸다. 그 다음 회를 어떻게 트는지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드렸지만, 엄마 실력에 무리일 듯 싶었다.


“다 보시면 그냥 저 깨우세요.”



어머니의 마음이 다 그렇듯, 내가 잠에서 깨어난 건 엄마가 13회를 다 보고도 한시간이 더흐른 뒤였다. 엄마에게 달려가 14회 다시보기를 시도했다. 근데 뭔가 이상하다. 소리가 안나온다. 모니터 화면 아래에 잘 달려 있던 스피커 표시도 보이지 않는다.


“엄마, 뭐 만지셨어요?”


“아아니.”


난 컴퓨터를 껐다가 다시 켰다. 스피커는 여전히 행방불명이다.



아는 분은 아시겠지만 난 컴맹이다. 컴맹의 특징은 문제가 생겼을 때 껐다 켜는 거 말고 다른 걸 시도할 의지가 없다는 거다. 괜히 만졌다가 더 큰 고장을 가져올까봐 그런 것도 있지만, 이것저것 생각하는 게 귀찮아서 아무것도 안하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난 그렇게 살았고, 천안행 기차를 예약해 놓은 오늘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엄마, 스피커가 안나오네요. 못보겠어요.”


엄마가 말한다.


“알았다. 다음번에 보여줘라.”


엄마의 슬픈 눈을 보는 순간, 난 갑자기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하고픈 욕망이 생겼다. 생전 안보던 도움말을 읽으며 이것저것 시도했다. 역시나 안된다. 내가 아는 컴도사에게 문자를 쳤지만 전화는 오지 않았다. 다 관두고 천안에 가야겠다고 생각할 무렵 네이버 생각을 했고, 소리가 안들린다고 검색란에 쳤다.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은 많았고, 그 중 그림까지 그려진 친절한 답변을 따라 문제해결을 시도했다. 역시나 안된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여기저기 마우스를 클릭할 무렵, 어느새 화면 밑단에는 스피커가 생겨 있었다. 내가 어떻게 그 일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엄마! 돼요, 돼!”



엄마는 행복하게 ‘내 남자의 여자’ 14회를 보셨다. 내일 저녁 15회가 방영되니 오늘 보시는 게 가장 좋았는데,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난 더 이상 컴맹이 아니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려는 의지를 이제는 갖게 되었으니까.



* 카피레프트 운동이라는 게 있다. 리눅수 토발츠인가 하는 사람이 주창한, 사용자들간에 정보를 공유하는 운동인데, 네이버의 지식검색은 꼭 카피레프트를 닮았다. 답변을 달아준 이름모를 그분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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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보 2007-05-20 16: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로 착한 효자이시네요,

다락방 2007-05-20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다행이예요. 저도 예전에 스피커가 안나와서 애를먹었거든요. 물론 회사에서 그런거라 회사동료가 찾아주긴했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져서 정말 다행이예요. 엄마도 보고싶은거 보시고, 부리님도 컴맹을 탈출하시고. 좋으네요. 힛.

moonnight 2007-05-20 2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은 정말 착하세요. 저도 컴맹으로서 가끔 네이버 지식검색을 이용하는데 참 친절한 분들이 많으시더라구요. ^^

춤추는인생. 2007-05-20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 돼요 돼 ㅎㅎ 부리님 그모습 상상하다가 웃고마네요^^

kleinsusun 2007-05-20 2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큰~효도 하셨어요.^^ 드라마 보다 못 보면 얼~마나 감질 나는데요.

2007-05-20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노아 2007-05-21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풍경이었어요. 부리님 멋져요. 천안에 잘 도착하셨죠? ^^

부리 2007-05-21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그, 그게요..... 컴퓨터 하다가 시간이 늦어 오늘 아침에 가기로 했습니다.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
속삭님/아니어요 님은 더 잘하실 수 있을 거예요!!!! 님은 어머니와 산책도 자주 하자나요...
수선님/오, 님은 그 기분 아시는군요. 저도 행복한 여자란 드라마를 안보면 일주내내 불안하다는...그래서 인터넷으로 본다는...
춤인생님/오머나 안녕하셨어요? 우리가 친분에 비해 넘 오랜만에 말을 하네요. 제가 열심히 할께요
달밤님/그러게 말입니다. 겨우 내공을 얻기위해서라기보다, 아는 걸 나누자는 그런 마음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락방님/원래 태생이 컴맹은 없다고 생각해요. 저 이제 열심히 할거예요. 네이버와 더불어^^
울보님/어....이거 하나로 효자가 되다니...부끄러운데요

진/우맘 2007-05-21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ㅎ 컴맹과 비컴맹의 차이는 컴퓨터를 무서워하느냐 무서워하지 않느냐...일걸요?
그까잇거, 고장나면 한 대 사지! 라는 재벌정신으로 도전하시면 컴맹 탈출 시간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