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낙태 여행 - Journey for Life
우유니게.이두루.이민경 외 지음 / 봄알람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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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일에 '반대한다'고 기독교는 말한다. 물론 기독교라는 종교 안에 있는 모든 신앙인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기독교는 동성애를 반대한다. 애초에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는 일을 어떤 이유로든 반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는 걸 모르는 것 같다. 


그런가하면 천주교는 낙태를 합법화하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뱃속 아이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임신한 여성에 대해서는 일절 생각을 않는다.



종교는 무엇이고 신앙은 무엇일까? 


이 책, [유럽 낙태 여행]을 읽으면서 나는 이 세상이 여자를 미워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오로지 종교만이 그러는 건 아니었지만, 종교가 큰 축이 되어서 어떻게든 여자를 손에 쥐고 흔들려고 하는구나. 이건 대한민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었다. 이들이 찾아간 모든 곳, 우리가 흔히 선진국으로 알고 있고 여성의 인권이 이곳보다 훨씬 높을거라 짐작한 곳들에서도 그랬다. 종교는 정치랑 손잡고 여자들을 제맘대로 하고 싶어했다. 통제하려고 했다. 


종교는 무엇이고 신앙은 무엇일까?


신은 애초에 무어라 말했을까? 동성애를 쳐죽어야 한다고, 낙태하는 여자는 타락한 여자라고 그렇게 신은 말했을까? 그랬기에 종교를 믿는 자들은 신의 말을 따르는 걸까?



전 세계적으로 여성들의 연대는 놀라운 수준이었다. 

최근 한국에서도 매달 있었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각 지방에서 버스까지 대절해가며 와서 여성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었는데,

이 책을 읽다보니 자국의 여성들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억압받는 다른 나라의 여성들을 위해서도, 페미니스트들은 할 수 있는 힘껏 연대하고 있었다.



이렇게 프랑스, 아일랜드, 폴란드, 루마니아, 네덜란드 까지 날아가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를 듣는 여자들이 있고, 기꺼이 그들에게 시간을 내주어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자들이 있다. 게다가 낙태가 불법인 곳의 여자들을 돕기 위해 낙태가 합법인 곳의 여자들이 손을 내민다. 읽다보면 각국의 절망스런 상황에 우울해지지만, 다 읽고나니 여자들이 이렇게 행동하고 연대하는한 세상은 바뀔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 각국 여성의 목소리를 들어보자고 생각하고 실제 행동에 옮기고, 충실히 기록해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내는 일. 보통의 에너지로는 되는 일이 아닐텐데, 좋지 못한 환경들을 마주할지라도 기어코 해내어 독자들앞에 내어준 것이 감사하다. 나는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여행하고 기록하고 출판해준 사람들 덕에, 다른 나라에서 페미니스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책에 실린 이 사진이 너무 좋았다. 인터뷰를 마치고 이동하는 중에 기차 안에서 저마다 마구 기록하고 있다. 나는 읽고 쓰는 모든 사람들에게 무한 애정을 느낀다. 책 읽는 모습에도 숑- 가버리지만 이렇게 쓰는 모습에도 반해버려..)




기꺼이 일독을 권한다.

더 잘 싸우기 위해서 더 잘 알아야 하니까.




(유럽 낙태 여행은, 하노이에서 읽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읽었지만.)












플로랑스 모에르노는 페미니스트 역사학자로, 국가에 기여한 이들에게 수여하는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인물이다. 지금까지 열여덟 권의 책을 펴낸 왕성한 학자이자 페미니스트를 지지하는 남성들의 모임인 ‘제로마초‘의 공동 설립자이기도 하다. 제로마초는 ‘성매매에 반대하는 남성들‘이라는 선언을 주창하는등 남성 중심주의에 반대하는 남성들로 모인 단체다. 이들을 ‘남성 페미니스트‘가 아닌 ‘페미니스트를 지지하는 남성들‘이라 지칭한 데에는 이유가 있는데, 이틀 전 마르틴과의 대화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이야기중에 "프랑스에는 남성 페미니스트가 많은가"를 물었을 때 마르틴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대답했다. "남성 페미니스트는 없어요. 페미니스트를 지지하는 남자는 있지만." (프랑스, p.36-37)

유럽 내부의 연대에 대해서도 물었다. "다른 나라와도 협력을 하신다고 들었는데"라고 운을 떼자 그는 즉각 "페미니스트들과"로 정정했다. 국가적 협력이 아닌, 국경을 넘은 페미니스트들의 연대다. 스페인에서 낙태를 다시 불법화하려는 조짐이 보였을 때 프랑스 페미니스트들은 ‘자유의 열차‘라 이름 붙은 기차를 타고 마드리드로 갔다. 폴란드에서 검은 시위가 있었을 때는 주 프랑스 폴란드 대사관 앞에서 시위를 했다. 이런 식으로 어떤 나라의 여성 인권이 퇴행의 위협을 받을 때에 다른 국가에서 그 상황을 주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건 유효한 전략이라고 그는 말했다. (프랑스, p.47)

낙태를 하는 여성은 갓 스무 살쯤 되어서 아무 남성과 무분별한 성관계를 하는 이로 그려지곤 하지만, 실제로는 기혼자가 낙태를 더 많이 한다. 이런 현실을 더 많은 이가 직시해야 한다. 한국의 통계도 마찬가지다. 임신 중절 수설을 받는 여성 가운데 기혼 여성의 비율이 언제나 더 높았다. 1971년부터 플라닝 파밀리알에서 일했던 플로랑스가 주로 만났던 이들도 아이를 이미 너무 많이 낳아 더 이상은 감당할 수 없다고 찾아오는 부부였다. 이러한 현실을 토대로, 잘못 만들어진 이미지를 부수는 일이 무척이나 중요하다고 그는 강조했다.
"‘여성들의 무분별한 성행위와 그에 따른 낙태‘라는 이미지에는 쾌락적인 성관계에 형벌로서 임신을 뒤따르게 하겠다는 징벌 심리가 분명하게 깃들어 있어요." (프랑스, p.46-47)

"정말 궁금한 게 있는데요."
새로 맥주를 한 잔 더 시킨 뒤 아들린이 좀 더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바의 소음 속에서 우리는 동시에 아들린에게로 귀를 기울였다.
"다들 연애를 어떻게 해요?"
듣자마자 그의 심각한 마음이 너무 이해되어 웃음이 터졌다. 남자친구를 사귀어도 뭐든 설명해주고 이해시키는 게 너무 피곤하다는 그의 말에 우리는 거두절미 공감했다. 여성들이 페미니즘을 접할수록, ‘과연 남성과의 연애, 가능한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일마저 전 지구적으로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모양이다.
"음, 저는 거의 포기했어요. 애인이라고 해도 모든 걸 설명해줄 의무가 있는 건 아니라는 것만 알면 좋을 것 같아요."
깊이 공감되는 데 반해 해줄 수 있는 답은 신통치가 않았다. (프랑스, p.56)

민경의 친구여서인지 엘리즈에게는 궁금한 것들을 더 편안하게 물을 수 있었다. 아들린과 비슷한 나이대인 엘리즈 역시 길거리 성희롱이 요즘 가장 이슈가 되는 사안이라는 데 동의했다.
"이게 별 거 아니라고들 하지만 한 번 길을 지나가는데 대여섯번씩 똑같은 일을 겪는 건 결코 작은 일이 아니지."
그리고 이어진 말도 아들린의 고민과 닿아 있었다.
"남자친구가 생겼는데, 이 문제가 나한테 얼마나 큰지 설명하는 데 힘이 많이 들어서 피곤해." (프랑스, p.61)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보다 보수적인 스페인을 본받아 낙태를 불법화하자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그리고 낙태가 합법이긴 하지만 낙태 수술을 받을 병원을 찾는게 생각보다 어렵다고 한다. 의사에게 낙태 수술을 거부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직접적으로 수술 거부를 하지 않더라도 12주를 넘겨 수술을 받지 못하게 하는 일들이 엄연히 불법임에도 자주 일어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 비하면 낙태가 여성의 권리로서 보장되어 있는 프랑스에서마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프랑스, p.62)

사과주 한 병을 다 비워갈 즈음, 늘 궁금했던 것을 엘리즈에게도 물었다. "너희는 어떻게 낙태권을 갖게 된 건지 학교에서 배웠어?" 엘리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학교에서는 안가르쳤을 걸. 나는 아마 어디서 우연히 들어서 알았던 거 같은데."
주어지지 않은 권리를 거머쥐고자 싸웠던 과거를 배우지 않으면 과거와 현재는 단절된다. 투쟁 이전을 살지 않았던 이들에게 권리는 태초부터 있던 것, 확대되지도 축소되지도 않는 것으로 남는다. 특히나 여성의 권리를 걸고 싸운 투쟁의 역사는 우연한 기회가 아니면 잘 전해지지 않는다. (프랑스, p.65)

그는 31살 때 임신을 했다. 임신 사실을 알고 나서 사비타는 일을 그만두고 인도에 있는 그의 양친을 초대했다. 그러나 임신 17주째인 10월 21일, 심각한 등 통증을 호소하며 골웨이 대학병원을 찾았고 의사로부터 태아가 생존 가능성이 없으며 이미 유산이 진행 중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사비타는 병원에 임신 중절 수술을 거듭 요청했으나 태아의 심장이 아직 뛰고 있어 불법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이곳은 가톨릭 국가입니다"라는 말과 함께.
10월 24일, 태아의 심장박동이 완전히 멈추고 나서야 사비타의 몸에서 죽은 태아를 제거하는 수술이 이루어졌으나, 패혈증에 걸렸다. 유산 중에는 자궁 경부가 열려 여성은 감염에 보다 쉽게 노출되고 유산 기간이 길어질수록 감염 확률은 높아진다. 사비타의 남편에게 의사들은 부인이 젊으니 곧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는 28일 사망했다. 사비타를 살릴 시간이 충분히 있었지만 의사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비타가 인도나 영국에 있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다. 이 사건으로 아일랜드 여성들은 국가가 여성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똑똑히 확인했고, (아일랜드, p.115)

분노했다. 여성들은 거리로 나와 사비타의 죽음을 추모했고 추모 물결은 정치적 흐름이 되었다. 사비타 사망 사건을 계기로 우리가 만난 ARC와 로자를 포함헤 아일랜드 여성의 재생산권 운동을 하는 페미니즘 단체가 다수 생겨났다. (아일랜드, p.115)

섹스를 해서 즐거움을 누렸다면 아이를 임신해서 그 쾌락에 대한 죄를 치러야 한다는 이 가톨릭 관념에서 탄생한 끔직한 실례가 바로 ‘막달레나의 세탁소(The Magdalene Laundries)‘다. 막달레나 수용소라고도 불리는 이 시설은 "몸을 버린 여자들"에게 지낼 곳을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세워진 가톨릭 시설로, 18세기(1765년)부터 20세기(1996년)까지 존속했다. 이 시기 아일랜드에서 여성들은 섹스를 했거나, 강간당했거나, 아기를 낳았거나, 아니면 그냥 너무 예쁘다거나 하는 이유로 납치당해서 이곳에 수용된다. 그리고 이곳에서 고된 노동을 하면서 더럽혀진 몸과 죄를 씻는다. 섹스를 하지 않았다 해도 "예쁜 사람은 필연적으로 오만해질 것이므로" 막달레나 세탁소에 끌려간다. 거짓말 같은 얘기지만 이 세탁소를 거쳐 간 여성의 수는 약 3만 명으로 추산된다. 1993년 이 시설 중 한 곳에서 시신 155구가 암매장된 묘지가 발견된 것을 계기로 막달레나 세탁소의 폐쇄성과 각종 문데에 대한 고발이 이어졌고 2013년에 국가 차원에서 사과문을 발표했다. 막달레나 세탁소를 운영해온 것은 가톨릭 세력이었지만 은밀히 국가의 지원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p.121)

"검은 시위를 계기로 겨우 이게 정치적 의제가 됐어요. 지금까지 정치에서 낙태나 여성 인권은 늘 뒷전이죠. 민주화가 완성되면 얘기하자, 경제가 더 좋아지면 얘기하자는 식으로요. 하지만 이제 낙태는 분명히 메이저 이슈예요."
전면 금지 법안 발표와 그 법안이 내포한 끔찍한 통제에 들불처럼 일어났던 여성들은 이제 그저 기다려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 가만히 있으면 자신의 권리는 점점 더 위협당할 뿐임을 경험으로 첨예하게 인지하고 있다. 검은 시위 이전까지 재생산권이나 모성, 양육 등 여성의 삶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주제들은 계속 진퇴를 반복할 뿐ㅇ었다. 그러나 지금은 분명히 공공에서 이야기되고 있으며 나아져야 한다는, 낫게 만들어야 한다는 공유된 열망이 있다. (폴란드, p.194-195)

보수집권당의 전면 금지 법안이 발표되자마자 수많은 여성들이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유산으로도 감옥에 갈 수 있다는 것, 여동생이 범죄를 당해 임신을 했는데 의사들이 그를 돕지 않으리라는 것, 여성들이 건강하지 못한 태아를 가져서 죽을 수도 있을 때 의사는 여성을 돕지 않으리라는 걸 안 거예요. 여성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국가가 여성 시민의 편이 되기는커녕 현실과 괴리된 명분을 위해 그저 통제하고 처벌하리라는 데서 공포를 느낀 거죠."
국가와 사회가 여성이 아니라 태아를 도우리라는 공포. 수많은 폴란드 여성은 낙태 전면 금지 법안에서 그것을 읽어내고, "목숨에 대한 위협"을 느꼈다. (폴란드, p.196)

"우리는 두렵지 않다, 혼자가 아니다. 그날 우리는 그저 그 공간을 주장했어요. 바르샤바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들의 모습. 내게는 그게 강력했습니다."
마디마디 힘주어 말하는 우르술라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
그가 전해주는 검은 월요일 당일의 바르샤바를 상상하며, 그리고 그의 어조에 우리는 울컥했고 넷 중 세 명이 눈물을 찍어냈다. 국가의 폭력 앞에서 여성들은 들고 일어났고, 서로를 보고 힘을 얻으며 혼자가 아님을 확신했다. 이 경험은 폴란드 여성들 그리고 활동가들에게 선명한 자산으로 남았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폴란드, p.199)

아일랜드와 마찬가지로 폴란드에서도, 정치적 보수파와 결탁해 공교육과 공공기관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가톨릭 이념은 사회적 인식 전반에 강력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듯했다. 폴란드 사회에서는 낙태를 죄악시하는 분위기가 폭넓게 공유되고 있다. 낙태 전면 금지화 법안 발의 전 가톨릭교회는 자원활동가를 조직해 낙태 반대 캠페인을 했고 그들을 지원했다. 작은 마을에서는 지역사회의 중심 역할을 하는 교회가 사람들의 생각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낙태를 하는 여성들조차 낙태는 손가락질받아 마땅한 죄이며 낙태라는 행위가 여성에게 후유증과 트라우마를 안긴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이런 죄악시는 낙태뿐만 아니라 피임에도 해당된다. 폴란드에서 여성이 피임약을 구하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사실은 폴란드에 오면서 가지고 있던 가장 큰 의문 중 하나였다. 낙태가 불법이고 실제로 낙태 수술을 받기가 그토록 어렵다면, 피임이 매우 적극적으로 권장되고 교육되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폴란드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폴란드, p.202)

폴란드의 가톨릭적 교육과 이념은 피임 또한 낙태와 같은 의미에서 죄라고 치부한다. 피임약을 구하는 과정은 점점 복잡하고 어려워지고 있다. 피임약 처방을 해주는 의사를 찾아야 하고, 처방을 받으러 간다 해도 피임약을 원한다는 이유로 여성을 비난하거나 무례한 언사를 하는등 수모를 겪는 일이 흔하다. 한 번의 처방으로 약을 계속 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약값 자체도 비싸다. 이런 식으로 폴란드 사회는 여성에게 수치심과 죄책감을 주면서 피임과 낙태, 즉 여성 당사자의 재생산권 행사를 막는 데 ‘성공‘하고 있다.
신앙 있는 이들은 실제로 피임을 하면서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거라는 말을 들으며 한숨이 나왔다. 여성에게 죄책감과 두려움을 심어줌으로써 자신의 몸과 인생에 대한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 검은 시위를 전후로 변화하고 있는 대중의 인식에도 불구하고 이런 매커니즘은 이 나라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듯했다. (폴란드, p.202-203)

놀랍지 않게도, 사후피임약도 마찬가지다. EU에서 사후피임약 구입에 처방전이 필요한 나라는 폴란드와 헝가리 뿐이다. 그런데 폴란드에서도 2년 전까지는 처방전 없이 사후피임약을 구할 수 있었다. 사후피임약을 처방 없이 구할 수 있도록 명시한 EU의 권고와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역행한 셈이다. "왜?"라는 우리의 물음에 돌아온 대답에는 소름이 끼치는 동시에 실소가 났다.
"그들이 말하기로는, 만약 여성이 ‘응급피임약을 사탕처럼 먹으면 어떡하냐‘는 거예요. 사후피임약을 사는 데 돈이 얼마나 드는데. 어느 여자가 한 알에 100즈워티(Zt)나 하는 사탕을 먹겠어요. 그런데 정말로 저렇게 말하면서 처방전을 도입했죠. 그들은 여성이 자기가 원하는 사탕을 먹을 수 있도록 놔두지 않아요. 원하는 사탕을 양껏 먹을 수 있는건 남자뿐이죠. 여자는 안 돼요."
한편 폴란드에서 비아그라를 사는 데는 처방전이 필요 없다. 비아그라는 몸에 유해하고 심장마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이 증명되었고, 때문에 미국이나 독일에서도 처방전이 필요하다.
그러나 폴란드는 남성들이 좋아하는 이 사탕을 제한 없이 허용하고 있다. (폴란드, p.203-204)

낙태를 금지하면서 피임도 금지하는 나라. 계속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끝내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어쨌든 이것이 폴란드의 현재였다. 그리고 그 기반엔 가톨릭 이념이 있다. 생명은 신이 주는 것이므로 인간은 성행위 이후 즉 재생산을 스스로 통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살펴보면 낙태와 피임을 둘 다 죄악시하는 폴란드의 현실이 이 이념에 충실한 결과라고 보기 어려운 지점이 있다. 정자와 난자부터가 이미 생명의 씨앗이라고 하지만 남성의 자위는 처벌되거나 비난받지 않는다.
"모든 건 여성을 통제해요. 남성이 아니라요. 가부장제와 가톨릭은 여성에게 그 어떤 것도 양보하지 않으려 해요." (폴란드, p.204-205)

우르슬라는 우리의 책에 행운을 빌어주며, 임신 중단은 당연히 얻어내야 할 권리임을 다시금 강조했다. 임신은 누구에게나 예기치 않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그 일이 생겼을 때 여성은 자신의 삶을 위해 당연히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여성 개인은 자신이 임신할 일이 없다 생각한다 해도 마찬가지죠. 예를 들어, 나는 레즈비언이지만, 낙태권은 가져야 해요." (폴란드, p.209)

꽤 신중하게 이어진 그의 답을 간추려보자면, 폴란드 남성들은 임신을 해선 안 된다고 생각하더라도 피임을 하는 것을 "꺼린다".
여성이 "알아서 어떻게든 임신을 피하기를" 바란다. 거기까지 듣고 우리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자 카타지나는 우리의 반응을 이해한다는 듯한 눈짓을 하며 덧붙였다.
"가톨릭 기반 교육은 이렇게 가르치거든요. ‘남성의 정액은 축복(blessing)이며 여성의 건강에 좋다‘고." (폴란드, p.214)

유명한 여자들이 낙태가 불법인 와중에 ‘나도 낙태했다‘고 주장하고, 그 이후헤 보비니 사건이 있었죠. 열일곱 살 아이가 강간을 당해서 임신을 해 낙태를 하려고 한 건데 낙태 시술을 한 사람과 조력한 사람들, 그러니까 아이와 아이 엄마를 포함해서 다섯 명 정도가 죄다 법정에 선 거예요. 이 사건으로 여론이 모였죠. 그러자 이번에는 300명 넘는 의사들이 서명을 했어요. 낙태 시술을 한 걸로 처벌이 되니까, 의사들이 다들 ‘나도 낙태 시술 했다‘고요. 사실 한 적 없는 사람들도 성명에 많이 참여했는데, 너무 많은 수가 이렇게 나오니까 법을 적용할 수가 없었어요." (시칠리아 그리고 다시, 프랑스, p.228-229)

"그리고 베유법이 통과됐죠. 베유는 남자로 가득한 국회에서 연설을 했는데, 직후에 욕을 무지하게 먹었어요. 웬걸, 나치라고 욕을 먹었다니까요."
베유는 홀로코스트 생존자였다. 당시 베유는 의원 490명 중 481명이 남성인 국회에서 낙태를 합법호해야 한다는 연설을 했다. 연설 직후 그에게 욕이 쏟아졌으나, 막상 법을 통과시키는 데는 우파 의원들도 찬성표를 던졌다. 당시 불법 낙태를 하면서 여성들은 과한 출혈,감염, 질병을 감수해야 했고 심할 경우 사망에 이르렀다. 낙태를 한 뒤 다시는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기도 했다.
"그런데도 어쨌든 여성들은 낙태를 한다는 걸 사람들은 알았던 거예요."
그렇게, 프랑스 사회는 여성이 낙태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일종의 ‘합의‘에 도달했다. (시칠리아 그리고 다시, 프랑스, p.230-231)

임신 중단권은 여성이 시민권 문제이면서 원해서 태어난 아이에게 행복한 삶을 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폴란드의 우르술라가 말했듯 이는 존엄하고 고통 없는 삶의 문제다. 가톨릭의 모순은 짚고 넘어갈 만하다. 정말 배아를 생명으로 보고 소중히 여긴다면 배아의 수정에 참여한 남성에게는 왜 죄를 묻지 않는가? 남성은 왜 피임을 기피하는가? 남성을 위한 피임약은 왜 진작 상용되고 있지 않은가? 결국 질문은 이것이다. 왜 모든 단죄와 처벌이 여성을 향하는가. 자신의 몸에 대해 선택할 권리를 박탈당한 채라면 여성의 모든 선택에 대한 자유는 늘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맺는 글, p.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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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모 토울스'의 《모스크바의 신사》를 읽기 시작했는데, 사실 그리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주로 출퇴근길에 읽는 나로서는 가지고 다니는 것도 너무 무겁고 들고 읽기도 진짜 무거워 ㅠㅠ 오늘 아침에도 가방안에 이 책 넣고 무겁게 이동하면서 '아아, 내가 무거운 걸 가지고 다니는 건 내 팔자인걸까..' 같은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아직 100쪽도 못읽은 현재, '아이 참..정말로.... 에이모 토울스는 너무 좋구나 ㅠㅠ' 하고 있다.



작가의 전작 《우아한 연인》에서는 여자주인공이 가장 좋아하는 책이 <월든>이라는 말에, 남자주인공이 그 책을 읽어보게 된다. 그리고 그 책을 좋아하게 되어서 늘상 바지 뒷주머니에 꽂고 다니는거다. 남자는 금융맨이었는데, 이후의 삶 자체가 달라지게 돼.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책을 읽고 나도 그 책을 좋아하게 되는 그런 거, 진짜 너무 좋은 에피소드 아닌가. 내가 우아한 연인을 좋아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그런 에피소드인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내다니, 에이모 토울스의 다음작품을 당연히 읽을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읽었는데 초반부터 아아, 작가님, 또 너무 좋은 이야기를 하고 계셔. 책에 대해서. 에이모 토울스가 책을 너무 좋아해서 그런건지 책 이야기 껴넣는 거 진짜 너무 좋구요. 그것도 주인공들이 책 읽는 거라서 진짜 너무나 좋다. 물론 지금 이 책의 주인공인 백작은 사실 이 책 읽기를 즐겨하고 있진 않지만, 어쨌든..



로스토프 백작은 메트로폴 호텔 바깥으로 나가면 총살을 당하는 벌을 받는다. 그러니 호텔 내에서만 생활해야 하는 것. 이런 벌을 받기 전에는 호텔 스위트 룸에 묵었었는데, 이 벌이 내려지고 나서 그가 묵어야 할 방은 창고로 쓰여지던 낡은 방이다. 그러니 가지고 있던 짐을 확 줄여야했고, 책을 한 권 남기고 다 직원들이 물건 보관하는 창고에 넣어두게 되는 것이다.



그가 좋아하는 발자크, 디킨스, 톨스토이의 숭고한 작품들이 있는 개인 서재는 파리에 남아 있었다. 사환들이 다락바응로 옮긴 책들은 실은 아버지의 책들이었고, 주로 합리주의 철학과 현대 농업 과학을 다룬 것들이었다. 대부분의 책이 무거웠고, 읽어도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위압감을 주었다. (p.41)



아, 서른셋의 로스토프 백작은, 너무 좋아, 발자크, 디킨스, 톨스토이를 좋아하는 문학인이었던 것이야. 아아, 소설을 좋아하다니, 당신은 멋진 사람! 당신은 분명 다정하겠군요. 너무 좋으네. 그러나 그의 책들을 파리..에 있고 지금 그가 모스크바에서 가지고 있는 책들은 자신의 취향이 '아닌' 책들인 것이었다. 어쨌든 장소도 좁고 그래서 한 권만 남기고 일단 다 창고에 처박아 두게 되는데, 그 한 권이 무엇이냐 하면, 10년전부터 읽어야지 생각했지만 아직까지도 읽지 못한, '몽테뉴'의 《수상록》되시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이해되지 않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 다음 책상에 앉아 방에 남겨놓은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전 세계의 찬사를 받았으며 아버지가 몹시 좋아했던 이 책을 읽겠노라고 백작이 자신과 처음 약속한 것이 분명 10년은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달력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이번 달엔 미셸 드 몽테뉴의 『수상록』을 읽는 데 전념할 거야!' 라고 선언했을 때마다 인생의 어떤 악마적인 면이 문간에서 고개를 들이밀었다. 뜻밖의 곳에서 어떤 연애 감정을 드러내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러면 도의상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가 거래하는 은행가가 전화를 하기도 했다. 혹은 서커스단이 마을에 오기도 했다.

어찌 됐든 인생은 유혹할 것이다. (p.42)



아니 그러니까 ㅋㅋㅋㅋ 당연히 인생은 유혹할 것이고, 연애를 하면 연애에 푹 빠지는 것도 맞는데, 만약 발자크와 디킨스와 톨스토이의 작품이었다면, 연애나 은행의 전화 핑계를 대면서 읽기를 10년간 미뤘을까? 아닐 것이다. 몽테뉴여서 그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자꾸 미룬 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나 지금은 책을 읽을 수밖에 없는 상황(호텔에 갇혔으므로), 바로 이 때 읽자!하고 그는 수상록 읽기를 시도하는데,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도무지 잘 읽히지가 않는 것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니까 우리도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그냥 내가 피곤해서, 내가 집중이 안돼서, 뭐 기타등등의 이유로 책을 읽는데, 아, 내가 어디까지 읽었더라? 하고 여기였나 읽어보면 너무 새롭고, 그래서 앞으로 돌아가고 돌아가고... 우리의 백작님께서 수상록을 만나고 그렇게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힘든 싸움을 시작했어..




트베르스카야 거리(그리고 한껏 맵시를 부린 젊은 숙녀들과 무지칠 기회)에 대한 생각을 성공적으로 물리치고, 목욕을 하고, 옷을 입고, 커피와 과일(오늘은 무화과였다)을 먹고 나니 10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백작은 몽테뉴의 걸작을 의욕적으로 집어 들었으나, 열다섯 줄쯤 읽고 나서는 매번 그의 눈길이 시계를 향해 슬금슬금 움직인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솔직히 말하자면 백작은 전날 책상에서 처음으로 그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약간 걱정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한 권의 책으로서는 사전이나 성경-그런 책들은 필요한 내용을 참고하거나 아니면 마음 먹고 정독하는 용도의 책이지 '읽는' 책이 아니다-에 버금가는 밀도를 지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목차-절개, 절제, 고독, 잠과 같은 주제를 다룬 107편의 에세이 목록-를 살펴본 백작은, 그 책은 아믕에 겨울밤이 스며들었을 때 쓰인 책일 거라는 애초의 의심이 확인되었다고 생각했다. 의심할 여지 없이 그 책은, 새들은 이미 남쪽으로 날아갔고 장작은 벽난로 옆에 쌓여 있고 들판은 눈으로 하얀, 그런 때를 위한 책이었다. 즉, 밖으로 나가서 뭔가 할 엄두가 나지 않고 친구들고 고생스럽게 자기를 찾아올 생각이 없는, 그런 시간을 위한 책이었다. (p.54-55)



그러니까 나는 유독 힘든 요가 프로그램 시간에 자꾸 시계를 보곤 했다. 어느날 선생님은 '아직 끝나려면 멀었어요' 말씀하셨더랬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백작님, 시계는 몇 번이나 보셨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0시 20분 56초, 시계가 알려주었다.

10시 20분 57초.

58초.

59초.

시계는 호메로스가 자신의 강약약적 운율을 알려주고 베드로가 죄인의 죄를 알려주듯이 초를 완벽하게 알려주었다.

그런데 어디를 읽고 있었더라?

아, 그래. 세 번째 에세이.

백작은 시계가 시야에 들어오지 않게 하려고 의자를 약간 왼쪽으로 옮겼다. 그런 다음 읽던 부분을 찾았다. 15페이지 다섯 번째 단락이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단락의 글로 되돌아갔을 때 문맥이 전혀 와닿지 않고 생소했다. 바로 앞 단락을 읽어봐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는 뒤로 세 페이지를 온전히 돌아가고 나서야 비로소 다시 읽어나갈 수 있을 만큼 분명히 기억나는 구절을 발견했다.

"당신과 함께한다는 건 이런 겁니까?" 백작이 몽테뉴에게 따져 물었다. "한 걸음 나아갔다 두 걸음 뒷걸음질해야 하는 거예요?" (p.56-57)



아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ㅏ

여러분 너무 좋지 않아요?

완전 백작이 되었다. 나는 백작이 되어 몽테뉴에게 따지고 들었다.



"당신과 함께한다는 건 이런 겁니까?"

"한 걸음 나아갔다 두 걸금 뒷걸음질해야 하는 거예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넘나 좋아 넘나 좋다.



우아한 연인 읽었을 때는 월든을 너무 읽고 싶어서 월든 사두었는데 나는 아직 읽지 않았지. 그런데 이 책 읽다보니 수상록 넘나 읽고 싶어지는 것이다. 아직 사지도 않았는데. 나 역시 몽테뉴에게 따져가며 수상록 읽기에 도전해야 하는 것일까.



아직 100쪽도 읽지 않아서 앞으로 어떻게 될지 너무 궁금하다. 물론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고 다른 이야기들이 펼쳐지겠지만, 끝내 백작이 수상록 읽기에 성공하는지, 혹여 성공했다면 어떤 감상을 들려줄지 넘나 궁금한 것. 아니면 포기하고 다른 책을 집어들게 될지, 그렇다면 그 책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펼쳐질지도 너무 궁금하고. 너무 좋네.



그리고 좀 많이 읽은 날, 그는 점심에 와인을 주문한다.



"샤토 드 보들레르 한 병이 낫겠군요." 백작이 점잖게 고쳐 말했다.

"그럼요." 비숍이 성직자 같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솔직히 보들레르 한 병은 혼자 먹는 점심에는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에도 지칠 줄 모르는 미셸 드 몽테뉴를 읽으며 시간을 보낸 터라 백작은 자신의 사기를 북돋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p.68)



나도 줌파 라히리 책 읽다가 너무 지쳐서 던킨 도넛츠에 들어가 도넛을 주문해 먹었던 때가 있었다. 책 읽는 사람들 누구나 다 독서로 인해 스스로에게 기운낼만한 음식을 선물한 적이 있지 않을까. 몽테뉴 읽었더니 점심에 사치스런 와인 한 병을 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백작이라니. 와- 진짜 완전 내타입이다. 백작과 내가 친구여야 했는데!



"몽테뉴 읽었더니 힘드네. 점심에 사치스런 와인 병으로 마셔야겠어."

"아이고..그래그래. 같이 가서 짠해줄게. 나도 가니까 두당 한 병씩 와인 두 병 주문하자."

"응 고마워.

"근데 와인 한 병만으로는 기운 내기 힘들어. 위로는 되겠지만. 스테이크 큰 걸로 시켜. 시금치도 사이드로 시키고. 사이드는 시금치가 좋지 않니?"

"응 시금치 너무 좋지!"

"오늘 아침에 몽테뉴 읽느라 기운 빠졌으니까 점심에 와인 비우고 스테이크 먹고 배 두드리면서 오후에 낮잠 자자."

"응."

"오늘은 그냥 우리를 풀어놓자."

"응."



이렇게 되면 너무 좋으니까 나랑 친구하면 너무 좋을것 같지 않아용??


그러다가 다음날에는 내가 그러는거지.


"야, 너 따라 몽테뉴 읽었더니 나도 와인 필요해."

"아, 알지알지. 그래그래 마시자 마시자."

"우리 어제도 마셨잖아.."

"응. 근데 어제는 나 때문에 마신 거고 오늘은 너 때문에 마셔야지."

"응. 그것이 참된 우정이지.."


이러면서 우리는 또 마시고 먹고 배두드리고 자고...


몽테뉴를 완독하기 위해 우리의 우정은 30년이상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야....



독서

우정

와인

고기

럽...




에이미 토울스 좋네요. 후훗. 책 이야기 이렇게 적어주는 건 너무 좋아. 우아한 연인에서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책 따라 읽어보는 것도 너무 좋고, 이렇게 취향에 안맞는 책 도전하면서 사기 북돋기 위해 와인 병째 시키는 거 사랑합니다.



럽..

















아, 근데 여러분. 우아한 연인 들어가면 추천글에 이유경 나오는 거 알아요? 그 이유경이 바로 이 이유경이다..



여러분이 알고 지내는 이유경이 바로 이 이유경이야.. 유명인..... =3=3=3=3=3=3=3=3=3=3=3=3=3=3=3=3=3=3=3=3=3=3=3=3

세인트 피터스버그 타임즈, 해럴드, 뉴욕 타임스 북 리뷰 랑 나란히 있는 이유경...




이만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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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09-06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 좋죠?^^ 전 아직 <우아한 연인> 안 읽었는데... 당장 구입해야겠어요. 추천인을 보니 바로..ㅎㅎ

다락방 2018-09-06 15:4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아한 연인 정말 좋았어요! 제가 좋아라 하는 책인데 회사 동료 빌려줬더니 퇴사해버렸다능... 지금 다시 사고 싶어 봤더니 절판이라고 되어있네요? ㅜㅜ

syo 2018-09-06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새로운 남자가 하나 더 나타났어ㅋㅋㅋㅋㅋ
다락방님은 바람둥이 다락바람님.

다락방 2018-09-06 15:47   좋아요 0 | URL
아니야 아니야 아직 그정도는 아니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단발머리 2018-09-06 18:24   좋아요 0 | URL
이유경 바로 옆에 저 아래 화살표를 누르면, 이유경의 프로필이 나오고.
이유경의 마니아가 뜹니다.
내 뒤에 로쟈님... 그래요, 이해합니다.
하지만, 내 앞에... 아니!!! syo님!! 쇼님! 쑈님!!!

syo 2018-09-06 18:26   좋아요 0 | URL
단발님 소식이 꽤 늦으셨네요. syo의 이유경 마니아 1위 등극은 벌써 꽤 된 이야기입니다. 심지어 이유경 작가님조차 인지하고 계신 부분이구요. 으하하하하하하하하하

다락방 2018-09-06 18:34   좋아요 0 | URL
네, 이유경 마니아는 1위가 이유경이었는데 이렇게 되어버리고 말았답니다?

단발머리 2018-09-06 18:41   좋아요 0 | URL
이유경의 마니아 이유경을 간신히 넘어섰다 했더니, 이게 웬일이예요?
긴 말 필요없어요!
syo님, 비켜요! 얼른!

syo 2018-09-06 18:54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하 그렇게 쉽게 비켜설 순 없지!! 😎

다락방 2018-09-06 20:21   좋아요 0 | URL
이 사람들.. 있어봐요 ㅋㅋㅋ 이유경 마니아 1위는 이유경이 하는 것이 온당하다! 곧 닿겠어!! 😡

비연 2018-09-07 19:36   좋아요 0 | URL
syo님, 단발님, 그리고 다락방님 대화 내용에 빵터진... ㅎㅎㅎㅎㅎ

루쉰P 2018-09-08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변함없이 항상 여기에 계시는군요 ㅎ

다락방 2018-09-17 17:59   좋아요 0 | URL
네, 저야 뭐 늘 그렇듯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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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애견 배변봉투 개똥이
















"여기다 집을 지을 생각 없어?" 1월의 어느 추운 날 아침, 많은 여행객들과 함께 말 농장에 모여 앉아 차를 마시던 중에 자시가 내게 갑자기 물었다. 대녀와 대자를 만난 다음날이었다.

"뭐? 말 농장에다가?" 나는 이 황당한 제안에 놀라 되물었다.

"맞아, 여기다가. 달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이 아름다운 곳에 말이야. 조그만 모쒀식 집을 지을 수 있어. 돈도 그리 많이 들지 않을 거야." 자시가 말했다.

"많지 않은 게 얼마인데?" 그가 내민 미끼를 물어서라기보다는 순전한 호기심에 반문했다.

자시가 답한 금액은 땅이 귀한 싱가포르의 집값에 익숙해져 있던 내게는 확실히 놀라우리만치 적은 금액이었다. 싱가포르에서 차 한 대를 사는 값보다 훨신 적은 비용이라니!

"음, 생각해볼게." 내가 말했다. 즉각적으로 머릿속에서 생각의 씨앗이 하나 심어졌다는 걸 느꼈지만 여지를 남겨두었다. (p.53)



이 책의 저자 '추 와이홍'은 싱가포르에 살면서 변호사로 일하면서 중국 변방의 루구호 주변 윈난 지역에 찾아가게 된다.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모계사회인 그곳에서 안락함을 느껴, 한 번 여행갔던 곳을 또 찾게 되고 반복해 찾게 되면서 차츰 그곳의 사람들과도 친해지게 된다. 그러자 '여기에 집을 지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게 되고, 그렇게 싱가포르에 살던 추 와이홍은 이곳에 별장처럼 또 하나의 집을 지어두게 된다. 점점 이곳을 찾는 시간이 많아지더니, 이제는 일년의 반정도를 이곳에 살게 되었다. 이곳이 고향같아서, 아늑해서, 안정감이 느껴져서.



현지인처럼 사는 것은 루구호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고 빈도가 잦아질수록 가능해졌다. 머무는 기간이 초반에는 짧다가 갈수록 길어져서 나중에는 일 년에 최소 서너 번, 한 번 올 때마다 최소 두어 달은 머물게 되었다. 갈수록 싱가포르와 루구호 사이, 숨가쁜 도시에서의 일상과 그것과는 사뭇 다른 산속의 생활리듬 사이를 오가는 데 익숙해졌다.

한 발은 싱가포르에 걸치고, 다른 발은 살던 곳과 완전히 다른 환경에 두는 생활은 마치 두 개의 나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 (p.90)



나는 언제나 이런 삶을 꿈꾸어 왔는데, 누군가 이런 삶을 이미 살고 있었다. 역시 세상에 나같은 사람은 나 밖에 없지만(너같은 사람은 너밖에 없었어...), 그러나 나랑 비슷한 사람은 많은가 보다. 나는 항상 이민을 가고 싶어하면서도, 그러나 이민 간 곳에서 완전히 뿌리를 내릴 생각 같은 건 없었다. 거기에 단단히 박혀있기 보다는, 거기에 거주지를 두면서도 다른 곳을 왔다갔다 하고 싶었던 거다. 나는 여기에도 있지만 거기에도 있지. 그렇게 살고 싶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정확히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국제결혼을 생각했었는데(하하하하하), 그건 내가 바라는 그 삶이 국제결혼으로 완성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외국인하고 결혼하면 외국에 살면서 한국에 다녀갈 수 있다'는 게 내가 그린 빅픽쳐 였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종종 엄마나 아빠에게 '나 국제결혼 해도 돼?' 묻곤 했다. 어릴 땐 안된다고 하던 부모님이 나이 들고 나서는 '누가 됐든 하기나 해라' 하셨지만, 이제는 내가 생각이가 없다.... 인생......미래는 예측불허 그리하여 생은 의미를 갖는 것.


이제는 알고 있다. 내가 살고자 하는 그 삶이 국제결혼이 아니어도 이루어질 수 있는 삶이라는 것을. 내가 돈을 많이, 그러니까 아주 많이 번다면, 나 스스로도 혼자서 충분히 여기에도 살고 저기에도 살 수 있다. 여기에도 집 있고 거기에도 집이 있어서 아, 지금은 여기 있고, 아 저기 가고 싶네, 그러면 굳이 호텔 예약 하지 않아도 그곳으로 훅- 날아가 머물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어. 그러니까, 내가 돈이 있다면... 나는 언제나 집을 두 채 가지고 싶었다. 여기와, 그리고, 그 곳에.



그 곳은 오래 미국이었다가, 호주였다가, 짧게는 포르투갈이었다가, 체코였다가 했다. 지금은 베트남이 되었지...무릇 인생이란 어떻게 흘러갈지 알 수가 없는 것이로구나..



싱가포르 변호사로서 미친 듯이 바쁘게 일하던 시절을 뼛속 깊이 기억하고 있는 나는 여전히 이전의 생활을 추억한다. 가족들을 만나러 암스테르담과 샌프란시스코로 가고, 친구들을 만나러 베이징과 런던을 찾는 일을 예나 지금이나 무척 즐기기도 한다.

또 다른 나는 여전히 자신들의 선조가 몇백 년  전에 하던 대로 농사를 짓고 생활을 꾸려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중국 변두리에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속세와 격리된 루구호로의 일탈을 좋아한다. 6년쯤 살아보니 이제 모쒀인들 사이에서 삶을 꾸려가는 게 가능하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할 수 있게 되었다. (p.91)



추 와이홍 역시 혼자서 그렇게 지낸다. 혼자서 싱가포르에 그리고 모쒀인과 함께. 그 속에서 친구를 사귀고 사회에 적응해간다. 여기에서 거기로 오가는 삶은 사실 딱히 편한 건 아니지만, 그러나 그렇게 이동하는 시간과 과정은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야만 이곳은 그곳과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녀는 이 새롭게 일 년의 절반씩을 정착하게된 이곳에서 이 지역 사람들에게 환영받는다. 그녀가 이곳을 편안하게 느끼기 때문에 이 지역 사람들 역시 그녀를 편안하게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성들의 세상에서 환영받은 여성이라는 점에서, 스스로가 진정으로 수용되는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 여성이 중심이 된 이 세계에서는 누구도 내가 혼자서 즐겁게 돌아다니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쒀인들은 여남을 불문하고 강인한 여성의 존재에 익숙해져 있다. 모두 자기 집에서 그런 여성을 보고 자라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쒀 친구들 역시 여성을 기리는 이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것을 내가 얼마나 편안하게 느끼는지 알고 있는 듯하다. 모쒀인들과 나 사이에는 서로가 같은 마음이라는 이해가 형성되어 있다.

이것은 내가 아직까지도 완전히 소화해내지 못한 어떤 깨달음이다. 이상한 일이지만 정말 사는 동안 이렇게 나를 나 자신으로 받아들여주는 환경에서 편안하게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여성인 나를 그저 나로 존재하게끔 하고, 그럴 수 있도록 북돋아 주고, 그 이상의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는 세계에서 포근하게 보호받는 기분을 느낀다. 과장이 아니라, 목소리를 내거나 어떤 행동을 제안하는 순간에 나는 단 한 번도 의견을 묵살당한 적이 없었다.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나는 한 번도 무지와 싸우거나 적대감에 맞설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내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언가를 강요받는 기분을 느낀 적도, 잘못된 신념에 맞서 핏대를 세울 일도 없었다. 직관적으로, 나는 모쒀인들과 살아가는 이곳이 훨씬 집처럼 여겨졌다.

아직도 나는 어떻게 이 가모장제 부족이 고문 변호사로 살아온 여태까지의 내 삶을 부수어내고, 가슴속 깊이 페미니스트로서의 의식을 길러냈는지 생각할 때마다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p.92)




나는 누구나 자기가 살고자 하는 방향으로 살게 된다고 믿는다. 물론 내가 그리는 그 삶에 정확히, 바로 그대로 꼭 맞춘 듯 살 수 있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근접해질 수는 있다. 내가 원하는 삶, 바라는 삶이 있다면, 내 순간순간의 선택들이 바로 그 방향을 가리킬 테니까. 그러니 지금의 나는, 그간 내 선택으로 이루어진, 내가 살아오길 바랐던 모습에 가장 근접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앞으로 내 삶의 형태는, 내가 그 구체적 모습을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내가 바라는 것에 가장 가까워질 것이다.



지난 주말 친구를 만났다. 아직 여름휴가를 다녀오지 못했던 친구는 이번주에 동생과 함께 하노이에 가기로 했단다. 오오, 좋겠다, 잘 다녀와, 좋겠다 ㅠㅠ 했는데, 친구는 '하노이에 대해 잘 몰라서 쫄린다'고 하는 거다. '너 일본도 혼자 여러차례 다녀왔는데 뭐가 쫄려, 쫄지마!' 했는데, 친구가 계속 '지금 비수기라 비행기도 싸고', '지금 가면 더워서 니가 딱 좋아하는 기후일텐데' 막 이래서, 나는 응 그렇겠지, 하고 삼겹살을 한 입 가득 넣고 먹고 있는데... 친구가 그러는 거다.


"나랑 하노이에서 주말에 놀지 않을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뭐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당장 일주일 뒤에 하노이에서 놀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머 얘좀 봐, 나한테 왜이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이러지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하고 그 자리에서 나는 비행기표를 예약한 것이었던 것이었다. -0-


어떻게 살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어떻게 살다가 당장 일주일 뒤에 베트남 가는 비행기를 예약하는..그런 삶을 살게 되었을까. 어떻게 살다가 올 한 해에만 하노이를 세번째 가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 마침 '추 와이홍'이 점점 더 잦게, 점점 더 오래 중국 변방에 머무르게 되었다 하니, 어라, 이것은 내 얘기인가 싶어지는 것이다. 추 와이홍은 따로 집도 지었지만, 나는 집을 지을 형편은 안되네...


베트남에 이민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더니, 이민은 못가고 있지만 자주 들르는 삶을 살게 되었어... 이것 봐라, 사람은 원하는 삶에 근접하게 살아가게 되는 것이야. 내가 산 증인이다.........나도 가고 또 가고 자주 가다보면...그러다보면 누군가가 '여기에 집짓고 살아' 라고 해주지 않을까? '얼만데?' 물으면, '한국에서 자동차 한대도 안되는 값이야'라고 대답해주면 좋겠지만,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재작년이었나, 사주 봤을 때, '너 몇 년뒤엔 외국에서 산다, 영주권도 받을 거다' 했는데, 어쩌면 나 정말 베트남에 이민가게 되는걸까? 이렇게 베트남 자주 들렀다가 베트남 사람과 사랑에 빠져서.... 영주권도 받게 되는걸까?



어제 예술의 전당에 가 전시를 보고나서 쌀국수를 먹던 나의 아홉살 조카 타미는, 너무 맛있다며, 제엄마에게 그랬다 한다.



"안되겠어. 나 이모랑 베트남 가야겠어."

"왜?"

"쌀국수 먹으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타미 누구 조카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홉살이 어떻게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쌀국수 먹으러 베트남 간다고 하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안해..이모가 그동안 너무 먹으러 다녔지... 그런 것만 보여줘서 니가 '여행은 먹으러 가는 것' 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구나. 미안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조카가 관람한 전시는 두 가지였는데, 그중 하나가 《니키 드 생팔전》이었다고 한다. 거기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었는데,




이 설명을 가만 읽던 조카는 "이모 생각난다"고 했다는 것. 아이고 얘야 ㅠㅠ 나는 너에게 어떤 이모인거니? ㅠㅠ 너는 리틀 다락방이 된거니? (글썽)



음...나는 한 쪽 발을 여기에 한 쪽 발은 저기에 걸친 삶에 쓰려고 했던 거였는데 또 쓰다보니 조카사랑...음....흐음....




얼마전에 올린 남동생네 개똥이는 곧 [홈앤쇼핑]에 광고가 나갈 예정인데, 영상 속에서 뒷부분에 보여지는 <개똥이 에코>에 대해 주문이 들어오고 문의가 많이 온다고 한다. 오호라, 개똥이가 시작 상품인데, 사람들이 '생분해 비닐 봉투'에 관심을 가지는구나! 다른 알라디너 분도 내게 어디서 살 수 있는지 문의 주셨고.


어쩌면..남동생이 내게 별장을 지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기대기대)


생분해 비닐 봉투 링크는 여기 ☞ 생분해 비닐 봉투




자, 돌아와서,


지구상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모계사회에 대한 글을 읽는 것은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결혼'이 없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가족을 이루고 한 집에 사는 구성원이 그 집의 '여자'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도 신선했다. 그러나 이 책의 끝에 가보면, 슬프게도, 이곳에 가부장제가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이 곳이 관광사업으로 점차 개발되면서 현금이 들어오고 그렇게 중국의 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지금 젊은 모쒀인들은 결혼을 해야 한다, 결혼 전에 성관계를 지양하는 걸로 바뀌고 있다고. 이게 너무 섭섭했다. 가모장제가 더 퍼지지 못하고 어째서 가부장제가 스며들까. 자본주의와 가부장제가 필연적으로 한 몸인걸까. 그래서 자본주의 들어오기 시작하면 가부장제 따라가는 건가. 집에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대한 책이 있으니 그걸 읽어봐야겠다.


번역서 뒤의 <옮긴이의 말>은 대체 왜있는걸까, 이거 쓰는 거 옮긴이들한테도 부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는데, 그래서 어떤 옮긴이의 글을 읽기를 포기하게 되는데, 이 책의 옮긴이의 말은 문장이 너무 좋았다. 앗, 이 옮긴이의 말 뭐지? 하고는, 책의 본문보다 옮긴이의 말이 더 좋은데? 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어.



이 책을 다 읽고 다음 책을 골라야 하는 시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왔다. 침대 헤드에는 여러권의 책이 있었는데, 그중에 최은영의 책이 눈에 띄었다. 음, 그래, 최은영 읽자, 라고 생각하고는 잠깐 침대에 앉아 트위터를 보는데, 배우 '고아성'의 인터뷰가 보인다. 고아성은 《애도일기》의 한 부분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오?!


내가 또 이 책이 있지. 사둔지 오래지만, 책장 어딘가에 있지. 나는 서둘러 책장 앞으로 가 어디있더라, 하고 책장을 훑는다. 그리고 찾았다! 으하하하하. 그래서 다음 읽을 책은 애도일기가 되었어.


















아아, 나는 또 그러니까 이렇게 책 사두고 쌓아두는 나 너무 좋아졌다. 이렇게 갑자기 언급된 책에 대해서 '으앗, 얼른 사서 읽자, 그런데 밤이니까 주문해도 내일 오겠지..' 하는게 아니라, 그냥 책장 앞에 가면 이미 준비되어 있어. 읽고 싶을 때 바로 읽을 수가 있는 것이야. 여러분 책 사두고 쌓아두는 게 이렇게나 중요하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더 자주 만들기 위해서, '아아 이 책은 안사뒀는데' 하는 후회 같은 거 하지 않기 위해서, 책을 더 많이 사서 쌓아두자. 당장 그러자!!



그리고 오늘 알라딘에 이런거 나온거 봤네?












너무 편할 것 같다. 책 높낮이도 조절할 수 있어.... 인생.....





남성의 외도만을 옹호하는 가부장적 관습은 뻔뻔스러우리만치 불공정하고 비논리적으로 불공평하다. 모든 인간은 같은 욕구와 열망을 가진다. 성적 쾌락은 자연스럽고 좋은 것인데, 사회는 인구의 절반에게는 그것을 즐길 자유를 허하고 나머지 절반에게서는 빼앗으려 든다. 그래서는 안 된다. (p.256)

모쒀인에게 아이는 딸이든 아들이든 언제나 엄마의 가족에 속하는 존재지 남자의 자식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남자, 또 그 남자 쪽 가족의 어느 누구든 여자가 낳은 자식을 빼앗을 수는 없는 법이다.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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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 영화 - 배혜경의 농밀한 영화읽기 51
배혜경 지음 / 세종출판사(이길안) / 2017년 11월
평점 :
품절


글을 쓰는 사람들에겐 저마다의 이유가 있을 것인데, 나는 배혜경 작가의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는 모른다. 다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 오래 남는 문장을 만들어낸다는 건 분명 큰 의미라고 생각한다.
이 책 속의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의 감상을 훅- 읽었고 종종 떠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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