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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층에 부커상 수상자가 산다
케이트 가비노 지음, 이은선 옮김 / 윌북 / 2024년 9월
평점 :
굳이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되는대로 살아온 삶이었다.
국민학교 다닐 때에야 선생님이 되고 싶다든가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든가 장래 희망을 말했지만, 딱히 그런게 정말 되고 싶었다고 생각한 건 아니었다.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앵커나 호텔리어가 되면 어떨까 했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대학 시절에는 동시통역사가 그렇게나 멋져 보였지만 그걸 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막연하게 이십대 후반이면 마몽드 화장품 광고속 이영애처럼 멋있는 직장 여성이 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스물여덟에 내 모습을 보고 어찌나 놀랐던지! 아니, 이영애는 어디갔지?
대학생이 되는게 우선이어서 가고 싶은 학과 대신 합격할만한 학과에 원서를 넣었다. 가고 싶은 것도 사실 그렇게까지 가고 싶었던 건 아닌 것 같다. 취업은 말해 뭐해. 대학 졸업할 때쯤 취업해야겠지, 생각했는데 전공 교수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친구가 사장으로 있는 회사에서 직원을 모집하는데 나를 추천했다는 거였다. "거긴 성적 안본다더라." 교수님이 굳이 덧붙인 말이었다. 내 성적을 아는 교수님이 왜 나를 거기에 추천한걸까, 여쭸는데, 교수님은 너 대학시절 내내 아르바이트 하는 성실한 학생이었고 회사에서 필요한 사람은 그런 성실한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게 면접을 봤고 그 회사가 내 첫 회사가 되었다.
회사의 막내로 들어가 온갖 잡일들을 했고 첫 월급은 73만원 이었다. 받은돈 고스란히 엄마에게 드리고 엄마는 그 돈을 또 고스란히 적금 들어 주셨다. 월급이 백만원이 되었을 때는 내 몫으로 30만원을 사용할 수 있었다. 내가 원하던 일은 아니었지만 성실하게 일했고 연말이면 인센티브도 제법 크게 받았었다. 그러나 그 때 나는 종종 회사의 막내들이 아마도 대부분 그렇듯이, 비상구 계단에서 엉엉 울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뭐가 그렇게 울 일이었나 싶지만, 그 때는 비상구 계단이 우는 장소였다. 우는 모습을 보이기는 싫고 그런데 울고는 싶고. 생각해보니 그 때의 내가 참 짠하네.
이 책에 등장하는 세 명의 여성 니나, 실비아, 시린은 같은 대학 같은 학과를 전공했다. 모두 아시아계 여성들이라 그들은 금방 친해졌고 문학을 공부했던 만큼 졸업하면 출판사에 취업하자는 목표도 같았다. 그들은 뉴욕에 방 세개짜리 집을 마련해 방 한 칸씩을 차지하고 생활인이 되어 일자리 구하기에 애썼고 각자 출판사의 어시가 되면서 자축하기도 한다. 그러나 취업해 월세 걱정 없게 생겼다는 기쁨도 잠시, 직장일은 스트레스를 가져온다. 이런 상사 밑에 내가 계속 있어도 되는걸까? 나는 이 일에서 어떤 기쁨도 느낄 수 없는데 계속 다니는게 맞는걸까? 그들은 이십대 중반에 첫직장의 막내 포지션에서 누구나 할 법한 고민들을 한다. 그리고 그들도 운다.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안에서 혹은 공원벤치에 앉아서 엉엉 운다. 그 나이 때 나도 비상구 계단에서 울었던 일들이 자연스레 겹친다. 뉴욕이란 도시에서 얼마 되지도 않는 월급으로 월세 내고 학자금 대출 갚아가며 사는 것은 정말이지 너무나 치열하다. 그래도 이 세 친구들은 각자의 사정을 알고 또 서로를 진심으로 위하기 때문에 이 삶이 또다시 활기차게 이어질 수 있다.
그러다 우연히, 이들이 사는 곳 아래층의 90세 노인과 대화를 하게 되고 그녀가 오래전에 부커상까지 받은 작가라는 걸 알게 된다. 베트남 출신의 '베로니카 보'가 그녀인데, 지금 그녀는 혼자 살고 있다. 니나, 실비아, 시린은 그녀의 수상 이력에 깜짝 놀라며 지금은 절판된 그녀의 책을 찾아 읽고, 수상작이 아니었던 성격의 작품들도 지금 시대에 재출간 되어 읽히는 게 의미가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렇게 누군가는 그녀의 작품을 재출간하기 위해 애를 쓰고 또 누군가는 그녀가 지금 쓰고 있는 자서전을 읽어보고 또 자신의 꿈도 작가라며 자신이 쓴 글을 왕년의 부커상 수상자에게 보여주기도 한다. 그들은 다정한 이웃사촌이 되어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힘이 되며 서로의 집에 자주 찾아든다. 직장을 잃고 울 때, 재출간이 뜻대로 되지 않아 분할 때, 베로니카 보는 그들에게 좋은 친구가 된다.
을지로에 위치한 첫 직장을 2년 남짓 다니고 그만두었다. 그후에 지금 회사에 입사했다.
지금 회사에 들어온 것도 어떤 뜻이 있는 건 아니었다. 나를 먹여살릴 사람은 나 뿐이라 일단 취업해야 해서 아무데나 원서를 다 넣었고 그러다 면접을 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은거다. 그렇게 이 직장에 입사해 다니면서 역시나 수십번 수백번 그만둘까를 생각했다. 연차가 쌓이면서 비상구 계단으로 가 우는 일은 없어졌지만,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들은 더러 들곤 했다. 대학의 전공을 내가 선택한 게 아닌것처럼 이 직장도 내가 선택한 게 아니다. 나는 그저 그 때의 흐름에 맞게 나를 시스템 안에 집어 넣었다. 나에겐 무엇이 되고자 하는 욕망이 없었다. 그저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나의 목표였다. 내가 나를 먹여살려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 그게 나를 여기까지 끌고 왔다. 그래서, 나는 일찍부터 자신이 하고싶은 걸 찾아낸 사람들이 그렇게나 부러웠다.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찾아내다니, 그건 정말이지 축복이었다. 대단한 복이라는 걸 스스로 알아야 한다.
나는 직업적으로는 목표가 없었다. 이 직장에서 몇 년간 근무하다 다른 부서로 발령이 났다. 정확히 말하면 차출되었다. 뚜렷하게 목표하고 들어온 직장도 아니고 마땅히 이렇다할 포지션도 없는 것 같고 또 야망같은 것도 가지지 않았지만 연봉은 차곡차곡 인상되고 있었다. 돈을 벌어야 해서 버티고 또 버텼더니 어느새 이 직장에 이십년 이상을 다니고 있고 어느 정도의 위치도 가지게 되었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나의 밥벌이로부터 어떤 야망도 품고 있지 않다. 그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만 할 뿐.
니나와 실비아와 시린에게도 어려움이 닥친다. 이게 맞는지 이렇게 살면 되는건지 혼란스럽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 때문에 괴롭고 술 마시고 하게 된 실수 때문에도 괴롭다. 왜 파리까지 출장가서 그곳을 즐기지 못하고 침대 속만 파고들고 싶은지 우울하다. 그러나 이 힘든 시기들을 보내는동안 새로운 미래가 빼꼼 고개를 들이민다. 그렇게나 작가가 되고 싶어서 일을 마치면 조금씩 글을 써왔는데 한 출판사에서 관심을 보이고, 직장에서 정리해고 당해 우울했는데 다른 나라에서 일자리 제안이 들어온다. 아직 이십대인 그들에게 생각하지도 못한 어려움과 괴로움이 찾아들었던 것처럼 그러나 생각하지도 못한 활기찬 미래가 기다리고 있기도 할것이다. 언제까지 어시로만 있을 수 없다고 냉큼 상황을 지켜보다 보조 편집자 자리를 노렸던 니나 처럼, 내가 직업적으로 야망을 가진 건 없지만, 그래도 묵묵히 꾸준히 일해서 갖게 된 지금의 포지션은 마음에 든다. 일찍부터 꿈을 찾고 꿈꾸는 삶을 그려보고 노력할 수 있는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그들을 부러워한 나이지만, 그러고보면 나도 직업적인게 아닌 면에서는 꿈꾸는 것들이 있었다. 회사에 함께 다니던 동료들과 퇴근 후 술이라도 한 잔 할라치면, 나는 그렇게나 '죽기 전에 책 내서 타임지 표지 모델이 되어보고 싶어' 했는데, 타임지 표지 모델은 되지 못했지만(하하) 책은 썼잖아? 또 알아? 앞으로 타임지 표지 모델이 될지? 뉴욕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그렇게나 노래를 불렀는데, 살아보진 못했지만 다녀와보긴 했잖아?
그래, 꿈은 꼭 직업적인 것만 찾으란 법은 없지. 취미에서도 사랑에서도 뭐가 됐든 나름 찾아내면 되는거아닌가.
설사 아직도 꿈을 가지지 못했다면 또 뭐 어떤가. 차곡차곡 어제를 살고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산다면, 어느 순간 내가 쌓았는지도 모를것이 쌓여있을 것이고 그로부터 큰 만족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아, 성실히 살았더니 여기로 왔구나, 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확실한 건 삼십대가 되고 사십대가 되면 지하철에서 우는 일은 좀 덜해진다는 거다. 아예 안일어나는 건 아니지만, 좀 더 참을 수 있게 된달까. 너무 꼰대같은 말이지만, 지금 서로를 위해주고 위로해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고 그걸 소중히 여겨야 한다. 게다가 좋은 이웃까지? 와- 그건 뭐 대박이지. 지하철에서 울다가 맞은편의 여자도 지하철에서 울고 있다는 걸 봤잖아? 어쩔 수 없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 우는 건 좀 따라온다.
그러니 뉴욕에서 살아가는 젊은 아시아 여성들이여,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