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번 생애 내게 주어진 소명은 '책들 비행기 태워주기' 일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이번에 하노이에 다녀오면서 했다. 분명, 그러니까 아주 먼 과거에, 스물아홉의 나는, 뉴욕으로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책을 세 권 내리 읽었었는데, 그래서 그 뒤로 비행기를 탈 때면 책을 넉넉하게 챙기곤 했는데, 왜 그 뒤로는 한 번도 비행기에서 완독을 한 적이 없을까. 그렇다면 여행지에서 까페에 들어가 완독하는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아? 이번엔 작정하고 호텔에서라도 읽자, 하고 베개 옆에 책들을 쌓아두었지만..나는...나는..... 읽지 못했고........읽지 않았고.........물끄러미 그 책들을 바라보며, 비행기만 태웠구나, 했다.
난 너희들을 사느라 돈쓰고(모르는 사람들은 선물 받았다!), 비행기 태우느라 돈쓰는 구나. 어쩌면 너희는 잘 태어난 것일지도몰라. 책으로 태어나 비행기 타는 게 그리 쉽게 오는 일은 아니지 않겠니?
친구도 세 권을 가져왔다고 했는데, 한 권이라도 다 읽겠다며, 분위기 좋은 까페를 찾아가 읽자고 했던 터다. 한 권이라도 다 읽을테야!! 그렇게 우리는 포부도 당당하게 전날 밤에 산책하며 찜해두었던 분위기 좋은 까페에 책을 들고 갔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친구는 저체온증 한권도 다 읽질 못했고...나도.... 나는...어째서 왜 때문에...《제2의 성》까지 가져간것인가. 비행기 안에서 읽다가 지루해지면 소설로 갈아타겠다고, 기내에 가져갈 나의 백팩에, 나는 그렇게 제2의 성과 이승우를 넣었던 것이야..무거웠어.....
《제2의 성》과 《모르는 사람들》은 비록 몇 장 보지도 못했지만, 나의 애정도서 《나는 그곳에 국수를 두고왔네》는, 가서 내내 잘 보았다. 나는 하노이,호치민, 다시 하노이. 이렇게 세 차례 베트남 방문이지만, 친구는 이번이 베트남 첫방문인 것. 국수를 시켜 먹을 때마다 나는 이 책에서 표시한 부분을 꺼내어 '자, 우리가 먹는 게 이거야.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읽어봐' 하고 몇 줄 안되는 부분을 가리켰다. 그렇게 분보남보와 분보후에를 친구에게 알려주고, 너무 맛있어서 여러차례 먹었던 분짜에 대해서도 또 책을 펼쳐 보이며, '자 이거 읽어봐, 우린 이거 먹으러 가자 이제' 했던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가방 던지고 나와 구글 지도를 켜고, 자 국수 먹을 수 있는 데가 어딘가 보자, 하고 찾아 들어간 분보남보집. 친구에게 '제일 먼저 분보남보를 맛보여주고 싶어' 했던 터라, 일단 제일 먼저 먹을 국수는 반드시 분보남보여야 했다. 우리는 분보남보 각자 하나씩 시켜두고 가운데에는 다른 국수도 맛보자며 분보후에도 시켜두었다. 국수 먹을 때 맥주는 빠질 수 없어!
국수를 먹고 호안끼엠 호수를 산책하고 숙소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좀 쉰 후에는 근처의 레스토랑으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일전에 혼자 이 레스토랑에 들러 샌드위치와 와인을 시켜두고 먹었던 터라, 한 번 다시 와서 스테이크 먹어야지.. 했던 기억을 안고 갔는데, 설을 맞이하여 메뉴는 좀 바뀌어 있었고 그래서 어쨌든 스테이크를 먹었다. 우리는 하노이에서 쌀국수만 먹은 건 아니고 스테이크도 먹고 딤섬도 먹고 뭐 어쨌든 그리하였는데, 내가 기존에 와보았던 이 호텔을 다시 택한 건 이 호텔의 조식 퍼 때문이었다. 오믈렛도 좋고 죽도 좋지만, 퍼가 진짜 맛이 끝내줘. 첫날의 조식은 닭을 넣은 거였는데, 와 진짜 세상 맛있어서 우리 각자 두 번씩 먹었다...
그런데 우리가 조식 시간에 좀 늦게 가서인지 국물이 좀 짰다. 친구가 전날 잠을 잘 못잤다고 해서 더 자게 한 후에 갔더니 짠 국물을 맛보게 됐어.. 친구에게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오자'고 했다. 나야 조식 먹으려고 일찍 일어나는 사람이니까...는 아니고, 늘 밥 먹던 시간이 있어가지고 밥을 먹고 다시 자던가 해야지.... 나의 아침은 언제나 배고픈 것...
그래서 다음날 아침, 친구에게 무조건 일어나라며 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짜지 않은 조식을 먹게 되었는데, 이번 토핑은 소고기! 비프! 친구는 닭보다 이게 더 맛있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그냥 다 너무 좋고 맛있고... ㅠㅠ 역시 두 번 갖다 먹었다. 흙흙 ㅠㅠ
고수 느껴질 때마다 넘나 새로운 것... 넘나 좋은 것....
그리고 다음으로 먹으러 간 국수는 분짜였는데, 사실 우리가 이것저것 많이 먹어가지고 배가 고프질 않았어. 그렇지만 나는 '꼭 분짜를 먹을테야' 다짐하고 있었고, 배가 안고프지만 조금씩 맛이라도 보자!! 하고는 목욕탕의자를 깔아둔 길거리 식당으로 들어가 분짜를 시켰다. 분짜를 시키고 스프링 롤도 시키고!
이야...분짜 진짜 세상 맛있는 것... 진짜 너무 맛있어서... 친구랑 나랑 배도 안고프다고 해놓고 다 먹어버렸어 ㅠㅠ 그리고 저 롤... 저건 뭐지 진짜... 저거 처음 먹어보는데 너무나 초딩이 좋아할 맛... 그런데 나도 좋아...너무 맛있어서, 야, 이거 맥주 없으면 안되겠는데? 이러고 맥주까지 시켜 먹었다. 여기서 이걸 먹은 후로 우리는 그 다음 국수집에 들를 때마다 이걸 계속 시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오후에 산책하다가 역시 길거리 국숫집에서 목욕탕 의자에 앉아 사람들이 먹는 국수를 보는데, 나는 처음 보는 것이고 너무 맛있어 보이는 것이다. 마침 거기에서 반미를 팔길래, 반미 하나 포장해달라고 하고, 여자 사장님은 영어를 못하셔서, 거기 아마도 가족처럼 친분이 있는듯한 젊은 여자분께서 영어로 통역을 해주셨는데, 그 분이 먹는 국수가 너무 맛있어 보여... 그래서 참지 못하고 니가 먹는 그거 뭐냐, 라고 했더니 뭐라뭐라 한다... 뭔 말인지 못알아듣겠어. 나는 아이폰을 꺼내 메모창을 열거 적어줄 수 있니? 물었다. 그 여성분은 기꺼이 적어주었는데, 분리에우라고 적혀있었다. 내 국수책을 뒤져봐도 나오지 않는 요리였어. 급하게 네이버 검색해보니, 대체적으로 여기엔 게살을 넣어 끓인다고 한다. cua가 게인데, 그래서 분리에우cau 가 많다는 것. 나는 이것도 한 번 먹어보자 그 후로 벼르다가 다음날 이걸 파는 길거리 식당으로 갔다.
오호라, 이것봐라? 분짜도 있고 분리에우도 있고 스프링롤도 있어? 다 주세요, 다! 맥주도 물론!
분짜 진짜 너무 맛있다. 첫번째 집 분짜와 스프링롤이 더 맛있긴 했어.. 아 좋은 시간이었다. 돌아가기 전, 우리는 다른 종류의 국수를 또 먹어보자고 했고 떠나는 시간이니 스프링롤에 맥주를 한 번 더 먹자고 했다. 그렇게 들어간 식당에서 우리는 퍼싸오보와 스프링롤, 그리고 역시나 맥주를 주문했지...
남동생에게 국수 먹을 때마다 사진을 보냈더니, 누나 배는 고파서 먹는 거 맞냐? 라고 했다. 하하하하하. 어...어...어떻게 알았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른 여행지에 가면 컵라면을 꼭 먹게 되고 한식 먹으러도 꼭 가게 되는데, 베트남에 가면 그렇질 않다. 물론 짧게 가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쌀국수가 나에게는 너무나 좋아.... 베트남 갈 때마다 스테이크를 먹었는데 그건 갈 때마다 맛없어서... 스테이크는 여기서 먹으면 안되나... 싶었지만, 이런 쌀국수들이 있는데 뭐가 두려운가. 굶어죽지 않을 것이야!! 너무나 좋다!! 쌀국수 너무 맛있어 흙흙 ㅠㅠ
아, 그런데 정희진 쌤 책이 새로 나왔다?!
요즘엔 여러가지 복잡한 마음과 생각들을 갖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내가 정희진 쌤을 애정하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고, 또 이 분만큼 내 사고를 확장시키는 분이 없어. 어? 이건 좀 아니지 않나..라는 생각을 요즘에 쌤을 보고 하게 되긴 했지만, 이 책도 반드시 사서 읽어보겠다. 왜냐하면, 이 책을 읽으면서도 또 내 시야가 확 넓어질 테니까. 이 분 글이 그게 가능하다. 여러분 정희진을 읽자!!
얼마전에 북플 알림이 내가 '리안 모리아티' 마니아라고 알려줬다. 내가 이 작가의 책을 읽긴 했지만, 뭐 마니아는 좀 거시기한게... 이 사람 책을 딱히 좋아하진 않아? 그래도 마니아라니, 신간에 대해 약간 흔들렸는데, 제목.. 왜이런 것이지?
물론 직업이 최면술사인 등장인물이 나와서 이렇게 되는 거긴 했지만, 아 제목 너무 오글거리잖아.. 그렇지만... 이런 모순된 감정 뭘까... 너무 오글거리는데 읽고 싶은 거...몬주알지..... 그거 좀 있네? 어쩌지? (흔들흔들)
아, 이제 일하러 가야겠다. 회계사들이 나를 찾는다...
인생...
일..
돈..
직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