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더우먼이 개봉한다고 했을 때 나는 잔뜩 기대했었다. 그러니까 스파이더맨이 그렇게 하듯이, 배트맨이 그렇게 하듯이, 지금 여기의 현실에서 범죄가 일어나는 곳에 찾아가 물리치는, 그런 영웅일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쟁을 막으러 갈 줄은 몰랐어.. 내가 지금 여기의 범죄를 막아주기 바란 건, 어떻게든 범죄를 저지르는 자들에게 공포를 안겨주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아주 오랫동안 여자영웅이 나타나 성범죄가 일어나는 곳이면 그 어디든 찾아가 성범죄자를 사지절단 내버리는 그런 영화를 원했다. 강간하지 말라고, 성적대상화 시키지 말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러니까 '여자도 남자랑 같은 인간이야, 인간이 인간에게 그런 짓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해봤자 씨도 안먹히고, 성범죄에 대한 처벌은 가볍기만 하니까, 그래서 했던 놈이 또하고 새로운 놈이 또하고 성범죄 난리법석인 세상이 되니까, '아아 이러다가 나도 사지 잘릴 수 있겠구나' 하는 공포라도 심어주면 덜하지 않겠느냐 싶었던 거다. 실제에서 그런 영웅은 없다고 해도, 그런 영웅물이 자꾸 나온다면, 성범죄를 어떻게든 공포스럽게 응징하는 것들을 자꾸 접한다면, '아이구 이러다 큰일나지' 하고 범죄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나름의 생각을 했던건데, 배트맨과 스파이더맨 역시 그런 일을 해주지 않았던 것처럼, 원더우먼도 그걸 안해줘서 내가 너무나 실망을 했어. 성범죄자 사지절단물을 원해..
나는 성범죄가 살인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이사카 고타로'는 자신의 책 《골든 슬럼버》에서 주인공 아버지의 입을 빌어 '성범죄는 명분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정확한 워딩은 이게 아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 바, 강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차에, 나는, 이런 영화를, 어제, 드디어, 보았다.
여자주인공 '돈'은 고등학생이다. 고등학생이면서 순결 서약을 하였고, 다른 학교에 순결에 대한 강연을 하러 다니기도 한다. 그러다 학교에 잘생긴 남학생 '토비'가 전학오는데, 이 녀석은 '돈'의 순결서약을 자꾸 무너뜨리고 싶게 만든다. 토비 역시 순결서약을 했다고 말하면서 돈과 가까워지는데, 서로에게 성적으로 끌리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함께 수영을 하다 동굴에 들어간다. 돈은 재차 '지킬 거지?'를 묻고 토비 역시 그렇다고 하는데, 다른 남자라면 몰라도 토비는 좀 다르지 않을까, 라고 영화보면서 나 역시 생각했던 터라, 갑자기 토비가 옷을 벗고 '참을 만큼 참았어!' 하면서, 싫다는 돈에게 '가만히 있어!' 라고 할 때는, 와, 진짜 역겨웠다. 이날까지 살면서 내가 '이 놈이나 저 놈이다 다 거기서 거기다' 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역시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선 다르게 보려는 게 자꾸 나오는 것 같아. 돈이 되어서 영화에 몰입해 있었기 때문에 싫다는데도 강제적으로 밀고 들어오며 '넌 정신적으로는 순결해!'라는 개소리 하는 토비를 보니 진짜 오만정이 다떨어지고 남자 따위, 다 사라져버려라, 하는 심정이 되는 거다.
그런데!
그렇게 강제적으로 성기 삽입을 했던 토비는 어떻게 되냐면,
고추가
잘려서
죽는다.
뎅강.
저기엔 어떤 가감도 없다. 말 그대로 정말 '고추가 잘린다'.
돈 역시 이런 일이 처음이라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진 토비의 고추를 보고 놀라는데, 집에 돌아가서 교과서를 열어 여성의 성기 모양을 보고 인터넷에 성기 돌연변이에 대해 검색해보며 '바기나 덴타타'라는 용어를 접하게 된다.
자기 안에 정말 이상한 게 있는건지, 자기는 살인자가 되었으니 자수를 해야할 것 같고, 돈은 어쩔줄 몰라하며 산부인과에 찾아가 검사를 받는다. 산부인과 남자 닥터는, 지극히 정상이고 너는 자라고 있다, 그런데 유연성 검사를 해보겠다며 손 하나를 모두 돈의 질 속에(도대체 왜!) 집어 넣고, 아프고 끔찍해서 소리지르는 돈의 안에서 닥터의 손가락도 잘린다.
엄마는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상황. 이 일을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어서, 대화를 나눌 상대가 없는 돈은 너무 외로워서, 돈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한 남자아이를 찾아간다. 내 안엔 이상한 게 있고, 내가 사람을 죽인 것 같고, 자수를 해야할 것 같고, 그런데 얘기할 사람이 없어, 하며 우는 돈을 이 남학생은 달래주는데, 그러면서 섹스를 시도한다. 돈 역시 싫지 않아 섹스에 응했는데, 이 남자아이가 무사한거다. 어쩌면 이건 신화에서 말하는 영웅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신이 난 남학생은 한 번 더를 외치고, 돈과 남학생은 한 번 더 섹스를 하는 와중에, 남학생과 친구가 통화를 하면서 '내기에서 이겼다'는 말을 하는 걸 들은 돈이 도대체 무슨 소리냐 묻게 되고, 그제야 돈은 이 남학생이 자신의 순결을 뺏을 수 있느냐를 두고 친구와 내기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직 남학생의 성기가 자신 안에 있는 채였고, 돈은 이 말을 듣고 빡이 치고, 그렇게 이 남학생의 성기도 잘린다.
이제 돈은 알게 됐다. 자신이 원하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질 안에 있는 이빨이 상대를 물지 않는다는 걸. 그러나 자신이 원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자신을 화나게 한 상태로 삽입을 시도한 상태에서는 상대의 고추를 잘라버릴 수 있다는 것을. 이 이빨은 굉장히 강력해서, 그저 물었다 놓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냥 잘라버린다. 컷. 커팅. 뎅강 잘라버리는 거다.
자신 안에 일어나는 변화가 뭔지 몰라 당황하고 무서워했던 돈이 자신이 가진 능력(!!) 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서 겪는 변화가 고스란히 나오는데, 성적 욕망 앞에 인내심을 기르려고 책까지 읽었던 그녀가, 이제 자신이 가진 걸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알게 된다. 히치하이킹을 해줬던 할아버지가 늦은 밤에 차를 세우고 차 문을 잠가 그녀를 나가지 못하게 했을 때, 이 차안에서 자신에게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 알아채고 당황하고 겁을 먹었던 돈은, 이내 자신이 무엇을 가졌는지를 알게 되고 서늘하게 웃는다.
그동안 이런 표정의 학생이었는데 말이다.
영화를 보면서, 이것은 영화니까, 응당 나는 그런 것을 기대했다. 그러니까 그녀의 '진실한' 혹은 '진정한' 사랑 같은 것. 그녀가 질 안에 달린 이빨을 쓰지 않으면서 행복하게 섹스를 할 수 있게 만드는 그런 상대. 처음에 나는 토비가 그런 상대일 거라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영화에서 그녀를 강간하려고 하거나 성적 대상화 시켜버리는 대상들 말고, 그녀를 동등하게 대우해주는 그런 남자는 나오지 않았다. 그건 다시 말해서, 고추가 잘리지 않을 놈이 없었단 얘기가 된다. 영화에서는 이런 그녀라도 사랑하는 남자에겐 이빨을 사용하지 않지, 같은 메세지 같은 건 끼워넣지 않는다. 강제로 밀고 들어와? 잘라버려. 나를 성적대상으로만 대해? 잘라버려.
처음에 말한 성범죄자 사지절단에 대해서는 사실 내가 그런 판타지를 가지고 있긴 하지만 문제가 당연히 많다. 어쩌면 무고한 누군가의 사지를 자를 수도 있다는 걸. 아주 적긴 하지만 무고한 사람이 있긴 있을 터. 내가 생각하는 영웅물이 완전하고 완벽할 순 없을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바기나 덴타타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스토리에선 무고함이 있을 수가 없고, 많은 성범죄 가해자들이 무고죄로 상대를 고소하는 일도 일어날 수가 없다. 당사자인 내가 싫다는데 밀고 들어오면, 내 안의 이빨이 물어뜯어 버릴테니까. 여기에 어떤 무고가 있을 수 있겠는가. 내 안에서 니 고추가 무사히 빠져나가느냐 아니냐로 이것은 강간이거나 섹스이거나 할 수 있을텐데. 바기나 덴타타는 남자의 거세공포증을 일컫는 용어라는데, 나는 남자들이 그 거세공포증을 정말로 가졌으면 좋겠다.
모든 여자가 질 안에 이빨을 품고 사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평생 건강하게 제 역할을 할 수 없다면, 최소한 어릴때부터 있다가 완경 무렵에 서서히 이빨이 무뎌지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내 안에 날카로운, 아주 날카로운 이빨을 품는 것이, 나에게도 어쩌면 피곤한 일일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이빨을 품고 있어서 모든 남자들이 '강제로 하는 순간 고추가 잘린다'는 걸 인식하고 있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까. 이건 강제로 해도 쉴드쳐주는 인간들 투성이니 무서운 줄 모르고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사는 것 같다. 하지 말아야 할 짓에 대해서 말이다.
자연발생적으로 이빨이 생길 수 없다면, 인공시술이어도 좋을 것 같다. 원하는 사람들만 이 기능을 시술로 내 안에 넣는 거다. 혹은 모든 여자들에게 생기는 게 아니라 랜덤으로 생기는 것이어도 괜찮을 것 같다. 강간하기 전까지는 누구 안에 이빨이 있는 지를 모르니, '어쩌면 이 여자 안에 이빨이 있을 수도 있다'라는 공포로 범죄는 줄어들지 않을까.
이 영화에는 초반에 좀 거슬리는 장면이 하나 나오긴 하지만, 큰 장점 몇 가지를 가지고 있다. 일단 그녀의 이빨이 결코 무디지 않다는 거. 물었다 놓는 이빨이 아니라 그냥 뎅강 하고 잘라버린다는 거. 얄짤 없이 그게 뭐든 잘라버린다. 고추든 손가락이든. 또하나. '사랑하는 남자라면 물지 않아요', '진실한 사랑은 찾아와요' 같은 친절한 멘트 따위 없다는 거. 사방을 둘러봐도 성적대상화 시키고 성희롱 하는 놈들 투성이인데, 영화라고 다를까. 친구부터 의붓 오빠 그리고 길에서 만난 할아버지까지 여자를 성적으로 보는 남자가 끊임없이 나온다. 그러니 돈이 처음엔 자신이 돌연변이가 아닐까 걱정하고 속상해했지만, 결국 자신이 가진 게 뭔지 알며 차게 웃을 수 있는 거 아닐까.
게다가 이렇게 강간에 대해서 다루는데도 자극적인 섹스 장면이 나타나지 않는다. 강간 장면은 특히나 보기 되게 끔찍한데, 이 영화에서는 그렇게 끔찍한 장면을 내보내지 않는다. 어제 《제2의 성》 읽으면서 어떤 장면에서 너무 힘들어서 덮을까 했는데, 보부아르가 나 힘들라고 그렇게 쓴 게 아니라, 실제 누군가의 이야기를 가져와 얘기한건데도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었더랬다. 끔찍하고 자극적으로 묘사한 게 아닌데도 그랬다. 이런데 자극적인 묘사를 가져오는 책이나 영화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게 할까. 질 안에 있는 이빨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그런 끔찍한 장면을 넣지 않은 게 이 영화의 장점중 하나다. 아, 고추 잘리는 장면은, 나올때마다 끔찍하지만.
포스터에 '그녀를 사랑하면 잘린다' 라고 되어있는데, 그녀를 '사랑'하면 잘리는 게 아니라 '강간'하면 잘리는 거다. 포스터 문구 똑바로 쓰세요. '사랑'하면 잘리지 않습니다. '강간하면' 잘려요. 강간이요.
이렇게 보는 동안만이라도 쪼그라들게 만드는 영화가 네이버에서 천원만 내면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하하하.
영화 보면서 내가 분명 바기나 덴타타를 내가 읽은 책에서 접했는데 그 책에서 인용문 갖고 오자...싶었지만, 그 책이 뭔지를 모르겠더라. 아마도 페미니즘 도서가 아니었을까 싶어 그 앞에서 이 책 저 책 찾아보며 훑어봐도 밤만 깊어갈 뿐 원하는 걸 찾을 수가 없었어.... 내가 기억력이 좋았다면, 아, 이건 누구의 어느 책에서 이렇게 나왔었지, 할 수 있을 텐데. '어디서 분명히 읽었는데!! '하고 그게 어딘지를 모르겠으니 낭패다... ㅠㅠ 결국 네이버 검색으로 가져오는 비루한 나... Orz
페미니즘 관련 글 쓰면서 친구취소하는 사람들이 생겼는데 ㅎㅎ 이 글 보면 친구취소 또 생기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침에 제육볶음 먹고왔는데 열내서 페이퍼 썼더니 금세 배가 고파지네. 헤헷. 호두과자 먹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