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페미니즘과 민주주의 강의에서 정희진 쌤은 '사랑'에 대해 얘기하셨는데, 본인이 정신적으로 굉장히 의지하는 소설가에 대해 언급하셨다. 그 분의 소설이 혹시나 절판될까 여러권을 가지고 있고 필사도 여러차례 했다는 것, 그 분의 소설이 굉장히 많이 힘이 된다는 것. 그러면서 '말씀이자 생명이다' 라고까지 하셨다. 나는 도대체 그 소설가가 누구일까 궁금했지만 정희진 쌤이 무척이나 소중하게 얘기하시는 바람에 묻질 못하겠더라. 그렇게 소중한 존재, 소중하다고는 하지만 이름을 밝히지 않은 존재에 대해서, 내가 이름을 묻는다는 건 실례가 될 것 같아서. 그러면서 강의 중간에 막 검색을 해봤다. 나는 검색 머저리이고... '정희진 소설가', '정희진이 좋아하는 소설가', '정희진 추천 소설가', '정희진 소설' 등등을오 막 넣어봤지만 도무지 그 소설가가 누구인지 찾을 수가 없더라. 그러다가 우리에게 강의중에 언급한 이 내용에 대해서 여름에 칼럼을 쓰셨다는 걸 알게 됐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00999.html
이 기사에 나온 키워드를 넣고 검색해봤다. 그러나 역시 찾을 수가 없었다. 짐작컨대 그 작가는 아직 내가 읽어보지 못한 작가일 것 같았다. 이미 널리 이름이 알려진 작가가 아닐 것 같았다. 처음엔 듣자마자 '혹시 이승우가 아닐까' 생각했지만, 이승우는 국어교육이 아닌, 신학대학을 나온 작가이지... 김훈이나 황석영은 절대 아닐 것 같고 그렇다고 박경리나 박완서도 아닐 것 같았다. 아무리 검색해도 안나와, 그렇지만 물을 수가 없다. 도대체 어떤 글을 쓰는 소설가이길래 쌤은 그토록이나 열심히 읽고 필사를 했다는걸까.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쓰는 작가이길래... 정희진 쌤의 책을 많이 읽은 친구에게 강연 도중 문자를 보내 '혹시 너는 아니?' 물었지만, 그 친구 역시도 알지 못한다는 답이 왔다. 아아, 누구일까, 누구란 말인가....
「내가 그에게서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바로 그거야. 내 마음속으로 말이야. 말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날 위해서 이름만은 안 돼. 그걸 말할 수는 없어......」 (p.86)
정희진 쌤이 사랑에 대해 얘기하게 된 건, 그 전 강의에서 피클 선물을 받은 얘기를 풀어놓다가 였다. 직접 만든 피클을 메모와 함께 선물 받았는데, 거기에는 피클에 들어간 재료에 대한 성분이 다 적혀 있었다고 한다.-이를테면 오이:국내산 이런식으로-, 마지막에는 '마음에 안드시면 버리셔도 돼요' 라고 써있었단다. 이렇게 성의 있는 선물을 해놓고서 '버려도 된다'고 말하는 그 마음은 무엇일까, 대체 그 마음은 무엇이란 말인가, 에 대해 얘기하다가 본인이 사랑하는 소설가 얘기까지 닿은건데, 이토록 극진한 마음을 가진 대상에 대해서 우리는 선물을 하면서도 '혹시 이것은 폐가 되지 않을까'를 더 생각하게 된다는 거였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은 계속 해왔던 건데, 좋아하는 소설가의 소개에 대한 부분에서는 '이렇게 쓰는 게 폐가 되진 않을까' 계속해서 고민했다는 거다. 그렇게나 극진한 마음.
그 극진한 마음을 가진 대상에 대해서 그러나 '그 사람은 누구야'라고 밝히지 않는 것. 나는 이 마음이 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그 사람이 누군데?' 혹은 '이름이 뭔데?'를 차마 물을 수가 없는 거다. 그건 그 사람의 가장 내밀한 무엇을 건드리는 것 같아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친구들을 만나 그 사람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얘기하다보면 간혹 '그 사람 이름이 뭔데?'라는 물음을 듣게 된다. 그러면 나는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어. 혹여라도 그 사람의 이름을 입밖에 내어 그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폐가 되진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말하는 것은 늘 조심스러워진다. 아무렇지도 않게 그 사람의 이름을 말할 수가 없게 되는거지. 그 극진한 마음, 너무 좋으면 좋다는 나의 감정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얘기할 수 있지만, 좋아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어떤 것도 밝히고 싶지 않은 마음. 극진한 사랑. 나 역시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대상일수록 더더욱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정희진 쌤의 사랑에 대한 감정이 너무 공감이 되고, 그래서 그 대상이 너무 궁금하지만 차마 물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검색 머저리....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저 친구들 끼리만 누굴까? 넌 아니? 라고 대화할 뿐. 이런 궁금증조차도 갖지 않는 게 좋을테지만, 아, 나는 그 소설을 너무 읽어보고 싶은 거다. 뭔데! 왜! 도대체 뭔데! 어떤 건데!! 어떤 소설이길래 필사까지 하게 되는걸까.
나는 줌파 라히리의 원서를 필사하려고 노트와 원서를 준비했지만 한 장도 채 마치지 못한 채 포기했었는데... 나는 필사 스타일이 아닌 건가... 여러번 읽는 거라면 피츠제럴드, 무라카미 하루키,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줌파 라히리, 다니엘 글라타우어를 여러번 읽긴 했는데, 그래도 필사를 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 필사 뭘까? 아아, 그토록 여러번 읽고 필사도 했다는 그 소설가가 나는 너무나 궁금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아직 모르는 그런 세계인 것 같아서,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고 싶어. 아아, 나의 호기심이란 이런 것인가......... (노파심에 덧붙이는데 혹여라도 그 소설가를 알려주겠다 생각하시는 분은 공개댓글이 아닌 비밀댓글로 달아주세요....)
아, 그러고보니 얼마전에 SNS에서 내 책 필사하신 분도 봤다. 전체를 다 했다기 보다는 인상깊은 구절을 적으시더라. 오... 놀라운 세상이야. 멋져!!
정희진 쌤은 최근에 '프랑코 베라르디'라는 작가에 빠져있다 하셨는데, 그래서 강의 듣다가 이 책도 보관함에 넣었다. 사실 바로 사버리고 싶었지만........... 살까? 그런데 언제 읽어? 나 아직 《제2의 성》1권도 다 못읽었는데? '잠깐멈춤'상태가 오래 가고 있는데? 음.... 주말에 놀러가는 기차안에서 제2의 성 읽을까? 그러면 읽을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그렇게 무거운 걸 들고 기차를 타야 할까? 기차 타면 잘 확률이 97프로인데? 미련한 짓인걸까? 그렇지만 도전하는 게 낫지 않을까? 제2의 성을 올해 안에 완독하기로 했는데, 친구야,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될까? 주말에 제2의성 기차안.... 될까? 흐음... 맥주 마시다 걍 뻗어버리지 않을까? 그럴 것 같지? 그렇지만 아예 가져가지 않는 것보다는 가져가는 게 낫지 않을까? 혹시 모르잖아, 만약이란 게 있잖아.... 음..... 아직 시간이 하루 남아있으니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다. 죽음의 스펙터클은... 살까? 사면 언제 읽을지도 모르는데............그러면 나중에 '당장 읽겠다'고 생각할 때 살까? 그렇지만 다 당장 읽고 싶어서 샀던 책들 아니었나? 음.... 죽음의 스펙터클 넣고 주문해서 식판 하나 더 받을까? 아니야, 식판 ... 왜 더 받아...... 내년에, 내년에 사자. 내년에... 그렇지만...내년엔 책 안사고 사둔 책들 중에서 읽기로 하지 않았나? 음.. 그렇지만 그 결심은 매해 반복됐잖아? 아아..방금 내가 신청한 중고등록알림문자가 떴어.... 중고를 같이 넣어 주문하면 마일리지 2천점이 따라오지.....
아 너무나 혼란스럽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