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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란 무엇인가
안경환 지음 / 홍익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제목 그대로,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그리고 다 읽고 책장을 덮은 후에도, '도대체 이 책을 왜 썼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이 책은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살아가는 내가 읽기에도 아무것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가 읽는다고 해서 뭔가 위로를 받는다거나 재미있다거나 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 안경환은 누구보다 현실 혹은 현상 파악에 능하다. 과거에 대한민국을 비롯한 세계의 남자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잘 알고 있고 또 지금은 어떻게 달라졌는지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변화의 과정에는 페미니스트들과 페미니즘의 영향이 있었다는 것도 알고 있고. 페미니즘을 지양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그것이 당연한 시대의 흐름이라는 인정도 하고 있다. 만약 그 인정을 좀 더 설득조로 썼다면 지금과 같은 문제(?)는 없었을 것 같은데, 그렇게 현상 파악을 잘 하고 있으면서도 단지 현상 파악만을 책에 기술했기 때문에 이 책은 문제가 된다. 게다가 처음부터 남자의 뇌와 여자의 뇌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아니, 주장이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현상을 기술한다.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나는 그 기술, 단순한 기록에 있다고 생각한다. 숱한 명사의 숱한 책 혹은 말에서 가져와 이 책을 구성하는 거다. 남자와 여자의 뇌과 다른데, 이렇게 달라, 하면서 여기저기에서 인용문 가져오고, 그래서 남자가 이런 본능을 가지고 있고 이렇게 행동하는데, 하면서도 여기저기서 인용문을 들입다 갖다 박는다. 위에 언급한대로, 그것은 '문제적'이고 지독한 차별에서 지금처럼 변할 수 있었던 것은 여성활동가들의 운동 덕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그냥 다 출처를 밝힌 인용문이다. 결과적으로 지금 세대의 남자들은 기존의 남자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그것이 '옳기' 때문이 아니라 그보다는 '살아 남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시선을 가진듯 보이고, 이 역시도 강하게 주장을 하는 게 아니라 현상을 나열하는데 그친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분노하는 문장들을 비롯해서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할 수 있는 문장들까지도, 대체적으로 인용문이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이 아닌 상태에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읽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없는' , '삶 혹은 일상에 영향을 1도 안미치는', 그야말로 '읽으나마나 한' 책이었을 거다. 정말 이 책을 왜 쓴걸까?
이 책은 지금 화제가 되었든 안되었든 내가 읽고싶어할 만한 책은 아닌데, 여당 의원들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악의적으로 발췌'하여 사람들이 비난한다고 하고 또한 '맥락을 읽지 못하고 발췌만 가지고 판단한다'고 하길래, 정말 그런가 싶어 읽게 되었다. 어디, 맥락을 파악하면 그 모든 발췌문들이 다르게 느껴질까? 해서 시작한 거다. 그리고 다 읽으니 발췌독만 읽었을 때보다는 '덜' 분노하게 된다. 그러나 이 맥락이 '분노하지 않을만한' 것은 아니다. 과거의 남자들이 가진 문제와 지금의 남자들이 가진 문제, 이 사이에 페미니스트들의 역할까지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에 언급했듯이, '남자와 여자의 뇌가 다르다'고 심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 모든 '남자들의 문제'를 '남자들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사람이, 지금 욕먹을 만큼 '차별주의자'는 아닌 것 같은데(오히려 문제 파악을 잘하고 있다), 왜이렇게 읽는 내내 찜찜할까를 고민했는데, 그가 적어낸 문장에서 나는 그 답을 찾았다.
여군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데는 유엔 평화유지군 활동의 비중이 커지는 영향 때문이기도 했다. 파견국 주민과의 유대를 강화하는 데 여성 군인이 장점이 많다. 최소한 성매매나 성폭력과 같은 전형적인 남자문화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전자책 p.237)
남자의 문제를 조목조목 다 짚어내면서, 그것을 '문화'로 보고 있는 거다. 성매매나 성폭력은 '범죄'다. 그것을 범죄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전형적인 남자문화'라고 받아들이다보니 현상 파악을 잘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 책이 문제시 될 수밖에 없다. 저런것을 남자들의 문화로 받아들이고 있으니, 여자의 '아니오'가 아니오라는 것을 말하면서도, 아내와의 섹스는 내가 필요할 때마다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하면서도, 성소수자를 차별하면 안된다고 얘기하면서도, 우울증은 정신적 질환이므로 병원에서 치료 받아야 하지 숨길 게 아니라고 말을 하면서도, 거기에 별로 설득력이 실리질 않는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잘 알고 있는데, 이걸 왜 이렇게밖에 표현을 못하지? 하게 되는 것이다. 이 사람에겐 어차피 남자들의 생래적 본능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그걸 인정하고 가기 때문에, 차별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에 힘이 실리질 않는다. 쉽게 말하면 '남자의 성욕을 다스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남자의 성욕은 본능이다'를 인정해버리고 있는 거다. 애초에 본인이 멀리 떨어진 제삼자의 입장에서 쓰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렇게 본인의 주장은 거의 '없고' 인용문으로 현상만 나열한 글이 된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저자는 실생활에서 다른 남자들보다는 차별하지 않는 삶, 평등에 가까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남자의 성적 본능'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책은 어느 한 쪽에 가까운 책이 되지 못하고, 이도저도 아닌, 그저 인용문 나열에 그친다.
이 책에 인용된 책은 장르도 다양한데, 이렇게 책도 많이 읽고 평등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고 하는 남자조차도, '남성의 성욕 본능' 같은 거, '젊은 여자를 간절히 원하는 본능' 에 대해서 '남자는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다'는 걸 인정해버리고 시작하다니, 이것은 그저 남자들이 가진 어쩔 수 없는 한계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리뷰의 제목을 '중년 남자의 한계' 혹은 '한국 남자의 한계' 같은 걸로 쓰고 싶었는데, 자극적인 걸 지양하자는 나만의 신념에 따라 자제하도록 한다.
이 책은 왜 썼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