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올해의 노래
작년 한 해, FRANCES 의 <Don't worry about me>를 엄청나게 많이 들었다. 작년 나의 테마송이었다. 먼댓글 링크를 타고 들어가보면 나는 이 노래를 2016년의 노래라고 정하기도 했더랬다. 그 당시에 이 노래가 실린 앨범을 살려고 했는데 이 가수의 앨범은 싱글로만 나와있더라. 그런 참에 오빠로부터 이 앨범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이 노래를 알려주기도 한 오빠는 이 앨범이 나왔다는 소식도 알려줬다. 역시 잘 알고지내는 오빠 하나, 열 애인 안부럽다...(응?)
오늘 마침 외근할 일도 있어 버스를 타고 가면서 그리고 걸으면서 이 앨범을 랜덤으로 들었다. 아, 역시 이 가수의 음성은 진짜 좋다. 너무 좋아 ㅠㅠ 그리고 노래도 좋다 ㅠㅠㅠ 아직 다 듣지도 않았지만 ㅠㅠㅠ 진짜 반해버려가지고 ㅠㅠㅠ 나는 알라딘에 접속해 얼른 이 앨범을 구매했고, 3월31일날 출고될 거라는 메세지에 초조해하며 방금 음원 결제도 마쳤다. 아, 좋은 음악이란 얼마나 좋은 것인가. 예술은 위대해서, 좋은 앨범 한 장이라면 스무명의 애인 안부럽다. 다 필요없어...
오늘 환한 오전에 버스안에서 그리고 걸으면서 이 앨범을 듣는데,
아, 오늘이 그날이었다면, 나는 이 앨범을 선택했을 거다, 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자 혼자 웃음이 났다.
그러니까, 2007년 여름, 나는 한 젊은 여자를 만나기 위해 강남역으로 갔다. 알라딘을 통해 알게된 그녀와 나는 아주 간혹 이메일을 주고 받았더랬고, 그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개인 홈페이지에도 소식을 전하던 터였다. 우리는 언젠가 순대국을 먹자 라고 약속한 적이 있었고, 그렇게 만날 날을 정했던 거였다.
나는 그녀로부터 받은 느낌이 좋았고, 만나서 반가운 마음에, 그리고 앞으로 친근해지고 싶은 마음에, 그 당시에 한창 열심히 듣던 이 앨범을 선물로 주기 위해 가방에 넣어갔다. 퇴근 시간이 평소보다 조금 늦어졌고, 비가 내렸고, 나는 그렇게 먼저 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그녀에게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강남역 약속장소에는 내가 생각하는 젊은 여자 대신 키가 큰 젊은 남자만 한 명 서있었다. 분명 내가 늦었고,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을텐데, 어째서 여자는 안보이고 남자만 보일까? 전화를 해봐야겠다...라고 하다가,
앗??????????????????????????????????????????
설마, 저 남자인 걸까?????????????????????????????????? 하고 멘붕이 온거다. 그러고보니 나는 한 번도 상대에게 '너 여자지?' 라고 물은 적이 없었고, 또한, '너 남자니?'를 물은 적도 없었다. 그냥 당연히, 너무도 당연하게 여자라고 생각한 거다. 나와 주고받는 말투에서 그냥..당연히 젊은 여자라고만 생각했지, 남자라는 생각은 1도 끼어들지 않았던 거다. 나는 당시 온라인으로 알게되는 남자를 오프라인에서 만나는 것에 대한 편견이 있었고, 그래서 혼자 '그런식으로 남자사람을 만나지는 말자' 같은 나름의 결심을 하고 있었던 터라, 이 예상치 못한 일에 크게 당황했다. 아니야, 설마..저 남자일 리가 없어...나는 강남역 지하도로 쏙- 숨어들어, 간혹 나와 문자메세지를 주고받던 바로 그 번호로 전화를 했다. 그러자 상대가 받아 "여보세요" 하는데, 아아, 남자인 것이다!! Orz
나는 이거 본인 전화 맞냐고 물었고, 상대는 그렇다고 했다.
아아, 나는 여태 남자랑 메세지하고 남자랑 이메일하고 남자랑 홈페이지에서 놀고 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오, 마이, 갓!!!
나는 고민했다. 어쩌지? 그냥 집에 갈까? 나는 남자 만날 거라고 생각하고 온 게 아닌데...아아, 도망가고 싶다...그렇지만..저 사람 우리 회사 근처까지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떻게 사람된 도리로써 그냥 보내지? 에라이, 만나자, 어차피 술 마시기로 했던 거니까, 술 마셔서 보내자, 그까짓 거...하고는 다시 지하철 역 바깥으로 나가 그 남자를 만났다.
가벼운 비가 내리고 있던 그날, 그 남자는 냉큼 내 우산 속으로 들어왔다. 함께 걷자고 했다. 우리는 그렇게 삼겹살집까지 함께 걸었고, 나는 내가 그를 여자로 생각하고 있었음에 대해 말했다. 그리고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마치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듯,
"다음에 저 또 만날거예요?"
라는 질문을 받게된다. 어므낫 깜짝이야. 나는...그러니까 어쨌든 이 자리를 얼른 파하고 집에 달려가고 싶었는데, 이것은 뭣이여......대놓고 눈앞에서 그 질문을 받게 된 나는, 네 그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라고 답했더랬다. 그러면서 챙겨온 나윤선의 시디는 주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남자'이니만큼, 내 선물을 오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뭔가 이성에게 어필하기 위한 거로 생각하면 어떡하지,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면서, 준비한 시디는 그냥 들고 들어가자, 라고 생각했던 거다. 그렇게 우리는 1차를 파하고 2차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는 나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며 이 앨범을 자신의 가방에서 꺼냈다. 아!! 이..이건 무슨 상황이지? 나는 도로 집에 가져가려고 했던 나윤선의 시디를 꺼내어 내밀었다. 사실은 나도 널 위해 준비했다, 하고서. 시디를 선물 받고 내가 어떻게 가만있나. 준비를 안해온 것도 아닌데. 그렇게 나는 그가 나를 위해 준비한 시디를 선물 받고, 나 역시 그(그녀..였지만)를 위해 준비한 시디를 선물 했다.
그리고 그 2차 에서부터, 어쩌면 1차에서부터, 아니면 2차후 집에 돌아가던 길에서부터... 어디서 부터였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날, 그 날의 어느 한 순간부터,
그를 향한 나의 길고 긴 짝사랑이 시작됐다.
오늘 버스 안에서 FRANCES의 노래를 듣다가, 만약 그 날이 오늘이었다면, 나는 이 앨범을 준비했을 것이다, FRANCES 의 앨범은 가지고 가 선물했을 것이다,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지난 한 해 내 아픔에 항상 같이해줬던, 내 아픔을 대신 부르짖어줬던 그 가수이잖은가. 내가 그녀의 노래를 듣다가 이불을 적신 적도 여러차례였지. 볕이 좋은 날 산을 오르면서 울기도 했어. 그때 마다 번번이 FRANCES 가 있었어.....그러니 이 앨범보다 더 적절한 앨범이 어디있단 말인가! 오늘이 그날이라면, 나는 이 앨범을 들고 그 자리에 나갈거야! 그러자 그 날의 기억이 미친듯이 몰려와 나를 웃음짓게 했다. 아아, 기억이여, 아아, 추억이여, 아아, 음악이여..........
그래서 나는 FRANCES 의 앨범을 시디로도 사고 음원으로도 샀다.
아, 그래서 저 남자랑 그 뒤엔 어떻게 됐냐고?
이렇게 됐었더랬다. (과거형임을 재차 강조한다)
나는 그 사람이 내게 남겨놓은 정액을 하루라도 더 품고 있기 위해 다음 날까지 샤워를 하지 않았다.
우리가 지금까지 몇 번이나 사랑을 나누었는지 헤아려보았다. 사랑을 할 때마다 무언가 새로운 것이 우리 관계에 보태어진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동시에 쾌락의 행위와 몸짓이 더해지는 만큼 확실히 우리는 서로 조금씩 멀어져가고 있었다. 우리는 욕망이라는 자산을 서서히 탕진하고 있었다. 육체적인 강렬함 속에서 얻는 것은 시간의 질서 속에 사라져갔다. (p.17)
인생...
It must have been love
But it's over now.
모든 사랑은 잠재적으로 비탄의 이야기라고, 줄리언 반스 아저씨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