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페미니즘
벨 훅스 지음, 박정애 옮김 / 큰나(시와시학사)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한 권 한 권, 책을 읽을수록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던 부분까지 알게 되는 순간이 즐겁다. 벨 훅스의 시선은 날카로웠고, 이 책의 11장, 폭력에 대한 부분은 꽤 인상적이었다.



 

11장 폭력을 종식시키기

 

만약 우리가 폭력의 종식을 열망한다면, 지금까지 현대 페미니즘 운동이 이끌어 낸 가장 긍정적인 변화 중 하나는, 우리 사고와 행동에 분명히 일어났을 변화들뿐만 아니라 가정 폭력에 대한 보다 나은 문화적 인식을 창출하고 견지시켜 온 것이다. 요즘은 가정 폭력 문제가 매스미디어에서 초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많은 종류의 집단에서 논의되고 있기 때문에 현대 페미니즘 운동이야말로 가정 폭력의 생생한 현실을 극적으로 찾아 내어 폭로한 주역이라는 사실은 종종 잊혀지고 있다. 가정 폭력에 대하여 초기 페미니즘이 초점을 맞춘 부분은 여자에 대한 남자의 폭력이었지만, 운동이 진행될수록 동성(同性) 사이에도 가정 폭력이 존재한다는 것, 여자가 다른 여자와의 관계에서 학대받고 희생되는 경우, 어린이가 성인 여자와 남자에 의해 저질러지는 가부장제적 폭력의 희생자가 되는 경우 등을 증거하는 사례들이 속속 나타났다.

집안에서의 가부장제적 폭력이란, 보다 힘센 개인은 다양한 현태의 강제력을 동원하여 힘이 약한 자를 지배해도 무방하다는 신념에 기반하고 있다. 광의(廣義)의 가정 록력 개념은 여자에 대한 남자의 폭력, 동성(同性)간의 폭력, 어린이에 대한 성인의 폭력을 포괄한다. '가부장제적 폭력('patriarchal violence')이라는 용어는 흔히 사용되는 말인 "가정 폭력('domestic violence')과는 달리 청자(聽者)로 하여금 집안에서의 폭력이 성차별주의와 성차별적 사고, 남성 지배와 긴밀하게 연관된 것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일깨워 주기 때문에 유용하다. 너무나 오랫동안 가정 폭력이라는 개념은, 그것이 사적이고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고, 가정 밖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비해 얼마큼 더 ㄹ 위험하며 덜 끔찍하다는 의미를 내포하는 "부드러운"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이런 의미는 여자들이 가정 밖에서보다 가정 안에서 매맞거나 살해되는 비율이 더 높다는 사실을 볼 때 허구적이다. 그리고 대다수 사람들은 성인들 간의 가정 폭력을 어린이에 대한 폭력과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사실 어린이들은 남편이나 남성 동거인에게 폭행당하는 어머니를 보호하려고 하다가 자기도 폭행당하는 경우가 많으며, 폭력과 학대를 목격함으로써 정서적으로 심각한 상처를 입기도 한다.

이 나라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동일 노동에 대한 동일 임금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남자가 여자나 어린이를 대려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가정 폭력이 성차별주의의 직접적인 산물이며 성차별주의가 종식되지 않는 한 가정 폭력도 종식되지 않을 거란 이야기를 들으면 그들은 그것을 논리적 비약이라고 생각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물론 젠더에 대한 그들의 사고 방식을 근본적으로 고치고 바꾸지 않는 한 그것은 논리적 비약에 불과할 것이다. 나는 모든 형태의 폭력을 종식시키는 일을 가장 우선적인 의제로 삼는 것이 페미니즘 운동에 반드시 필요하다고 보는 소수 페미니스트 이론가 중 한 사람이다.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에 대한 가부장제적 폭력을 부각시키는 것은 물론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여자에 대한 남자의 폭력이 다른 어떤 가부장제적 폭력 양태보다 위험하다는 식으로 말하면서 거기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페미니즘 운동에 더 이상 이득이 되지 않는다. 그런 식은, 성차별주의자 남녀에 의해 어린이에게 가해지는 수많은 가부장제적 폭력의 현실을 은폐한다. (p.139-141)

 

 

여자가 남자를 지배하고자 폭력을 사용하는 경우는 명백히 드물지만(소수의 여성들이 남성을 대리는 경우가 실제로 있다 하더라도) 많은 수의 여성들은 권위를 가진 어떤 사람이 자기 권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물리력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는다. 압도적 다수의 부모들은 어린이들에게 물리적 혹은 언어적 폭력을 행사한다. 여자들이 여전히 어린이에 대한 일차적 보호자이기 때문에, 여자에게(부모-자식 관게에서) 권력을 부여하는 집 문화의 위계 구조 속에서 여자들이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강제력을 행사하는 일은 너무나 흔하다. 지배의 문화 속에서 모든 사람은 폭력이 사회적 통제의 수단으로서 적절한 것이라고 생각하게끔 사회화된다. 지배자들은 남성·여성 관계이건 부모·자식 관계이건 간에 기존 위계 구조가 위협받을 때에는 언제라도 물리적인 것이든 심리적인 것이든 폭력적 처벌이 가해질 것이라는 협박(먹혀들든 먹혀들지 않든 간에)을 가지고 지배력을 유지한다. (p.144)

 

 

성차별주의적 사고는 남성 지배를, 그 결과의 하나인 폭력을 계속적으로 지지한다. 많은 실업자들이나 노동 계급 남성들은 백인 우월주의적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자신의 직업을 통하여 권력을 맛보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이 절대적인 권위와 존경을 누리는 유일한 장소인 가정에서 충분히 그런 기분을 느끼고자 한다. 남성들은 지배 계급 남성들에 의하여 직업이라는 공적 세계에서의 지배를 받아들이게끔, 그러면 가정이라는 사적 세계와 친밀한 관계들이 그들에게 그들의 남성성에 합당한 권력의 기분을 되살려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끔 사회화된다. 점점 더 많은 남자들이 실업자나 저임금 노동자 대열에 합류하게 되고 점점 더 많은 여자들이 직업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어떤 남자들은 폭력 행사만이 성차별주의적 성 역할 위계 안에서 지배권을 확립하고 유지할 수 있는 방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방법으로든 남자에게는 여자를 다스릴 권리가 있다고 말하는 성차별주의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여자에 대한 남자의 폭력은 여전히 상습(常習)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p.145)

 

 

부모들이 비폭력적인 방식으로 부모 노릇 하는 법을 배우는 일도 아주 중요하다. 폭력이 어려운 상황을 해결하는 유일한 방도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우리 어린이들은 결코 폭력에 대하여 등돌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p.147)

 

 

 

 

 

 

"페미니즘은 성차별 주의와 성차별주의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종식시키려는 운동이다." 나는 이 명제를, 십여 년 전 나의 책 『페미니즘 이론:주변에서 중심까지 Feminist Theory: From Margin to Center』에서 처음 언급한 이 명제를 사랑한다.
나는 이 명제가 페미니즘 운동이 반(反)남성주의가 아님을 아주 선명하게 밝히고 있기에 사랑한다. 문제는 성차별주의라는 사실을, 이 명제는 명백하게 적시한다. 그 명명백백함에 힘입어 우리는 우리 모두가 여자든 남자든 태어나서부터 줄곧 성차별적 사고와 행동 양식을 받아들이도록 사회화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된다. (p.9-10)

페미니즘 운동이 단순하게 남성을 반대한 여성을 위한 것이라는 일부 페미니스트의 생각 역시 고지식하고 그릇된 것이다. 가부장제(구조화된 성차별주의를 일컫는 또 하나의 이름)를 종식시키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의 머리와 가슴을 바꿀 때까지는, 성차별적 사고와 행동을 내보내고 그 자리에 페미니스트적 사고와 행동을 가득 채울 때까지는, 우리 모두가 성차별주의를 영구화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음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p.10)

페미니즘 운동은 여자들의 결속을 위한 맥락을 만들어 내었다. 우리는 남자들에 반대하여 결속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여성으로서의 우리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하여 뭉쳤다. (p.46)

문학과 그 외의 학문에 있어서 남성 일색의 정전에 대한 페미니스트들의 비판은 젠더에 근거한 편견들을 폭로한다. 이러한 폭로는 여성 저작의 발굴을 위한 장과 여성에 의한 그리고 여성에 대한 새로운 저작의 생산을 위한 동시대적 장을 마련하기 위하여 핵심적인 작업으로 기능한다. (p.57)

전망 있는 운동이 되려면 필수적으로 노동 계급과 빈민 여성의 구체적 조건에 기반하여 사업을 시작해야 한다. 이 말은 비판적 의식을 키우는 교육 운동부터 창출해야 한다는 의미인데, 여기서 여성들, 계급 권력을 가진 페미니스트 여성들은 저소득 여성들이 소유할 수 있는 주택 개발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가 나온다. 페미니즘적 원칙의 주택 조합들을 만들어 내는 것은 페미니즘 투쟁이 모든 여성들의 삶에 어떤 식으로 관련 되어 있는지를 보여줄 것이다. (p.101)

현대 페미니즘 운동이 처음 시작되었을 당시에는 상당히 격렬한 반(反)남성적 분파가 있었다. 개별적 이성애자 여성들은, 잔인학 ㅗ불친절하고 폭력적이고 부정(不貞)한 남성들과의 관계에서 여성 운동으로 뛰쳐나오게 되었다. 그런 남자들 상당수는 노동자나 빈민 또는 인종적 정의를 위하여 목청을 높이며 사회 정의 운동에 참여하는 급진적 사상가들 이었다. 그러나 젠더의 문제에 관해서라면 그들은 보수파와 조금도 다를 바 없는 성차별주의자들이었다. 여성들은 이런 남성들과의 관계에 분노했다. 그리고 그들은 그러한 분노를 여성 해방 운동의 촉매제로 활용했다. (p.151)

페미니즘 운동 내부의 반남성주의 분파는 반성차별주의자 남성들의 존재에 분개했는데, 그것은 그들의 존재가 모든 남자들은 억압자라는 것, 모든 남자들은 여자를 혐오한다는 가설을 더 이상 고집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억압자와 피억압자라는 간명한 범주에 집어넣음으로써 남성과 여성을 양극화하는 것은, 게급 상승과 가부장제 권력의 공유를 추구하는 페미니스트 여성의 이익에는 도움이 되었다. 그들은 모든 여성을 희생자로 재현하기 위하여 모든 남성을 적으로 명명했다. 남성에게 초점을 맞춤으로써 그들은 자기들의 계급 권력을 신장시키고자 하는 욕망과 함께 개별 페미니스트 활동가들의 계급 권력에 대하여 주목하지 못하게 했다. 모든 여성들에게 남성을 거부하라고 요구하는 이러한 개별 활동가들은, 여성이 남성과 공유하는 돌봄의 유대라든가 성차별주의자 남성과 여성을 묶고 있는 경제적 ·정서적 결속(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을 보려 하지 않는다. (p.153-154)

"페미니즘은 이론이고, 레즈비어니즘은 실천"이라는 구호에 매혹되어 남성과의 관계를 폐기하고 여성을 선택했던 개별 여성들은 오래지 않아 그 관계 역시 감정적 교감을 위해 노력해야 하고 여타 관계와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어려움이 뒤따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192-193)

내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여성학 강좌를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내가 왜 아직도 남자에게 `빠져`있는지 알고 싶어하는 일단의 급진적 레즈비언 학생들과 만났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난 후 주차자에서 우리는 정면으로 부닥쳤다. 그때 나이가 제법 있는 흑인 레즈비언 여학생이-그녀는 예전에 미춘 산업에 종사하면서 자신의 레즈비언 정체성에 대하여 분명히 인식하고 있을 대에조차 남자들과 수없이 많은 잠자리를 치러야 했던 여자였는데- 다음과 같이 선언함으로써 페미니스트로서의 나의 긍지를 지켜주었다. "선생님은 남자들과 성 관계를 가지지만 여성과 동일시하는 여성이다. 남자들과의 관계는 선생님의 권리이다. 선생님은 여전히 우리와 대의를 함께 하고 있다." (p.210)

페미니즘이 상아탑 속으로 들어가면서 이성애주의적 위계는 다시금 강화되었는데, 그 속에서 화려한 학벌을 가진 이성애자 여성들은, 비록 그들이 상아탑 바깥에서 여성 운동에 참여하는 것에는 시간을 조금도 쓰지 않았다 하더라도 종종 더 많은 존경을 받고 더 좋은 대접을 받았다. (p.211)

동성애 혐오를 혁파하는 일은 언제나 페미니즘 운동과 한 궤도에 있다. (p.215)

진정한 사람이란 상대에 대한 인지와 관용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 사랑은 인정과 돌봄과 책임과 헌신과 지식을 결합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받아들일 때, 우리는 정의가 없는 곳에 사랑이 있을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한 이해를 통하여, 사랑은 우리를 변화시킬 힘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에게 지배에 반대할 힘을 준다는 사실 또한 이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페미니스트 정치학을 선택하는 것은 사랑하기를 선택하는 일이다. (p.226)

다른 종교 이상으로 성차별주의와 남성지배를 묵인하는 기독교 교의는, 우리가 이 사회에서 배우는 성 역할을 모든 면에서 조장한다. 진실로 우리 사회의 종교와 신앙을 변혁하지 않고서 우리의 문화를 페미니즘적으로 변혁시키는 일은 불가능하다. (p.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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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8-29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락방 님 성격 급하시네요.
작성중인 글을........ 저도 그렇습니다..ㅎㅎ

다락방 2016-08-30 20:51   좋아요 0 | URL
열심히 옮겨적다보니 점심시간이 되어서 후다닥 쓰다 말고 나갔는데 그 후에는 이어서 쓸 짬이 안나네요. 어쩌죠? ㅋㅋㅋㅋㅋ

북프리쿠키 2016-08-29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부도 언능 올려주세요 ~ 절벽에 매달리기 기법으로 끝내쉬다니 ㅋㅋㅋ

다락방 2016-08-31 16:28   좋아요 0 | URL
제가 도무지 짬이 안나네요. 아놔 ㅠㅠ 회사에서 옮겨 적어야 되는데 요즘 회사에서 제가 너무 일에 파묻혀 있어요 ㅜㅜ

clavis 2016-08-29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능요, 언능..사랑하는 락방마님 ㅋㅋ

다락방 2016-08-30 20:52   좋아요 0 | URL
시간을 줘요, 시간을... 아아 과연 나는 이 뒤를 쓸 수 있을 것인가... ㅜㅜ

비연 2016-08-30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막 초조해집니다...ㅎㅎ 마무리가 안 나오니....

다락방 2016-08-30 20:52   좋아요 0 | URL
저도 제 마음의 짐으로 남겨두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