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의원은 필리버스터의 처음, 시 두 편을 읽고 시작했다. 브레히트의 시였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로지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영화 [타인의 삶] 에서 처음으로 브레히트를 만났던 것 같다. 그때부터 언젠가 브레히트를 읽어봐야지,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또 만나는구나. 필리버스터 덕에, 이학영 의원 덕에 이렇게 나는 브레히트를 읽어보려고 한다.




오늘 집에 놀러 온 일곱 살 조카가 나랑 놀던 중에 "같이 삽시다" 라고 말했다. 아, 이런 말을 일곱 살 조카에게 듣게 되다니, 심쿵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소꿉놀이 진행중이었고, 조카는 식당 직원 역을 맡아서 손님인 나에게 차를 내어주고 있었던 거다. 이 차는 몸에 좋고 하루에 백 잔을 먹어도 돼요 , 라고 말하길래 자꾸자꾸 마셨더니 맛있어요? 묻는 게 아닌가. 네, 맛있어요, 또 주세요, 라고 하니까, 이거 계속계속 줄게요, 같이 삽시다, 이러는 거다. 아... 이 녀석아 ㅠㅠ 


그 후에 저 시를 들었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나는 지금보다 더 건강하게, 더 조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빗방울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게.

같이 삽시다, 라고 말하는 조카를 위해서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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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28 2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빗방울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게, 이 부분이 생각에 빠지게 만드네요. ;^^

clavis 2016-02-28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조카님 덕분에 저도 기분 좋은 심쿵이를♥.♥

레와 2016-02-28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난다. ....

수퍼남매맘 2016-02-28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시는 못 들었네요.
김남주 시인의 시도 여러번 읽어주셨죠.
인문학 강의 듣는 기분이 들었어요.

단발머리 2016-02-29 1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에도 이런 시를 읽는 이런 국회의원이 있다는게 새삼 감동적이예요.
같이 삽시다,에 버금가는 감동이예요^^

나와같다면 2016-02-29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진 프로포즈예요.. ˝같이 삽시다˝
왜 내가 이리 설레이지..? 심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