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영 의원은 필리버스터의 처음, 시 두 편을 읽고 시작했다. 브레히트의 시였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오로지 운이 좋았던 덕택에
나는 그 많은 친구들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러나 지난 밤 꿈 속에서
이 친구들이 나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강한 자는 살아남는다"
그러자 나는 자신이 미워졌다
<아침 저녁으로 읽기 위하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말했다
"당신이 필요해요"
그래서
나는 정신을 차리고
길을 걷는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영화 [타인의 삶] 에서 처음으로 브레히트를 만났던 것 같다. 그때부터 언젠가 브레히트를 읽어봐야지,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또 만나는구나. 필리버스터 덕에, 이학영 의원 덕에 이렇게 나는 브레히트를 읽어보려고 한다.
오늘 집에 놀러 온 일곱 살 조카가 나랑 놀던 중에 "같이 삽시다" 라고 말했다. 아, 이런 말을 일곱 살 조카에게 듣게 되다니, 심쿵했다. 그러니까 우리는 소꿉놀이 진행중이었고, 조카는 식당 직원 역을 맡아서 손님인 나에게 차를 내어주고 있었던 거다. 이 차는 몸에 좋고 하루에 백 잔을 먹어도 돼요 , 라고 말하길래 자꾸자꾸 마셨더니 맛있어요? 묻는 게 아닌가. 네, 맛있어요, 또 주세요, 라고 하니까, 이거 계속계속 줄게요, 같이 삽시다, 이러는 거다. 아... 이 녀석아 ㅠㅠ
그 후에 저 시를 들었다.
빗방울까지도 두려워하면서
그것에 맞아 살해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나는 지금보다 더 건강하게, 더 조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빗방울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게.
같이 삽시다, 라고 말하는 조카를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