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첫 책은 배혜경의 수필집 『앵두를 찾아라』를 골랐다. 어제 오전, 『마담 보바리』를 다 읽긴 했지만, 그건 2015년부터 넘어온 책이었다. 새로 잡고 시작하는 건 이 책이 처음. 어제 몇 꼭지를 읽다가 잤고 오늘 출근길에 이어서 읽기 시작했는데 <두번째 사진> 꼭지를 읽는 순간 친구 한 명이 생각났다. 일전에 어머님을 모시고 꼬리찜을 먹으러 갔다가 어머님으로부터 좀 서운한 감정을 느꼈다고 했던 터라, 갑자기 그 일이 생각나 부랴부랴 출근길에 이 책을 그 친구에게 선물로 보냈다. <두번째 사진>을 읽으니 네 생각이 나더라, 하면서. 우리 같이 읽자, 고 보냈다.
선물을 보내고나서 다시 읽기 시작한 이 책에서 이런 구절을 만났다.
화안(花顔)의 글벗이 전해 주고 싶은 것은 가지가 아니라 뿌리라고 믿는다. 씨앗이 품고 있던 꽃의 꿈을 받아 지상으로 올려 주고 혼곤한 잠에 빠져 있는 뿌리, 그것을 깊숙이 흙에 남겨 두고 널리 목숨을 전도한 당신의 따스한 손가지를 떠올리면 내 어머니가 함께 떠오른다. (p.63)
아... 뿌리, 씨앗, 꽃, 그리고 누군가에게 전해주는 것. 이 아름다운 문장들에서 나는 뜬금없이 거친 영화 『매드 맥스』를 떠올리고 있었다. 아, 이것은 무슨 조화인가. 아마 이 책의 저자조차도 뜬금없다 할테지만, 이 고요한 수필집에서 나는 매드 맥스를 떠올린 것이다! 전사와 전사 사이, 화분을 전달하던 장면. 그 장면이 생각이 났던 것이다. 그러자 갑자기 미래가 활기차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책 속의 꽃을 전달하는 마음은 고요하고 아름다움 그리고 따스함이었겠지만, 내가 느낀 것은 꺾이지 않는 희망과 활기찬 미래였던 것이다! 크- 내가 너무 앞서나가고 있구나. 그렇지만, 이게 다 시작이 좋았기 때문이다. 나의 1월1일은 시작이 좋았다.
1월 1일, 영화를 두 편 보았다. 자, 이제부터 영화 [그녀에게] 의 스포일러가 와장창 쏟아질테니, 그 영화를 볼 예정이고 방해받고 싶지 않으신 분은 읽기를 멈추시길 권하는 바이다. 그 영화에 대해 할 말이 아주 많기 때문에 나는 거침없이 끝까지 줄거리를 다 언급하고 말것이다. 불친절한 글이 될 수 있겠다.
남자는 여자가 무용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고 '혼자'사랑에 빠졌다. 그래서 그녀를 무작정 따라가고 그렇게 그녀의 집을 알게 된다. 그녀의 방까지 몰래 들어가서는 그녀가 사용했던 머리삔을 몰래 들고 나온다. 그러다 샤워하고 욕실에서 나오던 여자와 마주쳐 여자는 화들짝 놀란다. 남자는 서둘러 도망간다. 여기에서 일단 1차 빡침이 온다. 남자가 여자에게 반했다고 한들, 자신은 나름대로의 사랑을 열렬히 하고있다 한들, 그녀의 방에 허락도 없이 몰래 들어가다니, 이건 개놈이 아닌가. 만약 내가 샤워하고 내 방으로 가려다가 내 방에서 나오는 남자를 마주친다면? 정말 끔찍하고 무섭다. 이게 다가 아니었다.
여자는 빗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식물인간이 된다. 여자의 아버지는 최고의 전속 간호사를 병원측에 요구하고 병원에서는 정말 잘하는 간호사라며 이 남자를 추천한다. 어머니 병간호를 20년간 했던 남자는 최고의 간호사임엔 틀림없다. 섬세한 배려로는 누구도 따라잡을 수가 없다. 식물인간이 된 여자를 깨끗이 씻기고 생리하면 타월을 대주고 손톱까지 다듬어주고 맛사지까지 잊지 않는다. 게다가 그녀가 혹시라도 깨어났을 때 자기 자신을 보고 놀라면 안된다며, 헤어스타일도 처음 사고났을 당시로 유지해주고자 정기적으로 머리카락도 잘라준다. 여자의 아버지는 간호사가 '남자'라는 것에 좀 찝찝하지만 이 '남자'간호사가 자신은 '남자'를 좋아하는 성적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해서 받아들인다. 물론, 남자의 거짓말 이었다. 이렇게 정성스럽게 간호하는 그는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 자신의 친구에게 '그녀와 결혼할거야' 라고 해서 친구를 경악케 만드는데, '우린 정말 잘 맞아' 라는 말에 나는 '아, 이 남자는 답이 없구나' 했다. 도대체 어떻게 잘 맞는다는 것인가. 게다가 결혼이라니. 그녀의 의사는 손톱만큼도 반영이 안된 결혼이라니. 그들 사이에 결혼하고자 하는 대화가 오고갈 수가 없었는데, 어떻게 그녀와 결혼하겠다는 생각을 하는가. 이것만으로도 짜증이 났는데, 하아,
여자가 임신을 했다.
병원측에서 이상을 느껴 검사를 했을 땐 벌써 임신2개월 째였다. 여자는 사고를 당하기 전에 무성영화와 무용 공연을 좋아한다고 했다. 남자는 이에 자신이 시간 날 때마다 무용 공연을 보고 또 무성 영화를 보고와서는 여자를 간호하며 다정하게 이야기해줬다. 이야기해주던 어느날 밤, 그는 그녀를 임신 시킨 것이다. 식물인간인 여자가 임신을 했단 말을 들었을 때의 그 끔찍함이란!
강간이다.
백번 양보해서 여자가 설사 의식이 있어 남자가 하는 말을 다 듣고 있었고 그래서 여자도 남자를 사랑하고 있었다한들, 이 임신에 여자의 의사는 없었다. 여자도 같이 자자고 말한 게 아니다. 남자는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고 생각한 것만으로, 자신의 감정만으로, 자신의 일.방.적. 사랑으로(그것이 사랑이라면!) 그녀를 임신하게 했다.
결국 남자의 강간이 드러나 남자는 감옥에 갔고 여자는 아이를 사산한 채 의식을 찾는다. 자신의 아이를 사산했다는 소식은 알지만 여자가 의식을 찾았다는 소식을 모르는 남자는, 여자가 없는 세상은 의미 없다며 자신의 생을 마감한다. 그 무덤에 찾아간 남자의 친구는 그에게 꽃다발을 주며 '네가 그녀를 깨어나게 했어' 라고 한다. 하아- 이게 무슨 말이야, 지금..... 이게 말이야, 소야... 미쳤어?
자막이 올라가는 걸 보면서 너무 불쾌해서 같이 본 친구에게 물었다. 나 이거 너무 기분 나쁜데, 너는 어때? 친구는 자신도 너무 기분이 나쁘다고 했다. 내 왼쪽 옆에는 여자사람이 혼자 와서 이 영화를 보고있었는데, 그 여자분께도 물어보고 싶었다. 이 영화 어떠셨어요? 라고. 난 진짜 너무 기분이 나빴으니까. 나 이 영화의 평을 굉장히 좋게만 들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싶어서 이 영화의 평을 검색해봤다. 하나같이 이 영화를 칭찬하고 있었다. 감동적이고 좋은 영화라더라...
'페도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는 [귀향]과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을 보았고, 두 편 다 괜찮게 보았다. 그래서 [그녀에게]를 보러 가는 것에 단 1초의 고민도 없었는데, 이 영화에서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나름의 사랑' 혹은 '사랑의 여러가지 방식'등, 뭐였어도, 내게는 불쾌함만이 와 남았다. 게다가,
연달아 봤던 이 영화, [마담 보바리]는 재미없었어.. -_-
마담 보바리 책 읽고 있었는데 주인공도 좀 안어울리고...여튼 재미도 없고....
새해 첫날 본 영화 두 편이 어쩜 다 이래....
어제는 마침 이 책을 다 읽었고, 일자산에 다녀오면서 주인공으로는 누가 어울릴까 계속 생각해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클라라의 이미지가 딱! 떠오르는 거다. 오, 클라라! 클라라가 보바리 부인에 잘 어울릴 것 같다. 아, 나는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나...그런데 뭐랄까, 클라라만한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영화 두 편은 별로였지만, 영화를 보러 가기 전, 다정한 이와 통화를 해서 서로의 목소리를 다정하게 들려주고 들었으므로 다행이다, 시작이 좋았어, 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영화를 다 보고 친구들을 만나러 갔다. 나를 포함해서 여자 다섯명이었다. 우리는 커다란, 그렇지만 특가로 싸게 나온 호텔방을 잡아두고는 술과 안주를 먹었다. 치킨에 피자에 연어 회까지.. 정말로 즐거운 시간이었는데, 내가 영화 [그녀에게]를 얘기하며 빡쳤고 거기에 연달아서 이 얘기 저 얘기 꼬리에 꼬리를 물고 했다. 사랑과 연애에 대한 얘기도, 페미니즘에 대한 얘기도, 이렇게 빡치는 영화 얘기도, 그리고 19금 얘기까지.. 이야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중간에는 흥에 겨워 런던에 있는 친구와 페이스타임 영상으로 서로에게 인사를 하기도 했다. 크- 좋구먼. 여기서 저 멀리 있는 사람과 얼굴을 보며 해피 뉴 이어! 할 수 있다니! 집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정말 신이 났다. 시작이 좋았다. 영화 두 편은 영 꽝이었지만, 아침에 다정한 목소리와 저녁에 이어진 술자리의 친구들, 시작이 좋았다고 말하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연휴동안 너무 먹는다며 남동생은 아차산 산행을 제안했고, 그래서 토요일에는 엄마와 남동생과 함께 아차산에도 다녀왔다. 새해 첫 산행이 아차산이라니, 좋구나, 했다. 시작이 좋았다.
2016년의 굵직한 계획도 세워두었으니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내가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새해 첫 출근에 상사의 엿같은 행동으로 빡이쳤지만, 아니야, 시작이 좋았으니 이쯤은 가볍게 무시하자, 하고 나를 다독인다.
2016년 첫 책으로 사고 싶은게 여러권이지만, 어디 한 번 안 사고 버텨보자, 고 다짐해본다. 룰루~ 라라라~
라고 썼는데 10:21 현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제기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라딘 머그가 나왔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가 머그 많아서 무시하고 싶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라에몽 머그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떡하지 내 조카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알라딘 도라에몽 머그 바로가기
그렇지만 해당도서에 내가 사고 싶은 책은 한 권도 없네. 제기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