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여자사람이 내게 그런 말을 했었다. 자신은 진실한 사랑을 찾고 있는데 접근해 오는 남자들은 어떻게 한 번 자볼까만 생각하는 것 같다고, 그게 눈에 보인다고. 그런 그녀에게 나는 꼭 그런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네가 대화가 통화는 진실한 사람을 원한다면 그 사람을 언젠가는 만나게 될 것이고, 그런 사람은 분명히 있다, 라고 말했다. 그런 참에 만난 《죽어가는 짐승》의 '케페시' 교수는 딱 재수없는 스타일이었다. 생각하는 거라곤 오로지 '이 여자와 어떻게 섹스할까' 뿐이니까.



아이는 생각해, 나는 이 사람에게 내가 누구인지 말하고 있다고. 이 사람은 내가 누구인지 관심을 갖고 있다고. 그건 사실이지만, 난 아이와 씹을 하고 싶어서 그애가 어떤 아이인지 호기심을 느끼는 거야. 나한테는 카프카와 벨라스케스에 대한 이런 큰 관심 같은 건 필요하지 않아. 아이와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생각하고 있어, 내가 얼마나 더 계속 이래야 할까? 세 시간? 네 시간? 여덟 시간까지 가야 할까? 베일 씌우기에 들어간 지 이십 분인데 벌써 궁금해하고 있어, 이런 것들이 아이의 젖퉁이와 아이의 피부와 아이의 몸가짐과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을까? 남녀가 밀고 당기는 방식에 관한 프랑스식 기술에 나는 아무런 관심이 없어. 야만적인 강한 충동에만 관심이 있지. (……중략) 나는 이 아이와 씹을 하고 싶고, 그래, 그래서 어떤 베일 씌우기를 견뎌야 하지만, 그것은 목적을 위한 수단이야. 이 가운데 얼마나 교활한 것일까? 나는 그 모두가 교활하다고 생각하는 쪽이야. (p.28-29)

















그가 그토록 씹을 하기를 원하는 아이, '콘수엘라'는 이제 고작 스물네 살이다. 그녀는 가장 아름다운 젖가슴을 가지고 있지만 그걸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잘 모르며, 그래서 그녀는 카프카를, 벨라스케스를 소개한 노교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수단'일 뿐이었는데. 뭐, 어쨌든 그는 그토록 원하는 그녀와 연인 사이가 된다. 연인 사이가 되어 서투른 그녀를 가르치려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녀에게 집착해버리고 만다. 이토록 아름답고 어린 여자에게. 상상할 수 없었던 행동, 거절했어야 했던 행위까지 해내면서 그는 자신이 얼마나 그녀에게 집착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데, 와, 여기까지 읽는데 정말 힘들더라. 그가 그저 여자를 성적대상으로만 보는 것 같아서 힘든 게 아니라(그건 짜증스럽다), 그에게 섹스가 얼마나 중요한지, 그래서 섹스전과 섹스후를 계속 언급하기 때문에 힘들었다. 노골적인 유혹과 집착을 읽노라니 정신이 사나워지는 거다. 



아, 나는 그와 어떻게 처음에 키스하게 됐지? 부터 시작해서 육체적인 기억들이 진짜 쓰나미로 몰려들기 때문에 힘들었다. 어휴, 진짜 정신 사나워서, 지금 하던 모든 걸 때려치고 그저 야한 생각이나 하고 싶어지는 거다. 그래서 수시로 책장을 덮어야 했다. 자꾸만 불쑥불쑥 기억들이 튀어나와서 도무지 들어갈 생각을 안해. 이 기억이 여기있지, 이 기억은 여기있단다, 이 때 너는 어떤 느낌이었지? 아주 그냥 이것들이 나를 온통 휘어잡고 있더라. 


그래서 힘들었다. 이 책이 야해서가 아니라, 나의 야한 기억들을 불러 일으켜서. 아 정신 사나워. 다 읽어서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오래전에 '마이클 더글라스'와 결혼한 '캐서린 제타존스'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그녀는 자신은 항상 나이가 많은 남자에게 끌린다고 했다. 그래서 마이클 더글라스 전에 사귀었던 연인도 나이차이 많이 나는 남자였다고. 매력적인 콘수엘라는 스물네살, 케페시 교수는 예순두 살일 때 처음 만나 연인이 된다. 나이차이도 보통 나이차이가 아닌데, 케페시 교수는 이런 말을 한다.



자, 대부분의 사람들이 엄청난 나이 차에 경악하는데, 콘수엘라는 바로 그 점에 끌린 거야. 사람들 눈에는 그저 야릇한 에로티시즘으로만 보여. 또 그것을 혐오스러운 것, 혐오스러운 소극으로 받아들이지. 그러나 내가도달한 나이는 콘수엘라에게 커다란 의미가 있어. 노신사와 사귀는 여자아이들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러는 게 아니야-나이에 끌리는 것이고, 나이 때문에 그러는 거야. 왜냐고? 콘수엘라의 경우 그건 엄청난 나이 차 때문에 자신이 굴복하는 것을 스스로 허용할 수 있어서인 듯해. 내 나이와 내 지위가 아이에게, 합리적으로, 항복해도 좋다는 허가장을 주고, 그러면 침대에서 항복하는 게 불쾌한 감각이 아닌 거야. 동시에, 나이가 훨씬, 훨씬 많은 남자한테 친밀한 방식으로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이런 젊은 여자는 젊은 남자와 성적인 수작을 할 때는 얻을 수 없는 권위를 갖게 돼. 굴복의 쾌락과 더불어 정복의 쾌락을 누리는 거지. (p.46-47)



이 말이 어디까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대의 나이 때문에 끌린다는 게 어떤건지 알 것도 같다. 나만해도 이십대 어린 시절에는, 나보다 나이가 훌쩍 많은 남자어른이 좋았다. 그가 어른이라는 사실이 좋았고, 그렇게 어른스럽게 내가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을 받아줄 것 같아서 좋았다. 기대도 되고 의지해도 된다는 생각을 그때는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나이가 나보다 훌쩍 많다고 해서 어른인 것도 아니고, 또 그렇게 훌쩍 많다고 해서 내가 의지할만한 대상이 되란 법도 없다. 이제는 나이랑 전혀 상관없이 어른이 되기도 하고 또 그렇지 않기도 하다는 걸 알고 있다. 경험이 많은 만큼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그만큼 인격이 쌓이겠지, 하는 건 어마어마한 착각이다. 예순두 살이나 먹은 케페시 교수도 젊은 여자의 젖가슴에 반해서는 이런 몸은 환상적이라고 감탄하며 어떻게든 그녀를 침대로 끌고갈 생각만 하니까. 뭐, 결론이야 어찌됐든간에 말이다. 



끝까지 읽노라니, 이 책은 내가 일전에 보았던 영화와는 달랐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기억하고 있는 영화의 내용과는 달랐다. 제길 .. 뭐, 나도 늙어가니까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노년을 상상할 수 있어? 물론 못하겠지. 나는 하지 않았어. 할 수 없었어. 그게 어떤 건지 전혀 몰랐어. 잘못된 이미지조차 없었어- 아무런 이미지가 없었어. 사실 누구도 다른 것을 원하지 않아. 어쩔 수 없기 전까지는 아무도 이 가운데 어떤 것과도 직면하고 싶어하지 않아. 이 모든 게 나중에 어떻게 될까? 여기서는 둔감함이 관례야. (p.49)




콘수엘라는, 내 기억에서처럼 유방암에 걸렸다. 그리고 유방암에 걸린 채로 케페시 교수를 찾는다. 그녀와 그가 헤어진 후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돌이켜보았을 때 자신의 몸을 그토록 좋아하고 아껴줬던 사람, 아름답게 보아준 사람은 케페시 교수였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물론 케페시 교수는 그녀의 몸을 정말 좋아하고 정말 아름답게 느껴 그토록 찬탄해마지 않았지만, 콘수엘라가 암에 걸려 자신의 과거 연애사를 돌이켜보았을 때 가장 몸에 대한 칭찬을 많이 했던 남자를 떠올린만큼, 나 역시 사랑하는 사람에게 끝도없이 칭찬에 칭찬을 퍼부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와 헤어지지 않는다면 그토록 자신의 몸을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하는 것이니 그건 그대로 좋고, 설사 헤어진다면 나중에 오랜 시간이 흘러 돌이켜 봤을 때, 그녀는 내 몸을 가장 많이 사랑해준 사람이지, 하고 떠올릴 수 있을테니. 




콘수엘라의 몸이 절대적으로 아름다웠다면, 케페시 교수가 아닌 다른 남자들도 폭풍같은 칭찬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콘수엘라의 몸은, 그녀에게 흠뻑, 흐으으으으음뻑 빠진 케페시 교수에게야말로 참을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존재했을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간에, 아주 그냥 눅진눅진한 기억들 때문에 읽기 힘든 독서였다. 이토록 얇은 책 한 권을 읽는데 온갖 기억이 쏟아져나와 진짜 힘들었다.



책은 진짜 내용을 읽기전까지는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알 수가 없다니까...

내가 비록 그런 건 알 수 없겠지만, 어쨌든 오늘 점심 메뉴는 안다. 

이제, 먹으러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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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0-22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5-10-22 16:36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힝 ㅜㅜ

낭만인생 2015-10-22 14: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유한 늙은 왕과 가난한 젊은 청년이 영혼을 바꾸고 서로 후회하고 제 자리로 돌아가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젊은이는 노년의 명예와 부, 성숙함을 탐하고, 노인은 젊은이의 젊음과 아직 꾸며지지 않는 삶의 생체기를 그리워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나이가 들었는가 봅니다. 젊은이들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다락방 2015-10-22 16:37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 점점 더 나이가 들어가는 걸 실감해요. 올해 처음 새치가 생겼고요(우울 ㅠㅠ), 말씀하신 것처럼 젊음이 부러워요. 젊은 사람들을 보면 그냥 막 예쁘고 부럽고 그러더라고요. 그렇게 젊은이들이 예뻐보이고 부럽고 그런건 내가 늙어서겠지, 하고 혼자 생각하곤 했어요. 매일매일 늙어가고 있어요, 낭만인생님...

레와 2015-10-22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확하게 기억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위에 올려준 책내용과는 아주 다른 영화로 기억하고 있어요.


흠.. 필립로스 전작인 [에브리맨]과 [울분]과는 아주 다른 책인가봐요? .. ㅎㅎ;

다락방 2015-10-22 16:40   좋아요 0 | URL
책 읽다보니 얼핏얼핏 장면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마지막이 좀 내가 기억하는 것과 달랐어요. 그래서 내가 영화를 잘못 기억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아니면 영화는 다르게 만들어졌나 싶기도 하고...

에브리맨, 울분과는 다른 이야기지만, 그래도 같은 지점이 있어요. 젊음과 늙음에 대해 끊임없이 얘기하더라고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가 없었기 때문에 아버지를 증오하고 그러나 아버지를 의지하고 싶은 아들에 대한 얘기 라든가, 늙음과 젊음에 대한 끊임없는 이야기 같은 건 어쩐지 울분이나 에브리맨하고 맞닿아 있는 것도 같아요.

단발머리 2015-10-22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을 읽다 여러 번 덮은 사람으로서, 정말 이 책은 읽기 힘든 책입니다.
이 귀한 여정을 마치신 다락방님께 박수를...
아직도 반이나 남아있는 나에게는 용기를... 좀 주세요.

다락방 2015-10-27 12:22   좋아요 0 | URL
정말 읽기 힘든책이죠. 에로틱한 기억을 불러내는 것도 그렇지만 교수가 여제자를 보는 시선이 처음에 되게 짜증나더라고요. 지금쯤은 다 읽으셨나요, 단발머리님? ㅜㅜ

moonnight 2015-10-22 2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포트노이의 불평도 읽기 힘들었어요-_-; 필립 로스씨 무섭-_-;;;;;

다락방 2015-10-27 12:22   좋아요 0 | URL
저도 포트노이의 불평 읽기 되게 힘들었어요. 가까스로 다 읽었는데 읽고나서 남는 게 없어요. 읽는다는 행위에만 집중한 것 같아요. 그래도 이 책은 포트노이의 불평 보다는 나아요...휴....

에이바 2015-10-23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 의미로... 다니엘 페나크의 몸의 일기도 좋아요

다락방 2015-10-27 12:23   좋아요 0 | URL
크- 그 책 좋다는 말 들었어요. 보관함에 슝- 넣을게요.
그런데 왜 `다른 의미`일까요? 다른 의미란 어떤 의미일까요? 궁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