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는 아버지가 개목걸이를 두른 개를 어루만지며 "너 참 기특하구나, 혼자서 이리 꿋꿋하게 살고 ‥‥‥"하며 말을 건네는 것이었습니다. '혼자서 살긴, 개목걸이가 있는 걸 보면 주인이 있다는 얘긴데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버지한테는 깊은 의미가 있는 말인지도 모르죠. 아니,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웃집 마당에 있는 개에게 먹이를 줄 때는, 개집이 멀리 있는 관계로 울타리 밖에서 개 사료를 던져줍니다. 던지는 폼이나 강도로 봐서는 공격이나 학대를 하려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지만 아버지는 남의 생각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그리고 '개의 코가 촉촉이 젖어 있는지의 여부는 건강의 척도'라면서 코가 바싹 마른 개를 보면 "얘야, 너 괜찮니?"하며 손가락에 침을 묻혀 개의 코에 발라줍니다. 옆에서 보면 본말이 전도된 건 아닌가 싶지만 그 역시 신경 쓰지 않습니다. (p.140)
예전에 아버지가 기공투어라는 것을 다녀온 뒤 호흡법을 가르쳐주겠다며 메모를 보면서 지도해주다가, 도중에 "아, 미안 미안! 이건 유체이탈하는 법이야"하고 멈춘 적이 있습니다. 여차 하면 공중에 둥둥 뜰 뻔했습니다. (p.25)
'이사카 고타로'를 나는 '따뜻한' 작가로 기억하고 있다. 결국은 뭉클-해지게 만드는 작가. 사실 내가 읽은 그의 작품이라고 해봤자 몇 개 없지만, 여튼 따뜻했다는 거다. 그래서 그의 산문집을 기대했다. 내가 평소 작가들의 에세이에 크게 관심은 없지만, 그래도 '이사카 고타로' 니까, 하면서 기대한 거다. '필립 클로델' 역시 그런 의미에서 기대한 작가였는데 필립 클로델과 이사카 고타로, 둘 중 무얼 먼저 살까 고민하다 그래, '이사카 고타로'다, 하고 먼저 샀는데,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어제 빡쳐가지고 충동적으로 필립 클로델의 에세이 급주문 들어갔다. 어떻게 또 한 권만 주문하겠는가, 몇 권 넣었더니 금세 6만원된다. 이제 6만원이면 다섯권 밖에 안돼...히융- 어쨌든
이사카 고타로의 책 《골든 슬럼버》에는, 이사카 고타로의 표현을 빌자면 '도망자'가 나오는데, 그때 나는 도망자의 아버지가 꽤 인상깊었더랬다. 아마 그 책을 읽은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성폭행범에게 명분이 있을 수는 없다고 아들에게 가르친, 그런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스컴을 통해 아들에게 도망치라 말한다. 아버지는 아들의 무죄를 믿고 있다.
그 장면들이 나로서는 꽤 따뜻했고, 마지막, 오래전의 여자친구가 차 안에 '그럴 줄 알았어' 라는 쪽지를 남겼을 때는 또르르 눈물까지 흘렀는데-사람이 사람을 신뢰한다는 건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이 산문집에는 그런 감정들이 전혀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에세이에서 소설 같은 감정을 기대하는 건 무리지만, 뭐랄까, 나는 그의 따뜻한 면면들이 드러날 거라 생각했던 거다. 그러나 그의 그런 면들 대신, 이 산문집에서는 그가 얼마나 소심하고 소극적인 사람인지만 알 수 있었다. 음.. 이사카 고타로는 앞으로 소설만 .. 읽는 걸로. 에세이까지 재미있게 쓰는 소설가란 흔치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필립 클로델 도 재미없으면 어쩌지?
위의 인용문이 이 책에서 내가 책 귀퉁이를 접은 유일한 두 부분인데, 그 두 부분 모두 아버지와의 일화다. 《골든 슬럼버》의 '아버지'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구나 싶다. 특히나 개의 코에 침을 발라주는 장면은 온 몸 가득 따뜻해진다. 저게 전부다. 이 산문집은 재미없다. 이긍-
토요일에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콘서트를 다녀왔다. 그가 콘서트에서 부른 첫 곡은, <이제 여기에서> 였는데, 크- 이 노래 가사가 이렇게 구구절절 좋았던가! 게다가 가려져있던 무대에 막이 오르면서 건반을 치는 차세정의 모습이 보였을 때는, 아- 너무 좋아서 진짜 심장이 터질 뻔했다.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해! 나는 차세정을 사랑해! 꺅 >.< 하는 마음이 되었달까.
나는 여태 에피톤 프로젝트의 콘서트를 세 번 다녀왔다. 오늘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날까지 살면서 한 번도 나를 위해 건반을 치며 노래를 불러준 남자를 만나지 못했는데, 차세정은 그걸 세 번이나-시간으로 치자면 여섯시간이나- 해줬다. 물론 그건 오롯이 나만을 위한 것도 아니었고, 그걸 보고 듣자고 나는 거금을 들여 거기까지 갔지만(!!), 어쨌든 그랬다는 거다.
앵콜곡까지 포함해서 <눈을 뜨면>을 불러주지 않은게 진짜 몹시 아쉬웠지만, 대단히 매우 많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번 콘서트는 다른 어느때보다 더 내 감성을 건드렸다. 그게, 쓰벌, <이화동>을 부르는 바람에...하아- 난 내 이성의 끈을 놓아버리고 말았어...갑자기 몇 년전의 추억이 새록새록 방울방울 거렸던 거다. 2010년에 이 노래를 들으면서 청승을 떨었던 기억, 좋아했던 남자가 이민을 갔고, 마지막으로 그를 만나고 난후 다음날 이 노래를 들으며 무너질 뻔 했던 기억 같은게 갑자기 막 떠올라서... 하아- 그랬는데 갑자기 ... 차세정이 <오늘> 을 부르는 거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 너무 슬퍼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갑자기 폭풍 감성이 되어가지고 과거의 이별과 미래의 이별을 떠올리며 눈물이 그렁그렁 해진거다. 세정씨, 그러지마, 나를 이렇게 만들지 마, 내가 콘서트장에서 울게 하지마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엉엉 ㅠㅠ
오랜만이에요
그대 생각 이렇게 붙잡고 있는 게
그대 목소리가 생각나는 게
오늘따라 괜히 서글퍼지네요
술 한 잔 했어요
그대 보고 싶은 맘에 또 울컥했어요
초라해지는 내가 보기 싫어
내일부턴 뭐든지 할거에요
같은 방향을 가는 줄 알았죠
같은 미래를 꿈꾼 줄 알았죠
아니었나봐요
같은 시간에 있는 줄 알았죠
같은 공간에 있는 줄 알았죠
아니었나봐요
익숙함이 때론 괴로워요
잊어야 하는 게 두려워요
그댄 괜찮나요?
그대 결정에 후회없나요?
그대 결정에 자신있나요?
난 모르겠어요
내 목소리 그립진 않나요?
내가 보고 싶은 적 없나요?
나만 그런가요
나만 그런가요
나만 그런가요
그대 흔적에 나 치여 살아요
그대 흔적에 나 묻혀 살아요
나는 어떡하죠
나는 어떡하죠
나는 어떡하죠
그때 썼던 페이퍼를 먼댓글로 링크하려다가 다시 읽어보고 그러지 않기로 했다. 슬퍼...못하겠어...안돼....잉 ㅠㅠ
아, 에피톤 프로젝트의 콘서트에 손주희와 아진 그리고 선우정아가 게스트로 나왔었는데, 다들 노래를 잘하였지만, 진짜, 와,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선우정아 매력 쩐다. 장난 아님. 선우정아의 앨범을 한 번 들어보고 흐음, 나는 뭐 딱히, 했더랬는데, 다시 들어봐야겠다.
콘서트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간 나는 씻고나서 내 방안에 술상을 차렸다. 옷장안에 숨겨둔(응?) 와인 한 병을 꺼내 새로 땄다. 아이폰에 에피톤의 곡들만 한 곳에 모아놓았다. 안주로는 사과를 썰어 놓고, 책과 다이어리를 준비해 자리잡고 앉았다. 사실 책을 읽으면서 와인을 마실 생각이었지만, 책이 재미없기도 했고 완전 감성이 폭발하고 있어서 책은 준비했으되 한 장도 넘겨보질 않았다. 대신 길고도 긴- 일기를 썼고, 멍하게 내 감성을 즐겼다. 와인은 자꾸 비어갔고, 나는 노래들을 흥얼거렸다. 아이폰 스피커로 듣는 노래는 병맛이라 블루투스로 연결해 미니컴포넌트로 들었다. 방 안에 조용하게 에피톤의 노래가 퍼지고, 와인 향기가 차오르고, 그 향기, 그 공기, 그 소리 안에 내가 있었다. 감상에 푹 젖어 눅진해진 내가. 크- 생각을 하고, 상상을 하고, 노래를 따라 부르고, 나는 취했다. 좋다고 히죽대고 웃다가 또 슬퍼서 울고 싶어지기도 했다. 한마디로 술취한 미친년이었다, 그 날밤의 나는. 그렇지만 나쁘지 않았다.
포인트로 신청해둔 수분 크림이 도착해있다고 문자메세지가 왔으니, 백화점에 들러 화장품을 찾아가야겠다. 와인도 좀 사다 또 쟁여놔야지. 아, 그리고 금요일의 족발이다. 드디어 먹었다!! 매운족발과 그냥 족발. 아..사진 보니까 또 먹고 싶어 ㅠㅠ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노을'의 <붙잡고도>를 반복 재생시켰다. 그리고 걸으면서 또 따라 불렀다. 붙잡고도 싶었지만 나도 결국엔 안될걸 알기에~ 하는데 또 눙무리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헤어지자고 너무 힘들다고
더 이상 버틸 자신이 없다고 미안하다고
잘 지내라고 아프지 말라고
나보다 더 좋은 여자를 만나서 행복하라고
그리고 나서 나를 두고 돌아서면서
정말로 날 사랑했다고 그렇다고
붙잡고도 싶었지만
나도 결국엔 안될걸 알기에
잡고있던 손을 놓아주고 말았어
이젠 보낼게 My love good bye
good bye good bye
미안하다고 용서해달라고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자기를 미워하라고
그렇게 모든 너의 꿈이 무너져가고
사랑만으로는 모자란 걸 느꼈다고
붙잡고도 싶었지만
나도 결국엔 안 될걸 알기에
잡고 있던 손을 놓아주고 말았어
이젠 보낼게 My love good bye
너무 보고 싶을거란 말도 너에게 해주고 싶지만
끝이라도 예쁘게 남기고 싶었어
이젠 보낼게 My love good bye
good bye good bye
이별은 씨양, 조낸 힘든것 같다. 아니, 같긴 뭘 같어, 힘들다. 내 느낌인데 뭘 같어야 같기가. 힘들다. 힘든 거다, 이별은. 그게 힘들지 않을 리가 없잖아. 언젠가는 잡은 손을 놓아야겠지, 그 손을 놓기는 얼마나 힘들까. 가네시로 가즈키는 정말 좋아하는 사람의 손을 절대 놓으면 안된다고 했는데. 그렇지 못해서 자기는 28년간 후회한다고, 그의 소설 등장인물이, 그렇게 말했었는데...
매운 족발 먹고싶다. 소주로 내 몸을 적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