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남편의 이탈리아 출장길에 동행한다. 그러나 그곳에 도착해서 남편은 바쁘고 자신은 혼자 관광을 한다. 남편은 여자와 놀아주기에 지나치게 바쁘고 피곤하다. 그러다 여자는 열아홉의 청년을 마주치게 되는데, 이런 상황 설정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와 비슷하다. 뭐, 사랑통역~ 에서 스칼렛 요한슨은 열아홉 청년대신 나이 많은 빌 머레이 아저씨를 만났지만. 어쨌든 두 여자 모두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남자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자신을 여기까지 오게 했던 남편이 아니라.


영화속 여자는 처음, 당연히 이 열아홉 청년으로부터 도망친다. 넌 이게 뭐하는 짓이냐, 너 원래 이렇게 여자를 유혹하는 게 취미냐, 라는 식으로 모질게 말을 하고 그의 키스를 뒤로한 채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간다. 그러나 남편은 여자에게 시선을 잘 두질 않고, 진지하고, 재미없고, 피곤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남편과 잘 지내보려고 한다.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청년에 대해 생각하면서, 오랜만에 남편과 손을 잡고 이탈리아 거리를 걷고, 밥을 먹고, 사진을 찍고. 늘 그랬듯이 일상을 보낸다.


사람은 속에 있는 말을 다 하고 살 수가 없다. 그러므로 말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상대는 알 수가 없다. 설사 말했다고 해도 그 말이 반드시 진실 혹은 진심이란 법도 없다. 우리는 아주 많은 생각들을 혼자서만 간직한 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상대에게 웃고 떠들며 이야기할 수도 있다. 거짓된 눈물을 흘릴 수도 있고 행복조차 꾸밀 수 있다. 남편은 모르겠지만, 여자는, 남편과 손을 잡고 걸으면서,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나누면서, 다른 남자를 떠올리고 있었다. 이미 그렇게 된 이상 게임 끝이다. 순간순간이 즐거워야 한다는 이 젊은이를, 그녀가 어떻게 잊을 것인가. 그간 남편의 문제점, 혹은 약점에 대해 크게 인식하지 않았던 여자지만, 이 즐겁게 사는 젊은이를 만나고 난 후로 남편의 재미없음과 진중함이 크게 눈에 띈다. 그래서 여자는, 청년의 집 앞으로 찾아가 노크한다. 진지해질 필요를 버리고서.



뭐 특별할 것 없는 뻔한 영화다. 딱히 재미있지도 않고, 생각했던 그대로 흘러간다. 청년은 여자에게 '아름답고 섹시하다'고 말하지만, 내게는 모든 캐릭터들이 딱히 매력적이질 않았다. 남편의 상반신이 조금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 건, 아마도 와이셔츠 탓이겠지? (응?) 그런데 이 청년과 여자 사이에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다. 둘이 처음 만나 함께 밥을 먹고난 후,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고 레스토랑에서 도망친 것. 경찰이 쫓아와요! 라면서 마구 도망치며 그는 말한다. 돈이 없어서 음식값을 못냈다고. 그래서 이탈리아에서 여자는 남자의 손을 잡고 도망친다. 한참을 도망친 후에야 청년은 숨을 고르면서 '사실은 당신 화장실 갔을 때 계산했어요' 라고 말한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나에게도 정확히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 장면이 너무 특별했다. 차이가 있다면 내쪽의 친구는 실제로 계산을 했고, 영화속 청년은 아마도 실제로 돈을 안낸 것 같다는 것? 여튼 나한테 조용히 나가서 도망치자고 했던 친구에게 이 장면에 대해 얘기하니 다음엔 밥먹고 도망치게 달리기 연습을 해두라고 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돈 내고 걸어나가자고. 크- 난 참 바람직한 삶을 살고 있구나. 멋져. 떳떳해. 정정당당 다락방!! (  ")



영화속 청년은 여자에게 말한다. 


난 당신을 만나면 진정이 안돼요.


여자는 청년에게 대꾸한다.


난 너를 만나면 진정이 돼.







하아- 진정 안되는 청년이든  진정 되는 여자든, 도무지 이들은 일상을 어떻게 버텨내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이런 강렬한 만남이 있는데, 일상을 어떻게 유지하지? 다 망가지잖아? 다 뒤죽박죽되잖아? 


여자는 티베트에 함께 가자는 청년의 제안에 남편에게 고백한다. 나 사실은 다른 남자 만난다고. 여자는 남편이 자신의 달라진 점을 눈치채주길 바랐다. 남편이 아니라 다른 남자를 만나는 자신을 눈치 채주기를. 그러나 남편은 여자를 보지 않았다. 


You don't see me.


여자는 그렇게 울부짖고, 남편에게 말한다. 나는 그와 떠날거야. 그러자 남편은 다시 자신의 나라로 돌아갈 그녀몫의 비행기 티켓을 내밀며 말한다. 그게 너의 마음이 편해지는 길이라면 그렇게 해. 그랑 떠나. 다녀와. 다만, 이 티켓을 줄테니 그걸 가지고 우리가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날 돌아와. 


다른 남자를 만난다고, 그와 떠난다고 말하는 여자에게 '그렇게 한 후 돌아와' 라고 말하는 남자의 마음은 어떤걸까? 이건 이런 방식의 '사랑'인걸까? 이게 그가 누군가를 사랑하는 방법인걸까? 여자는 남편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자신을 보지 않는다, 자신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라고 말하지만 남편은 자기 '나름대로의' 사랑을 하고 있었던 걸까?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고 있는걸까? 돌아오라는 건, 사랑으로 인한 걸까? 너가 원한다면 원하는 대로 해, 다만 돌아와. 이건, 사랑에서 근거한 것인가? 아니면 가정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유지해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온 것인가? 내가 고민해봤자 답을 내릴 수가 없다. 그저 나는 각자에게 나름의 사랑 방식이 있으니, 어쩌면 남편은 자기 나름대로 아내를 사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해보았다. 재미없고 진중하지만, 아무것도 아내에게 궁금한 게 없지만, 부부 사이에서 별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없었지만, 그는 사랑했던 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재미없고 진중한 이 남편도, 다른 여자를 만난다면 달라졌을 지도 모른다. 많이 웃고 많이 이야기 나누고 많이 궁금해했을 런지도 모른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해도, 다른 여자를 만난다면 지금과는 아주 많이 다른 반응이 나올 수도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남편 역시 순간순간이 즐거울 수 있다는 것을 다른 여자로부터 얻을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물론, 그런 기회가 없을 수도 있고. 그에게 그저 삶은 이렇듯 재미없고 진중하게 흘러가는 것이 맞는지도..


영화의 마지막 즈음, 누군가 부르는 노랫소리가 들린다. 이런 가사였다.


혼자이던 그때 내 마음은 가벼웠지

다시 혼자로 돌아가고 싶다


혼자이던 그때 내 주머니는 무거웠지

다시 혼자로 돌아가고 싶다


이 가사는 영화의 결말을 암시하고 있었고, 여자는 내가 생각한 대로 행동했다. 얼마전에 읽은 '파비오 볼로'의 《아침의 첫햇살》의 결말도 이러했다.


















어제는 오후무렵부터 외로웠다. 외롭다는 감정은 좀처럼 나에게 잘 찾아들지 않는 감정인데 갑자기 폭풍처럼 밀려와 당황스러웠다. 뭘 어떻게 할지 몰라 원인을 분석하고 싶었다. 왜 외롭지? 왜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이것저것 이유를 생각해보았지만 좀처럼 뚜렷한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퇴근을 하고 강남역까지 걷자, 싶었다. 이 기분으로는 그냥 집에 갈 수가 없을 것 같아서. 그러나 얼마 걷지 않았는데 걷기가 답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나는 p 에게 급한 마음으로 전화를 걸었다. 퇴근 했어? 이제 하려고. 소주 한 잔 할래? 뜨끈한 국물에 그렇게 할까? 그래서 p 와 나는 부랴부랴 강남역에서 만나 뼈해장국을 앞에 두고 소주를 마셨다. 나는 p 에게 고맙다고 얘기했다. 나와줘서 고맙다고, 나 오늘은 정말 소주를 마시고 싶었다고. p 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가는 길, 마침 집에 도착하는 시간이 남동생과 비슷하겠길래, 남동생과 나는 집에서 맥주를 마시기로 쇼부를 치고 그렇게 했다. 방 안의 불을 끄고 잠들기 전에는 기분이 한결 나아져 있었다. 


그런데 악몽을 꿨다. 악몽이라기 보다는 막장 꿈이라고 하는 게 나을텐데. 꿈에서 어떤 소녀가 차에 치어 죽었는데 장례식장에 모델 같은 여자가 찾아왔다. 아주 키가 크고 멋진 여자였는데 저 소녀는 자기 딸이라는 거다. 그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나는 소녀의 엄마에게 이게 어찌된 일이냐 묻자 여러명의 자식을 둔 소녀의 엄마는 잽싸게 신발을 신고 도망쳤다. 그녀는 굉장히 파워가 센 여자였는데, 주변 모두를 휘두르는 사람이었고, 나는 그래서 어찌된거냐 따질 때 두려웠다. 나를 왕따 만들까봐. 그러나 왕따에 대한 두려움보다 소녀의 출생에 대한 진실을 밝히는 게 더 우선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겁나면서도 물었던 것. 나는 그 키 큰 모델녀의 말이 사실이란 걸 깨닫고 소녀에게 이 진실을 밝혀줘야 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렇지만 소녀는 이미 시체..아, 너무 속상해서 그 시체를 흔들며 울부짖었다. 소녀야, 너의 친엄마는 네가 알던 그 엄마가 아니야, 라고. 그러자 죽어 있던 소녀의 시체에서 영혼이 스르륵 빠져나오며 내게 말을 걸었다. 그럼 누가 친엄마죠? 라고. 나는 방금 나간 모델녀라고 답하며, 그런데 너는 지금 힘이 없으니 내가 가서 데리고 올게, 방금까지 여기 있었는데, 하며 그녀를 찾으러 다다다닥 뛰어 나갔다...가 깼다. 난 막장 드라마도 잘 안보는데 왜 이런 막장 꿈을??




여튼, 점심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oonnight 2014-11-13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꿈은 정말로 드라마틱해요. +_+;;;;; 저는 최근에 한국시리즈 보러 가야 하는데 제가 표를 안 가지고 와서 집에 표 찾으러 가는 꿈을 꿨어요. 택시는 없고 버스도 안 오고 막 뛰어가는데 사자가 길 막고 있는 그런 꿈이었어요. 네. 사자입니다. -_-;;;;

순간순간이 즐거워야 한다는 열아홉살 짜리는 도저히 감당안 될 거 같은데요. -_- 일찌감치 도망가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하는 재미없는 인간입니다. (_ _);;;;

다락방 2014-11-14 09:20   좋아요 0 | URL
사자라뇨, 문나잇님. 뭔가 엄청난데요? 분명 일상적인 꿈인듯 한데 사자라뇨. 그건 다르잖아요! 로또 사셨습니까. 우앙- 사자라뇨!! 좋다. 저 사자 좋아해요. 하핫

저도 십구세 청년 감당할 자신은 없지만 며칠간 같이 지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

꼬마요정 2014-11-15 17: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저는 공주가 되어 납치된 이집트 왕자를 구하러 가는 꿈을 꾸었더랬죠. ㅋㅋ 커다란 배에 왕자가 있는데 배 밑에 구멍을 뚫고(엉?) 들어가서 왕자를 구하는데.. 배는 결코 가라앉지 않더라구요.. 왕자를 구했는데 갑자기 장면이 전환되어 제가 사는 집 내리막길에서 둘이 썰매를 타고 있었죠.. 일어나서 한참을 어이가 없어서..^^

저 내일 홍대에 프란세시냐 먹으러 갑니다요~ 서울에 지인 결혼식이 있어 가는데 간 길에 들르려구요~ 혹시 여름에 어떤 사람이 다락방님께 마카오에 프란세시냐 파는 데 어딘지 아느냐는 질문 하지 않던가요? ㅎㅎ

위의 영화.. 적어도 사강의 브람스를 좋아하시나요의 결말보다는 마음이 홀가분할 것 같은데요~^^

다락방 2014-11-17 00:27   좋아요 0 | URL
이집트 왕자는 잘생겼던가요, 꼬마요정님? 현빈처럼 생겼나요? 현빈은 동양의 왕자니까 이집트 왕자랑은 거리가 먼가...이집트 왕자면 부자겠네요? ㅋㅋㅋㅋ 이런 속물적인 질문 ㅋㅋㅋㅋ

오, 꼬마요정님. 여름에 마카오 프란세시냐 질문 받고 제가 홍대를 알려드린 적이 있었는데, 그분이 꼬마요정님의 지인 분이었던 겁니까? 하하. 지금쯤이면 드셨을 것 같은데 어떻던가요? 꼬마요정님 마음에 들었나요? 전 거기서 와인하고 닭하고 아주 배터지게 먹고 취해가지고 까페 꼼마가서 책도 막 지르고 그랬어요. 아하하하하.

꼬마요정 2014-11-18 18: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집트 왕자 얼굴은.. 안 나왔어요 ㅎㅎㅎ 여름에 마카오.. 신랑이었답니다. 제가 다락방님 덕분에 프란세시냐를 알게 되어 신랑한테 마카오가면 꼭 먹자고 했는데, 신랑이 검색해서 다락방님을 찾아낸거죠 ㅎㅎ 나중에 알고 깜짝 놀랐답니다.^^

가르쳐주신 곳 일요일에 갔다 왔는데, 너무 맛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