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지막 강의
랜디 포시.제프리 재슬로 지음, 심은우 옮김 / 살림 / 2008년 6월
평점 :
어제 친구와 매운족발을 먹으러 갔다. 우리는 매운족발과 보쌈이 절반씩 나오는 메뉴를 시켜놓고서는 좋다고 건배를 했다. 그런데 몇 점 먹다보니 상추가 없다는 게 무척 안타까운거다. 보통 족발이면 상추쌈은 기본으로 주는데, 이건 매운족발과 보쌍이라 그런지 보쌈을 싸먹을 김치를 주었고 새우젓과 마늘, 쌈장을 준 것이다.
상추 있으면 더 좋겠네, 보쌈싸먹게.
그러게.
보쌈이라 안준건가?
그런것 같아.
달라고해볼까?
그런뒤에 나는 벨을 눌러 종업원에게 혹시 상추를 좀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종업원은 흔쾌히 알겠다며 상추를 가져다주었고, 그래서 나는 보쌈을 상추에 싸먹을 수도 있게 되었다.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어제 '랜디 포시'의 《마지막 강의》란 책을 읽었는데, 거기에서 랜디 포시가 그런 말을 하거든. 안될거라고 혼자 생각하지말고 무조건 물어보라고. 지금과 같은 경우에 써먹는 거지. 보쌈엔 상추를 안 줄거라고 생각해서 가만 있으면 우린 상추를 먹을 수 없었을테지만 물어보니까 상추를 먹을 수 있잖아.
그랬다. 랜디 포시는 혼자서 안되겠지, 안될거야,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가서 부딪치고 물어보는 사람이었다.
아버지의 마지막 디즈니월드 여행 때, 그와 나는 네 살이었던 딜런과 함께 모노레일을 기다리고 있었다. 딜런은 열차의 앞쪽, 멋있게 생긴 원추형 머리 부분에 운전사와 함께 앉고 싶어 했다. 나의 놀이공원 애호가 아버지도 대단한 스릴을 느낄 것이라며 딜런에게 동의했다.
"하지만 일반 관객들은 거기에 앉지 못한다는구나." 그가 말했다.
"흐음." 내가 나섰다. "사실 말이에요 아버지, 이매지니어를 해보니까, 이런 일에는 요령이 필요하더군요. 한번 보시겠어요?"
그는 물론이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나는 미소 짓고 있는 디즈니 모노레일 안내원에게 다가가 말했다. "실례합니다. 우리 세 명이 첫 번째 칸에 앉을 수 있도록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손님." 안내원이 말했다. 그는 게이트를 열었고, 우리는 운전석 옆에 자리를 잡았다. 내 인생에서 아버지가 이렇게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본 건 그때가 유일했다. 우리가 매직 킹덤을 향해 속력을 내고 있을 때 내가 말했다. "요령이 있다고만 했지, 어려운 요령이라고 말한 적은 없어요."
가끔씩, 당신은 그저 물어보기만 하면 된다. (p.242-243)
모노레일의 운전석 옆에 앉을 수 있었던 것이 랜디 포시가 '물어봤기' 때문이듯, 그는 물어보는 데 익숙한 사람이라 모든 일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는데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책 전반에 걸쳐 그의 말들은 버릴 게 별로 없다(물론 고개를 갸웃했던 부분도 있었지만 어쨌든 넘어가고). 췌장암 선고를 받고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으니 살아있는 동안 사는것처럼 즐겁게 살자는 그의 모토는 당연히 본받을만 하다. 암이란 사실을 알기 전에도 그는 인생을 즐겁게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이니, 그의 이런 태도가 그가 암을 앓는 환자이면서도 우울증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줬을거라 믿는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자식들에게 전하기 위해 이것저것 생각해보고 시도해내는 책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눈물이 고이기도 한다. 그는 분명 자식들에게 좋은 아버지로 기억되거나 떠올려질 것이라 확신한다. 게다가 그는 동료로서도 친구로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본받을 만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창의적인 생각을 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시도를 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도우려고 하는 그의 자세는 '잘 사는 법'의 롤모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어쩐지 약간 찜찜해진다. 이렇게 좋은 생각, 좋은 자세를 가지고 앞으로 쭉쭉 나아가는 사람인데, 그렇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왜 이 책을 '좋다'고 말할 수 없는걸까. 왜그럴까.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의 병을 인정하며 남아있는 삶을 즐기기 위해 노력하는 이사람, 왜 이 사람을 나는 '무조건 좋다'고 말할 수가 없는걸까.
이 책은 자기계발서의 느낌이 강하다. 어떻게 해야 인생을 즐겁고 보람있게 살 수 있는지,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자신이 직접 경험하고 느낀바를 써서 얘기해주려는 자기계발서. 실제로 이 책을 읽는다면 많은 사람들의 그의 태도와 생각에 매혹되어 자신의 삶에 있어서 조언으로 삼을거란 생각이 들었으니까. 실용적인 자기계발서의 느낌인데, 어떻게 이 느낌을 잘 설명할 수 있을까를 곰곰 생각해보다가 찾았다. 정확히 어느 부분에서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이 책이 내게 주는 느낌은 '착하고 예의바른 새누리당 지지자'의 느낌인거다. 이 사람은 좋은 사람이지만 나와 함께 가기에는 무리가 있고 불편할 것 같은 느낌을 주는거다. 나는 새누리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느낌이 자꾸 나에게 삐걱대는듯 느껴지는 거다. 어디에서 그런걸 느꼈냐, 라고 말하면 어느 부분이라고 콕 짚어 얘기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인상이 그렇다는거다. 응, 저기에 저런 사람이 저렇게 최선을 다해 잘 살려고 노력하고 있구나, 라고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내가 즐겨 만나며 우정을 나눌 사람과는 좀 거리가 먼 것 같은 느낌.
책을 다 읽어갈수록 나는 랜디 포시가 기적처럼 살아있기를 바랐다. 그는 6개월정도를 살 수 있을거라 닥터로부터 들었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 여전히 잘 살고있다, 로 책이 끝났으면 좋겠다고. 그러나 옮긴이의 말까지 다 읽고나면 이런 문장을 읽게 된다.
*2008년 7월 25일 새벽, 랜디 포시 교수는 많은 이들의 간절한 기원에도 불구하고 버지니아 주에 있는 자택에서 생을 마감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편집자
아.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책날개에서 그가 이미 이세상 사람이 아님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면서 그의 생존을 바랐던 것이다.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기적을 바랐고, 생을 마감했다는 구절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던 것이다. 내가 그를 친구로 삼고 싶어하든 아니든, 그는 이미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아무쪼록 그의 아이들이 자라서 이 책을 읽고 아버지가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의 나라는 독자도, 그에 대한 친근감이나 호오와는 별개로 그로부터 어떤 것들을 배웠으니까.
그나저나 족발과 보쌈을 먹으면서 읽은 책을 인용할 수 있는 나란 인간은 역시 좀 멋진 인간인 것이다.
정직함은 도덕적으로만 옳은 것이 아니라 효율적이기도 한 것이다. 모두들 진실을 말하는 세상에 산다면 재확인하느라 허비하는 많은 시간을 줄일 수 있다. (p.223)
장벽에는 다 이유가 있다. 장벽은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절실하게 원하는지 깨달을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p.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