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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은 딸이다 ㅣ 애거사 크리스티 스페셜 컬렉션 2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몇 년전, 엄마가 내가 행복해지는 걸 방해하려고 한다고 생각했던 때가 떠올랐다. 그게 분해서, 그게 분하고 속상해서 내 방에 틀어박혀 반나절 내내 울기만 했던 그때가. 시간이 훨씬 지나고나서야 '엄마 때문에' 했던 선택이 결국은 내 자신에게 최선이었음을 인정하게 됐었다. 종국엔 그때 나를 막아줘서 감사한 마음이 들었었지. 나를 위해서도 엄마가 나의 선택을 가로막고 나선건 무척이나 다행스런 일이었지만, 그때 내 말대로 했다면 내가 지금 굉장히 우울증에 걸려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만, 그렇지만 엄마의 의도는 순수했던걸까, 하는 의문은 든다. 정말 '딸의 행복'을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엄마의 행복'을 위해서였을까. 여기에 대해서라면 나는 어느쪽이라고 아직 대답을 할 수가 없는것이다.
엄마가 그 일에 대해 내게 한번쯤 얘기하고 싶어한다는 걸 안다. 그러나 나는 엄마가 그 얘기를 꺼내려고 할때마다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말라고 말한다. 듣고 싶지도 않고 말하고 싶지도 않으니 다른 얘기를 하라고. 그래서 결국엔 '다행이었고 고맙게 생각한다'는 말도 하지 못했는데, 아마 그렇게 말하지 못하는 건, 그걸 인정하는 내 자존심이 다칠까봐서가 반, '딸의 행복'때문이었다고 답하는 엄마의 말을 의심하는 마음이 반, 을 차지해서가 아닐까.
'너의 행복을 위해서' 라는 의도라 하더라도,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상대의 인생에 개입하는 건 옳지 못한게 아닐까. 나는 얼마나 많이 '너를 위해서' 라는 말을 했을까. 나의 의도는 정녕 순수했던걸까. 거기엔 '너의 불행을 보며 슬퍼할 나 자신을 위해서'라는 조건이 생략된 게 아닐까.
애거사 크리스티 여사님은 여성심리 묘사에 있어서는 진짜 타고난 것 같다. '메리 웨스트매콧'이란 필명으로 여섯편의 장편을 썼다는데 나는 그 모두를 읽어볼테다! 물론, 번역되어 나온다면.
"스물여섯 살 때였나, 사실 아주 화기애애했던 가족 모임 도중에 그런 순간을 맞았어. 나는 섬뜩했고 두려기도 했지만 결국 받아들였어. 진실을 부정하지 마. 요람에서 무덤까지 같이 갈 동반자는 세상에 딱 하나, 나 자신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지. 그 동반사와 사이좋게 지내야 해. 자신과 사는 법을 배워. 그게 답이야. 언제나 쉬운 일은 아니지만." (P.21)
"하지만 소유욕은 나쁜 거잖아요!" "물론 그래. 나는 그런 사람들을 매일같이 접하지. 아들을 앞치마 끈에 매달고 사는 엄마, 딸을 독점하는 아빠, 하지만 항상 부모들만 그러는 건 아냐. 예전에 내 방 앞에 새 둥지가 있었어. 대가 되자 새끼들이 하나둘 떠났는데 한 마리가 계속 남아 있는 거야. 둥지 안에 계속 있으려 하고, 먹이를 받아먹으려 하고, 둥지 밖으로 굴러떨어지는 시련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지. 녀석은 어미를 몹시 걱정시켰어. 어미는 새끼에게 보여주려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짹짹거리고 날개를 퍼덕였지. 그러더니 결국 새끼에게 먹이를 가져다주지 않더군.먹이를 물고 와 둥지 한끝에서 부르기만 하더라고. 그래, 그런 인간들이 있어. 성장하려고 하지 않는, 어른의 삶에 있을 고난을 피하려고 하는 자식들. 그렇기 길렀기 때문에 그런 게 아냐. 그들 자신이 그런 거지." (p.22)
"잘 들어, 앤. 내가 봐줄 수 없는 일이 두 가지 있어. 하나는 자기가 얼마나 고결한 인간인지 자기가 한 일에 무슨 도덕적인 이유가 있는지 떠들어대는 일, 또 하나는 자기가 얼마나 나쁜 짓을 저질렀는지 계속홰서 후회하는 일이야. 양쪽 말 다 사실이겠지, 자기 행동의 진실을 깨닫는 거라는 점에서는. 그래야 하는 거고. 하지만 그랬으면 넘어가야지. 시간은 되돌릴 수 없고, 이미 일어난 일을 없던 일로 할 수도 없어. 계속 살아가야지." (p.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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