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직장동료인 올리버의) 새 직장은 버클리에 있는 '피그말리온' 이었다. 자유언론운동에 참여했던 사람이 만든, 강한 신념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진짜 서점이었다. 그래서 나는 피그말리온으로 찾아가 넓게 퍼진 '식품정치' 코너 뒤쪽 작은 카페에서 올리버와 마주 앉았다. 올리버의 굵고 긴 다리가 들어 가기엔 탁자가 너무 작아서 그는 한쪽으로 다리를 쭉 펴고 앉았다. 나는 라즈베리와 콩나물을 넣은 스콘을 조금씩 뜯어먹었다. (p.319)
읭? 콩나물..을 넣은 스콘? 콩나물을 넣은 스콘이라고? 스콘도 알고 콩나물도 아는데 콩나물을 넣은 스콘..은 모르겠다. 진짜 그런게 있나? 그러면 스콘을 잘라서 입에 넣을 때 콩나물 줄기가 쭈욱- 딸려나오는 건가? 이 지구상 어딘가에 콩나물을 넣은 스콘이 존재한단 말인가? 나는 구글에서 '콩나물 스콘'의 이미지를 검색해보았다. 콩나물 밥과 콩나물, 스콘이 모두 검색되었지만 콩나물이 들어있는 스콘은 검색되질 않았다. 콩나물 스콘이라니, 상상하는거야 어렵지 않지만, 그것의 존재를 믿는건 좀 어렵다. 그게 스콘의 맛에 어떤 영향을 미친단 말인가? 라즈베리와는 차원이 다른데.. 아, 생각해보니 미국 영화나 책을 보았을 때 콩나물이 언급된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미국엔 콩나물 없는 거 아닌가? 미국에도 콩나물이 있나? 그리고 어딘가에서는 그 콩나물을 넣고 스콘을 굽나? 나는 콩나물도 잘먹고 콩나물 국도 잘 먹고 콩나물 밥도 잘 먹고 스콘도 완전 엄청 잘 먹기 때문에 콩나물 스콘이라고 못먹을 리 없겠지만, 그래도 스콘이라면, 다른 스콘을 선택할 것 같다. 콩나물이 들어가지 않은, 다른 게 들어간 스콘. 콩나물 스콘이라니...어쩐지 많이 당황스러워...대체 어떤 모양새일까. 스콘을 씹다가 콩나물 대가리 씹히는 게 느껴질까?
《패넘브라의 24시 서점》은 제목 그대로 '패넘브라'가 운영하는 서점이며 24시간 문을 닫지 않는다. 이 제목만으로도 얼마나 낭만적이고 근사한지, 나는 이 제목을 보자마자 『제인오스틴 북클럽』의 그리그를 떠올렸다.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선물했던 그리그. 그러나 그녀가 좀처럼 그 책을 읽지않아 실망을 거듭하곤 했었는데, 시간이 흘러 그녀는 그가 선물한 책에 푹 빠져들어 새벽까지 읽게되고, 결국 새벽에 그 작가의 다른 책을 사러 차를 몰고 나가지만 구할 수 없어 그리그의 집 앞에 오게 되는 바로 그 장면. 그리그는 창밖으로 그녀의 차가 보여 나가보게되고, 우리집엔 그 작가의 책이 많다며 그녀와 핑크빛 로맨스를 이루게 된다.
만약 이때 24시간 문을 닫지 않는 서점이 있었다면, 그녀는 그 서점으로 달려가 그 작가, '어슐러 르 귄'의 책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 새벽에 그리그의 집 앞으로 차를 몰고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당연히 그는 자신의 집앞에서 그녀를 발견할 수 없었을 거고, 그들이 연인이 되는것은 불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새벽에 그 차를 발견하지 않았다해도, 다른식으로 그와 그녀가 연인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르 귄에게 푹 빠져버린 그녀가 그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진다든가, 새벽에 서점에 다녀왔어요, 라고 말하면서 그로부터 '다음엔 우리집으로 와요' 라는 말을 듣게 될 수도 있고. 아주 다른 이야기가 펼쳐질 수도 있다. 새벽에 서점에 가 르 귄의 책을 찾는데, 마침 그 서점에서 일하던 청년이 그녀에게 반해 그녀의 이름을 나직하게 부를 수도 있으니까. 아주 많은 이야기들이 아주 많이 다른 형식으로 쭉쭉 뻗어갈 수 있다. 만약 서점이 24시간 문을 열고 있었다면.
언젠가 알라딘의 어느분도 밤중에 어느 책이 무척 읽고 싶어졌는데 늦은밤이라 살 수가 없다는 식의 글을 올린적이 있었는데, 이럴때 24시 서점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4시 서점은 광화문의 교보문고처럼 그렇게 큰 대형서점이진 않아도 될 것 같다. 작은대로 필요한 구색을 갖추고 있는 그런 서점이면 좋을텐데, 따뜻한 커피도 마실 수 있는 그런 서점이면 얼마나 좋을까.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슬리퍼를 신고 헐렁한 옷을 입고, 밝은 불빛이 있는 서점에 찾아드는거다. 크- 낭만적이야. 그 야밤에 서점을 지키고 있던 서점 직원과 손님들 사이에는 동지의식이 싹트지 않을까. 게다가 그 직원이 나처럼 예쁘다면(읭?) 단골 손님이 생기는 건 시간문제. 내가 만약 그런 서점에서 밤을 지키는 사람이라면, 카운터 밑에 와인 몇 병을 숨겨두고 홀짝거리며 책을 읽을 것이다. 손님이 많지 않은 새벽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겠지. 그러다가 키에누 리브스 같은 손님이 온다면, 와서 구석의 테이블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시켜두고 책을 읽는다면, 그렇게 몇 번 반복적으로 마주치게 된다면, 어느 봄 밤, 그에게 다가가 '와인 한 잔 드시겠어요?' 라고 물을 수도 있을것이다. 그리고 미국으로부터 만드는 법을 배워 이제는 나도 만들 수 있게 된 콩나물 스콘을 안주겸 야식으로 내어놓는거다. 따뜻하게 데워서. 그리고는 이렇게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콩나물 밥이 더 좋다면 말만해요. 양념장은 준비해뒀어요.
아. 우리의 따뜻한 새벽!
그러나 저 제목의 낭만성은 이 책에서 내 기대대로 펼쳐지질 않는다. 물론 24시간 오픈되어 있는 서점이고, 책을 팔고, 아주 가끔 손님이 들어와 책을 사가기도 하지만, 실상 그곳의 역할은 '뒤쪽 서가' 가 맡고 있고, 그곳엔 암호로 쓰여진 책들이 잔뜩이라 그 책들을 빌리러 오는 그 서점 회원들만 찾아드는 곳인거다. 암호와 해독, 비밀단체 등은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생각나게 하지만, 이 책은 장미의 이름보다 훨씬 더 빠르고 현대적이다. 장미의 이름은 오래된 고서에서 오는 어려움이 있었다면 이 책은 너무 현대적인 컴퓨터 기술에 대해 얘기해서 뭔 말인지 모르겠는 부분이 더러 있었다. 이 책의 작가인 '로빈 슬로언'은 분명 아주 흥미로운 소재로 흥미로운 이야기를 펼쳐나가지만, 내 입장에선 아주 흥미로운 소재로 그렇게까지 재미있지는 않은 이야기를 펼쳤다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다. 이 책은 영화로 나와도 재미있을 것 같고, 그렇게된다면 나도 보겠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24시 서점' 이란 어마어마하게 근사한 소재로 이렇게 쓰다니..실망감이 들 수밖에 없다.
역시 내가 원하는 이야기는 내가 써야 하는걸까. 내가 한 번 써볼까. 24시 서점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로....따뜻한 새벽.....으로? 내가 쓰는 책에서 나는 전지전능한 작가일 수밖에 없으니 현빈도, 키에누 리브스도, 제이슨 스태덤도 다 등장시킬 수 있을텐데! 봄 밤의 새벽에 키에누 리브스를 찾아들게 했다면, 여름밤의 새벽엔 제이슨 스태덤을 초대하는거지. 우린 늘 끈적한 여름밤을 함께 보내는거야. 우린 늘 너무 덥고, 너무 흥분해있고, 너무 끈적할거야.
24시 서점과 키에누 리브스, 봄 밤, 와인 등등을 생각하며 미친듯이 집중해있는 내게 내 친구 정식이가 메신저로 말을 걸어왔고, 그래서 확- 리듬이 깨져버렸다. 왜 하필 이럴 때 말을 걸어..돌았어?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