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책 제목이 기억나지 않는데 '산드라 브라운'의 로맨스 소설 중에 약혼자인 줄 알고 같이 잤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하는 내용이 있었다. 사연인즉슨, 여자는 남자와 약혼을 했고 곧 결혼하기로 했는데 약혼자가 참전을 선언한 것이다. 약혼자의 집에서 약혼자의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던 여자는 몹시 슬퍼했는데, 잠자리에 들기전 그녀 방의 문을 열고 빼꼼 약혼자가 들어와 그녀의 침대로 다가오고 그녀는 가기전에 나랑 자려는거구나 싶어 그와 잠자리를 갖게 되는 것이었다. 나중에야 약혼자의 형이 고백한다. 그 밤 너랑 잤던 건 동생이 아니라 나였다, 니가 슬퍼하는 것 같아 위로를 하러 들어갔었는데 그러다보니 블라블라...여튼 둘은 사랑하는 사이가 되어 결혼하고 아기도 낳고 뭐 그런다는 내용이었다. 이렇게 써보니 되게 허접한 것 같지만 책으로 읽으면 나름 재미있다. 산드라 브라운이니까!
갑자기 산드라 브라운의 소설이 생각난 이유는 얼마전에 읽은 이 책, 『완전연애』에도 그런 내용이 나오기 때문이다. 소년은 이웃집 소녀를 연모했다. 그녀를 위해서라면 살인을 저지를 수 있을 정도로 그녀에게 푹 빠져있었는데, 어느밤, 자신의 방안으로 소녀가 들어왔다. 형체만 알아볼 수 있었고, 만질수만 있었던 소년은 당연히 그녀가 자신이 연모하는 그녀일거라고 생각하고 격하게 그 밤을 보낸다. 섹스를 한단 말이다.
어떤 일을 맞닥뜨렸을 때 그 일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니 '확인'의 과정없이 '연모의 대상' 일거란 '확신'을 가지고 섹스를 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을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이것이 좀 어리석게 느껴졌다. 콘돔 없이 갑작스러운 밤은 임신을 불러오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지금 나랑 옷을 벗고 포개져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 그럴수가 있을까, 하는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당연히 '이 사람은 그사람이야' 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어쩌면 내가 의심이 많은걸지도 모르지만, 이 사람이 그 사람이라는 걸 확인을 해줘야 되는거 아닐까. 무릇 연인 사이에 두 눈 부릅뜨고 확인하고 하는 섹스라도 머릿속엔 어떤 생각을 할 지 모르는 것이 자명할진데, 어떻게 '이사람일거야' 라는 추측을 확신하며 뒹굴수 있을까. 나는 간혹 애정하는 이성과 대화를 할 때 '네가 지금 대화를 하는 상대가 누구인지 알고 있느냐' 라고 묻기도 한다. 두 눈을 마주치고 대화를 할 때도 마찬가지이고, 안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 너, 내가 누군지 알어? 라고. 나는 그들이 대화하는 상대가, 안고 있는 상대가 나라는 걸 상기시키고 싶다. 나는 연인에게 '나를 얼마나 많이 좋아하느냐' 라고는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지만 '내가 누군지 알어?' 라고는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내가 하는 말들을, 내가 하는 행동들을, 내가 만난 상대들을 확실하게 인식하고 싶다. 그 모두가 '내'가 하는 것들이고 '나의' 선택이니까.
'브리짓 폰다' 주연의 『위험한 독신녀』라는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의 장면이 나온다. 여자와 함께 사는 룸메이트는 여자처럼 머리를 자르고 여자의 향수를 뿌리고 여자의 남자가 묵는 호텔로 찾아가 밤을 보낸다. 남자는 헤어스타일도, 향기도 그녀의 것이었으므로 의심없이 그녀와 섹스를 하고, 마친뒤에 상대를 확인하고 기겁을 한다. 같은 헤어스타일, 같은 향기여도 다른 사람일 수 있는데, 어떻게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그 캄캄한 밤에, 그들은, '그 사람이다' 라는 확신으로 그 밤을 보낸걸까. 그럴 수도 있겠지, 싶으면서도 나로서는 하지 않을 행동이란 생각이 든다.
뭐, 그건그렇고, 그 밤이 너무나 뻔하게 남자가 생각하는 그런 밤이 아닐 거란 게 보이고, 뭐가 완전연애냐, 싶기도 하고, 마지막에 그 트릭이란 것이 엄청나게 허탈해서 이게 뭥믜..싶다. 겨우 이거 보자고 끝까지 읽었나...뭐 그런 생각이 든달까. 삼십대 남자가 십대 소녀를 사귀면서 성인이 되자마자 결혼하는 설정도, 아니 무엇보다 그걸 되게 당연하고 자연스럽다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좀 짜증이났다. 나는 꼬꼬마 일때부터 좋아했던 사람과 결혼해서 사는게 왜이렇게 마음에 안들까. 뭐, 그렇다는거다.
우와- 이 영화에서의 케이트 블란쳇은 그동안 내가 봐왔던 케이트 블란쳇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인것만 같다. 초절정 아름다움과 귀티가 촬촬- 게다가 진짜 연기가 대박이다. 내가 케이트 블란쳇 같은 대배우에게 연기가 대박이라고 말하는 거 자체가 우습긴 하지만 진짜 .. 아우 장난아니야.
나는 우디 앨런의 영화를 볼 때마다, 이 감독과 나는 코드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늘 우디 앨런의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것 같다. 그의 '잔인한 유머'는 내게는 아주 잘 통한달까.
영화속에서 재스민은 '우월한 유전자'의 영향(이라고 그녀의 동생은 말한다)으로 엄청나게 능력있는 남자를 만나 아주아주 부유한 집에서 교양을 쌓아가며 살아간다. 그러나 남편이 바람둥이 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동시에 사기꾼이기도 해서 그녀의 삶은 한순간에 몰락한다. 여기저기 빚더미에 쌓여있어 동생의 집에 얹혀 살러 가면서도 그녀는 비행기에서는 1등석을 타고, 여행가방 세 개는 모두 루이뷔통 이다. 직업을 구해야 하는 판국에 '하찮은 일' 따위는 자신이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돈을 벌지도 못하면서 대학에 다시 들어가겠다고 하니, 철딱서니도 이런 철딱서니가 없다.
그러나 그녀에겐 무엇보다도 부잣집에서 살아왔던 환경이 있다. 그 환경속에서 쌓았던 교양과 우아함. 치과에도 잠깐 취직해보고 앞으로의 장래를 위해 컴퓨터도 배워보지만, 그녀가 가장 잘 할 수 있었던 건 '교양있는 부잣집 남자'의 여자가 되는것이었다. 자, 여기서 바로 잔인한 유머가 등장한다. 재스민의 동생은 마트의 계산원이고 노동자인 남자친구를 두고 있다. 재스민은 그런 동생에게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나라고 입버릇처럼 얘기한다. 결국 그녀에게 제대로 된 남자를 만나게 해주기 위해 재스민은 동생을 데리고 파티에 가는데, 동생이 그곳에서 만난 '최고의 로맨틱 가이'는 결국 유부남이었고 재스민이 만난 남자는 몇 년후 정치인이 될 야망을 가지고 있는 초절정 부자남자였다.
어쩌면 정말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리게 되는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스민은 부자남자가 하는 말들을 알아들을 수 있다. 그 남자가 재스민의 백이며 벨트의 브랜드를 알아보았듯이, 재스민은 그가 말하는 용어들에 대해 재차 묻지 않아도 된다. 자연스럽게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남녀사이의 아주 큰 장점이고, 그 과정을 거치며 사랑을 속삭이게 되는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재스민의 동생은 그 백(물론 그녀도 재스민이 사준 명품백을 들고 있었지만)과 벨트를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 남자의 눈에 띄지 않고, 설사 눈에 띄었다한들 그 남자가 하는 말들에 주고받는 대화를 하기보다는 수많은 질문들로 대신했을 것이다. 결국 다시 남자친구에게로 돌아오는 동생을 보고 재스민은 '니가 노력하지 않고 니 자신이 그런 여자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남자를 만나는 거' 라고 말한다. 그러나 재스민이 소위 말하는 '잘나가는' 남자를 만나는 데 있어서 사실 노력을 한 건 아니다. 그녀가 옷을 고르는 안목이라든가 교양을 착착 쌓아나갈 수 있었던것은, 그런 환경에서 살 수 있었기 때문이고, 그런 환경은 그녀가 조성한 게 아니라 그녀의 남편이 벌어들인 돈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들이었다. 일전에 어떤 드라마에서 '나는 그렇게 안살아봐서'라는 말을 등장인물이 내뱉은 적이 있었는데, 이 말은 가장 무책임한 말인 동시에 또한 자신에 대해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살아가게 된다. 간절히 바라면 우주가 내 소원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순간순간의 내 선택들이 나를 만든것이다. 지금의 이 상황으로 오게 한 것이다. 그러니 나는, 내가 바라는 삶에 가장 근접한 형태로 살고있는 것일테다. 부자 여자가 부자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큰 집에 사는 것은, 그녀가 가장 원하는 것이 '돈'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재스민의 동생이 재스민에게는 형편없게 보이는 남자를 만나 행복해하는 것은, 그녀가 원했던 것이 돈이 아니라 로맨틱하고 소박한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잠시잠깐 재스민의 말을 따라 다른 남자를 찾아보려고 해봤지만, 그녀가 정말 원했던 것이 그녀의 언니가 정말 원했던 것과는 달랐기 때문에 그녀는 다른 남자를 만나는 데 실패한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실패'한 것은 아니다.
이 영화는 속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너져버린, 벤치에 앉아 혼자 중얼거리는 재스민이 끝이 아니라, 그 후의 재스민을 보고싶다.
토요일에 친구를 마중하러 서울역에 나갔다가 친구가 도착하기 전, 서울역에 있는 가게에 들어갔다. 가게 상호가 정확하게 생각이 안나는데, 온갖 물품들을 다 팔고 있었다. 우산, 머리띠, 바디로션 등등. 그러다가 나는 이런 걸 봤다.
으응? '정수리 냄새를 없애는?' 이게 뭐야? 나는 한참이나 이 앞에 서있었다. 정수리냄새를 없앤다니, 정수리가 내가 아는 정수리가 아닌가, 내가 정수리가 어디인지 잘못알고 있나 싶어서 그 자리에서 스맛폰으로 정수리를 검색했다. 내가 아는대로 검색결과는 '머리 위의 숫구멍이 있는 자리. '였다. 그런데 이렇게 냄새를 없애는 제품이 나올만큼 정수리에서..냄새가 나는건가? 사람들 원래 정수리에서 냄새나나? 마침 50대 정도로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이 앞으로 오셔서는 이것저것 손등에 뿌리고 향을 맡아보신다. 나는 참고 참고 참다가 그 아주머니께 여쭤보았다.
저기요, 사람들이 원래 정수리에서 냄새가 나나요?
그러자 아주머니는 "나죠" 라고 대답하셨다. "머리에서 냄새나고 다 나죠" 라고. 머리 안감으면 나는 냄새..가 정수리 냄새라고 표현되는걸까. 아니면 사람들이 겨드랑이에서 냄새나듯 그렇게 정수리에서도 냄새 나는걸까? 내 정수리도..냄새나나? 사람들마다 고유의 정수리냄새가 있는걸까. 어떤 이들은 유독 정수리 냄새가 심한걸까. 누군가에게는 그게 고민인걸까? 사람들에겐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고민들이 있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