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할 때는 행복했다. 아름답고 찬란한 시간들만이 존재할 줄 알았다. 사랑이 깊어지고 남자는 여자에게 '우리의 아기를 갖고 싶어' 라고 말하고, 여자는 '아기를 갖게 해줘' 라고 속삭인다. 그리고 사랑은 끝나버렸다. 여자의 생활은 아기를 중심으로 바뀌어버리고 친구를 만나지도 못하고 일도 제대로 되질 않아 점점 스트레스가 쌓여간다. 우울하고 짜증만 늘어나는데, 남편이 야근한다고 늦게 돌아오면 사실 그게 야근을 하느라 늦는건지 바람이 난건지 궁금하고 초조하다. 외출도 못하고 일년쯤 됐을때 여자는 폭발하고 만다. 남편과 아기를 두고 집을 나가버린다. 잠시, 그들로부터 떠나있길 원한다.
그들이 사랑을 했고 그러다 지치게 되었지만, 다시 얘기를 하고 마음을 털어놓으면 그 사랑의 어느정도는 되찾을 수도 있고 또 제자리로 돌아갈 수도 있을것이다. 제자리로 돌아갔을 때 그들의 관계는 더 단단해져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는 이 영화의 줄거리보다는 다른 부분에 더 큰 인상을 받았는데, 남자와 여자가 만나 사랑을 하고 함께 사는 장면들이 내게는 꽤, 음, 현실같지 않았다고 할까. 둘은 사랑하니까 함께 살고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낸다. 먹고 자고 놀러다니고 까르르 웃는 그들에게 현실의 잔혹함이 보이질 않는다. 무슨 말이냐하면, 여자는 아직 논문을 준비하는 '학생'이고 남자는 비디오가게의 점원일 뿐이다. 그런데 그들이 사는 집이 좋아보인다는 것. 비디오가게 점원이 돈을 벌면 얼마를 번다고 저렇게 유유자적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원래 돈 있는 집안 자식들인가? 설마 저거, 복지인거야? 그러니까, 저 나라에서는 비디오가게 점원으로 일을 해도 먹고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거야? 나는 이게 꽤 충격인거다. 게다가 아기를 낳고 나자 남자는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양복을 입고 출퇴근하는' 직장을 구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취업의 어려움 전혀 없이 그는 양복을 입고 출퇴근을 하는 직장남이 되었다. 집도 더 큰 데로 이사하고. 아니, 이들에게는 취업이 그렇게까지 어렵진 않은건가? 내가 사는 나라가 되게 짜증스럽게 느껴지는거다. 이 나라는 우리들에게 뭘 해주고 있는거지? 뭘 하고 있는거냐고!!
이 영화를 보는데 나는 이상하게 내가 사는 나라가 짜증나네.
여자는 돌고래 조련사다. 그 일을 사랑한다. 그런데 어느날 사고를 당해서 두 다리를 잃는다. 그녀는 세상을 보기도 싫고 햇빛 따위 꼴도 보기 싫다. 그런 그녀가 뒷골목의 복서인 남자를 만나 다시 바깥으로 나오고자 한다. 섹스가 될까, 걱정했던 그녀에게 남자는 해보자고 말한다. 다리를 잃기전에 여자로서 남자들을 만나 데이트를 했던 자신을 떠올렸던 그녀는, 초조한 마음으로 섹스에 임한다. 섹스가 끝난후에 남자는 또 하고 싶어지면 자신을 부르라고 말한다. 그가 떠나고 그녀는 휠체어에 앉아 자신의 팔을 움직이며 자신이 돌고래를 조련했던 그 순간을 기억한다. 그 때, 그녀의 귀에는 음악이 흐른다. 점점 더 자신감을 찾아가는 장면에서 음악은 점점 더 커지고, 그 장면이 나는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았다. 가장 벅차고 찬란했던 장면. 그녀가 다시 삶을 끌어안을 수 있게 된 장면. 그 음악이 뭔가 궁금해서 검색했는데 못찾겠더라. 팝송인데..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람은, 어느 정도의 생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어떻게든 자기가 살 길을 찾아간다고. 그동안의 상황과 아주 달라져버려도, 그 상황에 맞게 자신이 살아갈 방법을 찾아가게 되어있다고. 그 상황에 맞게 사람들을 사귀고 그 상황에 맞게 앞으로 나아간다. 그 삶은 그 전의 삶과 달라서 내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라는 생각이 순간순간 찾아들지도 모르지만, 어떻게든 사람을 만나고 사랑을 하고 살아진다. 문득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서의 <럼주차> 생각이 났다. 그래, 삶은 그렇게 쉽게 끝장나진 않지.
이 영화속의 남자는 무뚝뚝한 남자의 전형이라고 볼 수도 있을텐데, 다정한 말 한마디 해주지 않던 그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앞에 무너지고, 그 뒤에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에 낼 수 있게된다. 자신이 먼저 여자를 떠나왔지만 이제는 여자에게 내 곁에 있어달라고 말한다. 우리는 누군가를 만나서야 비로소 내 안의 약점을 고쳐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한 사람에에게 다른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
오늘은 드디어 밀크셰이크를 만들어 먹었다. 며칠전에 사서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콜드스톤의 아이스크림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기억해내곤 뚜껑을 열었는데, 마침 내가 좋아하지 않는 맛인 체리맛 아이스크림이 남아있는거다. 그래, 이걸로 해보자. 나는 남은 체리아이스크림을 다 퍼서 믹서기에 넣고 우유를 따라 넣었다. 그리고 믹서기를 돌렸다. 오, 맛있다. 너무 맛있다. 이건 다른 걸 넣을게 없구나. 아무것도 필요없어, 맛있다!! 더 만들어 먹기 위해 당장이라도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고 싶었다. 롯데리아에서 사 먹는 밀크셰이크보다 훨씬 훠어어어어어어어얼씬 더 맛있었다. 나는 아이스크림도 싫어하고 우유도 싫어하는데, 이렇게 먹으니 완전 짱이네? 움화화핫. 신난다!! 맛있어!! >.<
며칠전에 상사는 나를 불렀다. 그리고 내 앞에서 내 사직서를 구겨버렸다. 나는 그렇게 계속, 회사를 다니고 있다.
얼마전에 조카가 며칠간 머물렀는데, 함께 놀다가 조카가 웃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내 마음에 행복이 가득 찼다. 아, 이런게 사랑이구나, 싶었다. 이런게 사랑이야. 웃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내가 행복해지는 거, 내가 웃는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웃는데 내가 더 행복해지는 거, 이게 바로 내가 그 상대를 사랑한다는 증거구나, 싶었다. 그러고보면 순수하게 상대가 웃는것 만으로도 내가 행복해지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아이 말고 누가 그랬지, 누가 웃을 때 행복했지, 하고 떠올려보다가, 나는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퍼뜩 생각났다. 그가 내 앞에서 웃는 모습을 보일 때, 그리고 전화기를 통해서 그 웃음소리가 들려올 때, 그 때 가슴속이 꽉- 차오르던 느낌도 떠올랐다. 꽉, 꽈악- 그를 떠올리면 내 안에 불온한 욕망이 자리잡는다. 내가 내 뺨을 때리고 싶어.
4월, 거의 한 달간을 그리고 5월의 지금까지를 책을 읽지 않으며 살고 있다. 어제 만난 친구가 요즘 뭐 읽어요? 라고 묻는데 안 읽어요, 라고 답했다. 읽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레 생길때까지 나는 책을 놓을것이다. 이러면서 엊그제 또 책을 주문하긴 했지만. -_-
오늘은 문득 생각나서 줌파 라히리의 지옥 천국을 읽었다.
다 읽고 책장을 덮었을 때, 내 가슴속을 꽉- 채우던 그는, 내게 프라납삼촌 같은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에 저장된 그의 이름을 지우고 프라납, 이라고 수정해서 넣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피식 웃고는 말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계란후라이를 해먹고 싶었는데 냉장고를 여니 계란이 없었다. 무척 서운하더라, 무척. 매우, 대단히. 점심때가 지나서 엄마는 시장에 다녀오셨고 계란을 사가지고 오셨다. 이제는 냉장고를 열면 계란이 가득 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