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보러 갔다가 영화 상영전의 예고편을 보고 꼭 보고 싶은 영화였다. 그런데 며칠전에 이 영화에 원작이 있다는 걸 알게됐고, 그래서 부랴부랴 주문해서 읽었다. 영화가 너무 좋을것 같아서 그 전에 원작을 읽어두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데 책을 넘기면서 이내 실망했다. 문장이 서투르고 산만했다. 흐음, 그냥 영화로만 볼 걸 그랬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끝까지 다 읽고나니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뭐라고 해야할까. 표지에 쓰여져 있는 「사랑으로 받은 상처, 사랑으로 치유하라!」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고 해야하나. 물론 이 문구는 연인을 의미하는 바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내게 이 문구는 누군가 상처를 받았다면, 그 상처가 어디로부터 온 것이건 간에, 다른 사람들의 사랑으로 치유될 수도 있다는 걸 의미했다. 책 속의 남자 팻은 그를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고 또 그를 위해주는 친구가 있었다. 물론 그에게 다른 사랑도 찾아오고. 그 모든것들이 그를 결국은 현실로 돌아올 수 있게 만든게 아닐까 싶었던거다.
팻은 최근 몇년간의 기억을 잃었다. 아내와 헤어진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우리는 잠시동안 떨어져있기로한것 뿐' 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시 만나 행복하게 살 수 있을거라고 기대하고 있으며 그 날이 오면 아내에게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운동도 열심히 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기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팻의 아내는 팻과 헤어진후 재혼했고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 명령도 받아낸 후다. 그녀에게는 그를 다시 만날 의도 따윈 전혀 없지만 팻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인생은 영화이며 그것은 반드시 해피엔딩이 되어야 한다는 팻에게 현실감각은 없다. 그래서 그는 정신병원에 장기간 입원을 했고 퇴원을 한 뒤에는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어느 한 순간에 나는, 팻이 끔찍하게 여겨졌다. 그의 아내는 그에게 돌아올 생각이 전혀 없이 자신의 삶을 살고 있는데 팻은 자신의 모든 중심에 그녀를 둔다. 그녀가 '당신을 만나지 않겠다' 고 말해도 '나는 재혼했다'고 말해도 그는 자신과 그녀가 함께할 날이 곧 올거라고 믿는다. 지하철안에서 이 부분을 읽다가 내려서 걷는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지독하게' 사랑하는게 끔찍했다. 상대가 '아니'라고 말해도 그것을 자신의 식대로 해석하는것도 끔찍했다. 이런 사랑을 상대는 결코 원하지 않을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팻의 헤어진 아내였다면, 팻이 매순간 나를 그리워하고 기다릴거라는게 아주 징그러웠을것 같다. 아니라고 했잖아, 너에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그런데 왜그렇게 나를 너의 희망으로 삼는거니, 하면서. 그로부터 멀리멀리 도망가고 싶을것 같았다. 나를 그냥 내버려두라고, 나를 사랑하지 말라고 말하면서.
그러다가는 이내 그리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헤어진 사람을 그리워하는 건 팻에게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니까. 나 역시 여전히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으니까. 언젠가 다시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그를 그리워하는 만큼 그도 나를 그리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니까. 그러나 이런 나의 바람과는 달리 상대는 나를 그리워하기는 커녕 단 한순간도 떠올리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내 이 그리움은 무슨 소용일까 싶어지기도 하고.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이 책속의 티파니는 헤어진 아내를 기다리는 팻을 사랑한다. 팻의 좋은 친구로 남고 싶은 마음,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마음. 팻이 헤어진 아내의 이름을 내뱉을 때 쿡쿡 찔리는 마음. 이 모든것에 대해 생각하다 나 역시 어느 부분에 있어서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던건 아닐까, 내가 만든 영화속의 해피엔딩을 기다리기만 했던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인정할건 인정해요. 우린 둘 다 현실에서 움켜쥐고 있는 것을 놓지 않으려고 버둥거리는 사람들이란 걸. (p.383)
이 책속의 팻은 해피엔딩이 아닌것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대체 왜 문학수업시간에 '실비아 플러스'의 『벨자』를 학생들에게 읽게 하는지 알 수 없어한다.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의 결말을 개떡같다고 생각한다. 이런식으로 팻이 읽는 책이 계속 언급되는데, 그 중에서도 '너대니얼 호손'의 『주홍 글자』를 읽는 부분이 무척 인상적이어서 오늘 장바구니에 『주홍 글자』를 넣고 또 한박스를 결제했다. 주홍 글자는 내가 십수년전에 읽었었는데 상세한 내용이 전혀 기억나질 않는 상황이라 다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기억할 수 있었다면 팻이 하는 말에 공감하며 읽었을지도 모르는데. 『허클베리핀의 모험』도 읽고싶어졌는데 이건 이미 사둔지 오래. 꺼내 읽기만 하면 된다.
팻은 영문학 교사인 전아내에게 쓴 편지에서 왜 아이들에게 비극적인 문학을 가르치냐고 언급했었고, 이에 그의 아내는 이렇게 답장한다.
학생들이 미국 문학의 우울한 특성에 대해 투덜거릴 때마다 해주는 말이 있어. 인생은 기분 좋은 영화가 아니라고. 실제 인생은 안 좋게 끝나는 경우도 많다고. 우리 결혼처럼 말이야. 팻, 당신에게도 똑같은 말을 해 주고 싶어. 문학은 이런 현실을 기록하려고 노력하지. 그걸 통해 어려운 현실을 씩씩하게 버텨 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거야. (p.315)
책 속에서 또다른 책을 만나는 것은 기쁨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만약 내가 소설을 쓰게 된다면, 그 안에 여러가지 책을 꼭 언급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쓰는 책은,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또다른 책을 읽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으면 좋겠다. 근사하지 않은가. 지금 당장 주홍 글자를 읽어보고 싶어서 몸이 배배 꼬인다.
발렌타인데이라고 회사 직원들이 저마다 초콜렛을 챙겨줬다. 나는 이놈의 초콜렛을 이 날만 엄청나게 먹어대는게 별로 마음에 들질 않아 그동안 다른걸 준비했었다. 이를테면 도넛츠라든가 빵이라든가 하는것들. 그런데 이번에는 시집을 준비했다. 직원들에게 다 주려고 하다보니 가격이 만만치 않았지만, 캬라멜마끼아또를 한잔씩 돌린다고 생각하고, 또 거기에 초콜렛까지 얹어서 돌린다고 생각하면 나오는 금액이려니, 하고 두 눈 딱- 감고 준비했다.
사실 여러권의 시집을 사서 각자 다른 시집을 나누어주고 다 읽으면 바꿔 읽으라고 하려했으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들이 돌려읽기를 할 것 같지가 않아, 그렇다면 모두에게 반드시 읽게 하고 싶은 시집은 무엇인가, 라고 생각해 이 시집으로 결정했다. 발렌타인 데이라고 주기엔 좀 뭣하지만 그래도 뿌듯하다. 아직 배송되어 오질 않아 나누어주고 있질 못하지만 이 시집을 들고 각자 퇴근길에 읽을거란 생각을 하니 좋다. 상무님도 부장님도 읽겠지. 대리도 사원도 읽겠지. 맨 마지막에 실린 시를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읽어낼까 궁금하고 기대도 된다.
나로 하여금 보고 싶게 만들었던 영화 『실버라이닝 플레이북』의 예고편.
그리고 오늘 내가 아침부터 자꾸만 흥얼거리는 노래, 김연우의 「사랑한다는 흔한 말」. 이건 내가 며칠전부터 혼자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인지, 오늘 자꾸 생각났다.
흐음. 시집...할부로 살 걸 그랬나. 괜히 일시불로 결제했나. 청구서 나올 생각을 하니 조금 속이 쓰리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