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가 필요해 2012] 라는 드라마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중심적이고 자기 감정이 제일 중요하다. 평상시에는 누구나 다 그렇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비상시'라는 것이 있다. 친구가 '비상시'에 있다면 그때만큼은 내 감정을 조금 접고 친구 감정을 먼저 생각해주는게 낫지 않겠느냐, 하는.
몇 번이고 보다가 집어치우려고 했지만, 이 대사가 무척 좋아서 이 드라마를 꾹 참고 계속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대사는 3부에 나온다. 정유미는 원래 내가 좋아하는 배우이지만 다른 배우들은 관심없거나 비호감인 배우들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남자들이 드라마에서 반짝 빛이 나는거다. 한 명은 '젊고 몸 좋고 밝은' 버전의 임태경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래서 나는 내가 이 드라마를 끝까지 봐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참고 참다 3부의 중간쯤을 보고 포기했다. 도무지 여자들의 캐릭터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맙소사.
그들이 내세우는 성격들이 현실적이지 못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뭔지 알겠고, 그들이 드러내려는 캐릭터 역시 충분히 현실적인 인물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연기'를 한다. 그 인물들은 충분히 존재할 수 있지만 그러나 드라마를 보노라면 그들이 너무 '꾸며져' 있고 가공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드는거다. 도무지 몰입할 수가 없다. 전형적인 칙릿 소설이 그대로 드라마화 되어진 느낌. 나는 아이팟에 8편까지 받아두고 금요일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일요일 밤 3편의 중간까지 보고 아이팟에서 아웃 시키기로 했다. 남들은 재밌다는데 나는 왜이럴까. 나는 왜 드라마를 잘 보지 못할까?
이 책은 꽤 놀라웠다. 우선 작가가 '남자사람'이라는게 놀라웠다. 나는 당연히 여자사람 작가일 줄로만 알았다. 게다가 영화를 보면서는 시종일관 웃었던터라, 이 책 역시고 낄낄대고 웃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이 책은 영화보다 조용한 분위기이며 덜 유쾌한 분위기이다. 그러나 덜 유쾌하다는 게 나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일전에 한 친구는 나에게 애인이 생겼으면 좋겠다면서(또다른 친구는 결혼을 빨리 하라면서) 이런식의 말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네가 행복해졌으면 좋겠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순간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애인이 생겨야, 혹은 결혼을 해야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은 대체 어느 별에서 나온 명제일까. 아니, 그러니까, 그것이 참된 명제일까? 내가 결혼하지 않아서 지금 불행하다고 했던가? 혹은 내가 불행해 보이는가? 결혼한 그들은 지금 행복하단 말인가? 정말?
결혼식에 참석했던 가족과 친구 들은 이른바 '1차 사회적 압력 집단'을 형성했다. 아이의 탄생을 기대하며 압력을 가하는. 다른 이들의 삶에 열을 올릴 정도로 자신들의 삶이 지루한 것일까? 늘 그런 법이다. 우리는 타인의 욕망을 강요받으며 살아간다. 나탈리와 프랑수아는 주변 사람들을 위한 연속극이 되고 싶지 않았다. (pp.30-31)
꼭 그랬다. 결혼을 한 사람들이 타인에게 결혼을 강요하고 아이를 낳은 사람들이 타인에게 아이낳기를 강요했다. 그들이 정말 행복해서 타인의 행복이 더 커지길 그랬다는 생각은 사실 그다지 들질 않는다. 그들은 타인이 자신과 다른 삶을 살기를 원하지 않는걸로밖에 보이질 않는다. 타인의 행복은 자신의 기준에 맞추는게 아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사랑하는 사람을 우연히 맞닥뜨리기 위해 그 사람의 집 앞에서 몇 시간을 서성이거나 혹은 사무실이나 회사 복도에서 특별한 일 없이 왔다갔다 했던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그 사람을 만나면 마치 우연인 듯 인사를 하는거지. 이 책의 마르퀴스가 그랬다. 그의 마음속에 들어온 여자 나탈리를 우연인듯 마주치기 위하여 그는 맞닥뜨렸을 경우 할 말을 준비하고 계속 그녀의 사무실 앞 복도를 왔다갔다한다.
그의 전략은 훌륭했다. 계속해서 복도를 서성일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었다. 어딘가 향하는 것처럼 걷기란 어려운 일이다. 정확한 행동으로 집중하고 있는 듯 보여야 했다. 가장 힘든 일은 짐짓 서두르는 척 움직이는 것이었다. 오후 끝 무렵이 되자 그는 지쳐버렸고, 바로 그때 클로에와 마주쳤다. 클로에가 그에게 물었다.
"괜찮아? 좀 이상해 보여 ‥‥‥"
"응, 괜찮아. 다리 근육 좀 푸느라고. 그러면 생각이 잘 돌아가거든." (pp.103-104)
나탈리대신 마주치게 된 동료 클로에가 그에게 오, 그런데, 흑흑, 이런 말을 한다.
"난 108호 때문에 골치가 아파. 나탈리 팀장님하고 상의 좀 해보려고 했는데, 오늘 안 계시네."
"그래? 팀장님이 ‥‥‥안 계셔?"
"응‥‥‥지방 출장 가신 것 같아. 난 그만 가볼게. 골칫거리를 해결해봐야지."
마르퀴스는 아무런 말도 못 하고 그대로 굳어 있었다.
오늘 왔다 갔다 한 거리를 합한다면 그 역시 너끈히 지방에 갈 수 있었다. (p.104)
아, 어쩌란 말인가. 대체 그가 무슨 짓을 했단 말인가. 지방 출장에가서 마주칠 수 없는 그녀와 마주치기 위해 그는 도대체 얼마만큼의 거리를 걷고 얼마만큼의 시간을 보낸거란 말인가. 정말이지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나는 이런 사람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공감이 되어버리고.. 흑흑.
영화속에서도 나는 마르퀴스의 유머감각에 몇 번이고 웃음을 터뜨렸는데, 책 속에서도 그보다 덜하긴 하지만 마르퀴스에게 유머 감각은 있다.
"보아하니 뭘 먹고 온 것 같지는 않은데. 수프가 좀 있어."
"아, 그래요? 무슨 수프인데요?" 마르퀴스가 물었다.
"금요일 수프야. 뭐라 설명을 해야 하나. 마침 금요일이고, 그래서 금요일 수프지."
"넥타이를 매지 않은 수프겠군요." 마르퀴스가 대답했다. (p.265)
금요일의 수프라고 대답해주는 나탈리의 할머니도, 넥타이를 매지 않은 수프라 대답하는 마르퀴스도 재미있었다. 그러니까 잘 어울리는 사람들로 보였다. 그러니 할머니도 손녀의 남자친구에게 좀 점수를 주게 되지 않을까. 물론 할머니는 나탈리에게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할머니들은 잘 아는걸까? 나도 할머니가 되면 사람을 보는 눈이 생기게 될까? 그때쯤이면 지금보다 확실히 더 현명해지는걸까?
책의 제목인 『시작은 키스』는 꽤 잘못된 번역제목인 듯 느껴진다. 이렇게 손발 오글거리는 제목이라니. 부끄럽기 짝이없다.
어쨌든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어졌다.
금요일에는 어찌어찌하다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도니 버거] 강남점에 가서 햄버거와 닭봉과 맥주를 시켰다. 맙소사. 거기에서 먹은 닭봉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가장 맛없는 닭봉이었다. 6개입을 주문했는데 친구와 둘이 간신히 세 개를 먹었다. 그나마 내가 억지로 두 개를 먹고 친구는 하나를 먹다가 도무지 못먹겠다고 그마저도 남겼다. 나는 꼴도 보기 싫다고 그 위에 냅킨을 덮어놨다. 진짜 끔찍한 맛이었다. 그동안 먹은 닭봉들에게 고마울 지경이다.
오늘 아침에 눈을 떴을 때는 김치찌개 냄새가 부엌에 가득했다. 나는 절로 신음소리를 냈다. 엄마는 왜그러냐고 물으셨고 나는 김치찌개 향이 무척 좋다고 말했다. 엄마 왜이러지? 왜 유독 좋지? 오랜만이라 그런가, 아니면 날이 추워 그런가? 엄마는 오랜만이라 그런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아침을 먹는데 진짜 완전 눈물나게 맛있는거다. 아침 저녁으로 정말이지 김치찌개의 향과 맛이 궁극에 달하는 날씨다. 나는 결국 국그릇에 남은 찌개를 들이마시고 출근했다. 만족스런 아침식사였다. 늘 그랬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