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iffin and Sabine: An Extraordinary Correspondence (Hardcover)
Nick Bantock / Chronicle Books Llc / 199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의 육체가 매우 많이 지쳐있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이 나를 쉬게해줄까, 무엇이 나의 스트레스를 조금쯤 죽여줄까,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나는 맥주를 선택했다. 그렇다면 맥주와 함께 할 책은 무엇? 하고 고민하다가 거침없이 이 책을 꺼내들었다.

 

 

와-

 

 

이건, 정말이지, 완전 러블리해서 돌아버릴 지경. 종국엔 소리내어 읽어보기까지 했는데, 맥주를 마시면서 읽기에도 제격이고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차올랐을 때 읽어도 딱이다. 처음 이 책을 받아들고서는 대체 이건 어떤 종류의 책인가, 하고 고개를 갸웃하며 책장을 펼쳤다. 그리고 그 첫장에서 나는 이런 그림을 보게됐다.

 

 

 

 

아아, 이것은 그림책? 그리고 뒷장을 넘겼다. 그랬더니 이런 글이 나왔다.

 

 

 

 

 

 

 

 

 

그러니까 앞의 그림은 postcard, 즉 엽서의 앞면이었던거다. 뒷면은 내용으로 채워진 것. 아! 이 형식이 놀랍고 깜찍해서 그것만으로도 기분 좋아진다. 그리고 책장에 넣어뒀다가 오늘 다시 꺼내어 읽어보게 됐는데, 아, 정말이지, 내용도 사랑스러워. 마침내 너에게 엽서를 보낼 수 있게 되어서 좋다는 이 엽서라니. 그래서 나는 처음, 이들은 그러니까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사이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 엽서를 받은 griffin 은 이런 답장을 보낸다.

 

 

 

 

 

날 용서해줘, 난 네가 기억나지 않아, 그런데..내가 너를 아니? 오오, 몰라? 기억이 ... 안나? 한 쪽은 기억도 못하는 사람을 한 쪽은 좋다고 엽서를 쓴거야? 한 쪽은 신경도 쓰지 않는 사람인데 이렇게 엽서가 날아온거야, 정말? 흥분됐다. 상대가 어떤 대답을 하게될까. 실망하게 될까? 기억을 떠올리게 하기 위해 어떤 에피소드를 말하게 될까? 이런 생각을 하다가  오, 기분이 좋아지고 말았다. griffin 이 sabine 에게 보낸 이 엽서의 그림은 이렇다.

 

 

 

 

 

이들의 다음 엽서가 기다려졌다. 이들이 어떤 말들을 하게 될지, 그것은 어떤 기분을 주게 될지 기다려졌다. 고작 서로가 서로에게 보낸 한 장씩의 엽서를 읽었을 뿐인데, 오, 나는, 나는, 벌써 행복해졌다. 그리고 다시 sabine 가 보낸 엽서에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No, griffin, you don't know me, not in the way you mean, though i've been watching your art for mamy years.

 

 

 

아, 그러니까 이들은 '서로' 아는 사이가 아닌거였다. 이들은 만난 적도 없는 사이었던거다. 그런데 이들이 엽서의 그림을 고르고 글을 써서 상대에게 띄워 보낸다. 서로 다른 곳에 사는 이들이. 게다가 이 책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엽서로 못다한 말을 편지로 대신하기도 한다. 책장을 펼치면 거기 바로, 편지봉투가 있고, 그 안에 편지가 들어있다. 앞뒤로 빼곡하게 채워진 편지.

 

 

 

 

 

 

 

 

 

 

아...너무 좋아, 너무 좋아! 내가 편지를 받은것처럼 마구 행복해진다. 가끔 알아볼 수 없는 철자가 보여서 끙- 했는데, 이 긴 편지를 받은 grffin 역시 질 수 없다는 듯 편지로 답장을 보낸다. 그런데 오, 자기는 손글씨를 잘 못쓴다며 타이핑 해서 보낸거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물론 알아볼 수 있게 타이핑 했다고 해서 내가 뜻을 다 알 수 있는건 결코 아니지만, 일단 보기는 편했다. 하하. 게다가 이 편지는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타이프로 쳐놓고 다시 읽으면서 틀린 단어들을 자기가 고친 흔적도 있다. 아. 미치겠다. 나는 자꾸만 히죽히죽 웃음이 난다. 정말이지, 소리내서 읽어봤다니까. 내 발음 들으면서 혼자 본토발음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끔 해가면서 말이다. ( ")

 

 

물론 이 편지들이 사랑스럽기는 했지만 뒤쪽에 다시 한 번 빼곡한 편지들을 봤을 때는, 편지를 읽는 당사자가 아닌 '영어를 잘 못하는 독자'로서 짜증이났다. 간단하게 몇 줄 안되는 엽서쪽이 읽거나 이해하기에 훨씬 편했으니까. 그냥 계속 엽서로 써주지, 왜 편지로 썼담, 하면서. 그렇지만 내가 당사자였다면 짧은 엽서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긴 편지가 나를 행복하게 해줬을거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 자신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또 현재는 어디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다면 말이다.

 

 

 

모르는 이들이 엽서를 주고 받게 되고, 각자의 삶을 이야기하다가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이들이 서로에게 점점 더 큰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건 뻔한 일이다.

 

sabine 는 엽서에 이런 내용을 쓴다.

 

you and I will heal each other.

 

griffin 은 이제 이런 요구를 한다.

 

I want to know what you look like. will you send me a photograph?

 

sabine 는 사진을 보여줄 수 없지만 니가 나를 보고 싶다면 여기로 오면 된다고 말한다.

 

그들은 이제 어떻게 될까.

 

 

 

엽서를 보내고 사랑이 싹트는 감정들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당연하게도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가 떠오르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작품이 그 소설과 닮아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 책이 떠오르긴 하지만, 이 책은 그 책과 다르다. 이들의 감정은 그들의 감정과는 약간 다르다. 사랑에 빠진건 마찬가지지만, 사랑이란 건 원래 대상에 따라 조금씩 다른 형태를 만들어가기 마련이니까.

 

이 책의 마지막장까지 읽고나면(사실 몇장 되지 않는다), 이 책의 다음 시리즈 혹은 그 다음 이야기가 나와야 할 것 같고, 반드시 나와 있을것만 같다. 새벽 세시에서는 새벽 세시로 끝나는 것이 가장 완벽한 결말, 이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지만(물론, 나는 그 다음 이야기인 『일곱 번째 파도』도 매우 많이 사랑한다.), 이 책은 그 다음 편이 반드시 존재해줘야 한다. griffin 은 자신에게로 올 sabine 를 기다리고 있거나, 혹은 체념하고 포기한 griffin 에게 sabine 는 처음에 그랬듯, 기적처럼 다가가게 되지 않을까.

 

 

배가 고프거나 부르거나 술을 마셨거나 안마셨거나 우울하거나 그렇지않거나 사랑중이거나 이별후거나, 그 상황이 어쨌든지간에 이 책은 읽기에 나쁜 때가 없을 것 같다. 지하철이든 방 한구석이든 어디서든 읽어도 좋을것이다. 반드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책장에 꽂아두어야 할 책이다. 엄청나게 사랑스러운 책이다. 나는 내가 이런 책의 책장을 넘겼다는 사실이, 무척 좋다.

 

 

 

 


댓글(2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진 2012-08-23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락방님 전부터 생각했지만 영어 할 줄 아는 멋진 커리어 우먼이셨어... 힝.

다락방 2012-08-24 13:25   좋아요 0 | URL
you and I will heal each other. 이런 문장만 해석 가능한 비루한 월급쟁이 입니다.. orz

dreamout 2012-08-23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퇴근후 연극을 봤는데 아주 재미있었어요. 다락방님처럼 저도 이 재미를 리얼 재미있게 얘기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orz..

다락방 2012-08-24 13:27   좋아요 0 | URL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드림아웃님! 저는 드림아웃님이 언급하는 책은 죄다 궁금해지는데요! 전 요즘 뉴욕과 파리를 나란히 구경하고 있다구요!! 네, 그 책 있어요!! 움화화핫

2012-08-24 04: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8-24 1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브론테 2012-08-24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 책이었군요!

아침부터 너무너무너무 졸려요~~ 아웅

다락방 2012-08-24 13:28   좋아요 0 | URL
전 이제 날씨 바뀐다고 비염의 습격 ㅠㅠ 재채기 오만번 하고 있어요. 하아-

레와 2012-08-24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은 어떻게 알게 되는 거에요? ^^

새삼 이 책이 고맙네요. 이 책이 있어 다행이에요.

다락방 2012-08-24 13:28   좋아요 0 | URL
이런 책을 글쎄 누가 선물해줬지 뭐에요! 움화화핫. 그래서 사람이 인간관계를 잘해야 해. 이런 책도 선물해주는 사람을 알기가 쉽지는 않잖아요? 우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한껏 뻐기고있다)

굿바이 2012-08-24 1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사랑스러운 책이 있었군요. 형식도 내용도 참으로~!

다락방 2012-08-24 13:28   좋아요 0 | URL
네, 굿바이님. 정말 그래요! 세상은 한 번 살아볼만한 곳이에요. 히힛

네꼬 2012-08-24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다락님 영어 너무 잘한다.

다락방 2012-08-24 13:29   좋아요 0 | URL
ㅠㅠ

will you send me a photograph? 이런거만 해석하는데? 저 긴편지는 해석할 수 없을거란 생각에 걍 펼쳤다 닫았다구요. -0-

DORIBARI 2012-08-25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_< 영어책은 싫어요, 패스!

다락방 2012-08-27 09:07   좋아요 0 | URL
저는 영어책이 싫지는 않지만 패스 ㅜㅜ

가연 2012-08-25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ㅎㅎ 좋은 책이네요ㅋㅋ 다만 원서 같은데 비싼 책 아닌가요, 이런 가격부터 생각하게 되는 저는 속물..ㅎㅎㅎㅎㅎ

다락방 2012-08-27 09:08   좋아요 0 | URL
2만원 조금 넘는 책입니다, 가연님. ㅎㅎ
그렇지만 음, 소장 가치는 충분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전 이 책이 무척 좋아서 말이지요. 아우~ 막 더 얘기해주고 싶지만 스포일러니까 그만 얘기해야지. ㅎㅎㅎㅎㅎ

테레사 2012-08-27 1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락방님~ 은 완전 저의 영웅이세요!!! 전 긴 글을 써본지 너무 오래되었어요..

다락방 2012-08-27 11:18   좋아요 0 | URL
아니...영웅은 왜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저도 페이퍼 쓰고 싶은데 지금 상사 눈치보느라 참고 있어요.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