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약속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는 이 책을 읽었다.

 

 

 

 

 

 

 

 

 

 

 

 

 

 

 

 

침대에 늘상 놓아두고 조금씩 읽기에 맞춤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글들이 한 지면마다 위에 혹은 아래에 놓여있었는데,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해야할까. 어떤 글들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가 되지 않아 갸웃하기도 했지만, 얼마 읽지 않은 지금에도 인용하고 싶은 부분이 아주 많다. 침대에 놓아두고 마침내 이 책을 다 읽었다면 그 다음 차례는 당연히 책장이 될 터이다. 책장에 꽂아두고 아무때나 아무데나 펼쳐 읽어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오늘 문득 펼친 부분은 바로 책에 대한 얘기가 실려있었다.

 

 

 

매월 첫째 날에 레이나는 그에게 그가 좋아하는 소설가나 시인의 책을 한 권 선물했다. 책 속에는, 사무실의 지옥이나 시간을 빼앗고 삶을 허비하게 하는 다른 잡다한 일의 고통에서 그를 건져 주는 자유가 들어 있었다. 간혹 가다 책갈피 사이에 빳빳한 지폐가 한 장씩 끼워져 있었던 것이다. (p.139)

 

 

미소가 지어지는 이야기가 있는가하면 한숨 나오는 이야기가 있고 신비로운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감탄이 절로 나오는 얘기가 있다. 자, 이런 얘기는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킬까.

 

 

윤리와 좋은 관습

 

그들이 그녀를 방에 가두고 침대에 묶어 놓았다.

매일 한 남자가 들어갔는데, 언제나 같은 사람이었다.

몇 달 후 수감자가 임신을 했다.

그러자 그들은 그녀를 그 남자와 강제로 결혼시켰다.

교도관들은 경찰도 아니고 군인도 아니었다. 이 소녀의 아버지와 어머니였다. 실제로 어린아이에 가까운 소녀는 같은 반 여자 친구와 키스하고 서로 쓰다듬다 발각되어 체포되었다.

1994년 말, 짐바브웨에서 베브 클라크가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p.26)

 

 

 

거미

 

한 발 한 발, 한 줄 한 줄, 수컷 거미가 천천히 암컷에게 다가간다.

거미줄로 하프를 타듯 암컷에게 음악을 들려주고 그녀를 위해 춤을 춘다. 그러고는 혼절할 때까지 서서히 암컷의 벨벳 같은 몸을 애무해 간다.

그런데, 여덟 개의 팔로 포옹하기 전에 수컷은 암컷을 거미줄로 말아서 꽉 묶는다. 묶어 놓지 않으면 사랑을 나눈 뒤에 암컷이 수컷을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수컷은 이런 암컷의 습관이 전혀 달갑지 않다. 그래서 사랑을 나눈 뒤에는 사라진다. 잠자리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 포로가 거미줄에서 풀려나 음식을 요구하기 전에.

누가 수컷 거미의 마음을 이해할까? 그는 죽지 않고 사랑을 나눌 수 있었고 그 위업을 달성하기 위해 술수를 썼다. 그리고 원한에 찬 분노를 피해 무사히 달아난 지금, 암컷을 그리워한다. (p. 30)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책을 읽고 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분명 괜찮은 사람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의 앞 표지로 돌아가 이 책이 몇 쇄나 찍었는지, 그리고 언제 출판된건지 확인해 보았다. 내가 어제 선물 받은 이 책은 그 전날 서점에서 산 거라고 했는데 2011년 7월 25일에 1판 1쇄를 찍었으며 내가 가진 이 책이 바로 그 1판 1쇄에 해당하는 책이었다. 나온지 일 년이 넘었는데 이 책은 여전히 1쇄다. 이 근사한 책을 읽은, 혹은 읽고 있는 '괜찮은'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모양이다.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첫 수업

 

 

두더지들에게서 우리는 터널 뚫는 법을 배웠다.

비버들에게서 우리는 제방 쌓는 법을 배웠다.

새들에게서 우리는 집 짓는 법을 배웠다.

거미들에게서 우리는 천 짜는 법을 배웠다.

아래로 구르는 나무 몸통들에게서 우리는 바퀴를 배웠다.

물 위에 떠서 표류하는 나무 몸통들에게서 배를 배웠다.

바람에게서 범선을 배웠다.

누가 우리에게 악행을 가르쳤을까? 누구에게서 이웃을 괴롭히고 세상을 굴복시키는 법을 배웠을까? (p.129)

 

 

 

 

 

 

 

 

지난 금요일에는 이 영화, 『매직 마이크』를 봤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가 명백히 보이는 영화였는데 재미없었다. 놀라웠다. 채닝 태이텀이 멋지게 춤을 추고 매튜 매커너히가 속옷만 입고 돌아디는데도 재미 없을 수 있다니! 정말 신기했다. 이래도 재미없구나, 이래도.

 

 

 

낮잠을 잤고 커피를 한 컵 가득 마셨다. 게다가 비가 온다. 오늘은 좀처럼 쉽게 잠들지 못할것 같다. 섹스,섹스,섹스,섹스 얘기만 주구장창 해대는 그레이의 비밀 2권을 마저 읽어야겠다. 섹스 말고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는 그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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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2-08-12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레인가 그거 1위한다는 소설 아니예요? 자극적으로 쓰면 너도나도 타임즈 1위 먹겠다...

다락방 2012-08-12 21:26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지금보니 그레이의 그림자인데 비밀이라고 썼네요. 이런이야기들만으로 이정도의 분량이라는게 놀라운 책이에요 -_-

네꼬 2012-08-13 09: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젯밤 스마트폰으로, 잠들기 직전에 이 페이퍼를 봤어요. 좋은 책 소개해줘서 고마워요, 라고 쓰려고 했는데 졸려서 그만. 역시 침상에 두기 적절한 책인 걸까? (농담) 좋은 책 소개해줘서 고마워요. : )

그나저나 좋은 책이 이토록 안 팔리는 세상...

다락방 2012-08-13 09:11   좋아요 0 | URL
나는 네꼬님이 이 책을 좋아할거라는 데에 이만원 걸수 있어요. 무려 이만원!! ㅎㅎ

비가 오더니, 지금은 볕이 좋으네요, 네꼬님. 우산을 말리고 있어요.
:)

브론테 2012-08-13 1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런 책을 읽고 또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분명 괜찮은 사람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이런게 쓰셨으니 한마디 보태자면, 저 <시간의 목소리> 나오자마자 사서 백자평 올린 1인입니다.하하하하하하하

다락방 2012-08-13 10:44   좋아요 0 | URL
브론테님과 웬디양님 그리고 턴레프트님이 이 책에 대해 좋은 평을 하셨다는 걸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걸 알고, 이 페이퍼를 쓴 겁니다.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네? 아시겠냔 말입니다!!!!!

moonnight 2012-08-13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채닝 테이텀이 나오는데 재미없어요? 흑흑. ㅠ_ㅠ
좋은 책 추천 고마워요. ^^

다락방 2012-08-13 11:00   좋아요 0 | URL
네, 신기하죠? 채팅 테이텀이 무려 춤을 추는데도 재미없어요. 참..신기한 영화에요.
책은 좋습니다, 문나잇님!!

레와 2012-08-13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케이!

다락방 2012-08-13 11:03   좋아요 0 | URL
이 책 좋아요, 레와님!!

감은빛 2012-08-13 16: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단은 보관함으로.
저도 다락방님께 '괜찮은' 사람이 되고프네요. ^^
그런데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이 나라 출판시장에서는 말이죠.

다락방 2012-08-13 16:33   좋아요 0 | URL
감은빛님은 지금도 괜찮은 사람인데요! :)

네, 저도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어우, 그레이의 변태생활 보다는 이 책 쪽이 베스트셀러가 되는게 세상 모두를 위해서도 나을텐데요. 하아- 한숨 나네요. orz

가연 2012-08-17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기억하는 갈레아노는 소외된 것들에 대한 역사, 같은 거 쓴 사람이었는데ㅎㅎ 이 사람이 그 사람인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저 책은 참 좋아보였답니다ㅎㅎ

다락방 2012-08-17 13:12   좋아요 0 | URL
네, 가연님. 좋아요. 가연님이라면 아마 제가 이해하지 못하고 갸웃했던 부분들에 대해서도 다 이해하고 저보다 더 좋아하실것 같아요. 좋은책이에요, 가연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