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작품해설에는 이렇게 써있다.
'따라서 뒤루아가 많은 여자들을 농락한 뒤 파리 굴지의 신문사와 거액의 돈을 수중에 넣기까지의 과정이 생상하게 드러난 이 소설은 전형적인 자연주의 문학의 걸작이다.' (작품해설, p.514)
'생상하게'는 아마도 '생생하게'의 오타로 보인다. 혹시나 싶어 사전을 찾아봤더니 '생상'은 '사상(四相)의 하나. 현상의 모든 변화중 발생하는 측면을 가르킨다' 라고 되어있으니 말이다. 어쨌든 작품해설에서 말한대로 이 책은 벨아미가 여자를 농락하고 더 많은 돈을 가지고 신분을 상승하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그런 벨아미에게 더 큰 야망이나 욕망은 존재할지언정 죄책감이라든가 뉘우침은 없다.
이 책을 읽다보면 할 얘기가 정말 많아지는데, 벨아미가 아직 돈이 없고 가난했던 시절, 자신의 정부(情婦)로부터 돈을 받아 쓰게 되는 장면에서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나약함' 혹은 '감출 수 없는 비열함'을 보는 것 같았다. 가진게 없는 그의 주머니에서 정부가 몰래 넣어준 돈을 발견하고 벨아미는 처음, 수치심을 느끼고 당장 돌려주어야 겠다고 생각하지만
'젠장! 클로틸드가 준 20프랑으로 점심을 먹어야겠어. 내일 갚으면 되지.' (p.145)
라고 생각해버리고 마는것이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그는 7시까지 일을 했다. 그런 다음 저녁을 먹으러 가서 그 돈에서 다시 3프랑을 썼다. 밤에 마신 맥주 두 잔까지 더하면 그가 하루 동안 쓴 돈은 모두 9프랑 30상팀이었다. (p.145)
그 뒤에도 그는 정부로부터 계속 돈을 받아쓰고 그럴때마다 수치스러워 하면서도 그 돈을 다 써버린다. 결국은 이렇게 내뱉기에 이르른다.
"젠장. 그따위 못된 여자 때문에 안절부절못할 건 없어. 능력이 될 때 갚으면 돼." (p.155)
사실 이런 벨아미를 두고 손가락질 하기는 쉽겠지만, 막상 저런 입장이 되었을때 굶으면서 그 돈을 돌려주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일전에 『토지』에서 용이의 아내였던가, 죽기 직전에 죽기 싫어서 어쩔 줄 몰라하는 장면을 보았을 때, 그 장면이 아, 추해, 이러지 말자, 라는 생각이 들기보다는, 죽음 앞에서 이런 반응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 아닌가, 했던 것처럼 벨아미의 수중에 돈이 들어오고 그것을 쓴 것도 당연하게 느껴진 것이다. 이 장면 뿐만이 아니라 벨아미의 친구 포레스티에가 죽는 장면에서도 아주 생각이 많아졌는데, 다 쓰면 페이퍼가 너무 길어질테니 패쓰.
벨아미가 많은 여자를 농락하고 돈을 차지하고 높은 신분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매우 수려한 용모 때문이었다. 심지어 이 책속의 한 모녀는 벨아미의 용모가 그리스도와도 닮았다고 생각하기도 하니까. 그의 외모가 여자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차마 짐작할 수도 없는데, 그 용모 덕분에 그는 많은 여자들을 농락하는 것이 꽤 쉬웠다. 한 마디 말 혹은 한 번의 미소면 여자들은 그에게 사랑을 고백해왔다. 그리고 여기, 아, 정말 미치게 공감능력 발휘되게 하는 한 여자가 있으니, 나는 출근길에 이 부분을 읽다가 정말이지 미칠 뻔했다.
그녀는 지금 막 사라져 간 남자의 못브을 보지 않으려고 필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모습을 눈앞에서 쪼아 버리고 그 매력에 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나 절박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하느님의 모습은 나타나려 하지도 않고 청년의 곱슬곱슬한 콧수염만이 언제까지나 눈앞에 어른거리며 사라지지 않았다.
일 년 전부터 그녀는 낮이나 밤이나 차차 커 가는 유혹과 싸워 왔다. 끊임없이 꿈에 나타나고 육체에 달라붙고 밤마다 잠을 뒤흔들어 놓는 이 청년의 모습과 싸워 왔다.
그녀는 이 남자의 입술과 수염과 눈빛만으로 쉽게 정복되어서 마치 그물에 걸려든 동물처럼 그 양팔 속에 휘감겨 들고 내던져져서 옴짝달싹못하게 돼 버린 것 같았다. (p.359)
그녀가 자신에게 반했다는 것을 눈치 챈 벨아미는 그녀에게 거짓된 사랑 고백을 한다. 그녀는 두 아이의 엄마이고 한 남자의 아내이므로 그에게 넘어가지 않으려고 신부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하기도 했고 하느님께 기도드리기도 했지만 그의 사랑 앞에 무릎 끓고 만 것. 그래서 그녀는 번번이 내가 이러면 안된다는 생각에 빠지면서도 그와의 밀회를 즐긴다. 그러나 벨아미에게 그녀는 사랑이 아니었다. 그녀를 정복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 밀회는 끝이 보이고 그녀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러나 벨아미는 그런 그녀가 지겹고 지긋지긋하다.
그러는 동안 그는 쉬잔 어머니의 애정이 점점 싫어지다가 나중에는 어찌할 수 없는 혐오를 느끼게 되었다. 이제는 얼굴을 보기만 해도,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그저 생각하기만 해도 화가 치밀었다. 집에 찾아가는 것도 그만두고 편지에 답장도 하지 않고 불러내도 응하지 않았다. (p.384)
아..dog baby 라고 욕을 해주고 싶다. 왜 안간힘을 써서 이를 악물고 그를 사랑하지 않으려는 그녀를 건드렸는가. 왜 그녀의 감정을 가지고 장난을 치는가. 그녀는 이제 막 그에 대한 열정이 터져버려서 어떻게도 수습이 안되는데. 왜 .. 대체 왜 ..
그녀는 그때까지 정숙하게만 살아왔고, 마음은 처녀와 다름없었으며 어떤 감정에도 마음을 닫아 걸고 관능적인 쾌락은 전혀 알지 못했다. 따라서 여름 뒤에 선선하고 창백한 가을이 오듯이 조용한 마흔 고개를 맞이한 이 얌전한 여자에게, 뒤루아에 대한 사랑은 실로 맑은 하늘의 벼락 같은 뜻밖의 일이었다. 말하자면 철이 지나 버린 작은 꽃과 제대로 자라지 못한 새싹들만으로 이루어진 비참한 봄과도 흡사한 것이었다. 마치 어린 처녀의 색정이 뒤늦게야 기묘한 꽃을 피운 것 같아서 걷잡을 수 없는 정열이나, 열여섯 살 난 처녀의 조그만 탄성, 주체할 수 없는 아양, 젊음을 알지 못하고 늙어 버린 여자가 어색하게 부리는 교태의 연속이었다. 언젠가는 하루에 열 장이나 편지를 써 보냈는데 어느 것이나 모두 제정신으로 쓴 것이라고는 생가할 수 없는 어이없는 것들뿐이었다. (pp.380-381)
나는 이 여자가 너무 이해되서 책을 읽다가 비참한 기분에 빠졌다. 문득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아 편지를 보낸 기억이 떠올랐다. 그도 가만 있는 내게 다가와 내 마음에 폭풍같은 열정을 불러일으켰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는 그때 나를 그냥 건드려본것인가, 하는. 그런데 나는 거기에다 대고 내 사랑을 몽땅 쏟아붓고 만 것인가, 하는. 그렇다면 내 마음을 글로 표현한 그 편지를 들고 그도 '이 여자는 제정신이 아니군' 이라고 생각한걸까. 음...그런데 내가 편지를 썼던게..맞나? 엽서였나? 카드였나? 뭔가 쓴 것 같기는 한데... 아..너무 비열하다. 상대의 마음을 가지고 장난치다니. 그 여자에겐 일생일대의 커다란 사랑이고 커다란 연애인데, 그에게는 그저 한번 들쑤셔본 것에 불과하다니. 그가 그녀에게 거짓된 사랑을 고백함으로써 그녀의 마음을 확인하려던 그 때에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그랬다면 그녀에게 그를 조심하라고 말해 줄 수 있었을까. 아니, 말해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니, 말해줬어도 그녀는 여전히 같은 선택을 했을것이다. 사랑에 빠진 사람에겐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전혀 들리지 않으니까. 그리고 사랑에 빠진 여자가 보는 남자와 주변에서 보게되는 남자는 다른 인물이니까. 나중에 사랑이 끝났을 때, 그리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흘렀을 때, 그때가 되서야 비로소 여자는 아, 사람들이 그때 내게 이것에 대해 말해준 것이구나, 하게 될테니까. 사람의 감정은 본인도 어쩔 수 없지만 타인도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 그건 그냥 그렇게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래서 그녀는 애원하고 울고 아파야 한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남자를 진심을 다해 사랑해서.
제기랄.
dog baby..
어릴적 국어시간에 배운 권선징악, 해피엔딩은 현실에서는 그다지 찾을 수가 없다. 벨아미는 마흔이 다 된 여자의 가슴을 산산이 찢어놓고 더 젊고 더 예쁜 여자를 만나 결혼한다. 그에게 앞길은 탄탄해 보이고 출세는 보장되어 있다. 우는 여자는 우는 여자고, 출세하는 남자는 계속 출세하고. 왜 그렇게 진행되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종종 그렇게 진행되어버리고 마는것이다.
벨아미, 폭삭 망해버려라!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