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에 작성하는 페이퍼이니만큼 육체적으로 에로틱하게 (응? 뭔말이야..) 시작해볼까.
헤르트루디스는 그가 자신을 향해 오는 것을 보고 달리던 걸음을 멈추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강렬하게 반짝이는 머리카락을 허리춤까지 늘어뜨린 헤르트루디스는 천사와 악마를 반반씩 섞어놓은 모습이었다. 가녀린 얼굴과 순결한 처녀의 육체는 눈과 땀구멍에서 미친 듯이 뿜어져 나오는 열정이나 관능과는 선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은 오랫동안 산에서 싸우며 억눌러왔던 후안의 욕정과 맞물리면서 크나큰 장관을 이루었다.
후안은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말을 멈추지 않은 채로 몸을 숙이더니 헤르트루디스의 허리를 낚아채서 자기 앞에 앉혔다. 하지만 자신과 마주보도록 앉힌 채로 함께 말을 타고 갔다. 겉으로 보기에 말은 주인의 명령에 따르고 있는 듯했다. 후안이 헤르트루디스를 열정적으로 껴안고 키스하느라 말고삐를 놓았지만 말은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 확실하게 아는 것처럼 계속 질주했다. 전력 질주하면서 어렵사리 첫 번째 결합을 이루었을 때는 말의 움직임과 그 둘의 움직임이 하나가 되어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후안이 너무 빨리 달렸기 때문에 뒤를 따르던 혁명군 부하들은 그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실의에 빠진 대원들은 포기하고 돌아갔다. 나중에 그들은 대장이 전투 중에 갑자기 미쳐서 부대를 이탈했다고 보고했다.(p.63)
고작 63페이지에서 이렇게 사람을 들뜨게 하는 구절이 나온다. 나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리고 열정에 불타오를 듯한 헤르트루디스를 상상하고 말 위에서 그녀를 보고 그녀에게 달려오던 후안을 떠올리며 좀처럼 진정이 되질 않았다. 이 책을 읽다가 친구를 만났는데, 삼겹살을 구우면서 나는 이 장면을 친구에게 흥분해서 설명해줬던 기억이 났다. 글쎄 여자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고 남자는 말을 타고 달려온거야. 그리고 말 위에서 그녀를 안아올린거지. 자기 앞에 앉히고서는.....
이때의 헤르트루디스는 사랑이 담긴 장미꽃으로 만든 요리를 먹고난 후였다. 그녀에겐 열정이 들끓어올랐다.
갑자기 이 책의 이 장면이 생각난건, 며칠전 보았던 영화 『케이트와 레오폴드』때문이었다.
영화속에서 여자는 현재를 살고 있는 직장여성이고 남자는 19세기의 영국 귀족이다. 어찌하다보니 영국 귀족이 현재로 건너오게 되었고 그리고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의 옷차람이나 말투는 낯설지만 그러나 그의 정중함에 그녀가 끌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식사자리에서 그녀가 설거지통에 그릇을 가져다두기 위해 일어섰는데 앞자리에 앉았던 그가 벌떡 일어난다.
왜 일어나요?
숙녀가 일어나니까요.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는 이 장면은 그러나 꽤 근사한 기분을 주었는데, 영화속에서 여자도 일어날때마다 손을 내저으며 그러지말라고 그에게 이르지만, 그러나, 존중 받는 느낌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았을까.
그러던 어느날, 그녀는 센트럴파크 앞에서 가방을 소매치기 당한다. 소매치기는 센트럴파크 안으로 도망가고 그녀는 그를 쫓아가면 소리지른다. 그때 우리의 영국 남자는 관광용마차의 말을 풀어 그 위에 올라타고 소매치기를 쫓는다. 쫓는 도중에 길에 서있던 그녀에게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은 그녀를 말 위로 올려 태운다. 꺄울 >.< 그리고 뜨그럭뜨그럭 달려서 결국 가방을 찾는다. 우앙.. 짱멋져!
말 타는 남자라니. 정말 근사하다! 게다가 이 영화의 주연인 휴 잭맨은 말과 무척 잘어울린다. 히융- 이 남자는 지독하게 예의바르고 정중하다. 나는 예의바르고 정중한 남자가 무척 좋다. 어휴..
그렇지만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서는 고민하게 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를 사랑하고 그도 나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는 다른 시대로부터 온 사람이다. 그가 여기에 있을 수는 없다. 그는 역사의 어느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여기에 머무르면 역사는 뒤바뀌어 버린다. 그렇다면 내가 그에게로 가야 하는가, 라고 하면 아무리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고 한들 지금까지 살아왔던 시대와는 다른 곳에서 살아가는걸 선택하는게 쉬울까. 나는 상상력이 부족한 사람인데 아마 모험심 역시 애초에 키우지 않는 사람인가보다. 나는 사랑하는 남자가 있는 곳으로 다 버리고 떠나는 대신, 사랑하는 남자에게 작별을 고하고 현재를 살 것 같다. 애초에 사랑하게 되어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운명을 가진거라면, 같은 시대 같은 장소에 살고 있게 해주면 좋잖아?
아...재이슨 스태덤하고 말 타고 초원을 달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