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을(아니 남자가 금성인가...) 읽으려고 사두었다가 두 장쯤 읽고 관뒀었다. 그게 아마도 이십대 중반의 일이었던 것 같은데, 두장 쯤 읽다가 '아니, 내가 대체 이걸 왜 읽고 있어야하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던 것. 남자와 여자가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다른 건 새삼스러울 게 없다. 나는 어제 읽은 책, '파스칼 키냐르'의 『로마의 테라스』에서도 그걸 아주 뼈저리게 실감했다.
하루는 그녀가 나쁜 꿈을 꾸고 땀에 흠뻑 젖은 얼굴로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를 안심시키려고 그가 말했다. "당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당신 곁에 내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요. 내게 기대고 편히 쉬어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가 함께 산 뒤부터, 내게는 당신이 내 지붕의 그늘에 들어와 있다고 여겨져요." 이것은 몸므가 나니 베트 야콥스 이후로 다른 어떤 여자에게도 하지 않았던 최고의 말이었다. (p.88)
나는 꿈을 아주 잘 꾸는 편이라(잠을 깊게 자지 못한다) 당연히 악몽도 여러 차례 꾸었었는데, 그때 옆에 누워있던 남자가 이렇게 말해준다면 따뜻하고 위로가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했다. 그런데 그의 옆에 누워서 악몽을 꾸고 깨어난 여자, '마리'는 나랑 생각이 달랐다.
그러나 마리는 이 말을 아주 나쁘게 받아들였다. 그녀가 쏘아붙였다. "지붕 따위로 내가 뭘 어쩌겠어요? 그렇게 하찮은 이유로 우리가 함께 사는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군요." 그녀는 발 위에 덮인 시트를 걷어차고 침대에서 빠져나갔다. 그녀는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어쨌든 그런 거라면, 당신이 창피해요!" (pp.88-89)
그녀는 그녀와 함께 지내는 남자에게서 지붕이 아닌 다른 무엇, 지붕 그 이상의 것을 기대했던걸까. 그녀는 지붕 따위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걸까. 지붕이 있으면 비를 피할 수 있고 눈을 피할 수 있는데. 흠뻑 젖지 않을 수 있는데. 따가운 햇살을 피할수도 있는데. 그런데 그녀는 그것들을 피하기보다는 아마도 다른것들을 누리고 싶었던걸까. 이 책은 아름다운 책인데, 이 부분에서는 그만 웃고 말았다. 이 남자는 최고의 말을 하고자 한건데 여자는 '그 따위'라고 해버리니. 하아- 이들 사이의 간격이란. 이것은 남자와 여자가 각각 금성과 화성에서 왔기 때문일수도 있겠지만 각 개인의 가치관의 다름이 원인일 것이다. 나는 지붕이면, 괜찮다. 지붕을 '따위'로 부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런데, 그녀가 원한건...금고일까?
이 책에서 남자는 자신의 첫사랑을 잊지 못한다. 몇 번이고 언제든 불려나가 어디서든 몸을 포갰던 그의 첫사랑. 지붕이 되어주고 싶다고 말했던 상대는 그 뒤의 사랑이었는데, 남자가 죽음을 기다리고 누워있을 때, 그 남자는 지붕 따위 싫다고 떠난 여자 대신 첫사랑을 떠올리고 첫사랑의 이름을 부른다. 그 남자에게 첫사랑은 평생을 잊지 못할 단 하나의 사랑이었다. 문제는, 싫다고 떠나긴 했어도, 한 순간 함께 살았던 남자가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르는 걸, 그녀가 들었다는 것.
마리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격렬한 분노에 휩싸였다. 그녀는 낮은 목소리로 거칠게 말했다. "난, 이제껏 자신을 온통 사랑하는 여자에게 바치는 남자들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어. 여자에게서 유순하고, 아늑하고, 좋은 냄새가 배어 있고, 먹여주고, 편들어주는 그 무엇, 따스하고 부드러운 덮개, 자신이 생겨난 장소, 어머니의 추억, 이 모든 것을 죄다 찾으려는 남자들은 더군다나 보지 못했어. 부재하는 여자들이 여전히 이곳에 존재하고 있어. 그녀들의 커다란 존재는 날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그 그림자도 점점 진해지지. 상실된 것은 언제나 옳은 거야. 나는 사랑을 더러운 속임수라고 부르겠어." (pp.137-138)
죽어가는 순간 내가 아니라 다른 여자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를 보는 여자의 마음이 어땠을까. 그러나 여자 자신도 죽음 앞에서 자신이 만난 모든 남자의 이름을 부를수는 없지 않을까. 그 때 생각나는 사람은 한 명이나 두 명쯤이 되지 않을까. 나랑 사귀었던 남자들에 대한 예의로 그 모두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죽어가는 순간에 가능할 리 없잖은가. 이름은 역시..부르지 않는게 장땡인가. 아니, 죽어가는 순간까지 내가 그걸 생각해야 해?
이 책은 아름답다. 그러나 또렷한 그림이 그려지질 않는다. 이 책의 문장들은 종이속에 단단히 박혀있는게 아니라 종이를 뛰어 넘어 공중에 떠도는 것 같다. 나는 이 책의 모든 문장들을 모조리 다 이해할 수가 없다. 낯선 단어들이 툭툭 튀어나오고 시간은 현재와 과거를 번갈아 보여주는데 아름답다고 생각할라치면 또 난해해지고 아름답다고 생각할라치면 또 뒤로 도망가는 것 같다. 읽다가 몇 번이고 고개를 젓게 된다. 아, 모르겠어 모르겠어. 무슨말인지 모르겠어. 머리가 팽팽 돈다.
엊그제는 새벽까지 잠을 못잤는데, 아마도 레스토랑에서 연달아 두 번이나 마신 커피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어제는 일찍 자야지, 라고 생각했는데 또 이것저것 하다보니 열한 시 반이 되어서...아, 지금이라도 빨리 자자 싶어서 잤더니 오, 아침까지 한 번도 안 깨고 잤다. 그런데 꿈을 꿨다. 내가 아는 젊은 남자사람이 악마로 나오는 꿈. 꿈에서 그 악마는 지구나 혹은 인류에게 해를 입히기 위해 노력하는데, 아무도 안 볼 때 무언가를 어떻게 해서 그렇게 만들어야 하는거다. 그러나 나는 그가 악마라는 사실과, 그가 해를 입힐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혼자 외출하려고 할 때마다 그에게로 가서 나도 함께가자고 번번이 청했던 것. 그는 그때마다 난처해하면서도 나와 함께 외출하고, 결국 그는 자기가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지 못한다. 나는 그의 정체를 알고있지만 그는 내가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채로, 나는 그와 매번 같이다니다가 어느틈에 그에게 사랑이 싹트게 되는데 그는 악마이니........그러다 또 우리는 같이 외출했는데 번화한 상가에서 우리는 서로를 잃고만다. 나는 그를 빨리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상가를 위 아래로 엄청나게 돌아다닌다.(그래서 지금 이렇게 피곤한가 ㅠㅠ) 그런데 그를 찾을 수가 없다. 여기는 사람이 많고 그는 지금 혼자이니 그가 나쁜짓을 벌이기에 너무나 적당한 시간. 나는 막아야해, 막아야해, 이 생각에 미친듯이 뛰어다니는 데 결국 그를 찾지 못하고 몇 시간 후에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니 그가 와있다!!!!!! 나는 두려웠다. 그가 무슨짓을 벌이고 왔는지를 알지 못해서. 차마 물을수도 없어서 발을 동동 구르다가, 옆에 있던 남동생에게 저 사람 언제 들어왔냐고 물으니 누나 들어오기 일 분 전에 들어왔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오랜 시간 그는 결국 지구멸망을 성공시킬 작전을 실행한것일까. 그런데 곧이어 남동생이 이렇게 덧붙였다. 누나 잃어버려서 여태 누나 찾다 왔대, 라고. 오, 그렇다면 그는 지구파괴할 행동을 하지는 않았구나! 내가...내가....내가 지구를 구했어!!!!!!!!!!!!!!!!! 나 때문이야!!!!!!!!!!!!!!!!!!!!!!!!!!!!!!!
뭐, 이러고 있는 아침이다. 졸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