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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커버스커 - 정규 1집
버스커버스커(Busker Busker) 노래 / 스톤뮤직엔터테인먼트(Stone Music Ent.)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그해 봄, 나는 친구를 만나러 낯선 도시로 갔다. 낯선 도시에는 나의 친구만 있는게 아니었다. 바다도 있었다. 낯선 도시에 도착해서 바다를 앞에 두고 친구를 기다리고 있는데 친구는 조금 늦을 것 같다는 메세지를 보내왔다. 나는 친구를 기다리며 홀로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나는 바다를 특별히 좋아한다거나 바다에 가고 싶다고나 하는 감정은 가지고 있지 않았었는데, 친구를 기다리는 20분 가량, 바다 앞에 홀로 서 있는 내가, 내 앞에 펼쳐져 있는 바다가 무척 좋았다. 행복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가슴이 벅차오르면서 웃게 됐다. 아, 좋은데? 나는 잠시 서 있다가 잠시 걷다가 그렇게 바다 옆에 있었다. 그리고는 참지 못해 바다의 사진을 찍었고, 또다른 낯선 도시에 있는 이에게 바다의 사진을 첨부한 메세지를 보냈다. '바다' . 사진 밑에 첨부한 메세지는 그게 전부였던가, 더 있었던가.
친구가 도착했고 우리는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머릿속 한 구석엔 내가 보낸 바다 사진을 들여다보고 있을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여름이 되었다. 나에게 바다 사진을 받았던 사람으로부터 메세지가 왔다. 바다의 사진을 첨부한 메세지였고, 메세지의 내용은 간략했다. '나도 바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에 같은 바다를 보았고 그 바다에서 서로 다른 곳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이 어디있는지를 알렸다. 그리고, 며칠전의 어느 늦은 밤,
「여수 밤바다」를 들었다.
여수 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전활 걸어 뭐하고 있냐고
나는 지금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여수 밤바다 中)
이 노래를 듣는데 그동안 잊고 지냈던 바다 메세지 생각이 났다. 아 그래, 나는 그에게 바다 사진을 찍어 보냈지. 그도 내게 바다 사진을 찍어 보냈어. 나는 「여수 밤바다」를 듣는 동안 그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고, 그 시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깊은 밤, 나도 모르게 굳게 결심했다. 바다에 가자, 바다에 가자. 바다에 갈테야. 그래, 여수 밤바다에 가야지, 여수 밤바다에 갈거야. 바다에 가고 싶었고, 바다를 보고 싶었고, 다시 한번 바다에서 누군가를 떠올리고 싶었다. 너를 생각해, 라는 메세지를 띄워 보내지 않아도 좋으니 바다로 가고 싶었다. 내가 바다에 간다면, 이제는 여수 밤바다로 가보자. 그때의 그 바다가 아니라 여수 밤바다로.
버스커버스커의 노래 한 곡이 나를 이렇게 상념에 젖게 만들었다. 음악의 역할이란 무엇일까. 흥얼거리게 만드는 것, 함께하게 만드는 것, 울게 만드는 것, 고단을 치유하게 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의 음악이 역할이라면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도 음악의 역할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들은 제대로 된 음악을 만든것이 아닌가.
나는 어떡하죠 아직 서툰데(첫사랑), 라고 노래하는 그들이지만 음악에 있어서만큼은 전혀 서툴지 않다. 첫사랑의 설레임과 서투름을 고스란히 드러내주는 그들을 어떻게 서투르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목소리는 앨범 전체를 한꺼번에 다 들을 수 있을만큼 내게 매력적이지는 않지만 충분히 개성이 넘치고, 내가 좋아할 만한 색깔은 아니지만 색깔이 분명하다. 이 앨범의 전까지는 그들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고 또 나는 그들이 출연했다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본 적도 없지만, 이렇듯 숨어있는 가수를 찾아내는 것을 오디션 프로그램이 해내는 것이라면, 그 프로그램은 오, 괜찮은 프로그램이 아닌가. 가수를 '만들어' 파는 이 때에 '숨어있던 가수를 찾아내'다니, 이 얼마나 기쁜일인가!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바람 불면 울렁이는 기분 탓에 나도 모르게
바람 불면 저편에서 그대여 니 모습이 자꾸 겹쳐 (벚꽃 엔딩 中)
참 이상하다. 목소리도 가사도 세련되기 보다는 촌스러운 쪽에 가깝게 느껴지는데 그런 목소리와 가사가 어우러진 노래가 듣기에 좋다. 이것이야말로 노래가 아닌가 싶어지는거다. 나는 그들의 앨범중에서는 특히나 「여수 밤바다」와 「첫사랑」이 좋다. 혼자 바닷가에 가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그들의 노래나 듣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