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이 영화가 참 좋은데 더이상 알라딘에 40자평을 쓸 수 없어서 안타깝다. 나는 영화를 보고난 후에는 아, 40자로 어떻게 말하지, 하고 잠깐씩 고민하곤 했는데. 이제는 더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네, 쓸수가 없으니까.


오래전에 자식을 잃은 부부가 나온다. 아내는 자식을 잃은것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늘 집 안에서만 지낸다. 바깥에서 신문을 가져오는 일 조차 할 수가 없다. 남편은 단골 레스토랑의 웨이트리스와 사년째 잠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 이 부부 사이에 별 대화는 없다. 그들은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다. 다툼도 웃음도 없이, 그저 그렇게. 남편은 또한번 소중한 사람을 잃는 상처를 받게되지만 그것을 아내에게 말하지 못하는채로 차고에 들어가 혼자 흐느낀다. 그리고 그는 업무차 출장을 간다. 출장을 간 곳에서 그는 죽기전의 자신의 딸과 비슷한 나이의 스트립걸을 만나게 된다. 그녀는 그에게 랩댄스를 춰주고 돈을 받기를 원하지만 그는 그녀를 손끝하나 건드릴 생각이 없다. 그는 회사를 팔아치우고 아내에게 전화를 해서 당분간 당신에게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한뒤, 스트립 걸을 돌봐주기로 한다. 그녀의 집에 다시 전기가 들어오도록 해주고, 그녀의 옷을 빨아주고, 그녀 집의 화장실 막힌 변기를 뚫어준다. 그녀가 일을 끝내면 데리러 가주고 그녀에게 꼬박꼬박 생활비도 준다. 그녀도 역시 점차로 그를 좋아하게 되고, 그가 자신에게 화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와 함께 지내면서 거칠게 말하는 것도 고쳐가려고 애쓴다. 그런참에 그의 아내가, 그를 만나러 그가 있는 곳으로 온다. 그의 아내, 그녀로서는 아주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혼자서 레스토랑에 가서 밥을 먹고 지도를 보고 운전을 하고 하는 것들. 그녀에겐 너무 오랜만이라 낯설다. 낯설고 익숙하지 않아서 그녀는 내내 긴장한다. 


아내는 드디어 그가 있는 곳에 도착한다. 그리고 그에게 전화를 건다. 나 여기 있다고, 당신이 있는 이곳에. 남편은 아내의 전화를 받고 놀란다. 그녀가 내게로 오다니, 그녀가 외출을 하다니. 남편은 거기에 그대로 있으라고 말한뒤에 그녀가 있는곳으로 달려간다. 그리고 그녀를 만난다. 당신이 바깥으로 나올 줄 알았다면 내가 좀 더 일찍 낯선곳으로 올걸 그랬어. 남편은 아내의 외출을 진심으로 행복해한다. 아내는 남편을 만나서 이제 웃는다. 치유될 수 없었던 그녀의 증상은 그녀 스스로 사랑하는 남편을 찾으러 오면서 치유가 되었다. 


이 영화에서 좋았던 장면은 사실 이 장면 말고도 여럿 있었지만, 나는 이 장면이 무척이나 좋았다. 삼십년이나 함께 살아온 부부. 그들은 삼십년을 함께 지내면서 같은 아픔을 겪었고 같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들에게 더이상의 대화는 없었고 그들에게 더이상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 듯 보였다. 둘은 해야할 말들을 하지 않은채 살았고 아픔은 각자 삭혀야했다. 상처가 없었다고 해도 서로에게 권태를 느낄지도 모를 삼십년이란 긴 세월이 지났건만,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서로를 걱정하고 있었다. 삼십년이 지나도 상대의 치유를 진심으로 기뻐할 수 있는 것이 내게는 사랑의 완성으로 보였다. 아, 저런건가. 저런게 사랑인건가. 사랑은 저런건가 싶어졌다. 사랑이란 건 한 순간의 열정이 지나도 서로에게 지치지도 지겨워지지도 않는거라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상대에게 여전히 행복과 웃음을 줄 수 있는거라고. 나는 늘 사랑이란 한 순간이라 믿어왔지만, 아니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거라고, 그런 생각이 그 장면에서 들었다. 여전히 나는 영원한 사랑이란 것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지만(도대체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니까), 그러나 어쩌면 아주아주 오래 지속되는 사랑은 존재할 거라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인 남자도 엄청 좋았지만(웃는 모습이 진짜 귀엽다!), 영화 『트와일라잇』에서보다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훨씬 더 좋아졌다. 그녀는 이미 엄청난 인기를 받는 스타가 되어 있었는데, 이 영화속에서는 예쁘장한 하이틴 여자배우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그녀는 세상사에 찌들어서 입이 거칠어졌고, 세상은 온통 더러운 욕망으로 가득차있다는 걸 깨달은 여자지만, 그러나 자신이 아끼는 상대가 자신에게 화내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마음 약한 소녀로 나온다. 게다가, 엄청나게 예쁘다. 오와- 스트립댄스를 추기위해 망사스타킹을 입은 모습보다, 헐렁한 청바지와 커다란 박스티를 입은 그녀가 세상에 얼마나 예쁜지. 진정한 여자의 아름다움은 박스티에서 나오는게 아닐까 싶어졌다. 박스티를 입고 예쁜 여자가 진짜 예쁜 여자가 아닐까. 하아- 


만약 이 영화가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주며 오래오래 행복하게 함께 살았습니다, 라는 결말로 끝을 맺었다면, 그랬다면 나는 이 영화를 좋아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아 이건 너무나 뻔한 영화잖아, 라고 신경질을 냈을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는 그것을 말해준다. 나를 당신들의 딸처럼 취급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들의 딸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들도 한순간 딸같은 그녀에게 몰두했었음을 알게된다. 그녀를 딸 취급했음을. 저 아이는 우리의 딸이 아니에요. 그러나 그런 것을 스스로에게 또 상대에게 납득시키고 받아들이는 그 과정동안 이미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났다. 그러니 괜찮다. 이제 그들이 서로 떨어져 각자 산다고 한들 분명 그들이 서로 만나기 전보다는 더 나은 삶이 펼쳐지게 될테니까.




백진희가 했다, 고백을. 거절당했다, 역시. 여동생 같다, 는 것이 이유였는데, 사실 그 이유가 무엇이든간에 그녀에게 일어난 일은 '거절' 이다. 여동생 같다고? 흥. 개나 주라지. 사실 나는 하이킥에서 백진희 캐릭터를 참 안좋아라 하는데(가장 좋아하는 캐릭터는 박지선. 박지선 짱임!!), 이날 고백씬은 아니아니, 거절씬은 흠뻑 빠져들었다. 그녀가 괜찮다고 해서, 억지 웃음을 지으며 자신은 괜찮다고 해서, 혼자 좀 앉아있겠다고 해서, 그곳이 어느 공원의 벤치여서, 그녀가 캔커피를 들고 있어서, 그가 떠난 뒤에 홀로 앉아 눈물을 흘려서, 그녀가 생각하는 건 그와 단둘이 있었을 때의 일들이어서, 그녀가 짧은 치마를 입었을 때 그가 자켓을 벗어 덮어주던 일, 아아, 그런걸 왜 떠올리는지 나는 알겠어, 그렇지만 이 여자야, 자켓을 벗어주는 건 사랑이 아니야, 그렇지만 그럴 때 사랑을 느꼈다한들 당신에겐 잘못은 없어, 당신은 사랑을 느낄만 했어, 어떻게 그게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겠어. 캔커피 대신 맥주캔을 쥐어줬다면, 공원 벤치에 앉아있는 백진희는 영락없이 과거 어느 한 때의 나다. 아 젠장, 남자 때문에 속상해서 공원 벤치에 앉아 우는 일이 생기다니, 그런 일을 겪게 되다니. 그렇지만 그 시간을 견디는 것도 그리 나쁜건 아니다. 그 시간은 반드시 지나간다. 그것만큼은 내가 장담한다. 공원 벤치에 앉아 혼자 늦은밤에 우는 일, 그거 괜찮아, 해도 된다. 그러나 물론,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았으면 한다.




이 앨범은 도대체 어떻게 살 수 있는걸까? 디지털로만 판매하는걸까? 젠장. 게다가 내가 올리고 싶은 노래의 동영상 조차도 찾을 수가 없더라. 대체 왜?



3215



보고싶어서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무작정 그 버스에 올랐어
나를 안으며, 사랑한다 말하던
우리 추억이 사는 그 동네를 가는 길

많이 변했다 예전같지 않은 풍경에
너무 놀라서 바보같이 눈물이 났어
그렇게 다짐을 했었는데

많이 변했니?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보다
밥은 챙겨먹는지 아픈곳은 없는지
가끔 걱정되곤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땐 몰랐지 우리가 헤어지게 될 순간을
참 많이 싸웠었고 참 많이 미워했지
돌이켜 생각하면 너에게 미안해

많이 변했니?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보다
밥은 챙겨먹는지 아픈곳은 없는지
가끔 걱정되곤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땐 몰랐지 우리가 헤어지게 될 순간을
참 많이 싸웠었고 참 많이 미워했지
돌이켜 생각하면 너에게 미안해

잊을 수 있니? 우리가 사랑했던 그 기억들
참 많이 좋아하고 너무나 사랑했던
그때의 계절을... 그 기억의 시절



3215란 제목만 보고는 고개를 갸웃했었다. 뭐지? 그러나 노래를 들으면서야 비로소 아, 버스 번호구나 싶었다. 나도 그렇게 만들 수 있는 버스 번호가 있는데, 그렇지만 여정이 훤히 드러나는 그 버스의 번호를 적지는 않겠다.

사람들이 사는건 별반 다르지가 않다. 헤어진 사람이 그리워서, 만날 수 없을거란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미친 기대감으로 그 사람과 함께 탔던 버스를 타고, 그 사람과 함께 갔던 장소엘 가고. 하하하, 웃음만 나온다. 나 역시 그런 장소에 몇 번이고 가보았지만, 내 기대는 언제나 불발에 그쳤었다. 한번도 그곳에서 그 사람을 만났던 적은 없다. 그러면서도 다음에 또 가보고, 또 가보고. 대체 그런 미친짓을 왜 했던걸까. 만났다면, 그랬다면 또 뭘 어쨌을라고? 나 너를 만나려고 수도없이 이곳에 왔었다, 라는 따위의 말을 하려고?

밥은 챙겨먹는지, 반찬은 어떤걸 먹는지, 아픈 곳은 없는지, 춥진 않은지, 수면 양말을 신고 자는지 따위를 이제는 내가 물어서도 안되고 또 설사 물었다 한들 다 부질없는 것들이지만, 나는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 3215 를 들으면서, 자꾸만 흥얼대고 고개를 끄덕인다. 잊을 수 있니? 그래 잊혀지긴 하겠지. 그렇지만 때때로 문득 가끔 생각나지 않을까. 내가 기억하는게 당신의 손이 움직이던 모습이라면 당신은 내 휘청거리던 발걸음을 떠올릴지도 모르지. 우리는 아마도 다른 것들을 생각하겠지. 그렇지만  그 다른 생각들 속에 우리는 함께 있었는데. 너를 읽었는데, 너의 행간을 읽지 못했어. 그렇게 나는 너를 잃었지.



그나저나 에피톤 프로젝트 새 앨범 언제 나오는걸까? 콘서트에서 언제쯤 나올거다, 라고 말했던 건 생각나는데 그게 언제쯤인지는 통 기억이 나지를 않네.



출근할 때부터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만 반복하고 있는 월요일이다. 슬라이스 햄이 몇 겹으로 겹쳐져 있고 체다 치즈가 들어있는, 양상치도 아주 푸짐하게 들어있는 그런 샌드위치를 먹고 싶다. 오렌지 쥬스도 곁들여 마시고 싶다. 햇볕이 따뜻했으면 좋겠고, 에피톤 프로젝트의 노래가 흘러 나왔으면 좋겠다. 집에 가고만 싶다. 집에 가는 길에 로또를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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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13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13 1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13 10: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13 1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moonnight 2012-02-13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웰컴 투.." 어제 보려다가 늦잠 자는 바람에(열두 시 삼십분에 한 번 상영 -_-) 미뤄뒀는데. 수요일에 꼭 볼래요. 기대기대 ^^ 크리스틴 스튜어트. 진짜 너무 예뻐요. >.< 연기도 잘 하고, 얼굴도 예쁘고. 거기다 그 몸은 사람의 몸이 아니에욧!!! (왜 화를 내고 있;;;)

여기는 눈오는 월요일이에요. 아아. 집에 가서 이불 덮어쓰고 잠들어버리고 싶어요. -_ㅠ 점심 든든히 드시고 오늘도 우리, 힘내자구요. ^^

다락방 2012-02-14 09:04   좋아요 0 | URL
저 트왈랏에서는 잘 몰랐었는데요(에드워드 보느라 정신이 없엇;;) 이 영화 보니까 와, 몸매 진짜 장난 아니에요. 너무 마른것 같아서 그게 좀 그렇지만, 세상에, 다리가 완전 길어요. 사람의 다리가 아니에요. 엄청 길어요 엄청. 다리가 끝이 안나. 하아-

저는 오늘도 집에 가서 일찍 잘래요. 당분간은 그냥 집에 가서 일찍 잘거에요. 잠만 잘거에요. ㅠㅠ

치니 2012-02-13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스 티가 잘 어울리는 것과 비슷한 사례로, 여자가 남자 옷(하얀 와이셔츠 등)을 입어 박스 티의 효과가 나는데 눈이 부시게 이쁠 때, 후아 - 이건 같은 여성으로서도 홀라당 넘어가게 되는 매력 포인트인 듯. 이젠 너무나 많은 광고에서 써먹어서 클리셰가 되었지만요. 암튼 그래서 모든 코디에서 마른 몸매가 유리한가 봐요 힝.

굿바이 2012-02-13 12:52   좋아요 0 | URL
치니님의 댓글을 읽고 꼭 남기고 싶은 에피소드 하나!
제 친구가 말이죠, 드라마의 한 장면, 그게 아마 뉴욕에 사는 여자 네 명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여튼 주인공이 연못인가 강에 빠진 후 남자친구 집에 가서 셔츠를 빌려입고 자기 집에 가는 장면이 있는데, 드라마에서는 남자친구의 셔츠에 벨트를 하자 미니드레스처럼 연출이 되거든요, 그런데 제 친구는 완전.... 친구는 허리가 길고, 남자친구는 체구가 작고....상상해 보세요? 얼마나 웃겼을지 ㅋㅋㅋ
여튼 그 이야기 듣다가 기절하게 웃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락방 2012-02-14 09:21   좋아요 0 | URL
스미스 부부에서 안젤리나 졸리가 와이셔츠 입고 총싸움했던 거 생각나네요. 어휴...완전 멋져. 그여자는 뭘 걸쳐도 멋져. 맞아요. 모든 코디에서 마른 몸매가 유리한 것 같긴 해요. 일단 뭘 걸쳐도 뽀대가 나니깐요. 일전에 이효리가 어떤 뮤비에서 박스티 입고 나왔는데 엄청 예쁘더라구요. 저 그 뮤비보면서 박스티 입고 친구들하고 등산갔는데 그냥 막 스스로 초라하고, 나는 왜 이효리가 아닌 것인가 이런 좌절감이 쓰나미처럼 몰려온...................


굿바이님, 일전에 제가 작고 마른 남자랑 교제한 적이 있었는데요, 뭐 교제라기보다는 음 친하게 지낸 정도? 암튼 녀석은 꽤 장난끼가 다분한 놈이었는데, 툭하면 저한테 바지를 바꿔 입어 보자고 했었어요. 내 바지는 자신한테 클것 같다며 -_- 반면 그녀석 바지는 제 무릎에도 안 들어갈것 같았어요. 녀석이 복고풍으로 입고 다녀서 몸에 딱 붙는 바지를 즐겨 입었거든요. 키 작은 근육질의 녀석이었죠. 아우..

2012-02-13 2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2-02-14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dreamout 2012-02-14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동생 같다. 라는 대사 들으니까.. 토이의 좋은 사람. 생각 나는 걸요...
뭐... 남자도 비슷하답니다.

다락방 2012-02-14 09:23   좋아요 0 | URL
그쵸, 사실 너무 식상한 말인데 누구나 한번쯤 말해보거나 들어본 경험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여동생같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고, 넌 남자가 아니라 친구야 따위의 말을 누군가에게 한 적도 있네요. 하하하하하. 이런건 그때 당시에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말이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 정말 오글거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