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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히스토리아 1 - 불멸의 소년과 떠나는 역사 시간여행 ㅣ 피터 히스토리아
교육공동체 나다 지음, 송동근 그림 / 북인더갭 / 2011년 8월
평점 :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으면서 학창시절에 윤리과목의 교과서가 이랬다면 혹은 윤리교사들이 이렇게 가르쳐줬다면 나는 그 과목에 더 재미를 붙이고 열심히 하고 또 더 잘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이 책, 『피터 히스토리아』를 읽으면서는 그때보다 더한 원망이 생겨났다. 왜 내가 배웠던 역사는 그토록 지루하기만 했던가. 왜이렇게 재미있지 않았지?
뭐든 외우는 건 잘하지 못하는 내가-암기과목은 다들 형편없는 점수였다- 국사나 세계사란 과목에서 멍청한 점수를 받는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과목들은 외워야 하는 것들에 불과했다. 단순한 사실들의 연대순 나열과 혹은 지리적 위치 따위는 내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런데 이십대 후반, 역사를 전공했던 친구가 김유신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버스안에서 들려주었을 때는 그토록 지루하고 재미없게만 생각했던 국사가 엄청 재미있는거다. 왜 선생님들은 내 친구처럼 재미있게 이야기해주지 못했을까? 아니면 그때 선생님들도 재미있게 가르쳐줬지만 내가 그것을 단순히 공부해야 하는 과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편견을 덧씌운걸까?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버스안에서 내 친구가 들려주었던 역사처럼, '사람이 사는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했다, 라는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그때 거기서 그들에게 그런 역사적 사건이 있었던건, 어떤 원인들 때문이고, 그것들은 이러한 면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등의 '사는 모습'에 대한 이.야.기. 나는 이 책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의 귀를 기울이다가 역사속에서 그들이 당한 핍박을 알게 되고 그것들이 어떤식의 증거로 기록되어 있는지도 알게 됐다.
이 책 속에서 역사에 대해 들려주는 주인공은 '페테루'인데, 이 소년은 그 역사들의 곳곳에 숨쉬면서 거기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들려준다. 처음, 자신의 평화로운 마을을 침략하고 노예로 생활하게 되면서 아버지를 잃은 페테루에게 친구는 도망치라고 말한다. 여기가 아닌 분명 더 넓은 세상, 살기 좋은 곳이 있을것이고 늘 더 큰 세상을 기대해왔던만큼 그곳으로 가보라고, 여기에 갇혀있지 말라고.

사람이 사람을 노예로 부리고 사람이 사람을 때리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을 페테루는 눈앞에서 본다. 그의 눈에 이것들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왜 죽어야 하는지 모르는채로 죽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답을 그는 얻고 싶다. 그가 세상으로 나가기 전에, 함무라비 법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말이야, 조그 더 복잡한 법의 체계가 필요했던 이유는 사회가 복잡해져서만은 아닌 것 같아. 어쩌면 법으로 만들어서라도 지키게 해야 했던 뭔가 억지스럽고 부자연스런 규칙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일테면 국가니 법이니 학교니 이런 것들이 필요 없던 시절에는 너무나 단순하고 그래서 너무나 당연해 보였던 공평성을 굳이 무너뜨려야 했다든가 …… (p.54)

페테루는 그렇게 현인들로 가득찬 그리스로 간다. 거기에서 페테루는 '철학을 말하는 삶'을 사는 자들이 얼마나 부조리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한다.
누군가 그리스의 철학자들에게 밥을 주지 않았다면 그 대단하다는 그리스 철학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위대한 고대 문명을 쌓아올린 그리스인들이라고들 하지만 신전 한귀퉁이의 돌 하나도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옮긴 적이 없었어. (p.106)
유월절이란게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게 대체 뭘 뜻하는건지는 알지 못했었는데, 이 책에선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


유월절에 대해 나는 처음으로 알게됐는데, 여기서 잠깐 이 책과는 상관없는 다른 얘기를 하자면, 위의 부분을 읽다가 나는 '버트런트 러셀'의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떠올리고 말았다. 자신을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은 자신을 믿는 이들을 괴롭힌다는 이유로 그들을 벌을 준다는게, 그 벌이 그들의 첫째 아들을 죽인다는 게, 그게 과연 '신'이 할만한 일일까? 나를 괴롭히는 자에게 목숨을 빼앗는 것으로 복수하다니, 인간과 다른게 뭐지? 버트런트 러셀을 읽었으니 'C.S. 루이스'의 이야기도 들어보자 싶어서 『순전한 기독교』도 사두었는데, 아, 나는 어쩐지 러셀쪽으로 마음이 기울고야 만다.
'김진명'의 『황태자비 납치사건』에서는 '역사는 힘있는 자의 기술' 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동안의 역사가 힘 있는 자의 기술임을 나는 부인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역사를 가르치려는 사람들 역시도 힘 있는 자들쪽에 서있었던 게 아니었나 싶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역사에 대해 어느 한쪽면만을 봤던게 아닐까. 모두에게 영웅인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 소수에게 영웅은 다수에게 적일수도 있었을 것이고 다수의 영웅은 소수에게 악마일 수도 있었을 것인데, 영웅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영웅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역사가 가르쳐야 하는게 아닐까.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었던 바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 책을 읽음으로써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하나씩 처음부터 배워나가고 있다. 요즘에는 책을 읽으면 웬만해선 바로 중고샵에 팔아버리자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 책도 그러려고 했는데, 아, 그러면 안되겠다. 책장 한켠에 꽂아두고 가끔씩 들추어봐야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됐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나는 언젠가는 기억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니까, 그때 다시 펼쳐 보아야지. 조카가 좀 더 크면 이 책을 읽히고 싶은데 그때 이 책이 절판될까 두려워서 나는 이 책을 역사에 관심이 많은 제부에게 선물로 보냈다. 역사를 사랑하는 친구를 위해서도 한 권 더 사두었다.
나는 역사에 대해서라면 아는 것이 전무한 상황이라 이 책에 설사 어떤 오류가 있다한들 잡아낼 수 없겠지만, 또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처음부터 말해주는 것들을 아주 재미있게 흡수할 수 있다. 이런 책을 읽는다고 하면 회사에서 그래, 그럼 그 책 다 읽을 때까지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라고 해주었으면 좋겠다. 이 책 읽고 싶어서 업무에 집중이 안되잖아.
적어도 나에게는, 이 책은 의미있고 유용한 책이다. 나에게는 '쉽게' 말하여 주는 역사책이 절실했다. 한국사에 대해서도 이 시리즈로 또 나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