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이드는 것이 두려웠다. 하루 하루 그리고 일 년 이 년, 자꾸만 내가 늙어가는 것 같아서 초조했다. '필립 베송'은 자신의 책, 『이런 사랑』에서 이렇게 말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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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젊음은 참을 수가 없다. 젊음과는 맞서 싸울 수가 없다. 우리는 같은 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 순식간에 우리 사이에 불균형이 자리를 잡는다. 더 무슨 말과 행동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말한다 해도 핵심을 비켜가게 될 것이다. 갑자기 메울 수 없을 만큼 거리가 너무 많이 벌어져버렸다. 늙고 한물가고 지친 기분이 든다.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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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역시 젊음과는 맞서 싸울 수 없다고, 그렇게만 늘 생각해왔다. 늙어가는 건 좋을거 하나 없다고, 두렵고 초라해지는 거라고. 물론 젊음과는 '다른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추상적으로 알고는 있지만, 대체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생각조차 해보려 들지 않았었다.
그런데 얼마전, 나는 나보다 젊은 사람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나이 든 내가 가진 '다른 무기'가 무엇인지 깨닫게 됐다. 나는 내가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지켜야 할 것이 있고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와 나 사이에 비밀이 없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상대의 사생활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얼마전에 누군가의 '지나친' 혹은 '끔찍한' 행위를 접하고 나서, 나는 그것은 그런 사람을 선택한 사람이 감당할 몫이라는 생각을 했다. 너는 젊고 아름다운 걸 선택했지만, 그러나 그사람의 그 모든 침범의 행위들을 감수해야 해. 그것조차 사랑하든가 혹은 그것때문에 멀어지든가, 그것은 니가 결정할 일이지. 나는 그런 일을 할 사람은 아니니까.
그러나 내가 시간을 돌려 만약 그 끔찍한 행위를 저지른 사람의 나이로 돌아가 같은 상황애 처했다면, 나 역시 똑같은 행동을 저질렀을 것이다. 그때는 그것이 잘못된 것인줄 모르고서. 그것이 마땅히 나의 권리라고 생각하면서. 새삼 내가 저런 행동을 저지르지 않을 수 있는건, 그런것이 끔찍하다는 것 쯤은 알게됐다는 건, 그동안 내가 해왔던 실수들과, 경험들과, 그리고 그러면서 쌓여갔던 시간 덕분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런 참에, 경향신문에서의 '브래드 피트' 인터뷰를 보게됐고, 거기에서 브래드 피트가 마지막에 한 말이 아주 인상깊었다.
"나이 드는 게 좋다. 나이가 들면 지혜로워지기 때문이다. 젊음과 지혜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면 물론 지혜다." (2011년 11월 16일 경향신문 33면, 브래드 피트 인터뷰中)
온다 리쿠는 그녀의 책 『밤의 피크닉』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어, '요는 타이밍이지' 라는 말을 했었더랬다. 루이스의 소설 『나니아 연대기』를 만났던 타이밍이 중요했다고 말하는 대목이었는데, 정말로 그렇다. 타이밍이다. 마침 나는 이런 생각을 했는데, 마침 브래드 피트의 저런 말을 나는 신문기사에서 읽은것이다. 가슴속에 안도감이 차올랐다. 그리고 브래드 피트가 아주아주 근사하게 느껴졌다. 당신은 나보다 더 나이가 많아서 그걸 알고 있었군요, 나이 드는게 '좋다'는 경지에까지 이르렀군요. 나는 아직 나이 드는게 '좋다'고 까지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젊음과 지혜중에 선택하라면 단번에 '지혜'라고 말하지도 못하겠지만, 그렇지만 이제는 단번에 '젊음'이라고도 말하고 싶지가 않아졌다. 나는 아마도 이렇게 나이드는 것 같다. 그러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잡문집』에서 나는 무라카미가 한 말에 밑줄을 긋게 된다. 오, 세상의 모든 일들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걸까. 어째서 하루키씨, 당신도 이 시점에 이런 이야기를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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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어서 좋을 일은 별로 없다고 생각하지만, 젊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인다거나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건 기쁜 일입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전보다 전체상을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게 됩니다. 혹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디면서 지금까지 알아채지 못했던 디테일에 불현듯 눈뜨게 됩니다. 그게 나이를 먹어가는 기쁨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 경험은 인생에서 하나를 얻은 것 같은 흐뭇함에 젖어들게 합니다. 물론 반대로 젊을 때만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이나 문학도 있지만요. (p.1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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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나는 이대로 나이 들어도 좋겠다. 눈가의 주름이 늘테면 늘어나라지, 흰머리 따위, 생길테면 생기라지. 온 몸에 붙는 나잇살따위, 그래 올테면 오라지. 나는 이제 두려워하지 않고 나이를 먹어줄테다. 내가 가지지 못한것, 이미 놓쳐버린 젊음에 대해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가지게 된 것을 생각하면서.
나는 이렇게, 이제는 초조함보다는 여유를 배워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