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그 라르손'의 『밀레니엄』을 읽다보면 주인공인 '미카엘'이 '발 맥더미드'의 『인어의 노래』를 읽기 시작했다는 부분이 나온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으음, 이건 내가 제목만 아는 그 책인가 보군, 하며 읽다보니 미카엘이 인어의 노래를 다 읽었다고 하면서 결말에 대해 언급한다. 그때 미카엘이 '결말이 섬뜩했다'고 한 것 같은데, 정확한 기억은 아니다. 된소리가 들어가는 감정이었던 것 같은데, (섬뜩이 맞는걸까),  나는 대체 그감정이 어떤건지, 그러니까 어떤 이야기이길래 그가 그러는건지 싶어서 핸드폰의 메모장에 메모해 두었었다. 읽어보자, 하고. 그래서 지금 읽고 있는데, 미카엘이 표현한 감정이 대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 밀레니엄을 뒤적여 봤지만, 인어의 노래를 읽었다는 문장을 찾을수가 없다. 아...신경질나. 패쓰. (섬뜩인..걸까?) 

 

 

 

 

 

 



 

아직 절반 밖에 읽지 못해서 결말이 어떨지는 짐작을 못하겠다. 내가 미카엘같은 그런 느낌을 받게 될까? 그런데 이 책, 꽤 재미있다. 연쇄살인의 범죄자를 프로파일 하는 그 과정보다는, 이 책 속에 등장하는 남자와 여자, 그 둘의 관계가 아주 마음에 든다. 일로서 만났지만 상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남자와 여자. 그들은 서로를 '여자'와 '남자'로 대하는게 아니라 '동료'나 '이제 막 알게 된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춘 사이'에서 으레 그렇듯이 처음 만나서는 악수를 한다. 

   
  토니는 미소를 짓고 한 손을 내밀었다. 매력적인 미소군, 캐롤은 특징 목록에 더하며 악수를 나누었다. 악수도 좋아. 수많은 경찰 관료들처럼 상대의 손을 부술 것 같은 마초 느낌이 없으면서 단단하고 마른 손길이었다. (p.46) 
 
   


악수도 좋아. 이 문장이 너무 좋아서 나는 웃었다.  나는 연인이 아닌 남자에게는 곧잘 먼저 손을 내밀어 악수를 권하곤 하는데, 그때 악수하는 느낌이 좋은 남자에게 호감이 가는 것은 물론이다. 악수가 가진 힘은 묘한것이어서, 일단 내가 악수를 권하면 상대는 악수를 거절하지는 않는다. 그점에서 나는 내가 거부당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고, 또한 악수만으로는 내가 상대에게 이성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지 아닌지를 들키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호기심은 악수 후에 생기는 경우도 많고. 악수는 손과 손으로 호감을 전해줌과 동시에 또 거의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거기에는 예의와 반가움이 있지만 성적 호기심은 없(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몇년전 여러 남자사람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평소 늘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한 남자와 너무 손을 잡아보고 싶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평소에 여러명이 자주 모이는 사이었고, 거기에 여자사람이라곤 나 하나 뿐이라서 대체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는거다. 그래서 술자리가 파하고 모두가 집으로 돌아가기로 하면서 헤어지는 그 순간에, 그가 나와는 다른 방향으로 간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며, 나는 잘 들어가요, 라고 말하면서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자고. 그때 그는 내 손을 마주잡고 나와 악수를 했는데, 오, 신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고, 그는 좀처럼 악수한 손을 풀지를 않았다. 이쯤되면 이 악수는 끝나야 하는건데, 그는 꽉 쥐고 그 손을 놓지 않았고, 나는 깜짝 놀라 눈이 커져서는 그를 마주 쳐다보았고, 그리고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지금은 모두가 서로 작별인사를 하느라 왁자지껄 하지만, 곧 모두가 이 악수한 손에 시선이 머무를텐데, 손을 빨리 놔야 하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놓기가 싫었다. 어쩌지. 결국 나는 웃으면서 뭐라고 말한뒤에 악수를 풀 수 있었는데, 그때 내가 대체 뭐라고 말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 뒤로 우리는 여러차례 모임에서 잠깐 둘이 나갔다 오는 사이가 되었고(응?),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기도 했으며(응?), 모임이 파한뒤에 둘만 포장마차에 가서 우동을 먹기도 했다. 음, 지금 생각났는데, 그 우동값 내가 냈다..

  

호감은 있으나 고민중인 상대가 있다면, 혹은 그렇게까지 호감을 가지지 않았던 상대에 대해서라도, 우리는 무장해제되는 순간을 경험할 때가 있다. 그것은 내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한가지를 충족시켜줬을 때 일수도 있지만, 내가 지금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충족시켜줬을 때 일수도 있다. 이 책 속의 여자에게는 커피가 필요조건인 상태에 이르렀을 때, 커피를 준 남자에 대해 무장해제 되어버렸다. 

   
  토니는 커다란 서모스 주전자를 캐비닛에서 꺼내 사라졌다. 그는 5분만에 김이 오르는 머그컵과 주전자를 들고 나타났다. 그는 캐롤에게 머그컵을 건네주고 주전자 쪽으로 손짓했다.
"제가 채워 왔습니다. 언젠가 또 마실 것 같기에. 마음대로 드십시오."
캐롤은 고마운 듯 한 모금 마셨다.
"저랑 결혼하실래요?"
캐롤은 장난스럽게 물었다. 토니는 속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을 감추려고 웃었다. 별거 아닌 장난에도 익숙한 반응이었다.
(p.107) 
 
   


여자가 남자에게 저랑 결혼하실래요, 라고 저 순간에 물었던 것은 '장난스럽게' 였긴 해도 장난이었던 것은 아니다. 장난스럽게 물었던 것은 상대의 반응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지, 자신의 감정이 장난이었기 때문은 아닌것이다. 저 순간 여자에게 그 남자와의 결혼은 가장 충만하고 완벽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니까 그 순간에는. 그러니 그 다음 그들에게 어떤일이 벌어지고 서로에게 어떤 감정이 찾아온다 한들, 저 순간의 저 말은 농담이 아니고, 장난이 아니고, 진심인 것이다. 

 

내가 아는 '키가 작으면서 멋있는' 남자는 이 세상에 '탐 크루즈'밖에 없는 것 같은데, 이 책속의 남자가 추가될것 같다. 그는 173센티인데, 내가 까무러치게 좋아할만한 유머를 구사한다. 오오-  게다가 싱글.

   
  "당신처럼 괜찮은 사람이라면 한참 전에 여자가 데려갔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놀리는 듯한 말투는 토니가 원했던 뭔가를 숨기고 있었다.
"아, 당신은 좋은 측면만 본 겁니다. 보름달이 되면 제 손바닥엔 털이 나고 달을 향해 울부짖지요."
(p.256) 
 
   


아, 나 이런거 너무 좋아. 보름달이 되면 늑대인간이 된대. 하아- 으르렁 거려줘요, 토니. 흑흑. 너무 좋아. 이 농담을 하던 순간의 여자와 남자는 마주앉아 커리를 먹고 있었는데, 만약 내가 남자의 앞에서 커리를 먹고 있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면 커리 대신.........그만두자. 

  

이 책의 나머지 절반을 읽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 하는데, 나는 어쩔 수 없이 직장인..하아- 오늘은 술을 마시지 않고 일찍 퇴근해서 집에서 저녁을 먹고 조용히 방안에 들어가 이 책을 마저 읽어야겠다. 여자와 남자가 앞으로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지 몹시 궁금하다. 그리고 그 둘은 어떤 관계가 될지. 빨리 퇴근하고 싶다. 빨리,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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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11-02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 낭만적이고 아름답고 잘 어울리는 대단한 남정네와 아가씨네요. 어떻게 커리를 먹으면서 저런 명문장(?)을 만들어낼 수가 있을까요? 부러워요, 진짜! 그런데 다락방님 퇴근하시려면 아직 네 시간 정도 남았네요. 저는 두 시간 뒤면 집에 가는데 ㅎㅎ 집에 가는 길에 토니처럼 유머 있는 말대답을 연구해봐야겠어요. 카레가 맛있군요, 같은 밋밋한 대답을 피하려면!

다락방 2011-11-03 18:18   좋아요 0 | URL
오늘은 여섯시가 넘었는데도 보쓰의 눈치를 보느라(흑) 퇴근을 못하고 있어요. 친구가 소주 한잔 하자고 오고 있는데. 흑흑
전 유머있는 남자가 너무 좋아요. 특히 늑대인간 유머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유머죠. 후훗. 저는 실제로 보름달이 떴을 때 나는 늑대로 변신한다고 농담하고 다니고 그랬는데, 이 지구상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또 있다니, 신나서 미치겠어요. ㅎㅎㅎㅎㅎ

moonnight 2011-11-02 15: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미카엘이 인어의 노래를 읽는다는 대목이 밀레니엄에 나왔었던가요. -_-;;; 이런 일이 (종종) 있을 때면 좌절하게 됩니다. 좋아한다. 아주 좋아하는 책이라고 노래를 부르고 다녔었는데, 이런 중요한 대목을 기억도 못하다니. 크릉!!!!

저는.. 저는.. 인어의 노래를 사놓고 아직 못 읽고 있어요. (그런 책이 한둘이냐. ㅠ_ㅠ) 지금 김어준의 책을 (막 괴로워하면서) 읽고 있는 중인데 얼른 이 책 읽고 싶어요. 어쩌나. ㅠ_ㅠ;;

다락방 2011-11-03 18:22   좋아요 1 | URL
기억할만한 중요한 일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저는 결말이 섬뜩하다는 문장 때문에 대체 왜지, 뭐지, 이런 생각이 들어가지고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메모장에 인어의노래-미카엘 이렇게 적어두었었어요.

인어의 노래는 이제 거의 다 읽어 가는데 흑흑 399페이지에서 저는 이미 먹먹해져가지고 ㅠㅠ
재미있어요, 문나잇님. 인어의 노래 말입니다. 잘 읽힐 거에요. 어서 읽어보세요!

2011-11-02 15: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11-03 18: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버벌 2011-11-02 18: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잉? 저도 생각이 잘 안나요. 미카엘이 이걸 읽었었나요? "인어의노래"는 가지고는 있지만 아직 읽지 않는 소설 중 하나에요. 사고 싶은 책이 많은데 아직 읽지 않은 책도 한참이니... 엄마는 더이상 책을 사선 안된다고 못을 박았어요. 결혼하고 사라고. 하지만 전... 언제 결혼할지 알 수 가 없는데 말입니다. 그럴수 없다고 엄마에게 저도 못을 박았어요. (버뜨 요즘은 책을 사지 못하고 있어요. 주머니 사정이 급속도로 나빠졌거든요. 쓴게 없는데 다 어디로 갔을까요?)

에디 2011-11-02 19:37   좋아요 1 | URL
저도 미카엘이 이걸 읽었는지 완전히 모르고 있었네요. 그러고 보니 무슨 책을 읽긴 한것 같은데...

버벌님, 저도 그렇긴 한데 카드 영수증에 진리가 있습니다. 아멘!

버벌 2011-11-03 18:50   좋아요 1 | URL
믿씁니다 ㅣOOㅣ

다락방 2011-11-04 08:28   좋아요 1 | URL
저도 엄마가 제발 책 다 들고 시집 가버리라고.. ( '')
그래서 요즘엔 책을 사면서 자꾸 그만큼 바깥으로 내보내요. 중고샵에 팔기도 하고 방출하기도 하고 친구들에게 주기도 하고. 쌓이기만 하면 내쫓길까봐 --;;
그래서 이제는 안사기로 결심, 또 결심하였답니다. ㅎㅎㅎㅎㅎ늘 다음 책을 사기 전까지는 잘 지켜져요. 후후.

인어의 노래는 재미있어요. 버벌님도, 에디님도 재미있게 느끼실 것 같아요.

무스탕 2011-11-03 0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도 늑대도 손바닥 발바닥엔 털이 안나요. 손 등이나 발 등에 털이 나지요 =3=3=3
만약 저렇게 보름달 뜨는 밤의 비밀을 털어 놓는 남자를 만나거들랑 꼭 다락방님의 비밀도 털어 놓으세요.
'전 외따로이 떨어진 호젓한 집에 혼자 살고 있고 보름달이 뜨는 밤 자정이면 스윽스윽 칼 을 갈고 꼬리가 아홉개가 나와요' 하고요 =3=3=3

아.. 오늘도 끝내주는 날씨겠어요~♡

다락방 2011-11-04 08:29   좋아요 1 | URL
맞네요 무스탕님 ㅋㅋㅋㅋㅋ 손바닥 발바닥에는 털이... 안나네요. 손등과 발등에 난다고 했어야 되는건데, 그쵸? ㅎㅎㅎㅎ 그렇지만 저는 구미호보다는 뱀파이어가 더 되고 싶어요, 무스탕님. 뱀파이어 되서 영생을 누렸어면 좋겠어요. 하아-

주말에 서울은 비온다네요. 그리고 금요일 아침인 지금은 날씨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요. 화창할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