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연히 어딘가에서 집어 들게 된 신문은 중앙일보였는데, 중앙일보의 전체가 아니라 북섹션 이었다. 중앙일보도 토요일마다 문학에 관련된 기사가 나오는가 보구나, 그런데 누가 이것만 빼놓았을까, 싶어 나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사실 내가 끌린건 이문열의 인터뷰였고, '신경숙은 대단한 일을 했다'는 그의 말이 눈에 띄어서 였는데, 읽다가 재미없어서 관두고 넘겨보다가 오호, 마이클 코넬리의 인터뷰를 보았다. 오! 마이클 코넬리!
나는 그의 작품이라면 [시인] 밖에 읽어보지 못한채로,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지,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의 작품은 퍽 재미있었지만, 내가 꼭 찾아 읽고 싶을 만큼은 아니었다. [시인]의 첫문장은 무척이나 유명한데,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죽음 담당이다(Death is my beat)'
내 기억이 맞다면, 나는 아마도 이 문장을 브론테님의 서재에서 봤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이 문장 때문에 이 책을 읽었던 것 같다. 지금 책장에서 이 책을 꺼내어보니 포스트잇을 붙여놓았거나 밑줄을 그어 놓은 부분은 없다. 그러나 방출을 하지도 않았다. 이 책은 여전히 책장에 꽂혀있다. 어쨌든, 나는 오늘 중앙일보의 마이클 코넬리 인터뷰를 보면서 [링컨차를 타는 변호사]를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영화로 만들어져서 곧 개봉할 예정이라는데, 이 책에 대한 에피소드의 이런 부분에 대한 인터뷰를 읽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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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임료를 제때 못내면 매몰차게 등을 돌리지만, 돈만 주면 그 어떤 악당의 의뢰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책은 그가 "가장 오랫동안 사전 취재를 했다"고 말하는 작품이다. 아이디어가 책이 될 때까지 5년여가 걸렸다. 취재 과정에서 그는 한 변호사에게 "무고한 사람만큼 무서운 의뢰인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까딱 잘못해서 유죄판결이 나오면 평생 괴로워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이 말을 책 전체의 주제로 써먹었다. (중앙일보, 4월30일자, 마이클 코넬리 인터뷰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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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서늘해지는 말이다. 무고한 사람만큼 무서운 의뢰인은 없다, 니. 까딱 잘못해서 유죄판결이 나오면 평생 괴로워해야 한다니. '까딱 잘못'은 행하는 사람에게는 까딱 잘못 일쯤일지 몰라도 '유죄판결'을 받은 무고한 사람에게는 어마어마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을 이 책 전체의 주제로 썼다니. 나는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어졌다. 한국에서 6월경에 상영된다니, 그 전에 읽어봐야 겠다. 마침 내일 1일이고 하니... ( '')
영화는 '매튜 매커너히' 주연이란다. 오. 그런데 '라이언 필립'도 나온단다. 내가 한때 아주 잠깐동안 라이언 필립을 좋아했었는데..흐음..
마이클 코넬리는 이런 말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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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에 가능한 많은 팩트를 집어넣으려고 노력한다. 사실이 가득 차 있으면 그 속에 허구를 감추기가 더 쉬워지기 때문이다. (중앙일보, 4월30일자, 마이클 코넬리 인터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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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져.. 어서 빨리 책을 사서 보고 싶구나.
오늘 드라마 [반짝반짝 빛나는]에서는 김석훈이 김현주에게 드디어 '내여자 합시다' 라고 말을 했다. 젠장. 순대국집 사장아들 김석훈은 몹시도 마음에 드는 이상형이었지만, 재벌 김석훈은 좀 별로다. 매력이 반감된다. 너무 높이 너무 멀리 갔다. 뭐 그래도 어쨌든, 나 좋다는 거 아니니까. '내여자 합시다' 란 말은 좀 깨는데 (;;) 그래도 '남자 여자로 만나봅시다'라고 하니까 갑자기 막 좋아졌다. 김현주가 서있는 뒤로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는데, 김현주는 먼 훗날 김석훈과 다시는 보지 않는 사이가 된다고 해도, 그 밤, 벚꽃이 흐드러진 길 위에서 요즘엔 자꾸 당신 생각을 합니다, 하는 고백을 들었던 그 순간을, 그 까만 어둠과, 유독 빛나던 눈동자와, 그 목소리와, 그 벚꽃과, 그 말투와, 그 떨림과, 그 설레임을 잊지 못할 것이다. 그런 순간은 살면서 어쩌다가 한번 찾아오고, 또 찾아와도 찰나지만, 그 찰나가 오랜시간을 살게 하는 힘이 된다.
나는 한순간도 남자였던 적이 없고, 앞으로도 남자로 살 수는 없다. 그리고 그럴 생각도 없다. 그러니까 남자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남자들이 좋아하는 여자를 생각한다고 말할 때, 그 생각하는 것은 하루 온종일을 의미하지는 않는 다는 것을 안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봐도 이런 문장이 나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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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진 짧은 기간에도 남자는 다른 일들을 하며 그 일들에 신경을 쓴다. 직업을 갖고 먹고살아야 하니 응당 그 일에도 정신을 빼앗긴다. 스포츠에 빠지기도 하고 예술에 관심을 갖기도 한다. 남자들은 대체로 여러 방면의 활동을 하며, 한가지 활동을 할 때는 다른 일들은 일시적으로 미루어둔다. 그때그때 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할 수가 있어, 한 가지 일이 다른일을 침범하면 못마땅해 한다. 남녀가 똑같이 사랑에 빠져 있다 하더라도 다른 점은, 여자가 하루 온종일 사랑할 수 있는 데 비해 남자는 이따금씩밖에 하지 못한다는 데에 있다.(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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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훈도 김현주에게 자주 당신 생각을 한다고 했다. 그래, 그들은 '자주' 할 것이다. 사랑에 빠져도 그들이 생각하는 건 '자주' 이겠지. 나는 아닌데. 나는 자주가 아니라 24시간인데. 왜 여자들은(혹은 나는) 사랑하는 남자를 내내 생각하는 채로,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수다를 떨 수 있는데, 남자들은 다른 일들을 신경쓰느라 좋아하는 여자를 아주 잠깐씩 밖에 생각하지 못할까. 실로 단순하고 멍청한 인간들이다.
드라마를 보고나서 내 소중한 책장에서 책 한권을 꺼내어 그 속에 감추어둔 엽서를 꺼냈다. 만년필을 사고 그 만년필로 써둔 엽서였다. 당신을 생각한다는 말을 써둔 엽서였다. 언제 어떻게 이 책과 이 엽서를 전할까 내내 고민하며 꽂아두었는데, 아, 슬프다. 지금 꺼내보니 엽서에 써진 글씨들이 대부분 지워져있다. 젠장. 아마도 엽서는 맨질맨질한 종이라 그랬는가 보다. 만년필의 잉크를 다 먹지 않았다. 언젠가 엽서를 써야지 싶어서 이름만 써두었다가 차마 말을 적지 못한채로 그대로 꽂아두었던 엽서였다. 그러다 만년필을 사고서는 미친듯이 써내려갔었다. 그래서 이름을 쓴 부분과 내용을 쓴 부분의 펜이 다르다. 색깔도, 굵기도. 이름만은 선명히 남아있는데 내용은 거의 다 지워져있다. 지워져서 전할 수 없는 엽서, 그러나 그걸 쓴 나는 알아볼 수 있는 엽서, 거기에는 이런 말들이 포함되어 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을 하고 저녁에 퇴근을 하고, 출퇴근 길에 책을 읽어요. 그 모든 일상에, 그리고 그 사이에, 그러니까 그 사이사이에 당신 생각을 합니다. 그동안의 당신과 앞으로의 당신에 대해서.
그러나 나는 이 엽서를 전할수가 없다. 이제는 정말이지 거의 다 지워져버렸다. 그 밑에 써 둔 내 이름 석자 조차도 지워져버렸다. 오로지 선명한 건 상대의 이름 뿐이다. 전할수도 없는 엽서를 차마, 버릴수도 없다.
월요일에 회사 출근할 때 가져가서 문서세단기에 갈아버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