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사랑을 위하여(원제 Dying young)]에서는 병에 걸린 남자와 간병인 여자가 등장한다. 이 영화를 본게 이십년 가량 되어서 당연히 모든 장면들이 기억나진 않지만, 사춘기 시절 유독 기억에 남았던 한 장면은, 당연히 한집에 머무르는 간병인 여자의 침실로 한밤중에 남자가 찾아가는 장면이다. 남자는 여자가 홀로 잠들어 있는 침실에 찾아가 같이 자고 싶다고 말한다. 섹스를 의미하는게 아니라 단순히 함께 잠드는 것. 그러자 여자는 자다가 깨어서는 자신이 누웠던 자리를 그에게 내어주며 자신은 옆으로 몸을 이동한다. 남자가 그녀의 침대에 누웠을 때 그 자리는 여자가 잠들어 있던 자리라 따뜻했을 거다. 나는 이 장면이 정말이지 무척 좋아서 아직까지 잊혀지지가 않는데, 그 장면 하나로 모든게 녹아있다는 생각이 드는거다. 옆에 눕고 싶다고 했는데 거부하지 않았고, 따뜻한 자리를 그에게 내어 준다는 것, 물론 그녀와 그는 간병인과 환자 사이이긴 했지만, 참으로 따뜻한 장면이 아닌가. 그 침대에 누울 때 남자는 행복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마가렛 타운이, 이 책속에서, 그걸 한다. 내가 늘 근사하다고 생각했던 일을. 스물 다섯밖에 안됐는데, 한다. 아, 질투나.
"마가렛, 내가 담당하는 과목은..."
그때 매기(마가렛의 애칭)가 내 말허리를 자르고 끼어들었다.
"당신 피곤해 보여요."
매기의 말을 듣자 나는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맞아. 나 피곤해."
내가 말했다.
"자고 싶으면 여기서 자도 돼요."
매기가 말했다.
"그 침대에서 같이 말이야?"
나는 기가 막혔다.
"네, 이 침대에서요."
그래서 나는 그 말대로 했다. 그런 제안을 날마다 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나는 그 다음 날, 즉 금요일 오후에 잠에서 깼다. 깨어보니 매기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 잤어요?"
매기가 물었다.
"응."
나는 하품을 했다. (pp.16-17)
사실 이 책은 그다지 크게 재미있지도 않고, 이 책속의 여자주인공 마가렛 타운은 내게 그다지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도 않는데, 여자가 남자를 사랑할 때 나타나는 증상들을 그녀가 책속에서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이를테면, 예쁜 구두를 신고 남자를 만나는 일 같은것.
매기는 나를 발견하자 웃음을 터뜨리며 내 이름을 불렀다. 매기는 내가 그녀를 먼저 볼 때까지 기다리지 않았다.
"예쁜 구두를 신고 나오길 잘했네."
매기가 말했다.
"외출하려던 참이었어요. 원래는 방한화를 신고 있었는데 출발하기 직전에 신발을 바꿔 신었어요."
(중략)
"헤어진 남자 친구나, 아무튼 근사하게 보이고 싶은 남자를 만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그게 당신일 줄은 몰랐어요."
"나를 만날 거라는 걸 알았더라도 예쁜 구두로 갈아 신었을까?"
매기는 고개를 꼿꼿이 쳐들더니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
"네, 그랬을 거예요."
천천히 번지는 그 미소. 아, 정말 날 미치게 했다. (pp.12-13)
매기는 스물 다섯에 벌써 그런걸 느끼고 있었구나. 좋아하는 남자를 만날 때는 예쁜 구두를 신고 싶다는 걸. 나는 스물 다섯에 힙합바지..입고 다녔는데. 나는 스물 다섯에 고무줄치마..입고 다녔는데...늘어진 면티를 입고 남자를 만났는데..긴 청바지 반으로 싹둑 잘라서 입고 다녔는데...쪼리..신고 다녔는데...아빠는 내가 거지꼴이라 날 길에서 만나도 아는 척 하고 싶지도 않다고 했는데...좋아하는 남자를 만날때 설레이는 마음으로 예쁜 구두를 신고 나가고 싶다고 생각한건 나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서른이 훌쩍 넘어서야, 최근에야 그런 생각을 했는데. 매기는 나보다 십년 먼저 그런걸 알고 있었구나..내가..많이 무디구나...애가..둔하구나... 그래서 내 스물 다섯에는 아무도 내 미소를 보고 미치지 않았구나..... 그런데.. 예쁜 구두를 신고 만나러 간 남자도 안미치던데? 날 내버려두던데? 구두, 탓은 아닌거구나.
매기는 사랑하는 남자에게 현관에 불을 켜 놓겠다고 말할줄 아는 여자다.
"당신을 위해 현관 불을 켜놓을게요, N. 어두우면 우리 집을 찾기 힘들거든요."
"내가 언제 돌아간다고 정확히 말 안 했잖아."
"당신이 돌아올 때까지 계속 켜둘 거예요."
매기가 말했다. (p.127)
매기는 N을 사랑하고 N도 매기를 사랑한다. 그러나 매기는 N이 자신을 사랑하는지 확신할 수가 없다. 때때로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를 사랑한다'는 확신을 얼마나 강하게 욕망하는지, 남자들은 모른다. 설사 가까스로 일깨워줘도 쉽게 까먹는다. 머저리들..그래서 모든 매기-이건 책을 보면 알 수 있다. 왜 모든 매기라고 하는지-를 사랑하는 N 도 매기를 서운하게 한다.
"당신은 무슨 생각인지도 말 안 하고 내 손가락에 노끈을 묶어줬어요. 우리가 처음 같이 잔 다음에도 두 달이나 전화 한 번 안했고요.(욕나와..) L 에 대해서도 한 마디도 안 했어요. 그리고 당신 자신에 대해서는 또 어떻고요? 난 당신 누나를 딱 한 번밖에 못 만났고 당신 부모님이 어떻게 되었는지도 전혀 몰라요. 당신은 비밀투성이예요. 난 당신 중간이름도 몰라요. 난 당신 이름하고 성만 알지 다른 건 하나도 모른단 말이에요." (p.132)
이 때의 매기의 서운함과 울분이 나는 뭔지 너무나 잘 알 것 같아서 같이 막 속상해하며 읽고 있는데 이 남자, 아우, 이런다.
"티모시야." (p.132)
아! 뭘 더 어떻게 말해야 할까. 갑자기 또 사랑하게 된다. 씨양. 매기는 자신이 화냈다는 것도 잊고 티모시, 하고 따라서 말해본다. 아우.. 얼때는 꽁꽁 얼지만 녹을때는 봄 눈 녹듯 녹아버리는 여자의 마음이라니. 흑. 나는 매기가 정말 별로 안좋은데, 매력도 없다고 생각하는데, 매기가 내뱉는 말들이 다 내가 내뱉는 말들 같다. 이런것도.
"보면 알겠지만 나, 당신에 관한 것은 거의 다 기억하고 있어요." (p.228)
당신에 관한 것은 거의 다 기억하는 거, 이건, 머리가 좋아서는 결코 아니다.
친구가 우유에 타 먹으라고 핫초코 믹스를 보내줘서 오늘 출근길에 우유를 사왔다. 그런데 우유를 전자렌지에 데우러 가기가 정말 너무 귀찮아서 그냥 우유만 마셔버렸다. 맛없어라.
마지막으로, Dying young 에서 여자와 남자가 춤출 때 흘러나오던 음악, all the way. 춤 추는 영상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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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en somebody loves you
It's no good unless he loves you all the way
Happy to be near you
When you need someone to cheer you all the way
Taller than the talles tree is
That's how it's got to feel
Deeper than the deep blue sea is
That's how deep it goes if it's real
When somebody needs you
It's no good unless he deeds you all the way
Through the good or lean years
And for all the in-between years come what may
Who knows where the road will lead us
Only a fool would say
But if you'll let me love you
It's for sure I'm gonna love you all the way all the way
So, if you'll let me love you
It's for sure I'm gonna love you all the way all the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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