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을 늘 사서 읽지는 않고, 사서 읽는다고 해도 모든 기사를 빠짐없이 읽지는 않는다. 뒤에서부터 읽다가 다시 편집국장의 편지부터 읽다가 하는데, 그래서 대부분의 메인 기사를 안읽고 넘기기도 한다. 그런데 오늘 출근길, 뒤적뒤적 이다가 30페이지의 [교육 in- '행복한 진로학교' 강좌 중계 6] 을 읽었고, 그 짧은 시간에, 그 기사가 내 마음을 건드렸다.
기사의 전문을 찾아 링크를 하고 싶었는데, 인터넷으로 시사인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니 찾을 수 없다. 친구에게 물어보니 인터넷으로는 한주일 느리다고 한다. 어쩔 수 없지.
[세상의 평화를 일구는 어느 공정여행가의 직업 이야기- 임영신 대표]
"실패할 기회 더 많이 줘야 잘하는 일 찾아"
임영신 대표는 자신의 학창시절을 얘기하고, 자신이 시민운동을 하게 된 계기라든가, 아름다운재단에 근무할 때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또한, 자신의 소중한 경험들과 여행에 대한 이야기들도. 나를 건드린 부분은 그녀가 이라크 여행에서의 가이드와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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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은(화면을 가리키며)이라크에 여행 가서 만난 제 생애 첫 가이드 스와드 아줌마예요. 저는 가이드라는 의미를 이분을 통해 배웠어요. 제가 이라크에 갈 때는 일촉즉발이었어요. 이분과 같이 다니면서 기자들이, 그리고 제가 가장 많이 물은 질문이 뭐였을까요. "전쟁이 오고 있는데 두렵지 않나요?" 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통역을 하다 우리에게 묻더라고요. 너희는 우리에게 질문을 하고 왜 답에 귀 기울이지 않느냐고. 그녀는 CNN 이나 BBC 에서 출력한 그 데이터를 내려놓고, 지금 여기 우리가 말하는 진실에 귀 기울이라고 호통을 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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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부분을 읽는데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혹은 알고자 했던 것은 진실이 아닌 다른 무엇이었을 거라는, 진실로 포장된 자기 좋을대로의 생각 이었을 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질문해놓고 그들의 답을 듣기 보다는, 그 질문을 '했다'는 것 자체로 그간 살아온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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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해지고 나니, 어느 날 밤 저에게 물어요. "너는 여기 왜 왔니?" 한국에서도 기자회견 때 '간지 나게' 답변을 해왔는데, 이분이 물으니까 대답을 못하겠더라고요. 이라크 전쟁을 막고 싶어서요, 라고 간신히 대답했더니 아줌마가 막 웃어요. 네가 온다고 막아질 것 같으면 몇 천만 되는 이라크 사람이 이러고 있겠느냐고. 그러더니 너는 결혼은 했니, 아이는 있니, 묻는거예요. 아이가 있다니까 등짝을 후려치면서 미쳐도 단단히 미쳤구나, 당장 짐 싸서 돌아가라고 하더라고요. 전쟁이 임박했을 때 제가 이라크에 남아서, 죽이는 자의 눈이 아니라 죽어가는 자의 눈으로 기록해 평화의 증인이 되고 싶다고 하자 저를 쳐다보면서 그러셨어요. "너는 이라크 사람의 눈으로 이 전쟁을 기록할 수 있다고 믿니?" 내가 대답을 못하자 나무라지는 않고 "내가 너의 눈으로 이 전쟁을 기록해주겠다" 라고 하셨어요. 너의 아들이 바로 너의 평화니까 돌아가라며 제 비자 연장 서류를 찢어버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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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른 사람들의 과거에 별로 관심이 없다. 현재에도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래서 이런 기사들을 언제나 심드렁하게 읽지도 않고 넘겨오곤 했었다. 설사 읽어도 그다지 나를 움직이지도 못했고. 그런데 이번엔 달랐다. 이 기사를 읽음으로써 내가 뭔가 달라졌다는 건 아니지만, 이 사람이 얘기한 과거는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우리 모두의 현재도 마찬가지겠지만, 이 사람의 현재가 이런 과거들로 인해 이루어졌다는 것이 강하게 느껴졌다. 나는 임영신 이란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검색해봤다.
여행기에는 통 흥미가 없는 나지만, 임영신이 들려주는 여행이야기라면 읽어보고 싶어졌다. 그 안에 무엇이 담겨있을지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어쩌면 그간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많은 것들이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 속에 들어있을지도 모르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이번호 시사인을 볼 만큼 다 보고난 후에는, 회사동료에게 주기로 했다. 동료가 내게 받아서 읽으려고 펼치다가 이 기사를 봤을때는, 내가 그은 빨간 밑줄을 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