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2010년이 다 지나지 않았으니 좀 더 두고봐야 알겠지만, 일단 올 한해 읽었던 책들 중에서 좋지 않았던 책은 세권이다. 물론 읽다가 중간에 던져버린 책들도 있지만, 그것은 끝까지 다 읽지 않았으니 말하지 않기로 하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탐정 클럽』은 대체 탐정이란 뭐하는 사람이냐 싶어지게 만든다. 무슨 탐정이 불륜 사진만 찍어대고.. 어휴.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출간될 때마다 읽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몇권 읽었는데, 이 『탐정 클럽』은 내가 읽은 그의 소설들중 가장 뒤떨어지는 작품. 다시 읽을 것 같지 않으면 친구들에게 곧잘 보내곤 하는데, 이 책은 누구한테 주기도 민망하다.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처음 내 느낌을 믿었어야 했다. 책장도 잘 넘어가지 않을뿐더러, 정확하게 꼬집을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자꾸 신경을 건드렸다. 그녀는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가 자라온 환경은 같지 않았다. 나는 그녀와는 좀처럼 친해질 수 없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아키모토 야스시'의 『코끼리의 등』. 이 책은 친구들에게 빌려주었었는데, 두명 다 펑펑 울었다고 했다. 그도그럴것이, 남자주인공이 시한부 인생을 살게되니까. 그러나 이 남자주인공은 여태 내가 살면서 만나온 남자주인공 캐릭터중 최악이다. 가장 약한 모습으로 폭력을 휘두른다. 그 폭력은 그러니까, 주먹으로 누군가의 얼굴을 때리는 건 아니지만, 자신이 약하다는 걸 단단하게 무기로 내세워서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다고 표현해야 될까. 그는 아내와 아이둘이 있는 가장인데 젊은 여자와 내연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들키지 않는채로 잘 해오다가, 시한부 인생이란 걸 알게 되고 요양소에 들어가 생활하게 되면서 내연의 여자와 아내를 서로 소개시킨다. 나는 이 장면이 몹시 싫었다. 내연의 여자도 그 상황을 받아들이기 싫었겠지만, 아내는 오죽했을까. 나는 그녀가 정당하게 분노를 표출하지 못할 상황이라서 그게 몹시 거슬렸다. 만약 남편이 건강한 상황에서 그랬다면, 아내는 그에게 화를 내고 악을 쓰고 잔소리를 퍼붓고, 심하게는 내연의 여자를 찾아가 머리끄댕이를 잡아당길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옳다는 게 아니라,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생각했을 때, 표출할 수 있어야 된다고 나는 생각하는 거다. 그러나 이 책 속에서의 아내는 남편에게 그럴수가 없다. 이제 곧 죽을 남자니까. 게다가 이 남자는 내연의 여자에게 자신의 아들도 만나게 한다. 그러니까 뭐야, 쿨해지고 싶다는거야? 나는 그가 아내에게 '죽어간다는 핑계로' 아주 심하게 대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아내는 화가 나고 속상하지만 그것을 끝내 삼켜야 한다. 남편은 이제 곧 죽으니까.
약하다는건 아주 좋은 핑곗거리가 될 수 있다. 나는 아프니까, 나는 약하니까,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해도 다 용서해줘, 니가 이해해줘, 라고 말하면 상대는 어지간해서는 그 사람에게 잔인하게 행동할 수가 없다. 약하다는 핑계를 대버리면, 순식간에 상대는 그에게 어떤 해를 입힌 가해자로 돌변할 수도 있다. 그런건, 정말 무섭다. 약하다는 걸 인지한 순간 한걸음 물러서고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상처받는 쪽은 오히려 아프지 않고 약하지 않다고 인식되어진 사람일 확률이 더 크다. 동정심과 연민은 그 자체로 나쁜 감정은 결코 아니겠지만, 동정심과 연민이 모든 관계와 감정의 전부가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래서 나는 연민이나 동정심이 싹터버리는 사람과 우정을 맺고 사랑을 할 때 그토록 방어적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고보면 나는 한번도 동정과 연민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선택한 적이 없다.
약하다는 건 분명 보호해주고 도와줘야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만, 그러나 약하다는 것이 모든일의 '핑곗거리'가 되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약한 사람을 보호해주는 건, 약한 사람을 보호해줄 만큼 강하며 게다가 옳고그름을 분명하게 가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나에겐 치명적인 매력을 선사한다. 영화『시간 여행자의 아내』에서 어른 남자가 발가 벗은 어린아이에게 담요를 덮어주는 장면이라든가, 소설 『내일을 위한 약속』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가 추문에 휩싸일까봐 등 뒤로 그녀를 감추는 남자가 등장하는 장면이라든가 하는 것들은, 와, 정말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푹 빠지게 만든다.
어제, 집에서 저녁을 먹다가 2009년도 K-1 재방송에서 바다 하리를 봤다.
(좀 잘 나온 사진을 가지고 오고 싶었는데, 어떻게 가져와도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사람을 때리는 사진을 가져왔을까;;) 어쨌든, 어제 시합에서 바다 하리는 정말 멋있었다. 보통의 K-1 선수들과는 몸매에서부터 다르다. 바다 하리에겐 군살이 없다. 쭉쭉 뻗었다. 그런데 그런 남자가 링 위에서 격투를 하고 상대를 제압하는 장면은 정말이지 황홀하다. 나는 바다 하리랑 말 한번 나눠본 적 없는 사이지만, 바다 하리가 가진 '강함'에 매우 끌리고 만다. 바다 하리랑 함께 다닌다면 아무도 나를 건드리지 못하겠지. 바다 하리와 함께 다닌다면 어떤 상황에서든 바다 하리는 나를 보호해 주겠지, 나를 지켜 주겠지. 내가 바다 하리와 각별한 사이라고 하면, 어쩐지 안전해질 것 같아. 아 정말 멋지다.
뭐, 그냥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거지, 나는 누가 보호해줘야 할 만큼 약한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바다 하리 같은 남자랑 같이 길을 걸어보고 싶기는 하다. 보호받고 안전하다는 느낌은, 누군가 나를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은 꽤 근사한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