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權力] : [명사] 남을 복종시키거나 지배할 수 있는 공인된 권리와 힘. 특히 국가나 정부가 국민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강제력을 이른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나는 권력이 무섭다. 다른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강제력이라서 무서운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강제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 다시 말해, 권력을 가진걸 알고 있는 사람이 무섭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나의 말한마디면 이것이 움직이고, 저것이 바뀌고, 사람들이 왔다갔다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이 무섭다. 그들이 무서운 까닭은 그렇게 자기가 깨닫고 있는 자기의 힘을 대체적으로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가져오는 경제적 이익이라든가, 유명세라든가, 다른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아래에 있다는 떵떵거림이라든가. 그래서 나는, "내가 누군지 알어?" 라는 말이 지독하게 혐오스럽다. 대학생 시절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어떤 손님이 들어와서 행패를 부린적이 있다. 어떤 까닭으로 행패를 부렸었는지 기억은 잘 안나는데, 그의 최종상대는 내가 되었고, 나는 그가 요구하는 무언가를 해주지 않았다. 그러자 그가 그랬다.
"너 내가 누군지 알어? 어디에서 일하는지 알어?" 그는 내게 무얼 바랐던걸까. 나는 모른다고 답했다. 몰랐으니까. 알아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이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일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기억나지도 않을뿐더러, 그 당시의 나도 그게 무얼 뜻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그가 자신이 누구인지 말했으니 나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대답했다.
"전 학생입니다." 라고.
편의점안에는 2초간 정적이 흘렀다. 손님도, 옆에있던 알바생도, 그리고 나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다시 한번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했다. 나 역시 다시 한번 말했다.
"네, 알았어요. 전 학생이에요." 라고.
그 손님은 마시던 캔 음료수를 마저 다 마시더니 그냥 가버렸다. 시시한 사람이었다. 소리지르고 욕하고 행패를 부리더니 나가버렸다. 한낱 알바생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왜 그렇게 알리고 싶었던걸까? 도대체 왜, 편의점에서 음료수 하나 사면서 자꾸만 자신이 누구라고 말하려 했던걸까? 대체 나에게 뭘 바랐던걸까?

음료수에 청산가리를 넣어 사람을 살인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렇게 살해당한 사람중에 '후라야 아키토시'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가 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행패를 부리다가 사무실에서 잘린 '겐다 이즈미', 그녀는 사무실 사람들이 마실 미네랄 워터에 수면제를 잔뜩 타두었다.
"후루야 아키토시 씨를 죽인 범인이나 겐다 이즈미나 같은 부류의 인간이지. 최고 권력을 추구하며 도저히 참지 못하고 그 권력을 행사해 버린 인간이니까."
"권력을 추구하는 인간....이란 말씀입니까?"
"왜 그렇게 되는지 알겠나?"
"저는 모르겠습니다."
장인은 순간 눈을 무섭게 뜨고 나를 노려보았다.
"굶주려 있는 걸세. 그토록 심하게, 깊이 굶주려 있는 거지. 그 굶주림이 자기 혼을 먹어 치우지 않도록 먹이를 줘야 해. 그래서 다른 사람을 먹이로 삼는 거야." (p.307)
그들은 자신이 가진 권력을 휘두를 때에만 자신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자신이 가진 권력을 인식하면, 그 순간 권력만이 남고 자신은 사라진다.
"다섯 사람의 목숨을 미네랄워터에 독약을 섞는 아주 간단한 방법으로 앗아갈 수 있지. 그런 상황에서 겐다 이즈미는 자네들에겐 저항할 방법이 없는 권력자였네. 죽지 않았으니, 살해당하지 않았으니 그렇지 않다는 변명 따윈 통하지도 않아. 어차피 남을 자기 마음먹은 대로 했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니까."
그렇다. 우린 그런 인간을 가리켜 '권력자' 라고 부른다.
"그래서 나는 화가 나네. 그런 식으로 행사되는 권력에는 누구도 이겨낼 수가 없지. 금기를 범하며 휘두르는 권력에는 대항할 방도가 없는거야." (pp.305-306)
그렇다. 저항할 방법이 없는 권력자 앞에서 우리는 무기력하다. 누구도 이겨낼 수가 없다. 우린 그런 식으로 행사되는 권력에는 무방비상태로 노출될 뿐이다. 그러나, 눈앞에 보이는 권력 앞에서 우리는 저항할 수 있다. 굳이 정의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지 않아도, 국가를 상대로 시위를 할 수가 있으며, 기업을 상대로 항의를 할 수도 있다. 작게는, 힘이 센 친구가 약한 친구에게 폭력을 행사할 때도 그것은 옳지 못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아주 작은 저항부터가 힘이 든다는 것을 나는 알고있다. 섣불리 끼어들었다가는 힘이 센 친구의 목표가 내가 될지도 모를일이다. 그리고 내가 그 목표가 되었을 때, 아무도 나와 함께 저항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권력앞에 나는 작은 개미가 되어 짓밟힐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이 무서워 권력자의 눈에 띄지 않는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일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기 위해서는 권력을 주어보라는 말이 있다. 권력을 주는 순간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면 된다고. 대체적으로 작고 알량한 권력이라는 것을 휘두르려는 사람들은, 더 센 권력앞에 언제나 주눅드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가진 힘의 크기가 어느정도라고 알고있는 사람은 상대의 힘의 크기까지 알고있고, 그것만이 그들의 서열을 정해주니까.
"회장님은 권력이란 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장인은 잠시 말이 없었다. 홍차 잔이 비어 있기에 내가 다시 따랐다.
"덧없지." 장인이 대답했다.
"덧없습니까?"
"그리 생각하지 않나?" (p.304)
권력이 덧없다고 말하고 있는 '미야베 미유키'의 『이름없는 독』을 읽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동의한다. 권력은 덧없다는 말. 그러나 그 사실을 알아야 하는건 그 누구보다 권력을 가진자들일 것이다. 크든 작든, 자신이 권력을 가진걸 알고 있는 사람들, 그들이 나보다 먼저 그 사실을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