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둘러싼 특이한 사랑의 이야기. 스물다섯 살의 처녀 콩스탕스는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 온 책 속에서 우연히 낙서 하나를 발견한다. 그 낙서는 마치 그녀를 겨냥해서 써 놓은 듯, 다음번에 읽을 책들을 추천해주었다.
라고 알라딘 책 소개에 나와있는데, 여기에서 상상했던 만큼의 낭만이나 재미는 사실 별로 없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에 밑줄이 그어져 있다는 것, 그것이 나를 겨냥한 것 같다는 그 느낌은 정말 낭만적이고 짜릿하기까지 하지만, 음, 어쩌면 그 밑줄들이 그다지 내 마음에 들지 않았던걸지도 모르겠고, 충분히 매력적인 소재인데 내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그러나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꾸어 볼만한 일인건 사실인 것 같다.
문득, 내가 밑줄을 잔뜩 그어놓은 책을 누군가에 줬던 일이 떠올랐다. 그는 내가 그은 밑줄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조금 더 낭만적인 책을 줬어야 했는데! 사랑이야기로 줬어야 했는데!
그건그렇고, 이 책속의 콩스탕스는 밑줄긋는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그를 만나고 싶다. 그리고 그에게 편지를 쓴다. 좀 길지만 그녀가 쓴 편지의 내용이 좋아서 인용해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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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알고 있는 대로, 나는 젊은 여자이고, 몽상적인데가 있으며, 갈색 머리이고, 혼잣몸이에요. 산다는 것이 내겐 아주 두려워요. 나는 이렇게 사는 삶의 끝이 어디인지, 이 모든 습관과 몸짓이 나를 어디로 이끌고 가는지 잘 모르고 있고, 아직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버리지 못하는 단계에 있어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존재해요. 이 종이 위에 묻은 이 잉크가 꿈은 아닐 테니까요. 솔직히 말해서 나는 혼잣몸으로 자족하며 살지는 못할 것 같아요. 말하자면 불완전한 사람이지요. 그래서 나를 채우고 완전하게 하기 위해, 진정으로 살기 위해, 나는 다른 사람을 원해요. 내가 전혀 할 줄 모르는 것을 할 줄 아는 어떤 사람, 그리고 흔히 하는 말로 나를 사랑해 줄 어떤 사람이 내겐 필요해요.
나는 당신과는 달리 책읽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그건 분명해요. 대부분의 책들이 나를 따분하게 만들어요. 하지만, 나는 영화는 무척 좋아해요. (중략) 나는 선거인 카드를 받고도 투표를 해본 적이 없으며, 운전 면허증은 있지만 차는 가지고 있지 않아요. 나는 향기로운 비누를 무척 좋아해서, 욕실 서랍 안에 비누들을 꽤 많이 모아 놓았어요. 미술관에는 거의 안 가는 편이고, [르 봉마르셰] 백화점 식품부를 빼고는 백화점에도 여간해서 가지 않아요.송아지 간이나 그것과 비슷하게 생긴 거면 뭐든지 다 싫어해요. (중략)
나는 복권을 사지 않으며 손톱을 깨무는 버릇을 가지고 있어요. 사람들은 내가 예쁘다고 하는데, 내 친구들 중에는 나보다 예쁜 사람들이 많아요. 특히 파니가 아릅답지요. 나는 얼마 전부터 새로 나온 5 프랑짜리 동전을 모으기 시작했어요. 오늘까지 벌써 열 두개를 모았어요. 나는 주로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다니고, 머리카락은 나 혼자 잘라요. 내 생활은 아주 초라하고, 나는 거의 똑같은 일을 매일 되풀이해요. 당신은 어떠한가요? 당신의 생활은 어떠한지요?
답장해 주세요. 꼭 답장해 주시면 좋겠어요. 나의 밤과 낮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당신의 콩스탕스 (pp.115-117 중간중간 계속 중략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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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스탕스가 쓴 이 편지를 읽는데 갑자기 엉덩이가 들썩였다. 꼼지락 꼼지락 나도 편지를 써보고 싶었다. 나도 분명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써보기로 했다.
나는 젊지 않은 여자이고 지금은 살짝 붉은 머리이며 혼잣몸이에요. 나는 고장난 신호등을 신고했다고 상품권을 포상으로 받았어요. 준법정신이 투철하죠. 1종 운전면허증을 가지고는 있지만 운전을 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고, 지하철 안에서는 주로 책을 읽어요. 술마시는 걸 좋아해요. 술 마신 후의 취하고 몽롱한 상태를 즐겨요. 그렇지만 가끔 술 마시고 혼자 집에 가는길을 지독하게 슬퍼하기도 해요. 그럴때마다 이런 우울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며 혼자서 머리를 흔들곤 하지요. 나는 굴을 싫어해요. 간장게장도 잘 먹지 않아요. 그렇지만 돼지랑 소는 좋아하지요. 나는 내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내게 보고싶다고 말하는 사람을 좋아해요. 나 역시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 감정을 말하는 것에 인색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상대에게 나를 사랑해달라고, 나를 그리워해 달라고, 나를 생각해 달라고 말하는 것은 정말 하지 못하겠어요. 금요일밤에 누군가에게 내 생각도 좀 해줘요, 라고 말하고서는 혀를 깨물어 버리고 싶었어요. 시간을 돌리고 싶었죠. 미쳤나봐 라고 혼자서 전화를 끊고 핸드폰으로 머리를 때렸어요.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해요. 책을 읽다가 웃는것도 좋아하고 책을 읽다가 우는것도 좋아해요. 나는 혼자인 시간도 좋아해요. 금요일밤에는 혼자 올림픽공원에 앉아 맥주도 마셨어요. 그리고 좀 울었구요. 나는 청승떠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쓰고보니 금요일밤은 이래저래 미친밤이었네요. 그런데 앞으로 종종 올림픽공원의 벤치에 앉아 술을 마실것 같아요. 달을 보면서. 혼자서. 나는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술은 소주와 맥주를 마셔요. 그런데 이렇게 날이 차가워지면 따뜻한 정종도 마시고 싶어져요. 나는 하루키를 좋아하고 호밀밭의 파수꾼을 좋아해요. 그런데 내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좋아하는 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당신이 알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쯤은 알아야 되는거에요. 그리고 또 나는 구스 반 산트를 좋아하고, 요즘은 여름밤에 누군가 내게 줬던 음악을 내내 반복해서 듣고 있어요. 잠자기 전에 한시간씩 그 노래를 듣기도 해요. 그 노래가 무엇인지 말해주지는 않겠어요. 나 혼자만의 음악이에요. 나는 앞머리를 혼자 자르는데 어제 미장원에 갔다가 원장아저씨한테 잔소리를 들었어요. 그냥 잘라줄테니까 앞으로는 와서 자르래요. 나는 자전거를 탈 줄 알지만, 지난번에 사고 난 후로 좀 무서워해요. 나는 힐을 신고 다니기를 좋아하고 스커트를 즐겨 입어요. 머리는 언제나 질끈 동여매고 다니지요. 그런데 뭐하러 미장원에 그렇게 돈을 갖다 쳐들였는지 후회막급이에요. 오늘은 투피엠이 컴백한다고 해서 가요프로그램을 보았는데, 좀 별로였어요. 나는 지금은 당신이 잘 모르더라도 언젠가는 이 편지를 보면서 아 이여자가 나를 이만큼이나 좋아했구나, 정말 많이 좋아했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기를 바라요. 나는 비밀을 잘 지켜요. 나는 우리의 은밀한 이야기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기를 원해요. 나는 내 글에서 당신이 당신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요. 나는 예쁘지 않아요. 내 친구들은 어느정도는 예뻐요. 그렇지만 당신은 내가 아는 가장 잘 생긴 사람이에요. 내가 전화를 했을 때 반갑게 받아줬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을까봐 전화를 못하겠잖아요. 나는 나한테 연락하라고 말하는 사람이 좋아요. 나는 나와 함께 있을때 당신이 아주 많이 웃었으면 좋겠어요. 당신을 웃게 해주고 싶다는 아주 강한 욕망이 내 안에는 있죠. 그것은 거의 나의 식욕과 맞먹어요. 나는 언젠가 당신이 내 앞에서 활짝 웃는 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나는 거의 매일 똑같은 일을 되풀이해요. 당신은 어때요? 당신은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답장해 주세요. 꼭 답장해 주시면 좋겠어요. 나의 밤과 낮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나의 새벽도 역시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나의 스물네시간은 온통 열려있어요. 내가 자고있으면 깨워도 괜찮아요. 내가 자고 있을 때 깨워도 나는 전혀 화나지 않아요.
당신의 다락방
콩스탕스는 답장을 받았다. 나도 답장을 받을 수 있을까?
허튼짓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허튼짓을 하고 있는 일요일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