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전에 어느분의 서재 댓글을 읽었는데 그 분의 댓글이 나의 마음과 같다. 나는 이번 선거에서  내 소신껏 투표를 할 마음을 먹고 있지만, 그러나 내가 찍는 후보가 당선될 확률은 없다. 오히려 내가 소신껏 투표를 하게 되면 표가 분산되기 때문에 당선되지 않기를 바라는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높아진다. 이럴때 나는 어떡해야 할까? 소신껏 찍어야 할까, 싫어하는 후보에게 나라를 맡기지 않기위해 내 뜻을 꺽어야 할까? 소신을 굽혔는데도 싫어하는 후보가 당선되면 그땐 또 어떡하나? 오늘 그분의 댓글을 보고서야 이런 고민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이런때에 집어든 커트 보네거트라니, 정말로 적절하다. 아직 다 읽지 못했는데도, 아 무척 마음에 든다. 그간 읽었던 커트 보네거트의 다른 소설 두권, 『나라 없는 사람』과 『마더 나이트』보다는 뭐랄까, 모든 문장들이 또렷하게 내 머릿속에 들어오지는 않는 편인데, 그래도 물론, 여느 정치인들보다야 훨씬 나은 말을 하는 것은 틀림없다. 

 

 

자, 엘리엇 로즈워터는 엄청난 부자다. 

   
 

에이번데일의 말쑥한 사람들 중에서 엘리엇은 단연 입헌군주같은 존재였다. 그들은 로즈워터 기업의 고용인이었고, 그들이 관리하는 자산은 로즈워터 재단 소유였다. 엘리엇은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고 지시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분명 왕이었고, 에이번데일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엘리엇 왕과 실비아 왕비가 로즈워터 저택에 거처를 정하자 에이번데일에서 공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초대, 방문, 아첨, 편지와 전화 같은 것이었다. 모두가 굽실거렸다. 엘리엇은 실비아에게 부유한 방문객이 찾아오면 얄팍하고 무성의하게 맞으라고 했다. 에이번데일의 여자들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저택을 떠났고, 엘리엇은 그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p.61) 

 
   

에이번데일의 부유한 사람들은 로즈워터 즉 엘리엇이 자신들을 무시하는 이유는 당연히 엘리엇이 자신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여겼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들의 그 무시함을 배우고 싶어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갑자기 왕과 왕비는 로즈워터 군 내셔널은행의 지하 금고에서 금은보석을 꺼내어 얼간이, 괴짜, 굶주린 사람, 실업자에게 풍성한 연회를 베풀어주기 시작했다. 

왕과 왕비는 어느 누구의 기준으로 보나 죽는 게 나을 듯 싶은 사람들의 일그러진 두려움과 꿈에 귀를 기울였고, 그들에게 사랑과 약간의 돈을 나눠주었다. (p.62)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블라인드 사이드』를 보면, 오갈데 없는 한 소년을 훌륭한 미식축구 선수가 되도록 뒷바라지 해준, 그 소년을 가족같이 받아들여준 여성과 그녀의 가족이 나온다. 그녀는 불쌍한 사람을 돕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 마음을 그대로 실행해서 보여줄 수 있는 경제적 여유도 가지고 있었다. 

불쌍한 사람을 돕는 일, 가난한 자들에게 가진 걸 조금 나누어 주는 일. 물론, 이것들이 좋은일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래도 우리 누구도 부자들에게 누군가를 도우라고 말 할 수는 없다. 좋은일도 '강요'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나 가진자들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자들이, 가지지 못한자들을 도와줄 수 있다면, 그것이 자신이 가진 것 -그것이 돈이든 건강이든-의 가치를 더욱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나는 자신이 가진것의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사람, 자신이 가진것을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에게 표를 줄 수 있을까? 없는자들의 두려움과 꿈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에게 표를 줄 수 있을까? 

 

비가 오지만, 여름이라서 여름옷을 입고 출근했다가 퇴근하는길에 얼어 죽을 뻔;; 했다. 팔다리에 소름이 좍좍 돋았다. 아, 너무 추워서 미치는 줄 알았다. 따뜻한 칼국수를 먹었지만 소용없었다. 왼쪽 손으로 오른쪽 팔을 마구 쓰다듬었고, 오른쪽 손으로 다시 왼쪽 팔을 마구 쓰다듬었다. 아주 추운, 정말로 추운, 소름이 좍좍 돋는 그런 여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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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0-05-24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이 글에 제 소중한 한표를 던지겠습니다!

다락방 2010-05-25 11:31   좋아요 0 | URL
뷰리풀말미잘님의 마음에 드는 글을 썼다니, 스스로가 뿌듯합니다!

... 2010-05-24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오늘같은 날씨에 여름옷을 입고 출근하셨어요, 왜?왜?왜? 바람이 장난 아니던걸요.

다락방 2010-05-25 11:31   좋아요 0 | URL
엄마가 집에 안계셨어요...내가 출근하는걸 봐주지 않았어요.....아무도 저한테 따뜻하게 옷을 입으라고 말해주지 않았어요. ㅠㅠ

무해한모리군 2010-05-25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바바리 입고 나갔는데도 머플러 안두르고 나간 걸 후회했다는..
사실 전 전략적 투표따위는 머릿속에 없이 늘 취향되로 찍어요..
이런 마음이죠.. 내가 찍어야 4% 되지 않을까 뭐 이런 =.=

다락방 2010-05-25 11:32   좋아요 0 | URL
취향대로 찍다가 자꾸 나라꼴이....orz
그렇다고 소신을 버려도 딱히 나아질 것 같지도 않고. 에휴.....orz

잘 모르겠는 날들이어요. 허구헌날 술이나 마시고 싶네요. ㅠㅠ

기억의집 2010-05-25 0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제가 맘에 드는 후보에 찍고 싶지만...락방님 말대로 표가 분산되서 맘에 안 드는 놈이 당선되느니 차라리 민주당에 한표를 선사하자, 이러고 있어요.

빌 게이츠는 빌도 자선사업을 많이 하지만 그 아버지의 마인드도 대단하더라구요. 며칠전에 보니 부자들이 세금을 더 많이 내야한다고 했던데. 그 말이 맞는데..적장 있는 사람들이 세금에 왜 이리 인색한지.

블라인드 사이드, 재밌었죠. 그것도 있으니깐 가능한 일이지 싶어요.

다락방 2010-05-25 11:33   좋아요 0 | URL
'차라리 민주당'이 정말 차라리 나을까요? 아 모르겠어요. 투표를 꼭 하고 싶기는 한데 말입니다.

맞아요, 블라인드 사이드 보면서 있으니깐 가능하다고 생각했어요. 마음만 있어도 또 그렇다고 돈만 있어도 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런데 마음을 가진 사람이 돈도 가지고 있었으니 될 수 있는 일이었어요. 부자들의 역할을 제대로 보여준 영화였어요.

치니 2010-05-25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http://vote.d2w.kr/
여기 우리동네에서 누가 나오는 지 쉽게 정리되어 있어요. 그나마 약간은 도움이 되길.
아우 근데 전 이럴 때 우리 동네 종로구가 밉네요. 제가 찍어주리라 생각했던 당 후보가 거의 없어요! ㅠㅠ

다락방 2010-05-25 11:35   좋아요 0 | URL
치니님. 찍어주리라 생각했던 당 후보가 거의 없으면..어쩌실거에요?
저도 재작년인가 선거때 없어서 ...그치만 ***당에는 표를 줄 수 없다, 이러면서 투표를 하긴 했지만..왜 세상은 이다지도 제 생각과는 다르게 굴러가는걸까요?

링크해주신 주소, 오, 정말 요긴하게 잘 볼게요. 안그래도 제대로 알고 싶었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어요. 헤헷 :)

춘희 2010-05-25 1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최근에 제가 트위터를 들어다보고 있는데 이상하게 특정 정당인들이 와글와글 많이 넘쳐요. 그들을 제 정치관으론 지지하지만 개인적으로 이들을 만나면 친해지기 어렵겠다, 자기와 다른 의견엔 무식하다 하고 약간 뭐랄까 온라인 상에서도 소외감이나 어떤 끼리끼리를 느꼈어요. 이들은 사회운동가이고 정치운동가들인데, 이들을 오프라인에서 만났다면 어땠을까 이들의 유세장에 가서 과연 서민들이 어떤 감정으로 서게될까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그들에게 이글을 읽히고 싶어졌어요.

다락방 2010-05-25 12:50   좋아요 0 | URL
처음부터 그런 사람들은 아니엇을텐데, 어떤 목표를 같이 가지고 있고 그것을 경쟁으로 차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사람이 좀 달라지는가 봅니다. 또한, 목표를 이루어 권력과 명예를 가지게 됐을때도 또 달라지는 것 같구요. 처음에 가졌던 마음, 처음에 가졌던 생각을 자리에 상관없이 유지한다는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걸까요? 저는 잘 모르겠어요.

이 글을 읽는다고 그들의 생각이 변할까요? 그것 역시도 잘 모르겠어요. 한권의 책으로도 어떤 사람의 가치관이 변하기도 하지만 또 수천권의 책으로도 전혀 변하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 말이죠. 어지러운 세상입니다.

점심은 맛있게 드셨습니까?
저는 햄버거를 먹었는데, 오 제기랄, 종이까지 씹어서 영 찝찝해요. -_-

sweetrain 2010-05-25 1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지금 부산에 살아요...
그러니...제 소신껏 찍는 걸 포기하고 민주당을 찍어도;;
당선될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게, 저를 슬프게 해요...ㅜ.ㅠ

다락방 2010-05-26 08:33   좋아요 0 | URL
저도 오늘 시사인 보니까 경상도쪽은 아무리 소신껏 찍으나 아니나 뭐...orz

기억의집 2010-05-27 10:14   좋아요 0 | URL
근데 저는 오히려 한나라당 정서의 지역에서 반란표가 많이 나온다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어요.
저는 국민참여당 당원인데(꼬박 회비 내고 있슴다)
한나라당이 되느니 민주당 뽑을려고요.
그래서 노회찬씨나 심상성씨한테 이번 한번만 단합했으면 해요.

다락방 2010-05-27 10:17   좋아요 0 | URL
참... 저도 한나라당 되느니 민주당을 뽑을까 하다가 저는 민주당도 별로..어휴...조금 더 고민해봐야겠어요.

푸른바다 2010-05-25 18: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냉소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저는 언젠가부터 정치인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한국의 정치구조에서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소신을 편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고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소신을 관철시킬 역량을 가진 정치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소신은 이 사람이지만 현실적으로 투표는 저사람이라는 말이 제겐 좀 무의미합니다.^^ 이 막나가는 상황을 조금이라도 바로잡을 수 있는 쪽으로 투표를 하려고 합니다.^^

다락방 2010-05-26 08:35   좋아요 0 | URL
이 막나가는 상황을 조금이라도 바로잡을 수 있는 쪽으로 투표를 한다는건, 음, 어떤 뜻일까요?

저도 냉소주의에 빠져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니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제가 소신껏 뽑든 아니든, 그래서 누가 됐든, 그런데, 막나가는 상황이 조금이라도 잡혀지긴 할까요? 그들도 결국 그 위치에서는 변하게 되지 않을까요? 아, 정말 모르겠어요. 모르겠는것 투성입니다..어휴..

세실 2010-05-27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제목이 참 예뻐요^*^
오늘도 바람이 많이 불었지요.
님 저 일곱번째 파도 읽었어요.
애절하기도 했고, 해피 앤딩이라 다행스럽기도 했고 이런저런 생각 들었어요.
그냥 전편만 읽고 말았을껄 하는 아쉬움도 들었고요...복잡했네요.

다락방 2010-05-27 10:18   좋아요 0 | URL
아 읽으셨군요!

그런 감상을 가지신 분들이 많더라구요. 일곱번째 파도는 새벽 세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향한 팬서비스 같았어요. 그치요? 레오와 에미를 굳이 그렇게.. 어떤 분들은 그 결말이 훨씬 좋았다고 얘기하시기도 하구요. 저는 음, 일곱번째 파도를 새벽 세시의 후편 쯤으로 생각하기 보다는 그 둘을 독자적인 작품으로 보고 싶어요. 그러고 있구요. 왜냐하면 새벽 세시의 결말은 제가 아는 모든 소설들의 결말들 중 으뜸이거든요. 그 결말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