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많은 것들을 모르는 채로 살아왔고 지금도 역시 그러하다. 단언하건데 내게는 분명 지적인 '허영심'이 존재한다. 지적 허영심은 지적 욕구와는 다르다. 나는 단지 '허영심'만을 가지고 있을 뿐. 내게 지적 허영심이 왜 문제인가, 하니, 나는 그 허영심을 가득 채우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상대의 나쁜 점을 보고 맹렬하게 비난 하는건 내 속에 채우지 못한 그런 욕망이 있어서일테고, 대부분 사람들이 힘차게 상대의 삶을 응원하는것도 역시 내 속에 채우지 못한 그런 욕망이 있어서일테다. 그래서 나는,
이 책속의 바르톨로메에게 힘찬 응원을 보냈다. 바르톨로메는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키가 작은 난쟁이다. 식구들조차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그저 감추고만 싶은 그런 사람. 제대로 식구로 인정 받을 수 없는 구성원. 그런 그가 글을 알게 되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되고, 그 책속의 내용을 깨닫게 되는 부분에서는 와- 감동, 그 자체다. 바르톨로메가 돈키호테를 읽었다. 그리고 좋아했다. 나는 바르톨로메가 글을 알게 되는 그 순간, 책을 읽는 그 순간만큼은 그의 옆에 있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가진 책을 자꾸만 자꾸만 빌려 주고 싶었다. 당신처럼 책을 읽는 걸 좋아한다면, 내 책을 아낌없이 빌려줄게요, 그리고 응원할게요. 이 책을 친구에게 추천하는데 친구가 이 책의 내용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답했다.
"응. 바르톨로메는 정말이지, 개가 아니야!"
이 책속에 담긴 열 일곱편의 삶에서는 유독 서민님의 글만 유머가 존재한다. 삶이란 그리도 치열하고 맹렬한 것인걸까. 혹은 진지한 것인걸까. 어째서 다른 분들은 유머를 그 삶속에 섞지 않은걸까. 살짝 유감인데, 어쨌든, 가장 인상깊은 삶은 '안건모'님의 삶이었다. 버스운전사의 삶을 살다가 지금은 '작은책'의 발행인이 된 분이신데, 이분 역시 높은 학력을 가진것도 아니고 사회에 대해 많은 부분들을 알지 못하는 채로 지내다가 우연히, 정말 우연히 [쿠바와 카스트로]라는 책을 보면서 세상을 다시 보게 된다. 잘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고 있던 것들에 대해 서서히 눈을 뜨게 되고 깨닫게 된다. 누가 강요한 삶이 아니었다. 본인 스스로가 선택한 삶이었다. 그가 다시 알아가는 그 모든 과정들은 그 스스로 해낸 것이었다. 이 책속의 어떤 이야기들은 나랑 너무 동떨어진 것 같아서 크게 공감하지 못했는데, 안건모님의 삶 만큼은 응원을 해 주고 싶었다. 여기에서 이렇게 작게 응원하는 것이 그다지 힘이 되진 못할지라도, 나는 응원하고 싶다.
그러다가 문득 이 영화가 떠올랐다.
중학생 시절에 본 영화라 뚜렷한 기억은 남아있질 않다. 내겐 좀 벅찬 영화였던 건지도 모른다. 중간에 재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는 지루했다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영화속의 변호사는 아버지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열심히 아버지를 변호한다. 아버지가 유대인 학살을 일삼은 나치였다는 시민권 박탈과 헝가리 본국 송환과 응징의 대상인 그 잔인한 학살자라는 누명을 변호하는데 성공한 그녀는, (메피스토님의 리뷰 보고 잘못된 내용을 수정함-글쎄, 열다섯살에 본 영화라니깐요!!)영화의 마지막에 뮤직 박스 속에서 사진을 발견하게 된다. 그 사진속에는 자신이 알지 못하는 아버지가 있다. 자신이 그토록 애써서 변호한 그 모든것들이 거짓이었다고 말하는 사진. 그녀는 자신의 눈으로 그 사진을 보기 전까지 사람들이 혹은 세상이 아버지에게 하는 말들을 듣지 않았다. 아주 자주, 우리는 우리가 가진 생각을 바꾸기를 거부한다. 잘못 알고 있는것을 바로잡는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몰랐던 것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시인할 수 있는 사람들을 꽤 존경하고 응원하게 되는 것 같다.
일전에 외국어에 아주 능통한 친구에게 어떻게 그렇게 외국어를 잘하느냐고 물었는데, 그 친구는 내게 "열심히 달달 외웠다'"고 했다. 너무나 단순한 대답, 너무나 명료한 대답. 그렇지, 달달 외우는 것 말고 무슨 수가 있겠어. 결국 그 친구는 자신이 원하는 외국어 몇개쯤은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내 지적 허영심은 여기서도 어김없이 튀어나온다. 나는 수십개의 외국어를 하고 싶지만, 그 외국어를 알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그저 먼산 보듯 할뿐. 머저리. 빵꾸똥꾸.
며칠 내내 바빴다. 정신이 없었다. 사실 지금도 해결해야 할 일이 산더미이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오오- 회장님이 안계시는 꿀같은 시간이다. 에헤라디여~ 얼쑤. 나는 또 모든 일을 미루고(며칠동안 정말 집중해서 일만했고, 저녁엔 술을 마시고 했다) 잡념에 빠져든다. 역시, 돈만 많으면 회사고 뭐고 다 때려치고 싶다.
제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섹스샵을 열게요. 당신은 뉴질랜드 목동을 하세요. 우리 가끔 플로리다 주립대학 도서관에서 만나요. 육개월에 한번쯤.
You call it love 가 듣고 싶어지는 맥빠지는 오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