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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미 미니앨범 - 소리 위를 걷다
이은미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어느것 하나도 완벽한 선택은 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하나의 선택을 하면서 얻는게 있다면 반드시 잃는것도 있는 법이다. 나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세계 곳곳을 다니지는 않지만 타지방에 살고 있는 친구들을 만나러는 종종 움직인다. 보고 싶은 영화가 있으면 주저하지 않고 본다. 내가 번 돈으로 술을 마시고 책을 사는데에 있어서 그다지 거리낌이 없다. 이제는 별로 남지 않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술 마시자고 청할 친구가 있고 또 내게 청해주는 친구도 있다. 이 모든것들이 자유로운건 내가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여 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럴때 가끔 나는 결혼하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는데, 이은미가 이 앨범에서 『결혼안하길 잘했지』라고 노래한다. 와우- 이렇게 좋은 노래가, 이렇게 멋진 노래가 타이틀이라니, 대체 뒤에는 어떤 곡들이 나오는걸까? (물론 나는 생수페트병의 뚜껑이 잘 안열릴때마다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만약에 결혼을 했다면
이럴때 누구랑 술 한잔 할까?
이렇게 서로를 다 아는 우리 우정이
그게 사랑보다 많이 좋을지 몰라
처음 이별이란걸 했을 때가 생각난다. 아 내가 이별을 했구나 라는걸 그와 헤어진지 3일째 되는날 실감했다. 나는 라디오를 들으면서 방을 청소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를 잊고 편히 살 수 있나요'라고 차은주가 노래하는 걸 듣고는 그만 펑펑 울어버렸다. 나는 그 당시에 사랑이란 걸(혹은 사랑이라 믿었던 걸) 제법 열렬하게 했고, 또 그것이 그다지 열정적인게 아니라 해도 하루아침에 그 이별을 인정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를 잊는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우린 오늘 이별했지, 하고 돌아서는 순간 그 이별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헤어진다'는 건 아주 시간이 오래 걸리는 일이다. 그리고 꽤 어려운 일이다. 그렇다는 것을 이은미는 『헤어지는중입니다』로 노래해준다.
사랑했던 기억을 그리고 이별했던 기억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잊을 수 있다고 해도 그 시간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이제는 예전처럼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떠올려진다거나 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가끔 아주 가끔 그 시간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같이 들었던 노래가 나온다거나, 길에서 파는 오징어 튀김을 먹는다거나 할때, 그럴때 생각나기도 하고 햇살이 뜨겁거나 눈이 내려도 생각나기도 한다. 그런데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걸 이은미가 『오래된 기억』으로 노래해준다.
이 앨범안에는 단지 다섯곡의 노래가 실려있을 뿐인데, 맙소사, 내가 말하고 싶은걸 내가 느끼는 걸 다 들려준다. 안다. 가사가 좋다고 그 노래가 반드시 좋은 법은 없다는 걸. 그런데 이은미는 아주 멋진 보이스를 가지고 있다. 그녀가 이 모든것들을 노래하니 노래가 진솔하게 다가온다. 그녀가 불러주니 이 가사들이 귀에 들어올 수 있었다.『결혼안하길 잘했지』는 국악과의 퓨전음악인걸까? 새로우면서도 귀에 착착 감긴다. 『오래된 기억』은 또 전주가 끝내준다. 계속 노래하던 가수가 여전히 노래한다는 사실은 꽤 기분이 좋다. 대부분의 가수들이 벨소리와 컬러링으로 승부수를 띄우는 요즘같은 때에 여전히 CD를 내주고 여전히 노래 다운 노래를 불러줘서 고맙기까지 하다. 앞으로도 그녀를 믿어도 좋겠지.
오랜만에 아주 보석같은 앨범을 만났다. 나는 이은미의 앨범을 플레이어에 재생하기 전까지는 이렇게까지 좋을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내가 뚝심있는 가수 이은미를 몰라봤다. 쌀쌀한 바람이 부는 날 듣는 이은미의 노래들이라니! 세상에, 이보다 더 좋은 궁합이 있을까! 정말이지 아주 근사한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