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에 부고를 들었다. 회사 동료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거였다. 친구를 만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부지런히 회사 동료들과 연락을 했다. 동료1과 다음날 오전에 같이 가자 말해두었는데, 다른 동료 한명이 개인적으로 톡을 보내 언제 가실거냐, 같이 가고 싶다해서 그러자고 했다. 그러다가 이렇게 가기는 가야겠는데 혼자 가는게 좀 어렵다 싶은 동료들이 있을 것 같아, 부고를 전해받은 단톡방에, '내일 11시에 장례식장에 갈건데 혹시 같이 갈 사람 있으면 어디어디로 와라' 고 남겼더니, 차례대로 직원들이 메세지를 남겨 함께 가고 싶다고 해서, 나 포함 8명이 장례식장에 같이 갔다.
동료의 어머님은 췌장암 말기셨다. 발견됐을 당시에 이미 말기에 다른 곳으로도 다 전이가 되어있었다고 한다. 항암을 1차까지만 하고 더는 손을 써보지도 못한채 돌아가셨다. 6개월전 건강검진 때만해도 아무 이상도 발견되지 않았다는데, 갑자기 췌장암 말기라니. 동료는 억울해하고 무서워했다. 그렇게 발견되고 아마 두달도 채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돌아가셨다. 동료의 나이는 나랑 한 살 차이고, 어머님의 나이도 우리 엄마와 동갑으로 알고 있다. 게다가 형제 관계까지 나랑 비슷하고 동료 역시 이십년정도 근무해서 나름 돈독한 관계이다. 우린 둘이서 술을 마시기도 했으며 함께 산에 갔던 적도 있다. 다른 오래된 동료들과도 여러차례 함께 모이기도 했다. 그런 동료의 어머님이 췌장암 말기라니, 한동안 동료에게 말을 걸 수조차 없었다. 어떤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도 모르겠고, 입을 여는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아서였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말을 걸었고, 그렇게 우리는 마주보고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얼마 뒤, 동료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돌아가시기 전, 동료는 내게 무섭다고 그리고 엄마가 보고싶다고 톡을 보내왔었다. 나는 동료의 그 마음이 손에 잡힐듯해 목이 메었다. 남돝생과 통화하며 이 소식을 전하다가도 잠깐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토요일 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엄마께 전화를 걸어, 엄마, 동료 어머님 돌아가셨대, 하는데 또 왈칵 눈물이 났다. 동료가 어쩌고 있을지...
다음날, 검은 옷을 입은 여자들 일곱명이 모여 장례식장에 도착했다(한 명은 좀 늦게 따로 왔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동료를 끌어안고 동료와 함께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나랑 함께한 동료들도 같이 울었다. 밥을 먹고 이야기하다가도 울고, 입관하고 올 동료가 다녀오기를 기다렸다가 작별하면서도 또 울었다. 동료는 우리들에게 어머님께 잘하라고, 말도 예쁘게 하라고 몇 번이나 일렀다. 우리는 알겠다고 했다.
토요일 밤에 사장님이 다녀가셨고 다른 부서 직원도 다녀갔노라 했다. 그리고 일요일 오후에는 다른 임원들과 오전에 오지 못한 동료들이 방문할터였다. 몇 해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동료는, 회사 사람들이 와준게 아주 든든했노라고 했다. 아마 조문하러 온 사람들은 형제들중에 자기가 제일 많았던 것 같다고, 자기가 회사를 다녀서 그런것 같다고 했다. 맞다고, 나는 그래서 사람이 조직에 속하는게 좋은 것 같다고 했다. 만약 내가 조직에 속하지 않았다면, 외할머니 장례식때 나도 아무도 오지 않았을 것 같아. 그리고 앞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신다면, 그 때도 오는 친구가 열 명도 안될텐데.. 다섯명은 될까? 그런데 회사를 다니면 이렇게 동료들과 임원들이 찾아와서 장례식장을 채워준다. 나이가 훌쩍 젊은 동료들도 동의한다고 했다. 회사를 다니는게 그래서 좋은 것 같다고. 진심으로 오는 사람도 있고 어쩌면 의무감에 찾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위로하러 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때 여덟명이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어서 그 점이 다행스러웠다. 동료가 어머님 보내는 길, 외롭지 않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
책을 샀다.

[Eleanor Oliphant is comletely fine]은 11월~12월 영어책 같이읽기 도서라서 구입했다. 큰 글자 에디션이 있길래 그걸 샀는데, 와 진짜 크다 ㅋㅋㅋㅋㅋ

너무 커서 웃긴데.. 어쩐지 너무 커서 가독성이 떨어지진 않을까 걱정도 되고... 아무튼 다른 영어책이랑 비교 해보겠다.

이것도 오 작지않네. 이건 얼마 전에 샀던 [그랜드 센트럴 역에 앉아서 울었다] 책이고, 그 때 같이 산 다른 영어책 좀 보겠다.

이건 그 때 같이 샀던... [All the blues in the Sky] 인데, 여백은 많지만 글자는 작다. 하여간 노안 온 사람인지라 큰 글자 반갑지만, 아니 그런데 너무 큰 거 아닌가요.. 당황스럽습니다..
민음사 책 두 권은 민음사 종이 책갈피 받으려고 샀다. 사실 나는 종이책갈피 필요 없는데, 지난번에 빵 사면 주는 책갈피를 그토록 갖고 싶어했던 동료들 생각나서 받았다. 그때 오만과 편견 받고 싶었던, 그러나 그게 걸리지 않았던 동료에게 오만과 편견 종이마그넷 책갈피 주고, 다른 한 명은 아무거나 가져가라고 해서 하나 골라갔다. 일단 사무실에 뒀다가 필요할 때 원하는 사람들 하나씩 줘야겠다. ㅎㅎ
[나는 페루에서 비로소 자유로웠다]는 관심 있는 주제의 이야기라서 샀다. 한국에서 일하며 살다가 다른 나라로 건너간 이야기. 나는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다른 나라들을 선택하는 것이 참 흥미롭다. 저 사람은 왜 인도에 빠졌을까, 왜 저사람은 스리랑카를 사랑할까? 그런 이야기들을 읽는게 즐겁다. 게다가 제목에서처럼 '비로소 자유로워졌다'는 감각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동의한다. 사실 '비로소' 라는게 적확한 단어인지는 모르겠다. 왜냐하면, 내 경우에는 이곳에서도 자유롭지 않았던 건 아니니까. 그러나 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 갔을때 극강의 자유로움을 느꼈던 것도 사실이다.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 심지어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머무른다는 것은, 당연히 답답한 시간들이 있지만, 그러나 너무나 자유로운 시간들도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새로운 사람과 손잡고 거리를 걸으면서 스쳐지나가는 이 모든 사람들이 그러나 나를 알지 못하고 나도 그들을 알지 못한다는 그 엄청난 자유로움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실 이곳에서도 나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자유롭게 사는 편이라 생각하고 남들 눈치 안보고 사는 편에 속하는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나라로 훌쩍 넘어가면 또다른 어마어마한 자유로움이 있단 말이지. 그래서 나는 자꾸만 자꾸만 떠나는가 보다. 그리고 또 떠나고 싶은가보다.
하- 또 떠나고 싶어진다. 쓰읍..
계란말이가 먹고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