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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메초
샐리 루니 지음, 허진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1월
평점 :
얼마전에 잘 알지 못하는 사람과 최근 읽은 책중 인상깊은 책에 대해 얘기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어떤 책을 골라 말할까 망설이고 망설이다가 샐리 루니의 [노멀 피플]을 골랐다. 단순히 뭐가 좋았어, 라고 말하는게 아니라 어땠는지도 짧게 얘기해야 했기 때문에 노멀 피플은 말하기에 좋았다. 상대가 책을 읽지 않는다면 더욱 그랬다. 어쩌면 관심도 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노멀 피플을 얘기하면서 성장과 사회계급에 대해 얘기했다. 샐리 루니는 항상 그 얘기를 한다고, 항상.
아직 [인터메초]를 읽기 전이었다.
그리고 [인터메초]를 읽었다. 나는 샐리 루니가 성장과 사회적 계급에 대해 끈질기게 얘기하면서, 그러나 죄책감을 놓지 않는다고 부연하고 싶어졌다. 생각해보면 항상 그랬다. 샐리 루니의 매 작품마다 죄책감이 있었다. 겉으로 끙끙 앓지 않더라도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자꾸만 나를 괴롭히는 그런 죄책감. 나는 인간이 인간이게 해주는 것은 죄책감이라고 생각한다. 죄책감이 있기 때문에 인간은 비로소 인간일 수 있다고. 그리고 그 죄책감은 대부분, 관계에서 나타난다. 내가 그러지 말아야 했는데 그랬을 때, 하지 말아야 할 말이나 행동을 했을 때, 그때 죄책감은 생긴다. 그러지 말아야 했어, 그랬어야 했어, 라는 뒤늦은 중얼거림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그 죄책감이야말로 성장에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죄책감을 가졌다면, 앞으로 그러지 않기위해 내 말과 행동에 반영하면서.
피터는 인권변호사로 일하면서 오갈데 없는 젊은 여성 나오미를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도와준다. 집에서 쫓겨나게 생긴 사람들의 편에 서면서 그리고 나오미에게는 필요할 때마다 돈을 주고 결국 쫓겨났을 때는 나오미를 제집에서 머물게 한다. 이들의 관게는 나오미도 피터도 뭐라 말할 수가 없다. 애정을 느끼고 욕망을 느끼고 섹스도 하고 필요하면 돈도 주고. 그런데 그 둘은 서로를 애인이라고 공식적으로 소개하진 않는다. 게다가 피터에게는 아주 오래된 베스트 프렌드인 여사친, 실비아가 있다. 실비아는 오래전 피터의 연인이었는데 사고로 장애를 얻게 되었고, 그 후에는 피터에게 이별을 고했다. 그래서 그들은 현재 애인 사이는 아니지만 과거에 애인사이었던 아주 친하고 좋은 친구다. 피터는 실비아를 만나 대화를 나눌 때마다 지적으로 충만해지고 감정적으로 풍족해진다. 만날 때마다 아 이렇게나 좋았지, 라고 한다. 성적 욕망 역시 느끼기도 하고 스킨십도 하는데, 그래, 바로 이 여자가 사랑이지, 하는데 집에서 저녁 만들고 있겠다는 나오미의 문자에 무너져내린다. 나는 지금 무얼하고 있나. 나란 새끼 어떤 새끼인가. 그는 울고 싶을 정도로 괴롭다. 그는 나오미에게도 실비아에게도 우린 연인관계라고 말하지 않으며 또 자신을 그렇게 묶어두지도 않는다. 지극히 지찔하고 약한 모습이다. 한 명을 내 연인이라고 말해버리는 순간 다른 한명과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 불안했을 것이며, 한 명을 내 연인이라고 규정짓는 순간 다른 쪽이 주게될 만족과 행복을 가져가지 못할테니까. 그러나 그런 자신이 잘못됐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괴롭고 괴롭고 괴롭다.
당신이 실비아랑 바람을 피우는 건지 나랑 바람을 피우는 건지 모르겠네. 나오미가 말했다. 피터는 이 말에 대해서 멍하니 생각했다. 어느 쪽이든 차라리 낫다. 구식 부정(不貞)의 품위. 둘 다 아니야. 피터가 대답했다. 실비아는 아주 소중한 친구야. 넌 내 집에 사는 홈리스 대학생일 뿐이고. 그러자 나오미가 웃었다. 진짜 무례하네. 그녀가 말했다. 잇새로 옥수수 칩을 와그작 씹으며, 손가락끝에 짭짤한 주황가루를 묻히면서. 그는 눈을 감았다. 그날 아침 피터가 아래층 건조기에서 꺼내 온 두 사람의 세탁물. 그의 티셔츠, 속옷.
그녀의 레깅스와 스웨트 셔츠. 잘 펴서 갠 다음 침대보 위에 쌓아둔 두 무더기. 관계의 도상. 실비아한테 안부 전해줘.-p.311
피터에게는 사이가 좋지 않은 남동생 아이번이 있다. 아이번은 체스에는 천재적이지만 인간 관계에는 서툴다. 아이번은 아버지랑 둘이 살았는데, 아버지마저 얼마전에 돌아가셨다. 아이번은 아버지를 그리워하지만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잊게 된다는 것을 안다. 사랑하게 된 여자에게 주말마다 찾아가서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녀가 가진 죄책감에 대해서도 듣고 자신이 가진 형에 대한 원망에 대해서도 얘기한다. 형은 나쁜놈이에요 그런데 형은 내게 영향을 미쳐요.
이 책의 인터메초는 이탈리아에서 온 말로 '막간', '간주곡' 이라는 뜻이란다. 나는 이들의 삶이 현재 인터메초 라고 생각했다. 잘해보아야지 하다가도 다시 삐걱대는 형제 관계에서도 그렇고, 상처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기어코 상처를 주고 마는 연인 관계에서도 그렇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결국은 겪어나가야 하는 지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지 말아야할 것을 하고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으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거, 그게 관계에 끼어들면서 필연적으로 상처를 불러오지만, 그런데 그걸 지나쳐야만 그 다음으로 갈 수 있는게 아닌가. 바로 그 지점에서 성장이 오는게 아닌가 말이다.
나에게는 나쁜 연애, 나쁜 관계가 있었다. 그 관계는 안타깝게도 좀 오래 이어졌더랬다. 시간이 오래 흐른 후에 나는 그것을 나빴다고 인정했지만, 그러나 당시에는 어떻게든 '그게 아니야' 라고 변명하고 싶었다. 혹여 그 관계에서 아프거나 상처를 받기라도 하면, 거봐 그럴 줄 알았어, 라는 말을 듣게될까봐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내 인생에서 그 시간과 관계를 통째로 들어내어 버리고 싶다고 수차례 생각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 시간, 그 관계 속에서 나는 상처받았지만, 그러나 상처를 주기도 했다. 거기에는 죄책감이 있었고, 그리고 규정짓지 못하는 관계와 머뭇거림도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규정짓지 못함과, 죄책감과, 상처, 이 모든 것들은, 나를 포함한 사람들이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데에서 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방점은 '좋은 사람'이 아니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데에 있다. 시간이 아주 오래 지나 지금, 나는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 성장한다는 것은, 내가 가끔은 나쁜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그 마음 안에는,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 내가 있다. 좋은 사람이고 싶은 나. 그러나 정말 좋은 사람은 상처 주는게 두려워 말을 꺼내기 무서워하는 사람이 아니고, 상처 주는게 두려워 규정짓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은 그저, 도망가고 회피하는 나약한 사람일 뿐이다. 우리는 삶에서 숱하게 단호하게 결정해야 하고, 아니라고 말해야 하고, 거절을 해야한다. 그리고, 규정을 지어야 한다. 네 포지션과 내 포지션을. 나는 너에게 무엇이고, 너는 나에게 무엇인지. 나를 포함한 샐리 루니 책속의 모든 등장인물들이, 규정을 짓지 못해서 얼마나 괴로웠던가.
[노멀 피플]에서도 코넬은 메리앤을 연인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아름다운 세상이여 그대는 어디에] 에서는 사이먼을 향한 애끓는 마음을 가지고서도 다른 연인을 사귀는 아일린이 있다. 이도저도 아니면서 서로를 향한 극진한 마음을 가진 관계. [친구들과의 대화]는 어떤가. 거기, 다른 사람에게 밝히지 못하는 유부남 섹스 파트너가 있다. 말할 수 없는 관계, 망설여지는 관계, 차마 한 마디를 더 못하겠고, 차마 한걸음을 더 못가서 끙끙대는 관계, 그리고 이 사람이 내 사람이다, 나는 이 사람과 파트너다, 규정짓지 못하는 관계.
나에겐 오래전 젊은 시절, 그들과 같은 고통을 가지고 끙끙대던 관계가 있었다. 그렇다면 좀 더 나이든 지금은 달라졌냐하면, 그렇지가 않다. 인생은 성장이 계속 이루어지는 과정인지라, 성장 끝, 하면서 완성되는 인간이란 없다. 코넬과 메리앤보다 훨씬 나이든 피터만 해도 두 여자 사이에서 그녀도 애인이 아니고 그녀도 애인이 아니야, 하며 괴로워하지 않나. 그 괴로움이 끝나고 아름다운 동화마을로 들어선다면 좋겠지만, 또다시 다른 괴로움으로 죄책감에 휩싸이고 또 괴로워할거다. 샐리 루니 소설을 읽을 때마다, 망설이고, 규정짓지 못하고, 드러내지 못하고, 죄책감을 느끼면서 괴로워하던 나를 어김없이 만나게 되어서 너무나 괴롭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이 소설 너무 좋아, 꼭 읽어봐, 라고 할 수가 없고, 누구에게도 추천할 수가 없는데, 그래서 애타는 마음이 된다. 이 마음, 나만 아는 것 같아서. 이 괴로움, 나만 겪는 것 같아서.
다행스러운 사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샐리 루니 속 등장인물들은, 어쨌든 점점 나아지고 있다는거다. 메리앤과 코넬이 소설의 처음보다 끝에 더 나은 인간이 된 것처럼, 점점 더, 그전보다 좋은 사람이 되어가면서 비로소 평범하고 노멀한 보통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먼훗날, 아 그 때 너무 괴롭고 그때 너무 어리석었지, 그 때 그 관계는 나빴어, 라고 후회하는 보통의 어른이 될 것이다. 지금의 내가 그런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샐리 루니의 소설을 읽으면, 누군가에게 이 괴로움과 죄책감을 말하고 싶어서 미치게 외롭고, 그런 한편 혼자서 창밖을 보며 멍하니 앉아있고 싶을 정도로 고독해지기도 한다. 게다가 잔상도 오래 남아. 읽은지 3주가 되었는데, 오늘 갑자기, 그러니까, 가운데 도에 엄지 손가락을 놓는 순간 다른 손가락들은 저절로 제자리를 찾는다는 미셸 오바마의 글을 읽다가, 우리는 끊임없이 제자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면서, 샐리 루니 생각이 났다. 인터메초 생각이 났다. 메리앤도 코넬도 처음에 엄지 손가락으로 도를 짚지 못했다. 지금 피터도 도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엄지 손가락이 제대로 도에 놓이는 순간 다른 손가락들은 저절로 제자리를 찾을 것이며, 그러다가 가끔은 '내가 도를 못찾고 헤매었었지, 그래서 악보랑 다르게 손가락이 꼬였었어'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자기 삶의 능숙한 연주자가 될런지는 두고 볼 일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끊어낼 수 있고,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단호하게 아니를 말하는 사람이 되어있다. 나에게도, 그리고 타인에게도 다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