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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ka - Life In Cartoon Motion
Mika 노래 / 유니버설(Universal)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5옥타브를 넘나드는 그의 목소리 자체가 이미 이 앨범을 가치있게 만들어 주기는 했지만, 그의 앨범이 정말 멋진 이유는 단지 그의 목소리때문만은 아니다. 미카는 이 앨범을 만들면서 보란듯이 나는 목소리만 가진 가수는 아니야, 라는 말을 하는 것 같다.
「Grace Kelly」로 시작되는 이 앨범은 한껏 경쾌한 느낌을 주면서 「Lollipop」으로 이어진다. 방 안 가득 이 음악이 울려퍼진다면 설거지조차 흥겹게 할 수 있다. 그 하이톤의 목소리가 전혀 귀에 따갑지 않다니. 그저 마냥 놀랍기만 하다. 그러나 이 앨범의 가치가 더 높아지는 까닭은 앞서 말했듯, 다른 것들과의 조화다. 6번 트랙인 「Any Other World」에 첨가된 현악기는 노래에 무게를 실어준다. 거기다 더해지는 합창코러스라니. 나는 그 현악기가 무엇인지는 알지도 못하지만, 그 현을 울리는 소리가 주는 묵직함이 좋더라. 나는 그저 아이돌이 아니지, 하는 느낌을 나는 받게 되던걸. 9번트랙의 「Stunk In The Middle」에서는 또 피아노가 돋보인다. 음악은 하나의 악기로도 훌륭하지만 여러악기가 내는 하모니도 중요하다. 노래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보이스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 하더라도, 다른 보이스들과 하모니를 이룰때는 어쩐지 더 근사한 음악으로 발전하기도 한다. 미카는 자신의 5옥타브를 넘나드는 목소리에 현악기를 더하고, 합창을 더하고, 피아노를 더한다. 그래서 나는 그의 음악을 싫어할래야 싫어할 수가 없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의 가치를 알면서도, 다른 악기를 쓰는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다른것들과 어울리는 법을 아는 가수라니, 진정한 가수가 아닌가! 게다가 여러명의 코러스에게 많은 부분을 내어주는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실로 감동의 물결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 앨범의 절정은 「Happy Ending」에서 이루어진다. 조용히 시작하는 코러스들의 작은 합창, 이어지는 미카의 현란한 목소리, 클라이막스에서 점점 커지는 합창단들의 격렬한 외침, 그리고 미카의 비명.-나는 그것을 비명이라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다-
This is the way you left me
I'm not pretending
No hope, no love, no glory
No happy Ending
이렇게 당신은 날 떠났지요,그런 척 하지는 않았지만, 희망도 없고 사랑도 없고 영광도 없고, 해피엔딩도 없어요.
해피엔딩도 없다고 말하는 이 슬픔과 아픔의 노래는 차라리 찬란하며 격렬하다. 아픔으로 절정까지 이를 수 있다는 듯 그의 노래를 결코 한 귀로만 듣고 흘려버릴 수가 없다. 이 앨범의 해피엔딩 만큼은 방안 가득 울려퍼지게 하기 보다는 이어폰이나 헤드폰으로 듣기를 권한다. 조금씩 커지고 이윽고 울부짖는 코러스가 바로 귓속으로 침투해야 이 음악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은것이 그 이유다. 왼쪽 귀와 오른쪽 귀의 외침, 그것이 뇌 가운데서 섞여서 가슴으로 흘러드는 소름끼침.
게다가 마지막 10번트랙까지 다 듣고 난 뒤, 시디를 다시 재생시키지 않고 그대로 놓아두면 히든트랙이 나온다. 아, 난 정말 히든트랙이라는 서비스를 좋아한다.(가장 좋은건 비트겐슈타인의 히든트랙이었다)
게다가 이 앨범은 19세미만불가 앨범. 시디케이스에 붙어있는 빨간 표딱지를 보면서 내가 어른임이 자랑스러웠다. 그렇다. 나는 이제 이런것을 숨어서 사지 않아도 되는 (조금 늙은)어른인것이다.
그의 앨범에는 종소리도 없고, 벨소리도 없고, It's time to celebrate 라는 구절도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는 크리스마스 선물같기만 하다. 버릴곡도 없고, 좋지 않은 곡도 없다. 그의 보이스와 피아노와 현악기와 합창이 가득찬 이 앨범은 크리스마스 선물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