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원서읽기는 로맨스 소설을 추천할까 싶어서 후다닥 이미 구매해뒀던 로맨스 소설을 번역본으로 읽었다.
이 책의 원서를 진작에 사두었는데 나중에 이 책의 번역서가 나온거다. 오호라, 번역서 읽고 읽자 한건데, 사실 이 책의 원서는 충동적으로 서점 갔다가 충동적으로 구매했던 걸로 기억한다.
처음에 주인공의 성격이 별로 내 마음에 들질 않아서 좀 짜증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재미있게 읽긴 했다. 게다가 에로틱한 씬도 나쁘지 않았고.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일단 원수였던 직장 동료를 사랑하는 모든 이야기는 샐리 쏜으로부터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샐리 쏜은 그녀의 책 [헤이팅 게임]에서 직장 동료인 여자 루시와 조슈아가 원수관계로 으르렁 거리지만 사실 서로에 대한 욕망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얘기를 했더랬다. 그 과정에서 사랑을 확인하기 위해 체육대회를 넣었고, 결혼식을 넣어 '여자친구인 척' 결혼식에 가주는 장면도 넣었다. 헤이팅 게임 이전에도 아마 원수가 사랑하게 되는 내용의 로맨스 소설은 있었겟지만, 헤이팅 게임은 내가 읽은 첫 동등한 관계의 여남이자 직장동료가 으르렁대다가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어느 한쪽이 보쓰가 아니라 비슷한 나이대 그리고 비슷한 직장내에서의 위치 라는 거였다.
나는 여태 읽었던 로맨스 소설 속에서 이 책 속의 남자주인공 조슈아를 가장 좋아한다. 그건 내가 진지하고 성실한 남자를 좋아하기 때문이고, 조슈아가 어떻게든 진지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육체적 매력 뿜뿜하고 근육질 대박인 남자주인공은 많지만 그들이 언제 운동하는지는 나오지 않는데, 조슈아는 부지런히 운동하러 다니는 것도 나온다. 운동하러 다녀오면서 루시를 만나기도 한다. 하여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조슈아 앓이를 했더랬다. 그런데,
그 뒤로 읽게 되는 로맨스 소설 중에 일단 '동료이지만 원수같아 재수없고 그런데 사랑하게 되는' 로맨스 소설은, 다 헤이팅 게임으로부터 소재며 흐름을 가져온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 처음은, 필리핀 로맨스 소설이었다. 어디, 아시아 로맨스 소설 한 번 볼까, 하고 읽었던게 [러브 온 더 세컨드 리드] 였다.
'원수에서 연인되기'라는 이야기 자체에는 물론 당연히 비슷한 이야기가 담길 수밖에 없겠지만, 이 책 러브 온 더 세컨드 리드 는 헤이팅 게임과 주인공 이름만 빼고 거의 다 비슷해서 좀 어이가 없었더랬다. 그래서 내가 당시에도 이 책을 읽고 필리핀 버전 헤이팅 게임이라고 리뷰를 쓴 적 있는데 , 이번에 읽은 스페인 작가의 [스패니시 러브 디셉션]도 역시나 스페인버전 헤이팅 게임 같다.
어쩌면 체육대회 라는 것, 몸을 격렬히 쓰는 장면이라는 것은 이제 로맨스 소설의 필수요소가 되어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왜 아니겠나, 남자 주인공하고 아직 섹스는 안해서 벗은 몸은 못봤지, 그런데 벗은 몸 혹은 그의 근육을 확실하게 봐서 아니, 저 원수같은 놈이 저렇게 육체적 매력이 뛰어나다고? 는 해야겠지, 하다보면 체육대회는 필수로 넣어야 하는 것일지도. 그리고 원수이기는 하지만 서로의 필요에 의해 서로를 도와주기로 하면서 [스패니시 러브 디셉션]에서 여자는 원수같은 남자를 언니의 결혼식에 '남친인척' 데리고 간다. 물론 언니 결혼식에 누구 데리고 가지, 하다가 남자가 '내가 가줄게'한거긴 하지만, 여하튼 '아직 애인이 아닌데' 결혼식에 데리고 가고, 그 날 결정적 일이 발생한다...는 것도 그렇다. 헤이팅 게임에서도 루시는 조슈아의 요청으로 조슈아 형의 결혼식에 함께 간다.
그러니까 나도 안다. 세상에는 많은 결혼식이 있고, 체육대회라는 것도 어디서나 빈번하게 일어나고, 그러니까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겠지만, 만약 내가 로맨스 소설을 쓴다면 체육대회를 넣었을까? 그건 잘 모르겠다. 내가 로맨스 소설을 쓴다면 '결혼식에 데려가기'를 넣었을까? 어쩐지 아니었을것 같다. 그건 물론 결혼식이라는 제도 자체가 스페인과 미국과 한국이 달라서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필리핀의 작가도 스페인의 작가도 어쩐지 헤이팅 게임을 읽고난 후에야 이 작품들을 쓴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나는 읽으면서 자꾸 '이건 헤이팅 게임에서 다 한거잖아' 싶은거다. 그리고 그건 [러브 온 더 세컨드 리드]에서 훨씬 더 심하긴 했다. 이건 좀 도덕적으로 아니지 않아요? 할 정도로. 그런데 [스패니시 러브 디셉션]도 , 작가님, 헤이팅 게임 재미있게 읽으셨나봐요... 싶어진거다. 이 경우는 러브 온 더~ 처럼 막 찡그려지는 그런 케이스는 아니었지만, 읽으셨네요, 정도의 느낌이랄까. 스페니시 러브 디셉션의 작가 엘레나 아르마스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소재와 이야기들을 중심적으로 넣어서 필리핀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뭐야, 따라했잖아'는 아니다.
그래서 지금 찾아봤더니
헤이팅 게임 2016년
스패니시 러브 디셉션 2021년
러브 온 더 세컨드 리드 2023년
이다.
난.. .좀 그래?
내가 로맨스 소설을 읽으면서 헤이팅 게임 읽고 썼네, 하면서, 그런데 '앨리 헤이즐우드'를 읽어도 앨리 헤이즐우드 처럼 쓸 순 없겠구나 싶어졌다. 앨리 헤이즐우드는 이과대학 대학원생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실제 자신이 박사과정 밟았던 과정을 녹여냈기 때문에, 그녀의 작품을 읽었다고 소재나 흐름을 가져올 수 있겠나 싶어지는거다. 독보적 영역의 로맨스랄까. 그런 한편, 샐리 쏜이 이 책들을 읽는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싶어졌다. 너무.. 내 책하고 비슷하다.. 하지 않을까?
나의 경험은 미천하여 만약 내가 로맨스 소설을 쓴다고 한다면 나 역시 내 경험과 내 지식으로 쓸테니 앨리 헤이즐우드 처럼은 전혀 못쓸 것 같고 그러나 샐리 쏜을 따라하지 않을 수 있도록 어떤 나만의 독창적인 소재를 가져와야 할 것 같다. 인물도 마찬가지고. 그렇지만 머슬맨 포기못해. 나는 여자주인공이 언제 남주의 근육을 느끼고 반하게 해야할까? 소주 뚜껑 따주는 전완근에 반해버릴까? 우연한 기회에 푸시업 하는 걸 볼까? 아! 턱걸이 하는거 우연히 볼까? 일단 무조건적으로 체육대회 피할 것!!
그리고 결혼식에 대한 얘기를 하고싶다. 이 결혼식이라는 것이 외국의 많은 곳에서는 아주아주 엄청나게 큰 행사인 것 같고, 그리고 그 행사에 하객으로 갈 때-특히 가족 구성원일 때- 파트너를 데리고 가는 것은 어떤 압박 같은 것인가보다. 되게 많은 작품에서 결혼식에 파트너를 데려가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거다. 게다가 그 결혼식은 대한민국에서처럼 식 자체가 짧고 밥 먹는것도 두 시간도 안걸리는 그런 개념이 아니라 하루 온종일 식과 연회가 이어지거나 심한 경우에는 결혼식 전부터 전야 행사가 있고 막 그런거다. <걸어서 세계속으로> 나 <세계 테마 기행>에서도 간혹 여행지에서 현지 결혼식 구경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건 마을 전체의 엄청난 이벤트가 되곤 했다. 오 마이 갓이야.
[스패니시 러브 디셉션]의 '카탈리나'는 고향 스페인을 떠나 뉴욕으로 와 거주하며 회사를 다니고 있다. 나름 이곳으로 옮겨와 열심히 일하면서 차근차근 경력도 쌓았다. 그런데 언니의 결혼에 맞춰 결혼식 참석을 위해 스페인에 돌아가야 하고, 그건 가족들과 동네 사람들을 비롯하여 전(EX)남친을 마주쳐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카탈리나의 연애와 그리고 실패는 모두에게 알려졌었고, 그녀는 자기의 구남친이 교수였고 자신은 제자였다는 사실로 인해 능력을 의심받았으며,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던 것을 아프게 기억하고 있다. 그곳으로 돌아가 모두의 동정을 받아야 한다는게 너무나 끔찍한데, 설상가상으로 전남친은 약혼녀를 결혼식에 데려온다는게 아닌가! 게다가 전남친은 카탈리나 언니가 결혼할 남자의 형이다! 그래서 그 결혼식에 혼자 가야한다는 것이 몹시 고통스럽고 걱정이 된다. 가족들이 안쓰럽게 볼게 너무나 뻔하고, 동네 사람들도 아직도 그 남자를 극복을 못했네, 하게 될까봐 미치겟는거다. 바로 그 때 '애런' 이 나타나 '내가 같이 가줄게' 한거다. 물론 애런에게도 그녀에게 부탁할 게 있어서 제안한거긴 하지만,어쨌든 그들은 언니의 결혼식에 연인인 척 함께 가기로 하고, 연인이라니까 방도 하나..를 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하객으로 온 사람들에게(물론 카탈리나는 가족이지만) 잘 곳을 마련해주고 그리고 결혼식 당일이 되기 전날부터 막 게임하고 술 마시고 놀고 난리가 나는거다.
대체 이들에게 결혼식은... 뭘까?
얼마전에 본 로맨스 영화에서도 여주인공들이 동생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고 자신의 아직 성공하지 못한 일에 대한 처지를 어쩔 줄 몰라하고, 그리고 온 가족이 주인공의 남자친구를 찾아주느라 애를 쓰는 장면이 나왔더랬다.
아니 그러니까 생각나는데, 내가 <다섯 번의 소개팅> 이란 영화와 <찍을게요> 라는 영화를 봤는데, 와, 이거.. 둘이 내용이 완전 똑같다. 심지어 여주인공이 소개팅받는 남자 중에 한 명이 여주인공의 엄마를 사랑하는 것까지 똑같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정도로 똑같은건 따라한 건 아니고 아마도 리메이크 한게 아닌가 싶다. 둘 다 최신영화인 것 같은데 응 우리는 중국 배우 쓸게 응 우린 인도배우 쓸게 뭐 이렇게 한듯. 그런데 <찍을게요> 남주 어디서 많이 봤다 했는데.. 설마, 너, ... 애프터의 바로 너니? 오 마이 갓... 많이 컸네..
아무튼 이들에게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결혼식은 아주아주아주아주 흥미로운 파티인 것 같다. 결혼식 한 번 참석하면 신부 신랑은 물론이고, 하객들까지 완전히 진이 다 빠질듯.. 그런 한편, 우연한 만남과 사랑이 싹트기에도 아주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그러니 소설과 영화의 단골 이벤트가 된게 아닐까. 헤이팅 게임에서도 결혼식에서 오해가 발생하기도 하고 또 사랑하는 사람의 편이 되어주기도 하는데, 스패니시 러브 디셉션에서도 결혼식은 그들을 이어주는 매개가 된다. 오래전에 읽었던 '산드라 브라운' 의 소설에서도 여주와 남주가 서로에게 성적 긴장감을 느끼면서 그 때 여주가 '그건 우리가 결혼식에 다녀와서 그래' 라고 말하기도 했더랬다. 결혼식의 낭만적 감정이 지금 우리에게 남아있어 우리가 서로에게 흥분한다는 취지였다. 결혼식이 그런 식의 낭만을 줄거라고는 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 가서 돈 내고 밥 먹고 오잖아.. 물론 친한 친구들의 경우에는 갔다가 울컥 하기도 한다. 그게 뭐라고 남의 결혼식에 울컥해. 하여간 대한민국이랑 다르게 엄청난 행사인 것 같은데, 언니 결혼식 가려고 다이어트 하다가 스패니시 러브 디셉션의 주인공은 쓰러지기도 한다. 밥을 잘 안먹음. 하여간 내가 안좋아하는 캐릭터야... (밥 잘 안먹는 캐릭터 싫어함)
이번주 초에 여동생 집에 갔다가 술을 마시면서 <세계 테마 기행>을 보았다. 평소 내가 집에서 술 마실 때면 <걸어서 세계속으로>와 함께 즐겨 보는 프로그램인데, 이 프로는 '테마'를 정하는 것이니만큼 한 나라에 갈 때 그 나라에 대한 어떤 식으로든 전문가가 출연하여 안내를 한다. 오스트리아에 가면 거기서 성악하는 남자가 안내를 하고, 페루에 가면 셰프이면서 그 나라 말을 하는 사람이 가고 그런 식인거다. 신계숙도 중국어를 하면서 대만 여행을 가는 걸로 이 프로그램에 처음 출연했던 걸로 안다. 하여간 이번에는 공학박사가 나왔는데, 처음부터 본 게 아니었단 말이지. 그런데 이 공학박사가 안내를 하면서 이런 말을 하는 거다.
"전 요즘 석회암이 좋아지는데요."
... 네? 석회암이요?? 석회암이... 좋아져요?
와 너무 참신한 말이었다. 너무 인상적인 말이었다. 이거 말고도 인상적인 멘트가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게 아무리 기억하려고 해도 떠오르지가 않아. 내가 너무 그 멘트가 인상적이라 여동생한테도 말해줬다. 이 사람은 요즘 석회암이 좋아진대!
보통 '좋아진다'는 말은 이럴 때 쓰지 않나.
나 요즘 마라탕이 좋아져.
나 요즘 와인이 좋아져.
나 요즘 앤드류가 좋아져.
뭐 이럴 때 말이다. 그런데 석회암이 좋아진다는거다. 석회암이 좋아진다고 했던가 정확한 워딩이 기억이 잘 안나는데, 아니, 공학박사란 무엇이길래 석회암을 좋아하지? 하여간 이 공학박사가 신나서 막 설명을 하는데 호주, 뉴질랜드, 브라질의 석회암 지역을 가서 막 감탄하고 들뜨는게 그대로 보이는거다. 같이 간 사람들이 어떤 의도로 같이간건지 모르겠는데, 공학박사는 막 신나서 얘기하고 그런데 듣는이들은 아무도 신나하지 않는.. 광경이 펼쳐졌다. 저들은 왜 저기에 가있는가.. 그러면서 공학박사가 설명해줬다.
"석회암은 바다생물의 껍데기가 굳어서 만들어진건데요, 그 석회암이 시멘트가 되고, 그 시멘트로 우리는 집과 건물을 만들어 우리의 껍데기가 되는거죠. 껍데기로 만들어진게 껍데기가 되는겁니다. "
분명 나도 학창시절 언젠가, 지구과학 시간이라든가 뭐 그럴 때였을까, 하여간 석회암을 배웠단 말이지. 그러니까 내가 '나는 석회암을 배웠다'는 사실은 기억하지만 석회암이 뭔지는 전혀 모르고 있는데(공부 잘 못함), 공학박사 설명 들으면서 깜짝 놀라면서 동생에게 '야, 석회암이 바다생물 껍데기로 만들어졌대!' 막 이런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동생 생물선생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래서 나 학교때 과학 선생님이 저렇게 설명해줬으면 내가 공부를 더 잘하지 않았을까...라는 괜한 원망을 한 번 해보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지금은 싱가폴로 돌아가기 위해 비행기 기다리면서 대한항공 라운지에 와있는데, 오~ 대한항공 라운지 완전 바뀌었는데? 분위기도 완전히 달라지고 음식 종류도 더 많아졌다. 시간이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도 별로 없고 완전 넓은 자리에서 먹고 마시면서 쓰고 있는데 ㅋㅋ 나는 이런거 진짜 너무 좋아하는 것 같다. 군중 속에서 혼자 글쓰기 혹은 군중 속에서 혼자 책읽기.
사실 저녁으로 짜장면 먹고 공항으로 온거라 배가 안고팠고, 그래서 '라운지 가서 쉬면서 와인 한 잔 하면서 책 읽다가 비행기 타자' 하고 온건데, 음식들 보고 돌아다니다가 한 상 퍼옴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야채죽, 김밥, 피자, 샌드위치, 순대, 양념고추, 호박샐러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사진 찍어서 단톡방에 보냈더니 엄마가 '너는 저녁 먹었는데 그걸 또 먹니?" 하셨다.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비행기에서 안먹으면 되지, 뭐.
으이크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슬슬 비행기 타러 갈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