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는 영화를 보기도 하고 TV 프로그램을 보기도 했다. 그중 하나가 <고든 램지의 미식 여행-스페인편> 이었다. 이건 지금 검색해도 유튜브에도 안나오고 따로 블로그 후기에도 안나오는 걸 보니 국내에서는 방송하지 않는 프로그램인것 같다. 제목 그대로 고든 램지가 프랑스인, 이탈리아인 친구와 스페인으로 여행을 가서 현지의 레스토랑에 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또 현지의 음식을 자기들이 직접 만들어 먹어보기도 하는 것이었다.
스페인편이라길래 스페인이 워낙 음식으로도 유명하니 재미있겠다 하고 시청을 시작했는데, 나는 <말라가 해변 레스토랑>이라는 놀라운 장소를 알게된다. 사실 정식 이름이 말라가 해변 레스토랑인지는 모르겠다. 정보가 없어서 정확한 식당명을 찾을 수가 없고 내가 메모를 그렇게 해놨더라. 하여간 이 레스토랑은 이름 그대로 말라가 해변에 있는 큰 레스토랑인데 사이즈가 어마어마하고 사람들이 엄청 많다. 실내가 아니라 실외인데 해변가 야외라고 생각하면 된다. 여기에 진짜 테이블이 엄청나게 많고 그 테이블에 또 사람이 엄청나게 많고 그들 사이로 웨이터들이 음식 담긴 접시를 여러개 들고 다니면서 손님에게 놓아준다. 그런데 이곳의 특이한 점은, 메뉴가 없다는 것. 메뉴가 없다는 얘기를 들으면 일단 처음 드는 생각은 '아, 단일 메뉴인가보다!' 인데, 오오, 그게 아니었다. 이곳에는 메뉴가 없고 그래서 손님이 직원에게 나 뭘 주시오, 라고 주문할 수가 없다. 대신, 웨이터들이 서빙할 수 있는 요리를 가지고 다니면서 자신이 뭘 가지고 있는지 외치면, 앉아있던 손님이 '나 그거 하나 주시오!' 하면 그 접시를 내려놓는 식인거다. 그러니까 한 웨이터가 "홍합찜입니다!" 한다던가, 또다른 웨이터는 "빠에야입니다!" 이렇게 외치면, 여기저기서 손님들이 "나는 빠에야 두 개줘요!" 이런식으로 식사를 한다는 거다. 계산은 식사후에 접시의 개수를 세서하는데, 모든 메뉴가 동일한 금액이라 가능하단다. 오...
고든 램지는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식당을 운영하게 됐냐 사장에게 물었다. 사장은 자신의 할머니때부터 해오던 식당인데, 할머니가 당시에 글을 모르는 분이셨다고 한다. 그래서 손님으로부터 구두로 주문을 받으면 그 음식을 만들어줬는데, 어느날은 손님이 많아서 일일이 다 주문을 받기가 힘들어, 아들이 어머니에게 "일단 음식을 뭐든 만들어 줘봐요, 내가 팔아볼게" 했다는거다. 그 때부터 그냥 그렇게 쭉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 오, 너무 신기해.. 정말이지 너무 신기하다. 역시 세상은 넓고 내가 모르는 일은 무수히 많구나. 그래서 아주 재미있게 봤다. 이거 시리즈를 다 보고 싶은데 어디서 하지를 않는것 같네요. 그렇다면 다음번에 비행기 탈 때... 노려봐야 하나요.. 업데이트 가능한 부분?
아, 이 책 참 재미있게 읽었다.
처음 부분에서는 책의 화자인 편집자가 출판사에 자신의 원고를 주기 위해 찾아온 남자의 외모를 묘사한다.
나는 여자도, 화가도 아니다. 나는 남성의 아름다움에 별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이 아니지만, 모자에 배지를 단 이 신사의 외모는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의 큰 근육형 얼굴은 내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있다. 진짜 그리스인 같은 매부리 코, 얇은 입술, 그리고 아름다운 파란 눈의 그 얼굴은 선한 기운으로 빛이 났고, 뭐라고 이름 붙이기 어려운 또 다른 무언가가 있다. -P.8
사람의 외모에 대한 감상 혹은 평가는 정말 주관적인 것이지만, 나는 위의 묘사에서 '얇은 입술'에 갸우뚱해졌다. 좋은 인상에 얇은 입술은 영향을 주는가? 사실 나는 얇은 입술의 남자를 딱히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자의 얇은 입술은 나에게 긍정적이지 않다. 그리고 코..
남매 단톡방에서 코 얘기가 나왔다. 여동생이 달리기하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콧구멍이 너무 크게 나온것 같다는거다. 그래서 나는 "그건 콧구멍이 커서 그런거 아닐까?" 했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다가 이어지는 대화.
다락방: 나 예전에 칠봉이가 나한테 콧구멍이 살짝 위로 들려있다고 들창코처럼
다락방: 그래서 코 안이 보인다고 하더라고?
여동생: 그래서 헤어진건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콧구멍 때문에 나는 헤어짐을 맞이하게 된것인가 .....칠봉아, 내 콧구멍이 문제였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내 콧구멍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해.....(아련)
아무튼 매부리코 남성이 출판사에 찾아와 원고를 건넨다. 자신은 작가를 지망한다는 말과 함께.
"편집장님 앞에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초보 작가로 출발해 보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늦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요." -p.11
아, 이런 마인드 너무나 좋지 않나요. 내 나이가 많아서, 이제 와서 어떻게 해, 라는게 아니라 늦더라도 안 하는 것보다 낫지, 하는거 말이다. 나도 목표를 가지고 있다. 노안이 와서 책 읽는 것도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 같지만, 그래도 인생 작품 하나 써야되지 않겠냐. 하여간 내가 영어로 로맨스 소설 써가지고 뉴욕 출판사에 보내버릴 것이다. 내가 이번에 체코 가보니까 앨리 헤이즐우드, 콜린 후버 책이 죄다 체코어로도 번역되어 있더라. 한국어로 써서 체코어로 번역되는 것보다 영어로 써서 체코에 번역되는게 더 빠를 것 같다. 내가 영어로 로맨스 소설 써가지고 뉴욕 출판사에 보낸 다음에 독일에 가도 체코에 가도 매대에서 내 책을 볼 수 있게 할것이다. 문제는 아직 사랑 이야기에 대한 감이 안잡혀서.. 아무튼 내가 나이 많다고 포기하는 대신에, 늦더라도 안하는 것보다 낫지, 영어로 로맨스 소설 쓰기 한 번 도전해보도록 하겠다. 언제쯤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 머릿속에 내가 쓰게될 로맨스 소설 생각이나 하자. 일단 여자주인공은 중년의 근육질 여성으로 하고(닥쳐!) 남자는... 근육질 남성으로 하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이는 아직 미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무튼 으른의 로맨스 그리도록 하겠다. 이번에 체코 가서도 느낀건데, 로맨스 소설 시장이라는 것은 대한민국 안에서 보는 것과 대한민국 밖에서 보는 것이 너무나 다르다. 이거 되게 큰 시장이야. 내가 지금 돈을 못벌어서 초조하지만 여하튼 로맨스 소설로 인생 대박 한 번 쳐봐야겠다. 언제가 될지 아직은 확실히 모르지만 여러분은 세계를 여행하다가 나의 책을 만나게 될것이다.. 샤라라랑~
취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는 곧 가벼운 어지러움을 느꼈다. 기분 좋은 한기가 가슴에 느껴졌고 행복하고 격정적인 상태가 시작되었다. 특별히 눈에 띄는 전환점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나는 갑자기 몹시 즐거워졌다. 공허함과 지루함이 완전한 즐거움과 기쁨으로 바뀌었다. 나는 웃기 시작했다. 갑자기 수다를 떨고 싶고, 웃고 싶고, 사람이 그리워졌다. 돼지고기를 씹으면서 나는 삶이 충만한 느낌, 삶이 만족스러운 것 같은 느낌, 행복한 것 같은 느낌을 받기 시작했다. -P.64
ㅋ ㅑ ~
내가 진짜 이런 기분 잘 느낀다.
일전에 치앙마이 가서 혼자 소주 마시면서 ㅋ ㅑ ~ 이런게 진짜 행복 아니냐, 너무 행복해서 욕나온다 했었는데,
이번에 드레스덴에서도 김치찌개에 소주 마시면서 ㅋ ㅑ ~ 진짜 행복하다, 생각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소주를 마셔서 행복해진건가 행복하니까 소주를 마시는건가, 알 수 없게 되어버렸고,
그런데 먹고 싶었던 음식과 술을 마시니 너무 좋은거다.
프라하에서도 그랬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 저녁, 좀 이른 시간에 나는 노천 레스토랑에 자리 잡았다. 나 맥주만 마실게, 라고 말했고 직원은 어떤 맥주 줄까, 해서 다크로 달라고 해서 딱 앉아가지고 책을 읽으면서 맥주를 한 잔 하려고 했단 말이다. 한 잔만 마신 후에 쌀국수 먹으러 가서 화이트와인 마셔야지~ 눈누난나~ 계획하고 있었는데,
아아 여행이란 무엇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바로 1분 앞의 일도 모르지않나.
맥주 한 잔을 다 비워갈무렵 비어있던 야외테이블들에 점점 사람들이 가득차기 시작했다. 내 오른쪽 바로 옆자리에는 노부부 세커플이 와서 메뉴판을 보며 뭘 먹을지 의논하고 오래 메뉴판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나보다 먼저 와서 식사를 마쳤던 저쪽 커플들이 계산하고 내 앞을 지나가면서, 메뉴판을 보던 그들에게 자기들 여기서 식사를 맛있게 했다면서 메뉴를 추천해주는거다. 남자는 치킨에 치즈가 함께나온걸 먹었는데 맛있었다고 하고 여자는 뇨끼 먹었는데 좋았다고 하는거다.
뇨...끼?
여기 뇨끼가 있어?
오, 나 뇨끼 먹을까?
아니야 나 쌀국수 먹기로 했잖아?
쌀국수는 한국 가서 먹어. 여기서는 뇨끼 가자.
그래가지고 나는 직원에게 메뉴판을 달라한 뒤 뇨끼를 찾아보고 <홈메이드 뇨끼>가 세종류가 있다는 걸 보았고, 그래서 그 중 하나를 주문했다. 직원은 원 모어 비어? 불었고 나는 그렇다고 했다. 그래서, 갑자기, 예정에 없던 뇨끼를 야외에서 먹어버린 사연.

시금치와 함께 나온 뇨끼는 담백했다.
아 너무 행복했다.
맛있는 음식과 이 분위기와 맥주. 언제까지라도 이곳에 앉아있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적 느낌. 행복하다.. 내일 돌아가야 하는게 아쉽다.. 이러면서 자꾸만, 자꾸만 앉아있었다.
두번째 맥주도 다 마셨다. 하나 더 마실까? 아니야 그만 마셔.. 보통 혼자 여행할 때는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데, 세번째 맥주 콜? 혼자 갈등하고 있는데, 직원이 나의 빈 맥주잔을 보았습니다. 네...
"원 모어 비어?"
"예스, 원 모어 비어 플리즈!"
그렇게 맥주를 세 잔이나 마시고 배도 부르고 알딸딸하고.. 쌀국수.. 못먹으러 갔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럴때 삶이 충만한 느낌을 받는다. 맛있는 것 먹으면서 술도 마실 때, ㅋ ㅑ~ 삶이 충만하구나, 나는 행복하다~ 막 이렇게 되어버려. 책 속 우리의 주인공, 돼지고기를 씹으면서 삶이 충만한 느낌 느끼는거, 그것이 전혀 과장된게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압니다. 열심히 먹고 열심히 운동해서 열심히 건강을 유지해서 그렇게 계속해서 술과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해야겠다. 나는 술이 좋습니다. 술을 누군가와 함께 즐기는 것은 더 좋습니다.
스무살의 올렌카는 미친 아버지와 함께 사는것보다는 돈 좀 있는 오십세의 남자 우르베닌과 결혼을 결심했다. 사랑하는 건 아니지만, 우르베닌과 결혼해 사는 것이 좀 덜 불행해지는게 아닐까 생각한거다. 너무 젊고 아름다운 그녀인지라 그녀랑 어떻게 해보겠다는 남자들이 많았지만, 그녀에게 청혼을 한 사람은 우르베닌 이었다. 결혼식날, 오십세의 우르베닌은 아름답고 젊은 여성을 아내로 맞이하게 되어 너무 신이 났다.
"이 젊은 미인이 저 같은 늙은이를 사랑할 것이라고 누가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좀 더 젊고 세련된 사람을 찾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여자의 마음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P.136
아.. 너무 싫다. 너무 싫은 말이다. 나는 만약 내가 저 말을 사람들 앞에서 듣게된 신부 올렌카였다면, 바로 저 자리에서 정이 다 떨어졌을 것 같다. 나를 높이면서 자신을 하염없이 낮추는 듯한 저 발언이 너무 징그럽다. 바로 저 순간, '아, 내가 미쳤지 왜 이 결혼을 했지' 라고 생각햇을 것 같다. 물론 우리의 올렌카도 괴로워한다. 내가 지금 무슨짓을 한건가.. 올렌카도 부끄러워한다. 저렇게 자신의 연인을 떠받드는 것 같은 표현은 우리가 동등한 입장이 아니라는 생각을 줘서도 싫고, 자신을 낮추지만 결국 어딘가에서 보상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또 징그럽다. 상대를 사랑한다면, 그리고 상대가 나와 연인이 되기로 결심했다면,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자신감을 가지고 자존감을 좀 더 높이는게 사랑을 이어나가는 길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신감 없는 사람, 사랑할 마음 들지 않는다.
그런 한편, 올렌카에 대해 생각한다.
너무나 아름답지만 미친 아버지랑 살고 있는 올렌카. 모두들 자신을 애인 삼고 싶어하지만 외로운 여자. 만약 그녀가 태어나 자란 환경이 지금과 달랐다면, 그녀의 인생은 어떻게 다르게 펼쳐졌을까. 만약 그녀가 미친 아버지랑 살아야하는 아름다운 딸이 아니었다면, 그랬다면 그녀는 우르베닌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녀가 미친 아버지랑 함께 살아야하는게 아니었다면, 우르베닌의 청혼에 '아니'를 말햇을 수도 있을 것이다. 결코 좋지 않았던 그녀의 환경은, 그녀에게 좋지 않은 선택을 하게 만들었고, 그것들은 그 뒤의 일들을 일어나게해 그녀를 불행으로 이끌었다. 불행한 마음과 불행한 상황에서 좋은 선택이 나올 확률은 극히 적다.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살고 싶었는데, 귀족들과 어울리고 싶었는데, 자유롭게 살고 싶었는데, 그런데 결국 올렌카는 어떤 삶을 살게되었는가 말이다.
아 너무 길게 썼네.
이제 그만 써야지.
끝!
"신사분들," 행복하고 부드러운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며 그가 말했다. "무엇 때문에 결혼하지 않으세요? 왜 자신들의 인생을 허비하고 던져버리고 있나요? 무엇 때문에 두 분은 이 땅의 모든 존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을 외면하고 있습니까? 방탕의 달콤함은 평온한 가정생활이 주는 달콤함의 1/100도 되지 않아요! 젊은 양반들 …백작님과 당신, 세르게이 페트로비치…전 지금 행복합니다. 그리고 … 두 분을 제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신은 아실 거예요! 어리석은 충고지만 … 전 두 분이 행복하길 바랍니다. 무엇 때문에 결혼하지 않으세요? 가정생활은 축복입니다. 모든 사람의 의무란 말입니다!" - P125
"전 그와 결혼하고 싶어요! 놀란 표정 짓지 말고, 웃지 말아요! 당신은 사랑 없이 결혼하는 것은 부정한 일이라고, 그리고 또 다른 여러 말들을 하시겠죠. 하지만 …제가 어떻게 하겠어요? 이 세상에 잉여 인간으로 여겨지는 건 정말 힘들어요. 목적 없이 사는 건 끔찍한 일이죠. 당신이 그토록 싫어하는 이 남자가 저를 아내로 맞아주면 제게는 인생의 임무가 생기게 될 거예요. 제가 그를 고쳐주고 술도 끊게 하고, 일하는 걸 가르칠 거예요. 저 사람을 좀 봐요! 지금은 사람 같아 보이지 않지만 제가 그를 사람으로 만들 거예요."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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