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은 두 번째 성정이 된다. 안주인은 아무 고민 없이 가장 작은 비프스테이크 조각을 먹고, 스테이크 양이 모두에게 충분하지 않다면 아예 먹지조차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스테이크를 원치 않아." '원하지 않는' 사람이 항상 같다는 데 놀라는 사람은 없다. 그 자신도 물론이다. 마찬가지로 희생 이데올로기가 여성적 본성의 필연적인 부분이라고 스스로 되뇔 필요도 없다. 본인의 헌신과 너그러움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보편적인 원칙은 일상생활의 자동화만으로는 행동을 유도하기에 충분치 않게 되는,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나 필요해지는 것이다. -p.99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모두 위의 구절에 밑줄을 그었을 것 같다. 얼마전에도 '어머님은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 를 이 글 관련 댓글로 본 것 같은데, 아마 다들 엄마의 희생-그 때는 희생인줄 모르고-에 대한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고기나 맛있는 혹은 비싼 음식에 대해서 말이다.
나는 이 구절을 읽고 닭다리 생각이 났다. 아, 닭다리여. 언제나 아빠에게 가장 먼저 당연하게 올라가야 했던 닭다리. 하아- 어쩌면 그렇게 당연하게 아빠는 닭다리를 가져갔을까. 어쩌면 그렇게 식구들이 챙겨주는 닭다리를 민망함 없이 먹을 수 있을까. 닭 한마리에 다리는 두 개뿐인데 어쩌면 그렇게 당신이 드셨던게 당연한걸까. 그러면서 닭다리 나머지를 다른 가족에게 양보하는 엄마에게는 '가슴살도 맛있어' 라고 말씀하셨었지. 머리 큰 나, 참지 않긔. '그러면 아빠가 먹어! 아빠는 닭다리 가져가면서 왜 엄마한테는 가슴살이 맛있다고 해!' 버럭버럭 소리 질렀었다.
그렇다. 닭다리를 비롯해서 많은 맛있는 음식을-이를테면 생선의 가운뎃토막-양보하는 엄마를 보면서, 그러나 그런 양보 같은게 뭐에염? 하는 태도가 몸에 밴 아빠를 보면서 '왜 같은 부모인데 엄마는 양보하고 아빠는 양보하지 않을까?'를 어릴 적부터 숱하게 궁금해 했더랬다. 그 꼬마는 자라서 꼴페미가 됩니다.
그러니까 내가 제일 처음 만난 한남은 우리 아빠다. 하하. 가부장제? 바로 우리 집에 있었다. 물론 내가 자라온 많은 일화를 얘기하면 내 친구들은 '너네 아빠 같은 사람은 세상에 없는데 너는 왜 꼴페미가 된걸까' 를 궁금해하곤 했다. 이를테면 이런 일화.
중3때 담임한테 억울하게 혼나고 집에 와 엉엉 운 적이 있었다.
나는 그 전에도 후에도 담임 선생님에게 미움을 받아본 적이 없다. 그보다는 총애를 받는 편이었단 말이다. 그런 미움은 내 생애 그 때가 처음이었고 그게 너무 힘들었다. 내가 잘못해서 혼난게 아니라 나를 미워해서 혼낸다는 걸 알겠는 그 느낌. 다들 경험이 있을까?
당시 담임은 돈을 바라기로 소문이 난 사람이었는데, 어제 누군가를 막 혼내다가 다음날 그 아이에게 방긋 웃으며 다정한 말을 건네면, 우리들은 그 아이의 엄마가 왔다갔다는 것을 알았다. 쉬는시간에 우르르 몰려가 "너네 엄마 왔다가셨어?" 하면 그 아이는 어김없이 '응, 화장품 선물해주고 가셨대' 라고 하든가 '응 왔다 가셨어' 했다.
내가 중3때 선생님 때문에 울면서 들어오는 날이 이어지자 엄마는 학부모 모임때 돈봉투를 챙겨가셨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서는 '차마 줄 수 없었다'고 고백하셨다. 사실 가져갔는데 못주겠더라, 고. 엄마는 그날까지 한 번도 선생님한테 돈봉투를 줘본 적이 없었고 그걸 주자니 용기가 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엄마에게 주지 말라고, 엄마, 나 돈 봉투로 예쁨 받고 싶지 않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렇게 중학교 3학년 1년을, 졸업할 때까지 나는 미움을 받았더랬다.
그러니까 그 토요일, 그 토요일도 담임한테 혼나고 집에 와 엉엉 울었더랬다.
그러자 아빠는 옷을 챙겨입기 시작했다. 엄마는 어딜 가려는거냐 물었고 아빠는 말씀하셨다.
"나는 우리 락방이가 뭐 잘못하는 걸 본 적이 없어. 이건 선생이 잘못한거야. 교장 만나서 말해야지. 우리 락방이는 잘못할 리가 없는데 선생 이상하니까 자르라고!!"
나도 울면서 아빠를 말리고 그 때 당시 함께 살던 친할머니도 아빠 다리를 붙들었다. 엄마도 함께 붙들었다. 가지 말라고, 그러면 앞으로 우리 락방이 더 힘들어진다고. 그렇게 아빠는 간신히 진정하셨는데, 그때 말려야 했던게, 왜냐하면 우리 아빠는 뭔가 한다고 하면 정말 그걸 해버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대학시절 집 근처 식당이 세워둔 입간판의 전선줄에 걸려 넘어지고 들어왔을 때, 별 일 없이 거기 걸려 넘어져서 무릎 까졌다고 했는데, 그 길로 아빠는 그 식당에 가서 간판 관리 잘하라고 선에 우리 딸 걸려 넘어졌다고 하셨던 거다. 이런 일화는 셀 수 없이 많다.
며칠전 인스타그램에서 최화정이 아버지에게 사랑 받고 자란 얘기를 했다. 이영자가 그걸 대신 얘기하며 이 언니의 이 사랑충만함은 다 아버지로부터 비롯된거라고 하더라. 그 영상 보면서 나는 '아 내가 지금 이런 성격이 된 건 다 아빠 때문인데, 아빠가 나를 극진히 사랑했기 때문인데, 나도 아빠가 그랬는데'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부장제 얘기 나올 때마다 자꾸 내가 경험한 가부장제로 아빠를 소환합니다. 하아- 아빠가 날 사랑한 거 알겠어, 그런데 ... 뭐 아무튼 이렇게 되었네요?
자, 얼른 술얘기로 넘어가자.
물리적 거리를 두는 특정한 금지 조치는 여성을 제외한 가족 전원에게 적용된다. 더 정확하게는 '안주인'만 예외로 취급되는데, 사실 안주인에게마저 이런 조치가 적용된다면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 될 것이다. 바로 그가 모든 음식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그는 설령 자신이 소비하지 않더라도 모든 음식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접근 가능성은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그가 하는 일과 명백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때 그의 일에서 술은 예외로 치는데, 술을 마실 준비를 하는 일 자체가 남성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술에 대한 물리적인 금기가 집의 안주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때도 있다. 이때 '주인'의 술병을 건드릴 수 있는 것은 안주인뿐이다. -p.82
하하하하하. 크리스틴 델피의 지적들은 대부분 지금도 유효하지만, 그러나 술에 대해서라면 좀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부터도 우리 집 술은 다 내가 관리(?) 하니까. 소주, 맥주, 와인, 위스키 이젠 사케 까지, 사다 쟁여둔다. 안주를 만드는 것도 나고 술을 마시는 것도 나다. 술 소비, 내가 한다! 술상을 차리는 것도 나다. 아, 물론 내가 안주 만드는 동안 엄마가 술상을 차릴 때도 정말 많다. 앞접시를 가져다두고 '오늘은 뭐 마실거야?' 물으시고 내가 말하는 술 종류에 따라 잔을 가져다두시는 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쓰다 보니 술 마시고 싶네?
사실 술 마시는 게 아빠의 특권이었던 때가 있다.
우리 아빠, 나 어릴 적에 돈 벌 생각은 안하고 술만 마셔댔다. 엄마는 그런 아빠 때문에 속상해했고. 술 드시고는 잔뜩 과자를 사와서 우리 준다고 했었는데, 내가 국민학교 4학년 때 학급 임원이 되어 임명장을 받아오자 아빠는 술마시기를 그만두셨다. 아니, 나는 맨날 술만 마시고 다니는데 얘는 어떻게 부반장이 됐지? 이런 생각이 아빠를 강타했고 그러다가 '우리반 애가 아빠 술 취한거 보고 나 놀렸어' 라고 하는 말에 대충격 받으시고 그 뒤로 술을 한 방울도 입에 안대신다. 그렇게 술을 안마시자 일하러 가는 날이 늘었고 그제야 엄마는 아빠가 정신 차렸다며 같이 돈을 벌기 시작하셨다. 그전에 엄마가 돈 벌고 싶어도 꾹 참았더랬다. 그러면 엄마가 돈 버는 것에 아빠가 의지하는 삶이 될까봐. 여하튼 그 때 아빠가 술 끊고 우리 집은 술과 상관없는 집이 될 줄 알았는데, 하아, 미래는 예측불허, 큰 딸이 술을 쟁여두고 삽니다.. 엄마.....
그렇지만 나는 돈 벌면서 마십니다. 그리고 엄마랑 같이 마십니다. 여하튼 안주도 내가 만들고 술도 내가 사고 술 관리도 내가 하고(라고 해봤자 얼마나 남았나 보고 또 왕창 사오기 정도) 그렇게 되었다.
때로 이러한 계율은 사실 적시의 형태를 띤다. "여성은 남성보다 덜 먹는다"는 말이 그러하다. 혹은 식품 보건과 관련된 조언일 때도 있다. "어떤 음식이 '좋거나' '나쁘다'." 소비 격차의 규범적 측면을 이런 표현의 두 번째 부분에 등장한다. 여기에서는 이 '좋음' 혹은 '나쁨'이 개인의 지위에 따라 차별적으로 장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언급된다. 이로써 "잼은 (오직) 아이들의 이를 썩게 한다"거나 "와인은 남성(만)의 힘을 돋운다"등의 표현이 성립한다. -p.84
ㅎㅎ 여성은 남성보다 덜 먹는다 라는 말은 참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무슨 말이냐면, 덜 먹는 여성도 있고 아닌 여성도 있다는 것. 저렇게 규정 지어놓으면 덜 먹는게 당위성을 갖는 것 같지만, 나같은 여자는 여기에 반발하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예전에 남동생하고 둘이 탕수육을 먹을 때였는데 마지막 하나가 남았단 말야? 남동생이 '누나 먹어' 이러길래 '응!' 이러고 먹었는데 ㅋㅋㅋㅋㅋㅋㅋ남동생이 그런 나를 보고 '아니, 다른 누나들은 이럴 때 다 동생 먹으라고 양보하지 않냐?' 이래가지고 ㅋㅋㅋㅋㅋㅋㅋ난 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남동생하고 순댓국 먹으러 갔을 때 내가 싹싹 긁어먹느라고 뚝배기 기울여서 먹는데, 남동생이 또 그걸 보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뚝배기 기울여서 먹는 여자는 누나 밖에 못봤어" 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여자들이여, 뚝배기를 기울이자!!!
이래서 비정상체중입니다.
이게 다 '여자는 남자보다 덜 먹는다' 같은 말 반박하느라 이렇게 된거라니까? 내 온몸을 부딪혀 세상에 반항하느라 비정상체중이 된것이다!!
이만 총총.
(19세기의) 전통적인 농촌 가족과 오늘날 프랑스 남서쪽에 주로 분포한 주변화된 가족 농장을 살펴보면, 식품 소비 양상은 가정 내 개인의 지위에 따라서 극단적일 정도로 달라진다. 이 차이는 음식의 양으로 나타나고 아동과 성인, 여성과 남성의 대립 구조를 낳는다. 성인 중에서도 노인은 중장년보다 덜 먹고, 하위 구성원이 가장보다 덜 먹는다. 가장은 가장 큰 조각을 먹는다. 그들은 또한 가장 좋은 음식을 차지한다. 양만큼이나 질에서도 차이가 두드러진다. - P78
부엌에 있는 많은 음식이 성인 정도의 키로만 닿을 수 있는 높은 곳이나 빵 쟁반 위 혹은 찬장 위에 보관된다. 높이를 통한 이런 강제는 너무나 고전적인 것이어서, 여기에 도전하는 아이들이 수많은 민담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런 이야기 속 주인공은 일반적으로 용감하게 사다리를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지만, 이야기의 결말에서는 불행히도 어른의 매가 개입함으로써 제재되거나 즉각적인 배탈이라는 천벌로 응징된다. 한 잼 회사에서는 잼 단지에 손가락을 담그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의 이미지를 광고에 사용하기도 했는데, 여기에서도 아이는 의자 위에 올라가 있다. - P81
물리적 거리를 두는 특정한 금지 조치는 여성을 제외한 가족 전원에게 적용된다. 더 정확하게는 ‘안주인‘만 예외로 취급되는데, 사실 안주인에게마저 이런 조치가 적용된다면 상당히 번거로운 일이 될 것이다. 바로 그가 모든 음식을 준비하기 때문이다. 그는 설령 자신이 소비하지 않더라도 모든 음식에 접근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접근 가능성은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그가 하는 일과 명백하게 관련되어 있다. 이때 그의 일에서 술은 예외로 치는데, 술을 마실 준비를 하는 일 자체가 남성의 특권이기 때문이다. 술에 대한 물리적인 금기가 집의 안주인에 의해 이루어지는 때도 있다. 이때 ‘주인‘의 술병을 건드릴 수 있는 것은 안주인뿐이다. - P82
때로 이러한 계율은 사실 적시의 형태를 띤다. "여성은 남성보다 덜 먹는다"는 말이 그러하다. 혹은 식품 보건과 관련된 조언일 때도 있다. "어떤 음식이 ‘좋거나‘ ‘나쁘다‘." 소비 격차의 규범적 측면을 이런 표현의 두 번째 부분에 등장한다. 여기에서는 이 ‘좋음‘ 혹은 ‘나쁨‘이 개인의 지위에 따라 차별적으로 장기에 영향을 미친다고 언급된다. 이로써 "잼은 (오직) 아이들의 이를 썩게 한다"거나 "와인은 남성(만)의 힘을 돋운다"등의 표현이 성립한다. - P84
희생은 두 번째 성정이 된다. 안주인은 아무 고민 없이 가장 작은 비프스테이크 조각을 먹고, 스테이크 양이 모두에게 충분하지 않다면 아예 먹지조차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스테이크를 원치 않아." ‘원하지 않는‘ 사람이 항상 같다는 데 놀라는 사람은 없다. 그 자신도 물론이다. 마찬가지로 희생 이데올로기가 여성적 본성의 필연적인 부분이라고 스스로 되뇔 필요도 없다. 본인의 헌신과 너그러움을 의식할 필요도 없다. 보편적인 원칙은 일상생활의 자동화만으로는 행동을 유도하기에 충분치 않게 되는,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나 필요해지는 것이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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